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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의 서베를린 - 챕터 2 : 서베를린은 왜인지 흐림 -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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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내가 모르는 일이 생기다니 기가 막히는구만.’
 
  그는 생각보다 여러가지 권한이 있는 사람이었다. 본국과 이곳 GSFG 사령부 ‘니켈’벙커의 통신과 관련된 업무들이 상당수 그의 손아귀 아래에 놓여있다. 또한 통신연대장과 다른 공개적인 군정보국 파견요원들만 아는 사실이지만, 그는 사실 사령부에 파견된 GRU측의 최고선임자로 그 신분이 어느정도는 비밀에 부쳐진 사람이었다.
 
  GRU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 거기다 그의 계급을 보면 지구의 절반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주독소련군 본부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가 더 있다. 글라디쉐프 소령의 또다른 정체는 GRU와 GSFG 내부에 숨겨진 이중간첩이라는 사실이다.
 
  정보가 들어오면 그것이 단순한 카더라인지 의심해보는 수준을 넘어서, 동서 양진영에서 교차검증까지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권한의 소유자, 하지만 지금 그에게도 시련이 닥쳐 온 것이다.
 
  “도대체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연대장은 그의 숨겨진 신분 중 하나, 군정보국의 파견 인원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당연히 연대장은 이런 문제에서 그를 매우 신뢰했다. KGB쪽 파견 인원(그쪽도 최선임자는 그 정체가 비밀이었지만, 어디 부서에서 위장직함을 갖고 근무하는지는 서방 측의 정보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들 보다도 그를 더욱 신뢰했다. 
 
  하지만 그는 연대장의 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면 연대장이 그에게 했던 질문은 그가 미치도록 알고 싶어하는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글라디쉐프 소령은 원래 어제가 아닌 오늘이 당직을 서는 날이었다. 다른 후임자 녀석 하나가 일이 생겨서 근무를 바꿔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근무를 바꿔 준 것을 후회하는 중이었다. 예고도 없이 닥쳐오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 가 없었다.
 
  “나 오늘 당직 아니야. 페트로프랑 바꿨어.”
 
  [ -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 부대 복귀 하셔야 합니다. ]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 - 모스크바와 연락이 전혀 안됩니다. ]
 
  도대체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지. 차라리 근무 중에 이런 일이 닥쳤더라면 시간의 효율적인 이용에도 좋았겠지만 무엇보다도 사태의 첫 시작부터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을텐데.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수 많은 단서들을 놓친 것 같은 느낌이 그를 가장 아쉽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부대에 복귀해서 사무실에 도착해 신호연대 당직 근무자들에게 확인한 정보들은 다음과 같았다. 
 
  “통신이 안 되는 게 언제 부터야?”
 
  “베를린 현지 시각 22시, 모스크바 시각 24시입니다.”
 
  “당시 상황은? 근무일지도 갖다 주고.”
 
  당직병이 종이 파일에 펀치로 구멍을 뚫은 용지를 끼워 만든 근무일지를 커피 한 잔과 같이 소령에게 주는 동안 통신실 당직사관은 침착하게 보고를 이어나갔다.
 
  “22시 21분경, 신형 통신망이 본국과의 연락 두절 되었습니다.”
 
  “신형 통신망이라면 컴퓨터간 전산망을 말하는 건가?”
 
  “맞습니다. 아시다시피 여러 번 말썽을 부렸던 체계라서 기계 고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비대를 불렀지만, 보수 작업 결과 장비들은 모두 정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것이…….”
 
  “그것이 23시 05분?”
 
  근무 일지와 보고 내용을 대조하면서 서류를 쫙 훓어보던 소령이 매서운 눈빛을 당직 사령에게 쏘아 붙이자, 당직사령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침착하게 보고를 이었다. 투철한 군인 정신 그 자체였다.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정비대가 본국 쪽 해당 전산 담당자에게 연락을 시도했는데, 유선의 불통이 이때 확인 되었습니다. 그 직후 무선, 위성 통신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보았지만, 전부 차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령은 그 투철한 군인 정신을 산산 조각내기 시작했다. 모두 투철한 군인 정신에 합당한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에 의거한 지적들이었다. 
 
  “그러니까, 귀관은 아측의 전술 핵무기 관련 정보까지 오가는 최신형 전산 통신망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음에도 그것에 대해 단순 고장으로 판단하고 한 시간 가량 통신 차단 상황을 방치, 아니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단 말이군? 지금 이게 사회주의 계급 전선의 최전선에서 적성 세력과 대치 중인 군 사령부 주둔 부대의 당직자가 할 소리인가?”
 
  신형 통신망이 평소 고장이 자주 나 많은 관계자들의 속을 썩였기 때문에 평소 이런 일이 생기면 많은 관계자들이 저 불쌍한 당직사령과 같이 행동했다는 점은 지금 상황에선 그저 변명에 불과할 따름이었고, 그저 오늘 밤 당직을 서게 근무표를 짰던 본부중대 인사계원을 탓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합당한 징계 조치에 대한 사전예고와 함께 시말서를 제출 할 것을 명령한 뒤, 축 늘어져 문 밖으로 나서는 당직사령의 등짝을 째려보던 그는 깐깐한 상관으로서의 역할 놀이에서 벗어나 다시 사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마지막 남은 한 가닥 희망, 미국 친구들의 경우엔
 
  [ - 도대체 너희들 지금 모스크바에서 뭔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
 
  라는 전화가 올 정도니 말 다했지. 나의 군 정보국 신분을 알고 있는 연대장의 배려로 특별히 사용할 수 있었던 개인실의 군 전화에 술집에서 멋대로 끼어 들어온 CIA 놈들이 제일 먼저 다짜고짜 던진 질문이란 게 저러니 소령은 그동안 세상의 모든 정보를 자신의 것처럼 여기던 태도가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국인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모름지기 정보의 소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그로 인해 그는 주독소련군 사령관조차도 모르는 모스크바에서의 상황을 알게 된 것이다.
 
  ‘모스크바 내 급변 사태 발생, 미 대사관에서 교전음이 청취되는 가운데 군정보국 본부에 소속 불명의 특수부대가 난입, 붉은 광장에서 크레믈린 경비연대와 소속 불명의 병력간 교전이 벌어지고, 국방부에서도 교전 중이라는 미확인 정보까지. 사건 발생 전에 공수연대가 타만스카야 사단 주둔지에서 실탄을 불출하고 시내로 이동했다는 정보가 있지만 이놈들이 크레믈린 습격의 주체인지는 아직 확인이 안되었고.’
 
  커다란 폭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의 직감상 이번 모스크바 시내에서의 교전은 무언가의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었다. 이번 통신 차단 건이 모스크바에서의 급변 사태와 연관이 있으리라는 것은 열살 먹은 소년단 꼬마 애들도 짐작할 수 있을 사안이었다. 다만 새로운 의문점이 생겨났지만 말이다.
 
  “누가, 왜 저지른거지?”
 
  비록 그는 현재 개인실 책상에 앉아서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그의 의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GSFG 사령부는 물론 주독소련군 전체를 통틀어서도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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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멍청한 공수연대놈들 때문입니다. VDV를 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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