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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 후에 닭대가리 애들은 빠질 예정입니다. 그때부터는 저희랑 초록베레모 아저씨들 뿐입니다. 물론 염려 안 하셔도 좋습니다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신들 실력이야 익히 잘 알고 있죠. 믿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베를린 오피스의 NSA 분실 최 선임자인 제시카는 긴장은 했지만 그래도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답했다. 살짝 미소를 띨 여유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제시카에게 말을 건 <폭스>(Fox) 상사(MSG)가 지휘하는 델타의 특전팀, 소위 ‘임시 R팀’은 현재 서베를린 주재 미국 정보기관 소속 화이트들의 경호 팀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전쟁 위기. 이번 에스컬레이션의 뒷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빨갱이들조차도 동정하게 될 정도로 양측에게 모두 당황스런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와는 별도로 델타 HRT의 입장에서라면, 전쟁이 날 거라면 지금이 차라리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 지금의 서베를린 시내에는 평소의 두 배 달하는 델타 요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당초 작계 대로라면 델타의 HRT는 CIA, NSA의 화이트들을 전부 동독 모처의 비밀 LZ로 날아오고 있을 TF160의 헬기편으로 발송한 뒤, 전황에 따라서 시내에 복귀하거나 동독에서 바로 잠적해 위에서의 지령을 받아 새로운 작전을 수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교대 타이밍에 맞물려 이 사단이 벌어진 ‘덕’(?)에 인원이 두 배로 늘어난 상황에서는 이 계획은 약간의 수정이 이루어 질 필요가 있었다. 

 

  “저희들을 믿으시는 것 치곤 얼굴 색이 영 안 좋으신데. 좀 웃어 보세요. 이마에 주름살 잡히겠어요. 뭐 두고 온 거 있어요?”

 

  지금은 고급 방탄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R팀의 PT(Point Man; 첨병)인 <노크>(Knock) 페더슨(Pederson) 중사가 풍선껌을 질겅이면서도 백 미러로 뒷좌석에 계신 VIP의 심기가 불편함을 눈치채고선, 긴장도 풀어 줄 겸 슬쩍 말을 건넸다.

 

  “그게, 두고 왔다면 두고 온 물건같기도 한데,” 물꼬가 트이자 제시카가 또다시 물었다.  “일반 근무자 컨보이랑은 아직도 연락이 안되나요?”

 

  “이것들이 좀처럼 연락을 받지를 않네요. 단순하게 통신에 혼선이 있는 거면 좋겠지만, 제 생각엔 그 정도로 끝날 일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그들과 아까 잡았다 풀어준, 두상이 특이한 KGB 소령 녀석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 한다면 전쟁은 기정 사실이었다. 시내 곳곳에서 

울리는 총성들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총성의 정체는 뭐,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부연 설명을 해 보자면, 전면전 수행에 앞서 침투한 소련의 가공할 인간 병기들, ‘스페츠나즈’ 작전팀들의 본격적인 행동이 개시되며 수반하는 소음이었다.

 

   전선 후방에 침투해서, 자유 진영의 튼튼한 둑에 구멍을 내어, 붉은 물결이 사방을 뒤덮게 하려는 일련의 준비 작업들. 벌써 시내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판이다. 이런 와중에 시내를 돌아다니는 경무장 컨보이는 너무나 만만한 먹잇감이다.

 

  “뭐, 일차적으로 우리 잘못이 맞으니 뭐라고 하기도 뭐시기하고. 별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문제가 생겨도, H팀이 시내에 대기중입니다. 누가 장난치면 지옥까지 쫒아가서 되찾아 올 녀석들이니, 믿어야죠, 뭐.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퇴출포인트에서 기다리는 것 뿐일 것 같습니다.”

 

  델타의 서베를린 HRT만이 교대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보안 유지를 위해서 타 부서에 말을 안 하고 있던 것이지만,정보기관의 주재원들도 적당한 시기에 인력의 교대를 진행하곤 한다. 재수가 없었다면, NSA의 화이트들 역시 지금이 교대 시즌이었다는 점이었다.

 

  조금 전에, 소련 스파이를 잡아 심문하는 과정에서 이번 에스컬레이션의 진상을 알게 된 뒤, 제시카는 오피스의 NSA 사무실에서 홀로 대기하고 있을 후임자에게  NEO작계에 의거해서 퇴출 프로토콜에 따라 접선 장소로 올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접선 포인트에서 만나게 될 줄 알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야 기가 막히는 이야기를 오피스를 통해 전해 들었다.

 

  제시카의 후임자는 서류 상으로는 평범한 국무부 직원으로, 그저 단순한 제시카의 사무 보조로만 등록되어 있었다. 서류 상으로는 지극히 평화적인 문화원 직원들과도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셈이었다. 바로 이 점이 문제였다.

 

  직무에 충실한 베를린 오피스의 해병들은 NEO 작계에 의거해서, 여단본부에서 증원된 헌병들과 함께 민간인들을 여러 분류에 따라 나눠 유형별로 작계에 따른 민간인 소개 작전을 개시했다. ‘문제’가 이 과정에서 표면으로 드러났다.

 

  갓 잡아온 따끈따끈한 소련 스파이의 취조를 위해 CIA와 NSA의 최선임자들을 비롯한 주요 실무자들이 전부 근교의 CIA 안가에 와 있던 시점에서, 오피스에 남아있던 인원들은 CIA 안가에서 온 전화 연락을 받고 탈출을 위한 일련의 분류 작업을 거쳐 재분류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고지식할 정도로 직무에 충실한 해병대원들이 NSA의 후임자를 일반 민간인으로 분류하고 해당 기준에 맞춰 인원 소개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오피스의 다른 업계 종사자들이나 본인 모두 해병대원들에게 일이 꼬였음을 어떻게든 설명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오피스에 남아 있던 직원들은 다들 잡무나 하던 인원들 수준이라 ‘말빨’이 먹힐 위치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씨발, 니들 지금 장난하는거야! 우리 애들이 우리 사람 맞다면 맞는거지 왜 일을 그따위로 처리해요?!”

 

  [ - 아니 담당관님이야말로 그걸 이제서야 알려주시면 어떡합니까? 우리 애들이 무슨 잘못이라구요? 실제 전시 상황에 작계대로 인원 분류해서 병력 출동시킨 우리 애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데요? 당신네들이 먼저 그걸 알려주지도 않아놓고, 너무 뻔뻔한 거 아닙니까? 담당관님이 여기서 분류 작업하고 컨보이 출발시켜 볼래요? ]

 

  제시카가 이 사태를 깨닫게 된 것은 십여 분 전, 군 통신망을 통해 오피스에서 출발한 화이트들의 컨보이가 어디쯤 도착했는지 확인하면서였다. 인원이 한 명, 그것도 그녀가 아끼는 후배가 비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오피스의 해병에 연락을 한 그녀는 보안규정이 빚은 예상치도 못한 사고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KGB의 볼로쟈를 취조하던 델타 신속대응팀의 안가에 갔던 정보기관 주요 인원들 중 한 명이라도 오피스에 남아 있었다가 해병이나 헌병 측에 사정을 이야기 해 줬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방탄차가 다시 한번 커브를 돌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노크>가 과장되게 껌을 딱딱 씹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폭스>가 말했다.

 

  “<노크>. 그딴 식으로 씹을 거면 당장 니 주댕이 벌려서 머리통에 붙여버린다.”

 

  “에이,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한번 더 왔다갔다 해야하나 심란해 죽겠는데.”

 

  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짙게 선팅된 창문을 내리고는 껌을 퉤 밷어버렸다. 맞은편 차선으로 지나가던 비틀 하나가 껌을 밟고 사라졌다.

 

  “암튼, 거의 다 온거 같슴다. NSA 누님도 연습 해 봤으면 아시죠?”

 

  “예. 그러네요.” 건성으로 대답하며, 제시카는 속으로 이들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인수인계를 잘 받아두었음을 새삼 느꼈다. 바로 그렇기에, 이들이 경호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었다.

 

  소련군에 의해 서베를린이 외부와 통신 차단을 당하기 직전, 하루 동안의 짧은 시간 안에 이미 미 본토의 JSOC 사령부로부터 수정된 ‘유사시에 대비한’ 새로운 지침이 베를린의 D-Boys 들에게 전달되었다. 

 

  ‘지난 1년 간 베를린에서 작전을 해 와 현지 사정에 빠삭한 <이블> 에드워드 상사의 임시 H팀은 베를린에 잔류해 정규군 및 특전단 헌병파견대의 작전을 지원한다. 새로운 1년간 베를린에 상주할 예정이었던 임시 R팀은 특전단 헌병파견대의 기관원 퇴출작전을 지원하면서 시내 밖으로 함께 탈출, 기관원들과 함께 퇴출한다.’ 

 

  당사자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사후 통보였다. 바로 이 결정으로 두 팀의 운명이 엇갈렸다.

 

  아무튼, 제시카와 CIA의 기관원들이 몸을 실은 컨보이 행렬이 어느덧 땅굴 입구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가자지구나 베트남의 땅굴 입구같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번듯한 3층 상가건물의 지하실에 소재한 깔끔하고 편리한 땅굴이었다. 

 

  1950년대부터 CIA가 끊임없이 시도했던, 철의 장막 너머로 연결된 베를린의 땅굴 매설 시도는 여러 번 그 장막 너머로 정보가 새어서 대참사가 벌어지곤 했었지만 결국 끝내 성공시킨 것이 두 개. 그 중 하나가, 유사시 무사하게 미국으로 송환 되지 못할 오피스 직원들을 귀환시키는 퇴출루트로서 사용되고 있었다.

 

  제시카는 필라 스포츠가방으로 위장되어있는(이라기보단 그것을 활용해서 만든) 퇴출가방을 내려놓았던 자리에서 지퍼만 열어서 내부를 다시 한 번 살펴 보았다. 위조 공민증, 동독 마르크화, 약간의 귀금속, 에너지바 몇 조각, 짧은 총열이 꽤 귀여운 S&W제 소형 리볼버 한 정과 예비탄약 50여발 등등. 

 

  그녀는 권총을 꺼내서 스피드로더에 물린 .38구경 실탄 다섯 발을 탄창에 채웠다. 그것을 가죽혁대 사이에 끼우고는 가방을 닫고서 허벅지 위에 올려놨다. 슬슬 내릴 준비를 해야한다. 바로 그 때, 대열이 정지했다.

 

  [ - <폭스>, 앞에 무슨 일  있습니까? ]

 

  뒤에서 CIA 직원 두 명을 방탄차 두 대에 분승해서 따라오고 있는 육군 특전단의 287 헌병중대 파견대에서, 팀 팀장이자 마티의 차량에 선탑중인 호프만(Hofmann) 대위(Captain)가 물어봤다. 하지만 이것은 <폭스>상사에게도 예상 외의 전개였다.

 

  예상 외의 전개는 이들이 대화를 주고받던 아까 전부터 시작되었었다. 컨보이 행렬의 목적지 코앞에, 한 대의 험비와 한 대의 2.5톤 트럭이 나타났다. 트럭의 짐칸에서 몇 명의 병사들이 뛰어내리더니, 험비 뒷문을 열고 나온 병사들이 트럭 짐칸에 살아있는 화물들과 함께 실려있던 각종 화물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바리케이드들이 즉석에서 깔리고, 도로에는 바리케이드 앞쪽에 스파이크들이 깔렸다. 

 

  케블러 방탄모를 쓰고 LC2 장비 특유의 Y형 서스펜더를 착용한 일련의 병사들은 팔뚝에는 완장을, 방탄모 전면에는 헌병임을 나타내는 MP 표식을 붙이고 있었다.

 

  일단의 미군 헌병들이 자기들끼리 무어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리케이드를 까는 동안 남는 몇 명은 이들의 지휘관인듯한 인솔자와 함께 얼마 없던 거리의 민간인들과 차량들을 거리 바깥으로 소개시키기 시작했다.

 

  인솔자인 듯 한 대위가 확성기를 들고, 유창한 독일어로 경고 방송을 시작했다. 적극적인 헌병들의 소개 작업 덕분에 거리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평소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는 거리라서 민간인 통제에 애를 먹고 있던 경찰들은 협조해주어서 고맙다고 연신 감사를 표하면서 해당 구역을 미군 헌병들에게 인계하고 다른 곳에서도 일손이 부족하다며 다른 거리로 차를 돌렸다. 거리에는 이제 이들밖에 남지 않았다.

 

  십여분 뒤,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 검문소 뒷편에서 나타난 이 차량을 본 헌병 대위는 호위병의 대동 없이 혼자서 승용차의 운전석을 향해 다가갔다. 차량에 애정을 가진 독일인들 답지 않은 이탈리아제 중고 피아트 124였다. 

 

  창문이 내려진 운전석의 창가를 향해 담배를 입에 물고 고개를 숙인 대위는 운전석의 사내가 불을 붙여주자  맛있게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이것이 무슨 매복작전도 아닌 이상, 담배정도는 조금 태워도 작전 수행에 아무런 문제 없다. 차라리 앞으로 언제 할 수 있을 지 모를 니코틴 충전을 미리미리 해 주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몇 분 뒤, 다른 골목길에서 천천히 서행하며 승용차 하나가 또 모습을 드러냈다. 우연히도 같은 피아트 124였다. 다만 이쪽이 더 깔끔해보이긴 했다. 헌병 두어명이 독일어로 차량 통제를 한답시고 경광봉을 휘두르며 적당한 장소로 차량을 주차시켰다. 

 

  “칼 같이 정확하구만.”

 

  그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헌병 대위가 중얼거리자,  차량 운전자는 그저 말 없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위의 담배꽁초도 어느덧 거의 다 태워서 필터 가까이까지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번엔 뒷쪽 큰 길가에서 폭스바겐 마이크로버스 한 대가 아까 전의 두 피아트들마냥 천천히 미끄러지듯 굴러왔다. 다시 고개를 앞으로 향하면서, 한 모금 마시고 나타난 연기 사이로 ‘검문소’의 모습이 아련히 눈에 들어왔다.

 

  헌병 대위의 시선이 검문소에서 검문소 너머의 차량 행렬에 맞춰지며, 검문소가 흐릿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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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팀 R팀이란 이름에는 큰 의미 없습니다. 서베를린 주둔중인 델타의 파견팀 정식 명칭이 신속대응팀(HRT)이니까, 올해 주둔팀 이름은 H팀 - 그 다음해 주둔팀은 R팀 - 그 다음은 T팀 - 이런식으로, 마치 중고등학교에서 학년 구분하게 해주는 교복 명찰 색깔 돌아가는 것 처럼... 물론 이 부분은 제 독자 설정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속편하게 짓진 않겠죠.

 

'닭대가리'란 이들의 기관원들을 호위해주고 있는 베를린여단의 알보병들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89년 무렵 베를린 여단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502 공수연대가 원래는 101 공중강습사단 예하부대였으니... 101사단 사단마크 아시는 분들은 왜 닭대가리라고 부르는지 아실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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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평양저녁은신의주 2018.06.08. 11:48

궁금한게 "이름 <코드네임> 이름" 이런식의 네이밍 센스는 언제부터 유래된건가요? 

Profile image 22nd 2018.06.09. 09:05

글쎄요 그건 저도 잘...

점심은평양저녁은신의주 2018.09.20. 20:45

22nd님의 소설을 요즘 다시 읽고 있습니다.

"전선 후방에 침투해서, 자유 진영의 튼튼한 둑에 구멍을 내어, 붉은 물결이 사방을 뒤덮게 하려는 일련의 준비 작업들."

이런 밀덕 + 문학적인 표현들이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Profile image 22nd 2018.09.20. 21:12

모자란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식적으로 스테레오 타입의 전쟁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지향하고 있기는 한데... 이게 다른 분들 보시기엔 또 어떨런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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