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평


이걸로 소련군이 풀러의 전략적 마비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한 국내 문건들이 전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밖에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근거들은 전부 원문을 취사선택하거나 오독한 결과들이었으며 그 반대급부의 자료들은 훨씬 압도적이었습니다. 투하쳅스키, 트리안다필로프, 이세르손 같은 소련군의 주요 인물들은 풀러를 제국주의자, 부르주아 이론가로 보았고 그의 소규모 정예 기계화군 이론을 비판하며 받아들이지 않으려 해습니다. 그리고 풀러의 전략적 마비 사상은 소련군에서 풀러의 책이 들어오기 전부터 거부되었으며 소련군은 오직 적의 섬멸을 자신들의 기동전인 종심 작전의 목표로 잡았습니다. 그러한 기조에서 풀러의 전략적 마비가 소련군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려면 더 확실하고 더 명확한 자료가 필요할 겁니다. 이건 채승병의 글 대로 "이 이면에는 사실 전후 냉전 시기 적국인 소련의 용병술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시각도 깔려 있다. (중략) 결국 영국→독일→소련 순으로 맥을 계승했다는 족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원조 스승은 영국이고, 독일은 똑똑한 제자이며, 소련은 그 제자에게 두들겨 맞으며 배운 사이비 문하생 정도라는 지적 오만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라고 해석하는 게 유력해 보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작은 외침은 오래기억됩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의 실체보다 영향을 얘기합니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렇다면 그 영향을 밝히실 명확한 증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사람의 과오다 리델하트, 트리안다필로프, 트하체프스키, 스베친 등등이 지 목소리로 떠들때 마비만 나오면 풀러가 문제인가요."라고도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진정 하시고자 하는 말씀에 명확한 근거자료가 있으십니까? 최소한 wkchoi44님의 학위논문에는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혹시 "풀러에 대한 논문의 논지는 마비라는 개념의 유효성이었고 수단과 방법적 측면의 검증이었는데 오해가 많으신거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다시 하시며 논문 전체의 맥락을 보지 않고 지엽말단적인 부분만 공격하려 한다고 하신다면, 저는 여기서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소칼은 과학 용어들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무분별하게 철학 저술에 사용하는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인 자크 라캉,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등을 비판하는 책 『지적 사기』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먼저 문제의 텍스트들은 단순한 '오류'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고 있으며 사실과 논리에 대한 경멸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심각한 무관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반박하겠다 우리의 목적은 상대성 이론이나 괴델의 정리를 인용하면서 실수를 저지른 문학 평론가를 골탕 먹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합리성과 지적 정직성의 규범을 수호하자는 것이다. 이 저자들이 쓴 책 중에서 과학과 무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것을 평가할 만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자연과학에 대한 그들이 '개입'이 저작의 핵심적 주제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아무리 지엽말단적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쓴 글의 한 부분에서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한(혹은 지독한 무능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 발견되었을 경우 그 책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들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분석의 결과를 예단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런 분석을 시도하려는 학생(또는 교수)을 위축시키는 심오함의 후광을 제거하고 싶을 뿐이다."1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wkchoi44님의 논문의 논지는 마비라는 개념의 유효성이었고 수단과 방법적 측면의 검증이었습니다. 저는 풀러를 연구한 적이 없고 풀러의 책과 문헌을 많이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고로 wkchoi44님의 논문 전체를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쓰신 글의 한 부분, 소련군이 풀러의 전략적 마비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하신 부분, 1987년에 박기련이 그렇게 쓴 뒤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따라 wkchoi44님의 논지를 지탱하는 한 부분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러한 주장은 해외에서는 이미 나왔던 겁니다. 과거에 유명한 소련군 연구가였던 영국의 피터 H. 비거는 1978년에 쓴 논문 "The Soviet View of Fuller and Liddell Hart"에서 저와 같은 자료와 같은 결론을 보여준 바가 있습니다.2 이미 해외에서는 이미 과거에 논의가 끝났고 더 이상 연관성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게 이 소재였던 겁니다. 



숙제


그래도 절망하진 마시길 바랍니다. 소련군이 풀러의 전략적 마비 사상을 부정하여서 영향 자체를 받지 않았던 건 명학하지만, 전차라는 무기체계의 운용의 세부적인 전술적 운영에 대해 풀러를 참고로 했을 개연성이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를 입증하시려면 실제 소련군의 야전요무령, 교범들과 당대의 소련군 저자들의 전차의 운용에 대한 저서를 보셔야 할 겁니다. 그걸 통해서 한번 소련군의 전차 운용이 풀러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주장하실수는 있을 겁니다. 


또한 저와 비거의 견해에 의문을 표하는 논문도 있습니다. 알라릭 새를(Alaric Searle)이라는 저자는 동유럽 군사 연구 저널(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에 "J. F. C. Fuller, Tukhachevsky and the Red army, 1923–1941: The question of the reception of Fuller's military writings in the Soviet Union"에서 정말 비거의 견해 및 투하쳅스키 등의 글 대로 소련군이 풀러를 완전히 수용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것에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3 저도 이걸 보지 못해서 이게 그저 저자의 해석에 불과한지 아니면 정말 명확한 근거문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게 wkchoi44님께는 어느 정도 희망이 되실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켈리와 브레난이 "여기서 국제적으로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그에 따라 어느 정도의 상호교류가 있었다. 그러나 공정하게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군대가 다른 나라 군대의 저작이나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정도는 그다지 중요한 수준이 아니었다. 각 국가의 이론가은 국가 자체의 특정한 상황을 반영한 문맥 내에서 저술을 해야 했다. 예를 들어 독일군은 소련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고 소련군 또한 마찬가지였다. 독일군과 소련군은 공통된 문제가 있었고 공통된 기술이 있었지만, 두 군대는 전선 압박, 종심 침투, 포위, 섬멸에서 멈춰선 작전술 접근에서 서로간의 접근 정도가 나타났다"4라고 말한 걸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J. F. C. 풀러가 분명 서구 세계에서는 최초로 전차라는 무기 체계에 이제까지 부여한 적 없던 새로운 전술적 가치를 부여했으며, 그것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논했고, 또 기갑 부대가 다른 병과의 보조적 역할이 아닌 독자적인 제대로 서야 한다고 설파한 혁신가이자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점(풀러의 전략적 마비가 실제로 적용되거나 입증되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풀러가 전쟁사 해석에서 범한 오류 의혹은 빼고서라도)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풀러를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그가 다른 나라 군대, 그를 비판하던 나라의 군대에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려고 박약한 근거자료를 사용하시거나 자료를 취사선택하면, 도리어 풀러를 모독하는 격이 될 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1. Alan D. Sokal and Jean Bricmont, Fashionable Nonsense: Postmodern Intellectuals' Abuse of Science, (New York: Picador, 1998), 이희재 역, 『지적 사기: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한국경제신문, 2014, p. 24.
  2. P. H. Vigor, "The Soviet View of Fuller and Liddell Hart", The RUSI Journal, Volume 123, Issue 1, 1978, pp. 74-77.
  3. Alaric Searle, "J. F. C. Fuller, Tukhachevsky and the Red army, 1923–1941: The question of the reception of Fuller's military writings in the Soviet Union",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Volume 9, Issue 4, 1996
  4. Kelly and Brennan, 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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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Венёв 2015.01.14. 21:49
PKKA님은 정말 이걸로 먹고사는 분 같습니다.
Profile image Mi_Dork 2015.01.14. 23:43
좋은 글 잘 봤습니다.
Profile image 지루남 2015.01.18. 19:36
말이 필요 없습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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