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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의 연속이었다. 처음 짐 싸서 챙겨나올때의 패기는 온데간데 없고, 다들 표정에 무기력함이 묻어나오려는 순간이었다. 아까 낮에 봤던 검은 벤츠 세단의 주인들은 한참 먼 데서 멈춰서 자기들끼리 웅성대더니, 자신들의 메신저로 삼은 임시 소대장 포스터 상병을 불러다 다시 웅얼대고선 전부 단독군장 차림으로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음. 험비에서 내려 사주경계에 들어간지 시간이 거의 20분은 지났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과 폭음이 마치 전쟁이란 빌어먹을 무언가가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끊임없이 존재감을 어필하는 행위같다는 생각을 일행중 누군가가 혼자서 머리 속으로만 떠올렸다. 다만 굳이 이런 소란을 떨지 않아도 모두들 이미 자기들이 전쟁터의 한복판에 떨어졌음을 너무나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저 무리에 섞여있는 레이븐 스콧 일병도 그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만 해도 완전편제의 보병중대였던 502공수보병연대 4대대 A중대는 눈 깜짝 할 사이에 병력이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버렸다. 산 사람 중에서도 몸이 멀쩡한 사람들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레이븐 스콧 일병은 바로 이 소수에 해당하는 ‘운수 좋은 녀석’이었다.

 

  꽤나 험한 동네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던 스콧 일병은, 이런 폭풍 전의 고요가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건너 건너 골목의 약쟁이들이 ‘우리 나와바리’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 할 때, 중국제 AK와 짝퉁 우지, 산탄총 따위를 하나씩 꼬나들고 가짜 거래장소에서 함정을 팠던 때가 기억났다. 폭풍 직전의 고요에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었을때 그 맛이 유독 삼삼했는데, 이젠 꼴에 군인이라고 멈칫 하게 된다. 너도 나도 적도 우리편도 들고 있던 AK도 이젠 저쪽에서만 쓴다.

 

  옛날 생각에 잠긴 스콧 일병의 뒷편에서 조그만 무전기 잡음이 들렸다. 임시로 지금 여기 나와있는 보병들을 통솔하는 중책을 맏게 된 포스터 상병이 무어라 대답하는 듯 하더니, 곧 대답은 명령으로 전환되어 스콧 일병 자신의 일감이 되었다. 드디어.

 

  “특수부대 형님들이 외곽 경계인원들을 정리했다고 한다. 이제 5분 안에 사전에 약정한 지점으로 산개해서 외곽 경계에 들어간다. 후아?”

 

  “후아.”

 

  오키프의 사격조가 목표 건물이 소재한 작은 블럭 기준으로 남서쪽으로, 로드리게스의 사격조는 북서쪽으로, 대런의 사격조는 북동쪽으로, 그리고 스콧 일병과 패트릭 일병이 있는 사격조 통제를 겸임하는 포스터 상병네가 남동쪽으로. 어두운 밤이었지만 아직 전기는 끊기지 않은 애매한 암흑 속에서, 다시 험비에 몸을 싣는 이들은 매우 급해보였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시간 여유가 없다. 5분 안에 틀어 막아야 하니까.

 

  적의 눈에 띄지 않을 곳에 세워놨던 험비에 다시 시동이 걸렸고, 눈치 볼 것 없어진 다섯 대의 험비들이 주변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고 각자의 목표지점으로 미친듯이 내달렸다. 그들은 도로 우측으로 붙어서, 가로등 빛이 닿지 않을 그늘가에 진을 쳤다. 

 

  포스터 상병이 직접 통제하는 사격조는 상행 2차선 하행 2차선의 비교적 폭이 넓은 4차선 도로를 통제해야 했지만, 중앙분리대나 좌우측에 주차된 차량등을 이용하니 적당히 모습을 감추고 방어진지를 구축할 만 했다. 전방 30미터 앞에 크레모아를 세 개쯤 놓고, 험비를 구석진데 주차해 놓는 작업까지 끝나고 보니 4분 30여초를 조금 넘기고서, 아슬아슬하게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데 성공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 소속소대가 엉망으로 찢어발겨지는 바람에 스콧네의 신세를 지게 된 패트릭 일병이 승합차 뒤에 몸을 숨긴 채로 주저앉고서, “씨바, 아슬아슬했네.”  라고 툴툴대며 숨을 골랐다. 그 옆에서 도로 정면을 향해 SAW를 거치시킨 스콧 일병 역시 겨우 한 숨을 돌렸다. 좀 일을 분배해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멍때리다가, 갑자기 바빴다가. 세상 사는 일이란게 다 그렇긴 하다.

 

  스콧 일병과 다른 잔류 병력들이 이 모종의 사건에 휘말린 것도 그런 과정의 일부였다.만신창이가 된 포병들과 4대대 알파 중대는 그대로 여단 의무대행이 되어버렸고, 포병과 보병을 모두 합쳐 대략 1개 소대 조금 넘게 남은 몸 성한 인원들은 그대로 붕 떠서, 모두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옹기종기 모여있던 의무대 앞마당으로 왠 대형 세단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더니 급정거 해버렸다. 뒤에서는 험비 몇 대가 따라오고 있었는데, 한 대를 제외하면 똥씹은 표정의 운전병들 외에는 선탑자조차도 아무도 없는 텅텅 빈 차였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그 벤츠와 험비에서 범상찮은 차림의 군인 대여섯명이 내려 성큼성큼 그들 앞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니들이 4대대 A중대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포병도 조금 섞여있다고 말하자, 그들이 나중에야 <이블>이라고 부르게 되는 특수부대 팀장쯤 돼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 장교는 없나?”

 

  “수술실에 군의관들이 있긴 합니다.”라고 포스터 상병이 대답하자, 그들은 차선임자를 찾기 시작했다. “NCO도 없나? 현재 누가 자네들을 통제하고 있지?”라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을 다시 저승에서 불러 올 수는 없는 법이다.

 

  “일단 제가 하고 있습니다. 포스터 상병입니다.”

 

  “좋아, 포스터 상병. 그럼 이 중에서 병력을 좀 추려가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모든 병사들이 고개를 쳐들어 그들을 향했다. 뭐 도시 전체가 포위를 당한 상황이니만큼 일손이 급하니까 찾아 왔겠지. 그러나 그런 이성적인 사고를 통한 이해심을 키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방금 죽다 살아 돌아왔는데, 이번엔 또 어디서 뺑이를?’ 이런 생각이 도저히 안 들 수가 없었다. 니들도 그런 폭격 한번 당해 봐라, 마음 안 바뀌고 배기나.

 

  “저,”여기까지 말하고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어서 포스터 상병의 말문이 막혔을 때, 이런 경험이 몇 번 있는 듯 한 <이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장님’(Chief)라고 부르면 돼.”

 

  “치프, 많이 일손이 부족한 건 알겠지만 지금 저희도 나름 사정이 있습니다. 조금 전 적 공군의 공습으로 2개 중대규모였던 병사들이 다 죽거나 다치고 이 정도만 남은겁니다. 지휘체계도 엉망이라 제대로 통제도 안 될겁니다.”

 

  “어쩔 수 없어, 상병. 미안하게 됐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정 그렇다면 보병 위주로 대략… 2개 분대정도만 데려 가겠네.” 

 

  “전쟁이 난 마당에 이런 소리를 하면 비겁하게 들리시겠지만,” 이미 못 볼 꼴 다 본 병사들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야 했던 포스터 상병은 여기서 조금 주제 넘은 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저들은 눈 깜짝 할 사이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 열에 여덟이 죽거나 차라리 죽는게 나았을 몰골이 된걸 본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포스터 상병은 살짝 눈치를 살폈지만, 이들은 또 의외로 그렇게 꽉 막히진 않은 듯, 자기들끼리 잠깐 시선 교환을 하더니만 “계속 해 보게.”라며 일단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꼰대는 아니라서 말귀를 좀 알아 들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포스터 상병은 조금 더 자신감을 얻고 말을 마저 이어갔다. 누가 들어도 비겁하게 들리겠지만, 그도 이젠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영창이 전선보다는 안전하지 않겠는가.

 

   “툭 까놓고 말해서, 이 도시는 어차피 함락될 도시 아닙니까? 우리 애들은 할 만큼 했고 죽을 만큼 죽었습니다. 산 사람이라도 살려 보내야지 않겠습니까?”

 

  “자네들 각 중대별 사상률이 80에서 90퍼센트에 육박하는 판이지. 자네들 심정 이해가 된다네. 어지간해선 맞는 말이야. 나도 왠만해선 이런 뻔뻔한 소리 하고 싶지 않았어.”

 

  고민하던 그들은 잠깐 자기들끼리 시선을 주고 받고는, ‘치프’가 생각도 못 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는 이 전쟁이 왜 벌어지게 됐는 줄 알고 있나?”

 

  여기서 이어진 이야기들에 그들이 홀려서 여기까지 따라 오게 되었다. 강력한 동기부여였다. ‘인류의 미래가 너희들에게 달려있다’는데 여기까지 몰린 군바리가 뭘 더 내뺄 수 있을까.  본토에 두고 온 가족들 안전이 걸린 문제 아닌가? 씨벌 죽더라도 핵폭탄은 멈추고 죽어야지.

 

  “그러니까,  윗대가리들이 서로 오해에 오해의 꼬리를 물다가 이 모양 났다는 이야기잖아.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우리쪽이랑 러시아랑 무슨 연애하는 사이였어?”

 

  아직도 황당해서 믿을 수가 없다는 듯, 패트릭 일병이 소총을 거총 자세에서 살짝 늘어뜨린 채로 전방을 뚫어져라 주시하면서 툴툴댔다. 그러나 제일 억울한 것은 역시 사격조의 화력을 책임지는 스콧 일병이었다.

 

  즐거운 휴가 계획이 이 사소한 불장난과 오해때문에 어긋나서 일이 여기까지 꼬였다는 이야기 아닌가. 서로 오해해서 잠깐 대치하다 풀리고 그랬으면 나중에 술안줏감이라도 돼지, 오해해서 휴가 날린 것도 억울한데 전쟁까지 일어났다니.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스콧 일병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다른 많지 않은 목숨 건진 이들도 그랬지만 스콧은 더욱 그랬다. 그래서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어, 우리 구면 아닌가?” 제일 먼저 일어나자, 스콧을 유심히 처다보던 특수부대쯤 되는 누군가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휴가 짤렸는지 알게 되니까 참을 수가 없구만. 그런거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스콧은 뭔가 화가 나야하는데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스콧만 그런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진짜 이 무슨 웃기지도 않는 하탈한 상황이란말인가. 이 젊은 청년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본국행 비행기를 타고 들떠있을 시간에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인지.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 둘은 급격하게 말이 없어졌다. 눈 앞의 도로는 평소같으면 이런저런 민간인 차량들이 들쏘시고 다녔을 나름 큰 길이었지만, 사방에서 총성과 포성이 울리고 실제 교전이 벌어지는 상황이 오니 타고 있던 차도 내팽개치고 어디엔가 짱박힌 듯 전쟁의 소리 외에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이 기묘한 위화감, 그들이 알던 베를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 이 기묘한 공기를 싫어했다. 

 

  스콧 일병은 양각대를 펴서 거치시켜놓은 SAW를 쥔 손에서 힘을 살짝 풀었다. 이상하게 안정되고 차분해진다. 옛날엔 어땠더라? NY의 슬럼가도 밤만 되면 불이 꺼지고 구석구석 총성이 들리긴 했었다. 다시 그 날 밤중의 ‘매복’이 생각났다. 조준선 정렬이나 영점 잡는 법 같은걸 전혀 모르면서 중국제 칼라시니코프를 들고, 초조한 기분을 니코틴으로 진정시키던 순간. 스콧이 생각해보니, 지금의 이 장소는 놀랄만큼 그 때랑 분위기가 흡사했다. 

 

  “나 전에도 이런 적 있었어.”

 

  짧은 침묵을 깨고 그런 말을 하자, 옆에 있던 패트릭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몇 살 때?”

 

  “열 여섯살.”

 

  “허미, 그 때는 누가 이겼는데?”

 

  “몰라. 짭새 뜰 때 쯤 해서 서로 나와바리로 빠졌으니까.”

 

  “그래도 그 동네는 도망칠 데 라도 있던거잖아. 지금보단 훨씬 낫네.”

 

  “그럼 이사라도 올래?”

 

  패트릭이 쓴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어라고 말하려던 그 때, 가까운데서 폭발음이 들렸다. 포스터 상병이 그들에게 넘겨받은 모토롤라제 워키토키가 시끄러워 진 것은 덤이다. 틀림 없었다.

 

  “우리 코만도 아저씨들, 시작 했나보네.”

 

  “근데 저 사람들 어디 부대 사람들일까?”

 

  “그린베레 아냐? 아니면 CIA? 델타포스? 네이비 씰?”

 

  “들어 본 부대 이름 다 나오네. 계속 내려가다 우리 사단도 나오겠구만.”

 

  그리고 3분이 조금 지나자, 가까운데서 울리던 전쟁 소리가 다시 잦아들었다. 무전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들도 한층 차분해졌다. 이 사람들 벌써…? 하는 생각이 안 들수가 없었다.

 

  “적어도 우리 사단은 아닌거같지?” 하고 패트릭이 뒤를 힐끔 돌아봤다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향하며 웅얼댔다. 각 사격조 조장들에게 빌려준 워키토키를 통해서 ‘진입 성공, 택배사고 수습 완료’ 했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다들 한 숨 놓았다. 잘 하면 별 탈 없이 끝날 것 같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 정말 군목이 그렇게 찾아 헤메던 신이 있다면 그리 개고생한 우리를 기어커 한번 더 시험에 들게 하실 리가 있겠나. 포스터 상병은 운전병을 불러 다시 험비에 타서 시동을 걸어놓으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바로 그 때였다.

 

  “차 소리 들리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른 험비에 올라탈 생각에 들뜬 패트릭이 위화감을 느낀 스콧의 말을 듣고 잠깐 당황했다.

 

  “니미 씨발 사방이 적인데 어디로 피난가려구….”쯤 말했을 때, 그들의 눈 앞에 소리의 주인공들이 들렸다. 밤이긴 하지만 가로등빛에 간판이 다 꺼진 것 도 아니고, 저쪽도 헤드라이트 켰으니 충분히 잘 보인다. 쌍라이트 안 켜는 매너운전 고맙고요, 어디보자, 차종이… 여기서 둘 뿐만 아니라 전방을 주시하던 사격조원 전원이 경악했다. 씨벌, 우아즈다! 그것도 떼거지다! 아니 씨발 공항은 아직 뚫리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 - CQ, CQ, 여기는 호텔. 적 특수전부대 접근 임박! 사격조 전투 준비! ]

 

  “씨발 빨리도 알려주네 개새끼들이!” 패트릭 일병이 툴툴대며, 다른 소총수들처럼 들고있던 M16의 장전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포스터 상병은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정리하고 명령을 하달했다. “전방 2백미터에 적 경차량 대열! 스콧, 준비되는 대로 자동화기로 제압사격! 적 차량대열이 속도를 늦추면 유탄이랑 LAW로 확실하게 격파한다!”

 

  스콧 일병이 느끼기엔, 요 몇일 맨날 이랬다. 뭐 좀 하려고 하면 결정적인데서 뭔가 꼬이고 꼬여서 막히고 일이 생겼다. 휴가 일정 잡고 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는 것 같더니 기어코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세계평화좀 이뤄보겠다는데 니들 이따위로 굴거냐? 

 

  당혹감을 넘어선 분노, SAW의 벨트커버 위에 달린 PVS-4 야간조준경의 녹색 화면 속 조준점에 그것들이 똑똑히 들어왔다. 거리는 대략 2백미터 전방, 갈수록 다가온다. 멍석 깔아줬고 놈들은 사지로 제발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일병이 지난 몇 일간 축적해왔던 응축된 분노가, 5.56밀리 나토탄의 추진제와 함께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좆이나 까잡숴, 이 빨갱이 씨벌 호로새끼들아!”

 

  주기적으로 예광탄 줄기가 한 번씩 밤 공기를 가르고 궤적을 그렸다. 총에 물려있던 200발 링크 탄띠가 쉼 없이 급탄기구로 빨려들어갔다. 금빛 구리탄피가 땅바닥으로 무한정처럼 떨어졌다. 선두차가 난데없는 납덩이 우박을 뒤집어쓰고 왼쪽으로 돌아가며 뒹굴뒹굴 구르는게 보였다. 

 

  스콧 일병은 지금 이 순간, 그 동안의 응어리진 무언가가 처음으로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까지고 나는 발목만 잡히는 븅신일 줄 알았냐? 븅신한테 뒈져봐라 개새끼들아!’ 아까 전, 포대 지원 나갔을 때도 기관총을 냅다 갈겼지만 그 땐 이런 기분이 안 났었다. 무엇의 차이였을까? 주도권?

 

  그 짧은 순간, 열 여섯살 때의, 첫 살인의 추억이 다시금 스콧 일병을 사로잡았다. 다들 감추고 있던 몸을 드러내고 갑자기 총질을 시작했던 그 첫 사격의 순간, 어린 스콧은 어설픈 견착자세로 불과 10미터 앞의 상대가 탄 낡은 승용차의 전면 유리창에다가 총알을 퍼부었었다. 반자동 소총이었지만 속사하면 동네 뒷골목 싸움 수준에선 그 정도도 분에 넘치는 화력이었다. 

 

  조준을 할 줄 모르던 시절이라, 그 가까운데서 그렇게 미친듯이 방아쇠를 당기고도 한 탄창쯤 붓고 나서야 상대방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딜 어떻게 맞았는지는 스콧도 알 수 없었다. 그의 기억에 남은것은, 구멍나고 피범벅이 된 전면 유리창 뿐이었다. 아마 지금 백여미터 저금 넘게 멀리 있는 저 빨갱이들도 비슷한 몰골로 늘어져 있을 것이었다. 스콧의 머리 속에서는 죽음의 순간이 찾아온것도 아닌데 지난 인생의 기억이 그렇게 새삼스레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그런 와중에도 벌써 탄통 하나를 거의 다 비워가는 SAW는 지칠 줄 모르고 실탄을 소모하고 있었다.

 

  그런 스콧 일병의 잡념을 떨치기 위한 깜짝 폭죽처럼 큰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을 유발한 것은  패트릭 일병이었다. 

 

  패트릭이 소총을 내려놓고 등에 빗겨메고 있던 금속제 원통을 잡아뽑고서 어깨 위에 갖다 올리고서, 준비하시고, 쏘세요! 하자 마자, 66밀리 대전차 로켓탄이 ‘쉿’하는 듯 한, 마치 화살 날아가는 소리같은 그런 소리를 내며 사수로부터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로켓은 일직선으로, 누구 앞에서도 한 점 부끄럼 없을 만치로 곧게 날아가더니, 그 올곧음이 흔들리기 이전의 단거리에서 최 선두 다음 다음에서 달려오던 UAZ469를 보기 좋게 맞춰버렸다. 조선시대 활터에서라면 호기로운 ‘관중이요!’ 소리가 나왔을 법 한 그런 정밀한 한 방이었다.  

 

  그렇게 우아즈에 로켓탄이 착탄시 폭발, 그 뒤에 좀 더 큰 폭발, 소련놈들은 혼비백산, 우왕좌왕, 둘은 완벽하게 의기투합했고, 다른 이들의 소총사격이 간을 치는 가운데 이번엔 약 백이십여미터 전방의 멈춰선 차량대열을 향해 유탄이 날아들었다. 

 

  유탄이 폭발하고 사람 몇이 폭발에 휨쓸려 나뒹구는 가운데, 대열 후미의 차량들이 옆으로 퍼지면서 사람들이 뛰어 내리기 시작했다. 정면에서 보다보니 제대로 차량 수를 파악하지 힘들었지만, 이제 보니 차들이 한 두대가 아니었다. 꼴랑 여섯명이 언제까지고 틀어 막을 상대가 아니었다. 포스터 상병이 다급하게 모토롤라 워키토키를 더듬었다.

 

  “호텔, 여기는 초크 1! 적 차량대열과 접촉, 현재 교전 중! 적은 1개 중대규모로 예상됨. 지시바람,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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