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장포스'라고 많이들 알고 있는 장태완 1979년 당시 수경사령관의 유학성-황영시간의 통화는 2005년 제5공화국의 방영으로 인해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육성은 녹음되지 않아 자세한 통화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화국 시리즈와 옛 신문 그리고 서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해당 통화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분인 '~반란군'이 나오는 내용들을 정리해 보았읍니다.

 

장태완 장군의 육필 수기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922

 

“야, 이 똥뙤놈 같은 놈아!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 인격자, 배신자인 더러운 놈아! 너희놈들 거기서 조금만 더 기다려! 내 전차를 몰고 가서 네 놈의 대가리부터 깔아뭉갤 것이다!”

 

당시 이건영 3군사령관과의 통화 내용

http://cfile228.uf.daum.net/image/1454C41C4BF15DF64E6ED1

 

"무슨...... 혼자 다 해 먹어. 임마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

 

제4공화국 버전(이영후)

http://www.youtube.com/watch?v=6dIqAqZbRvA&feature=youtu.be&t=26m17s

 

"거거, 전두환이도 있습니까?" 

 

"어허, 이, 장장군,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이리와, 이리 와서 우리하고 얘기좀 하자고."

 

"얘기? 얘기는 무슨 놈의 얘기를 하란 말이고, 역적놈들캉, 오냐 좋다, 거 딱 기다리고 있으래이, 내 탱크를 몰고가서 마, 싹쓸어 뭉개뿌리고 말끼다!"

 

제5공화국 버전(김기현)

https://www.youtube.com/watch?v=oDaO5Vnku50#t=56


"아니, 형님은 또 왜 거기서 그러고 계십니까? 거긴 내 부댑니다, 형님이 거기서 나오십시오! 그라고, 형님이 나더러 총장님을 잘 모시라고 했잖습니까. 그런 형님이! 총장님을 납치하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더 말할것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총장님을 원상복귀 시키세요!

"장장군! 그럴수는 없어, 이건 박대통령 시해사건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야."

"정말 이라깁니까?"

"이봐! 정총장을 수사해보고 혐의가 없으면 풀어주면 될거 아이가?"

"야 이 반란군놈의 새끼야, 너 지금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 지금 전차를 몰고가서 니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1993년 10월 6일자 동아일보 <軍 어제와 오늘-"네놈들 머리를 날려버리겠다" 張泰玩, 신군부에 선전포고>

"어이, 장장군, 다 사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야, 이리로 와서 얘기하자구, 우리하고 같이 해야 할 일이 있어."

"이 반란군놈의 새끼."

"야 장태완이, 자네 왜 이래, 우리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흥분하지 말고 이리로 와서 얘기를 들어보라구."

"너희놈들 꼼짝말고 게있거라, 내가 전차와 포를 갖고가서 네놈들 대갈통을 날려버릴테다."
1996년 3월 12일자 동아일보 <盧씨"張泰玩사령관 체포 지시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전화를 걸어 유학성 피고인이 전화를 받자 "정 총장을 빨리 풀어줘라, 네놈들은 반란군이니 전차로 깔아뭉갠다." 는 식으로 위협하자 30경비단장실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나요."

"예."

1994년 9월 15일자 경향신문 <鄭총장「10.26」내란방조 확신>

'그러자 장태완 사령관은 느닷없이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너희 놈들 거기 있거라. 내가 전차를 몰고가서 싹 깔아 죽이겠다."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1996년 5월 24일자 경향신문 <경복궁 모임·「재가」시간 우연일치>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너희 놈들 거기 있거라. 내가 전차를 몰고가서 싹 깔아 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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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eshim 2015.04.04. 02:04


3분 45초부터

gslky 2015.05.07. 15:10
죄송하지만 저분 훌륭한 분은 맟지만 무능하신 분입니다
쿠테타막는 가장 중요한 자리가 수도경비사령관입니다
저런 쿠테타막으라고 있는 자린데 당하셨지요
물론 결과론으로 이야기해서입니다
남자는 행동의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지 기분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eceshim 2015.05.08. 16:59
장태환 장군님이 큰맘먹고 진짜 탱크 끌고 머리통을 날려버렸어야 하는데. 그전에 이미 너무 많은 높은 똥별들이 군을 장악해서.......
당시 국방부 장관이랑 참모총장이 좀 똘똘하게 행동했으면 저놈들이 난동을 못부렷겠죠.
Profile image 22nd 2015.05.19. 21:00
예하 전투부대의 대부분인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 반란군 핵심 전력이었는데, 사령부 건물밖에 안 남른 사령관이 국방장관이 진압명령 내릴 생각 없이 도망이나 다니고 육본에서는 서울에 제일 먼저 들어올 9공수 선발대를 다시 주둔지로 원복시키는 마당에 뭘 가지고 어떻게 진압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오히려 그 마당에서도 한강 밖에 있던 야포단 병력까지 도강시키려다 여의치 않으니까 사령부의 행정병들 긁어모아다 진압출동하려던게 장태완 장군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불발된 이유는 하나회측의 정보공작으로 지휘계통이 마비되어 반토막난 전차부대조차도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구요.
Profile image 메데 2015.05.19. 21:09
1.당시 수경사 내부의 대부분의 통화는 반란을 막으라고 설치된 국군보안사령부에게 감청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30보병사단장 박희모 소장도 장태완 소장과의 통화 직후 회유당했으며, 수기사와 제26보병사단도 보안사령부에서의 공작으로 인해 출동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제9공수여단은 육군참모차장 윤성민에게 회군당했으며, 제1, 3, 5 공수여단과 제30, 33경비단, 헌병단이 모두 회유당한 상태였으며 유이하게 회유당하지 않은 부대는 비전투부대인 방공포병단과 포병단 뿐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병력으로 어떻게 보안사령부와 정예부대인 제30경비단을 공격합니까?

2.장태완 소장은 1979년 10.26 사건 이후 군단장으로 영전한 전성각 소장의 후임 수경사령관으로 12.12 당시 부임 24일째였습니다. 부임 1달도 안된 상황에서 부대 순시하기에도 바쁜 일정인데 그 동안에 어떻게 쿠데타 음모를 파악합니까? 언제부터 수경사가 보안사와 같은 첩보부대였습니까?

3.당시 수경사령부 내에는 4대의 전차밖에 없었으며, 수경사 전차대대장 차기준 중령이 보낸 33경비단의 전차 1개 중대는 중간의 김진영 33경비단장의 지시로 회군했습니다. 13일 00시 00분 경 최후공격을 준비한 인원은 취사병과 행정병을 포함해 겨우 100여명의 병력과 4대의 전차뿐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겠습니까?
eceshim 2015.05.21. 11:34
다른 사단은 뭐하고 있었나요 당시에.
수방사와 공수여단 병력만으로 이 쿠데타를 성공시킨건데. 공군이나, 9사단, 20사단, 26사단, 11사단, 수기사 등등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었나요?
Profile image 메데 2015.05.21. 16:49
공군, 9사단, 20사단, 11사단이 언제부터 수경사령관 휘하였습니까? 9사단과 20사단은 애초에 사단장이 노태우 박준병이었으며 11사단은 1군사령관의 반려로 출동하지 못했고 공군은 애초에 비전투병력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26사단과 수기사는 출동준비명령까지 내려왔으나 출동명령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eceshim 2015.05.21. 17:17
아 불무리, 맹호가 출동하지 않은게 아깝네요
Profile image 22nd 2015.05.21. 18:01

9사단, 20사단은 쿠데타군측 장성인 노태우, 박준병이 사단장으로 재직중이었습니다. 여담이지만 9사단이 이때 전방병력을 한미연합사의 동의 없이 멋대로 빼간게(동의를 구하려 했으면 뺄수도 없었겠지만) 이들이 얼마나 언행 불일치인 인간들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죠. 안보팔이 하면서 정작 대통령 암살로 혼란스런 상황에 전방에서 연대 하나와 1개 대대를 추가로 빼서 서울로 보내버리다니. 저때 북괴군이 밀고 들어왔으면 아주 그냥 개판 났을겁니다. 

수기사와 26사단은 장태완 장군이 제일 먼저 찾은 병력들이기도 합니다. 유사시 수경사령관이 자신의 휘하에 배속받을 수 있는 부대였기에 저날 밤 출동 대기상태였지만 국방장관의 출동명령이 끝내 내려지지 않아 진압에 동원할수 없었고, 그나마도 사태 후반즈음엔 각군 보안부대 장교들과 하나회 출신 간부들의 공작으로 사실상 출동이 불가능한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11사단 이야기는 메데님이 잘 설명 하셨네요.

공군이야 뭐... 당시 한국 공군기체중에 야간작전 가능한 기체가 몇이나 됩니까? 그것도 민간인들이 북적대는 수도권에서 공중폭격을 할 수 있었을까요?

eceshim 2015.05.21. 19:05
국방부 장관이 좀 제대로 대처를 했다면 수기사, 26사단이 움직여서 진압이 가능했겠군요.
Profile image 메데 2015.05.21. 20:37
공관 근처에서 총소리가 들린다고 바로 차타고 도망가서 가족들은 이경율 장군 집에 내려주고 자신은 단국대 캠퍼스에 숨어있다 병이 겨우 찾아서 B-2벙커로 데려오니 진압명령은 내리지도 않고 교전 최소화 지시나 내려서 쿠데타의 성공을 이끌었죠.
Profile image 22nd 2015.05.21. 21:20
12.12 사태 악화의 근원중 하나로 노재현 국방장관의 졸렬한 처신이 두고두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gslky 2015.05.20. 15:52
껄껄껄
그들 모두 다들 장래완님의 부하들입니다
죄송하지만 고금의 진리중에는 세상에서 제일 못난 지휘관이 자기 부하에게 당하는 것입니다(뭐 보기에 따라서는 변명거리가 있겠지만 장태완장군님이 여자이거나,평범한 직위에 계신 분이셨다면 변명거리도 말이 되겠지요)
결국 통솔력이 지휘관의 최고 미덕입니다
그 다음이 작전입니다
뭐 다들 자기 시야만큼 ,능력만큼 ,가치관만큼 보는 것이니 생각이 다들 다르시겠지만......
Profile image 메데 2015.05.20. 21:08
다시 말하지만 부임 24일째입니다. 장세동 대령과는 월남에서 잠시 중대장으로 일한 적이 있을 뿐이고 김진영 대령도 비슷합니다. 신윤희와 조홍은 같이 일한 적도 없습니다. 부임 24일만에 통솔력이 하나회라는 60년대부터 꿋꿋히 다져진 조직을 배반할 수 있을 정도로 된다는게 가능합니까?
장 사령관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은 박동원 수경사 작전참모나 황동환 수경사 방공포병단장. 구명회 수경사 야포단장, 33경비단 작전주임등은 비하나회였습니다.
Profile image 22nd 2015.05.21. 18:02
하나회라는 비정상적인 사조직이 판을 치던 당시 국군을 '정상적인'군대의 시선에서 보려고 하시는게 문제같네요.,
eceshim 2015.05.21. 19:06
김영삼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하나회 박살을 낸게 엄청난 업적이였군요.
Profile image 22nd 2015.10.21. 11:27

 

드라마 코리아 게이트에서의 장태완 장군님 연기 버전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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