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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켈 벙커 한구석의 어느 흡연실에 남은 사람은 이젠 글라디쉐프 소령 혼자 뿐이었다. 다만, 몇 명으로는 도저히 생성해 낼 수 없는 양의 담배 연기들과 땅바닥의 꽁초들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몸에도 안 좋은 구름과자를 열심히 섭취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독 물질이 가득한 가스실 안에서, 독가스에 중독되어버린 지 오래인 글라디쉐프 소령은 대기중에 다량 함유된 니코틴 성분의 도움을 받아 그가 그동안 건진 정보들을 머리 속에서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워낙 위험한 정보들이라 어디다 적어 둘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가 많고 많은 흡연실들 중 바로 이 방에 들어 간 이유는 단 하나, 업무 수행을 위해서였다. 그는 업무 특성상 귀동냥을 많이 해야 하는 사람이었고, 이곳은 니켈 벙커 전체를 통틀어서도 귀동냥을 많이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정보란 마치 난로 연통 속의 찌거기와도 같다. 수 많은 사건들이 화목난로 속에서 벌어지고 나면, 그 흔적들은 정보가 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난로 연통에 걸린 찌꺼기마냥 잔류하게 된다. 

 

  개중에는 완전한 헛소문도 있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실도 있으며, 혹은 진실과 거짓, 확실한 경험담과 카더라의 혼재 속에서 만들어진 절반의 진실을 함유한 루머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바로 이런 혼돈의 난로 연통을 알뜰하게 청소하고, 진짜 쓸모 있는 것들을 조합해 ‘정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지금은 난로 연통을 싹 쓸어 담은 뒤 찌꺼기들을 분류하는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전, 그러니까 ‘난로 연통을 청소하러 왔을 때’는 참모 회의가 끝난 직후였다. 이 흡연실은 참모 회의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으로, 그 지정학적 위치 탓에 이것저것 귀동냥 하기 좋은 곳이었다. 

 

  가능하면 회의에 직접 참여하는 쪽이 확실하겠지만, 그의 위장 신분 정도로는 참모 회의에 참석할 권한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진짜 신분 중 하나를 알고 있는 연대장의 배려를 통해 마련한 그의 개인 사무실 구석에 틀어 박혀서, 회의실 안쪽에 심어둔 몇 개의 장난감을 사용했다.

 

  비록 안쪽 중의 안쪽, 회의장 내부에 도청 장비를 심어두지는 못 했지만, 적어도 부관실이나 기타 잡다한 곳의 내부 현황을 통해 대충 회의가 마무리 될 시점을 감지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타이밍 맞춰서 회의실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여, 빅토르. 잠은 좀 잤어?”

 

  회의실 뒷문으로 흐느적 흐느적 기어나오는 수 많은 부관들의 물결 속에서 퍽 친한 녀석을 마주쳤다. 물론 직업상 필요를 느껴서 친해진 녀석이었다. 바로 이럴 때 써먹으려고 말이다.

 

  먼저 인사를 건넨 녀석은 군수 참모 로딤체프(Родимцев) 소장(генерал майор. 미군의 준장에 해당.)의 부관인 안톤(Антон) 소령(майор)이었다. 군수 참모 똘마니 아니랄까봐 어디서 꿍쳐 먹는게 많은지 조금 체중이 많아보이는 그 녀석은, 오늘따라 평소의 둥글둥글하고 친근한 인상과는 전혀 딴판인, 약간의 피로가 섞인 날카로운 눈빛을 띄고 있었다. 

 

  그 자신의 선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주워들어서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기를 살짝 기대하며, 글라디쉐프 소령은 평소처럼 대화를 시작했다. 혼자만 있을 때를 제외하면 항상 연기를 하며 살고 있다보니, 직업을 잘못 고른게 아닌가 살짝 후회가 될 때도 있었다. 

  

  “내 꼴을 보고 그런 얘길 해라. 그 사단을 처음 인지 한 게 우리였잖아. 잠을 재울 리가 있냐.”

 

  그는 분명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외견상으로는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실은 대화의 시작부터 거짓 연기로 시작한 셈이었다. 

 

  사실 정형화된 패턴의 보고서 따위 작성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아닌 밤 중에 갑자기 끌려와서 제일 먼저 컴퓨터를 붙잡고 작성한 문서가 바로 사유서와 1차 조사 보고서였다. 

 

  그의 두 손이 미리 짜맞춘 양식에 맞춰 글을 쓰는, 관료적이면서도 투철한 당성이 가미된 두어 편의 정형시를 기계적으로 작성하는 동안, 머리 속으로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자신의 머리 속에 저장된 여러 정보와 조합해서 새로운 정보를 만들고 순서를 재구성했다. 머리 속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하고 쉬운 작업이었다. 아까 연대 지통실에 군사령관이랑 다른 별들이 쳐들어오기도 전에 다 작성한 서류들이었으니 더 이상 무어라 설명하겠는가.

  

  하지만 실제로 어쨌든 간에, 외형 상으로 그의 눈가에 드리운 엷은 다크 서클은 그의 연기력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안톤은 피식 웃으며, 글라디쉐프의 등작을 손바닥으로 툭 치고선,

 

  “들어가서 담배나 태우자.”며 그를 자연스레 흡연실로 유도했다. 하여간 너무 쉬운 녀석이다.

 

  흡연실 안에 들어와서 들은 이야기들은 전부 그가 직접 휴대하고 있던 소형 녹음기에 녹음 되었다. 흡연실을 나서는 글라디쉐프 소령을 무시하듯 지나친 병사 몇 명은(군 사령부에서 살다 보면 소령 나부랭이는 직속상관이 아닌 이상 간부로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청소라도 하러 온 듯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서 흡연실 안에 들어서려다 그가 문을 열면서 훅 빠져나오는 매캐한 연기에 흠칫 놀랐다. 환풍기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하는 압도적인 연기에 질렸으리라.

 

  다시 그의 개인 사무실에 쳐 박혔다. 연대장은 그가 직무를 수행 중이라고 생각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겐 전날 당직도 아니었는데 조기 출근하여 지금까지 일 했으니 근취를 시키는 거라고 적당히 둘러댔다. 사실 그 직무라는 게 반 쯤 은 CIA의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싶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못해도 5년은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이어폰을 귀에 꽃고, 흡연실 안에서 주고 받은 대화를 머리 속으로 다시 정리했다. 

 

  “근데 왜 회의실에서 기어 나오냐? 회의는 0930시에 하잖아.”

 

  녀석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을 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회의가 없었다고 둘러대기엔 회의실에서 같이 나온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은 데다 다들 비슷한 직책을 가지고 있음을 떠올렸을 안톤은, 담배연기를 ‘후’하며 길게 뿜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비밀 참모 회의가 소집됐었어. KGB 녀석들도 안 부르고, 실무진들만 모여서 말야.”

 

  “이런 거 나한테 말 해줘도 되는 거야?”

 

  “어디서 나한테 들었다는 말은 하지 마. 담에 술 사줄께.”

 

  그 뒤는 쉬웠다. KGB한테도 숨기고 몰래 한 회의가 무슨 내용이었냐고 은근슬쩍 던지자, 그, 녀석은 다른 때 그랬던 것 처럼 쉽게 그에게 자신이 아는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 한 것이다.

 

  “군수 참모 걔가 말이야, 회의장에서 나오더니 한숨을 푹 쉬더라. 그러고는 나보고 마실 거 있는지 묻더라고, 그래서 이걸 줬지.”

 

  라고 말하며, 안톤은 정복 상의 주머니 안의 포켓 위스키병을 흔들었다. 

 

  “보드카를 한모금 빨고선 고개를 잠간 숙였다가 다시 들었더라고. 그러고선 나보고 갑자기 대조국전쟁때 보병 중대장이었다던 아버지 이야기를 막 하더라고. 그러더니 나한테 말하더라. 큰 일이 터질지도 모르니까,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이야.”

 

   그래서 물어봤단다. ‘무슨 일이십니까, 장군 동지.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같은 식으로 적당히 격 있게 고쳐서 말이다. 그러자 그 녀석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머리를 두어번 흔들며 잡념을 지우고, 다시 연기조로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인물이었다.

 

  “알아서 전화 준다고 했잖아요. 지금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하고 있는데.”

 

  [ - 위에서 다들 들들 볶는데 어떡해. 지금 철의 장막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알고나 있어? ] 

 

  “대충 전해 들었어요. 그 쪽에서 오버 하는 바람에 여기서도 좀 많이 꼬인 거는 알아요?”

 

  [ - 무슨 말이야? ]

 

  “그게… 지금 GSFG 참모 회의 참석자들은 지금 당신네 나토의 병력 동원이 매우 위협적인 기습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전략적 기습을 당했다고 간주하고 있는 분위기에요. 그래서 준비된 작계중 하나를 골라서, 여기 주독 소련군만이라도 방어 작전에 돌입하기로 결정 되었답니다.”

 

  [ - 어떤 작전인데? ] 

 

  “몰라요.”

 

  [ - 뭐? ]

 

  “정말 몰라요. 일개 GRU 감찰 장교가 전시 작계같은 최고 기밀을 열람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저 쪽에서도 곤혹스러울 것이다. 예방적 차원에서 전방 병력들을 기동 시켰더니 그들 체제의 자랑거리라는 ‘언론 자유’탓에 동네 방네 소문이 다 나 버렸고, 그 때문에 이쪽에서 작전에 나섰다니 말이다.

 

   곤혹스러운 데엔 현실적인 위협 문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론 서방 측이 이쪽을 부추긴 꼴이 되어버린 셈이지만, 아무튼 붉은 군대가 군사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으니 말이다.

 

  ‘방어 작전’이라곤 하지만 그 세부적 내용을 전혀 모를 테니 이 정보를 들은 장막 너머의 자본주의자들은 이쪽이 선제 공격의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뭔가 대비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래저래 전쟁 위기를 막기는 커녕, 오히려 에스컬레이션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소령은 조금 불안했다.

 

  “모스크바 소식은 어때요? 좀 새로운 이야기 있어요?”

 

  소령은 뭔가 해결의 실마리라도 찾고 싶어져서, 모스크바 정보를 물어봤지만, 대답은 아까랑 다를 것이 없었다.

 

  [ - 아니. 한 이틀은 지나봐야 뭔가 쓸만한게 나올 것 같아.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지금 여기 수뇌부들은 전쟁을 이미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단 말이에요.”

 

  망할 놈의 쿠데타. 망할 놈의 모스크바. 작전의 실행이 결정된데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모스크바의 태도가 한 몫을 했다고 알고 있던지라 그의 답답함이 더해졌다. 

 

  그래, 흡연실 안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은 안톤은 이제 나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었다. 이 마당에 통신 장교에게 물어볼 내용이야 뻔했다.

 

  “모스크바 말이야. 정말 답신이 그게 다였어? 그 뒤로 또 온 소식 없고?”

 

  “응. 그게 다였어. 새로운 소식도 전혀 없고. 나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

 

  NATO의 현역 출타자 재 소집 및 전시 집결지로의 상비전력 이동 상황. 최소한의 예고라도 있었던 에이블 아쳐때와는 달리 한마디 언질도 없이 새벽녃에 벌어진 갑작스런 사태를 모든 외부와의 통신 채널이 차단당한 상황에서 서방 TV 채널을 통해 확인해야 했던 GSFG는 모두들 경악했다.

 

  제일 먼저 통신이 끊긴게 확인됐던 신호연대로도 직접 군사령관과 참모들 몇명이 달려와서 당장 통신을 복구하라고 소란을 피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갑자기 자다가 불려 온 탓에 그 시각 상주하고 있는 신호연대 간부들 중에선 최선임자였던 소령이 별들을 모셔놓고 차분하게 이쪽의 과실이 아니라 모스크바에서 일방적으로 차단당한 상황임을 다시 설명해주려고 할 때, 바로 통신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그것이 조금 전 0415시의 일이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당직사령 녀석이 모스크바에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 쪽에서 먼저 해답을 제시했다. 저 쪽에서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모르는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해답이었으리라.

 

  “< NATO에 특이 동향 없음. 경계 강화하고 특이 동향 있을 시 보고할 것, 이상. > 이게 다라고? 지금 이게 말이 돼? 간 밤 사이에 녀석들의 일선 전투병력들이 전투배치에 들어가고 있는데 지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모스크바의 상식 이하의 판단력에 어이없는 수준을 넘어 경악한 군사령관이 직접 통신대원들을 붙잡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답변은 똑같은 소리의 반복이었다. 통신망이 차단되었던 이유에 대해 해명해보라고 해도 ‘기술적인 문제였을 뿐이다”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소령이 기억하는 것은 사령관과 참모들이 분통을 터트리다가, 점점 안색이 흙빛으로 변하더니 신호연대 지통실을 박차고 나간 것이 전부였다. 그 사건이 이들에게 무슨 생각을 심어주었는지, 안톤이 흡연실에서 글라디쉐프 소령에게 말해주었다.

 

  “지금 상부에서는 모스크바가 최악의 경우 나토의 손아귀에 놀아나고 있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야. 지금 우리 전화를 받은게 모스크바가 아니라 버지니아 랭글리 콜센터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더군. 최소한, 우리의 지휘 계통이 완전히 마비되었으며 이미 전략적, 작전적 기습을 허용한 상황이라는게 참모들이 도출한 최종 결론이었어.”  

 

  사령부 내부의 수뇌부들의 동향을 전해 들은 수화기 너머의 술집 아저씨, 아니 CIA GSFG 스테이션의 케이스 오피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글라디쉐프 소령이 먼저 수화기를 내려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때, 말이 다시 이어졌다.

 

  [ - 그… 방어 작전 말이야. 이름이 뭔지라도 혹시 들어 봤나? ] 

 

  그 정도는 글라디쉐프 소령 역시 아까 안톤에게 물어봐서 알고 있었다.

 

  “… ‘작전계획 В(알파벳의 V에 해당.)안’ 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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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계획 В안은 실제하지 않는 소설상에만 있는 가상의 계획입니다.

 

어떤 계획인지 대충 힌트를 드리자면... 원작자(Dutchko님) 표현으로는 '부족한 자산을 활용한 지연을 목표로한 방어작전'이라는 군요. 

 

보다 자세한 설명은 추후 소설이 연재되면서 종종 설명이 나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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