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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하니 누워서, 짧은 몇 분 동안 낮선 천장을 바라보며, 지난 십여 년 간의 내 군 생활과 인생을 되돌아보던 짧은 순간, 시계 초침 소리를 갑자기 묻어버린 것은 쿵쿵대며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와, 뒤이은 노크 소리, 그리고 R팀의 부팀장이라는 로드 상사의 목소리였다. 

 

  “제인, 당장 내려와서 TV 좀 봐봐, 너도 좀 봐야 할 거 같아.”

 

  “무슨 일인데?”

 

  침대에서 스프링 튕겨 오르듯 풀쩍 일어나서 방문을 빠르게 열어 젖히고 쿵쿵거리며 내려오면서 그렇게 물어봤지만, 로드는 그저 TV를 보라고 할 뿐이었다. 그렇잖아도 TV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어였다. 

 

  언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독일의 국영/민영방송이 아니었다. 24시간 주구장창 뉴스만 틀어주는 케이블 뉴스 채널, CNN이었다. 평소엔 예능이나 남녀 둘이서 떡치는거나 보던 녀석들이 왠 일로 이렇게 교양있는 채널을 보나 궁금해졌는데,

 

  [ - … 지금 스튜디오에는 예비역 육군 중령님이며 서독에 주둔중인 제 11기갑기병연대에서 전차대대장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무엘 워싱턴 중령님이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 - 예. 안녕하십니까. ]

 

  흑인 예비역 중령 하나랑 얼굴 반반한 금발 백인 여성 아나운서. 포르노로 나와도 많이들 좋아하겠는데. 이런 생각이 잠깐 지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TV 브라운관을 가득 메우는 가로등 불 빛 아래의 기갑부대의 이동 행렬. 이제야 뉴스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Breaking News : US Army mobilizes troops.”

 

  “아, 씨바. 어디서 정보가 샌 거야?!”

 

  분명 NATO의 비상 경계령과 전방 병력 이동은 기밀 사항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아래로 흐르는 자막에 눈을 돌려보니, “US tanks on the move”하고서 어쩌구 저쩌구 빠르게 지나가는 내용 사이로 부대 단대호같은게 나오질 않는걸 보아 아직 정보가 제대로 새 나간 거 같진 않아 안심이었지만, 이 꼭두새벽에 저런 그림을 건지려면 몇 시간 전부터 예측하고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 말이 될 것이었다. 

  [ - 촬영 지역이… 풀다에서 프랑크푸르트 사이의 국도라고 했죠? ]

  [ - 복무하신 지역과 아주 가깝다고 들었는데요? ]

  

  [ - 맞습니다. 하하하… 촬영지의 정보를 미루어 볼때 이들의 소속 부대는 5군단 예하의 제 3기갑사단으로 추측됩니다. 만약 소련과의 지상전이 벌어지게 될 경우 최소 군단 병력의 소련군 기갑부대와 정면에서 격돌해야 하는 위험한 역할을 부여 받은 부대인데요.  이들은 전시에……. ]

 

  [ - 사무엘, 일단 시청자들을 위해 일단 ‘풀다’가 군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진 장소인지 부터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이거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한거야?”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구석의 레드불을 하나 까서 단숨에 털어 넣은 내가 딱히 누구에게 찝어서 묻진 않고 그렇게 말하자, 코왈스키가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내게 말해주었다.

 

  “조금 전부터요. 뉴스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바로 부른 겁니다.”

  

  “제인, 좀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도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몰라서 준비태세 발령밖에 한 게 없는데, 기자놈들은 몇 시간 전 부터 MSR에 촬영 팀을 뿌려 놓고 준비하고 있었다니.”

 

  “맷, 하고싶은 말이 뭔데?”

 

  “기자 새끼들이 특종 건지겠다고 뭘 꾸미는건 아니겠지?”

 

  “차라리 외계인이 케네디를 쐈다는 말을 믿겠다.”

 

  “CIA가 아니라?”

 

  “CIA는 너무 그럴싸 하잖아.”

 

  “아무튼, 중요한 건 케네디랑 외계인이 아니고. 아무튼 아다리가 너무 딱딱 맞는 거 같지 않아? 저런 식이면 나중엔 전쟁도 실시간으로 중계하겠네.”

 

  맷과 조셉이 둘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난 계속 뉴스에 정신을 집중했다. 어떻게든 민간인들에게 최대한 알기 쉽게 풀다 갭에 대해 설명하려는 예비역 중령의 노력이 참 가상하게도 느껴졌다.

  [ - 그렇다는 말씀은, 사무엘 당신이 보기에 이건 훈련 상황이 아닌 명백한 실제 상황이라는 말씀이신가요? ]

  [ - 그렇습니다. 그… 제가 가져온 사진 중에 3번 있죠? 그걸 한번 보여주시죠. 예. 그렇게. 보시면 알겠지만, 훈련 상황에서 야간에 기동할 경우에는, 선두 차량은 포탑 상부에 노란 경광등을 켜고 기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상 다시 한번 보여주실 수 있겠어요? 예, 조금 전 부분에서 잠깐 정지좀 시켜주세요. 고맙습니다. 지금 보시면 알겠지만, 야간 기동 중 인데도 경광등이 켜 져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아예 접혀있습니다. ]

  [ - 훈련 상황의 규정에 어긋난다는 말씀이신가요? ] 

  [ - 이건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실수로 꺼진것도 아니고, 경광등 자체를 세워두질 않았어요. 실전 상황을 상정하고 기동중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철의 장막을 바로 앞에 둔 최전선에서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합니다. 바로……. ]

  [ - 잠시만요, 시청자 여러분, 긴급 소식입니다. 방금 독일 북부의 영국군 주둔지역에서 영국군 전차들의 이동 행렬이 포착되었다는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현지에 나와있는 벤 칼슨 기자를 연결하겠습니다. 벤? 잘 들리나요? ] 

  “맙소사, 이 새끼들 독일 전체에다가 카메라를 깔아 놓은 모양인데.”

 

  이윽고, 어두운 밤에 영국군 전차들로 추정된다는 전차들이 실루엣이 휙휙 지나가는 모습이 TV 전체를 메우고, 비전문가인 민간인들은 미 육군 출신 예비역 장교에게 달라붙어서 예정에도 없던 녀석들의 출현에 어떤 설명을 해야할지 매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와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로미오와 호텔입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R팀의 누군가가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는 내게 수화기를 내민다. 이름이 뭐였더라? 콜사인은 <노크>였을텐데.

 

  “제인, 오피스의 회사원들입니다.”

 

  “아, 고마워. 전화 바꿨습니다.”

 

   [ - NSA의 제시카에요. 안가에는 팀 하나만 남기고 바로 여기로 와 줘야겠는데. ] 

 

   “이번엔 또 무슨 일 입니까?”

 

   [ - GSFG 내 고첩의 최신 보고입니다. GSFG 사령부에서 방금 참모 회의를 소집 했다는군요. ]

 

 젠장, 빨갱이 새끼들은 또 무슨 꿍꿍이야.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나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제시카의 말에 잠깐 수화기를 다시 귀에 들이댔다.

 

  [ - 그리고, 준위? ]

 

  “말씀하실 것이라도?”

 

  [ - 음… 정규전에 대비하세요. 지금도 리포저 동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데프콘3 상황이고, 위에서는 정식 데프콘3으로의 격상 준비도 논의중입니다.]

 

   나는 제시카에게 알겠다고 다시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전면전 상황을 가정하고 군장을 챙기라고 전달했다. 일단은, 옷 부터 갈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뭐로 입을까요? 비행복? 흑복? BDU?”

 

  “그런건 물어보지 말고 알아서 제일 편한걸로 입어.”

 

  라고 말하고 올라 왔건만, 막상 옷장 앞에 서자 나 역시 무슨 10대 소녀처럼 옷 몇 벌을 들고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결국 내가 직접 미싱을 손에 잡고서 개조한 BDU를 골라 들고서 방 안의 시계를 올려다 봤을 때, 시계는 베를린 현지 시각으로 04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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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정보가 샜긴요. 쿠데타 터지자 마자 호텔에 감금당한 CNN애들이 본사에 상황 전파해서 냄새 맏고 준비하고 있었던거죠.

 

풀다 갭이란 단어가 생소하실 신세대 밀덕여러분도 계실듯 하여, 약간 소개를 드리자면

 

1522847822.jpg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https://www.google.co.kr/search?q=%ED%92%80%EB%8B%A4+%EA%B0%AD&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u8P2xjfjaAhWIoJQKHSFjCvsQ_AUICigB&biw=1920&bih=984)

 

'풀다'(Fulda)라는 동서독 국경 부근의 한 서독 소도시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대충 독일 지도 놓고보면 중심에 있다고 봐야할 위치인데요. 산맥 사이에 자리잡아서, 프로이센 지방과 독일 중심의 프랑크푸르트를 연결해주는 교통거점같은 느낌의 지역이었죠. 분단되기 전에는 별 거 아닌 지방도시였는데 동서독으로 갈리고 풀다가 아슬아슬하게 서독 영내로 들어가게 되자 이야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3차대전이 벌어지면 프랑크푸르트를 향해 달려갈 목적으로 소련의 제 8근위군이 철의 장막 너머 이 일대에 주둔하고 있었는데요, 1차 목표인 프랑크푸르트에서 동북쪽에 앞서 여러번 언급한 말한 풀다 시가 있습니다. 

 

이 8근위군이 프랑크푸르트로 갈려면 튀링겐 산맥 끄트머리를 따라 내려와서 마인강을 살짝 넘어가는거랑 서쪽으로 더 가서 마인강 따라 내려오거나인데, 둘 다 출발지가 풀다 시입니다. 일단 여기를 먹어야 프랑크푸르트로 갈 수 있다고 봐야해요.

 

덕분에 이 인구 20만 남짓의 중소도시가 장차전시 예상되는 주요 격전지중 하나로 풀다가 손꼽히곤 했습니다. GSFG(주독소련군) 예하 제 8근위군의 전차 1,000~1,300대가 여기로 밀려들 터였고, 주독미군의 제 5군단의 제일 중요한 임무가 이 8근위군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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