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choi44님께서는 또한 종심 작전의 주요 이론가인 블라디미르 키랴코비치 트리안다필로프에 대해 트리안다필로프가 풀러의 PLAN 1919를 자세히 분석했다고 하셨습니다. (21쪽)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어떤 인용 출처도 달아놓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대체 어떤 출처를 두셨기에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던 겁니까? 혹시 심킨이 책에 "트리안다필로프는 (중략) 폰 젝트와 풀러를 자주 인용했다."1라고 썼던 걸 인용하며 출처 표기를 잊으신 건 아닙니까?


트리안다필로프가 그의 대표작인 『현대 군대의 작전 특성』에서 풀러를 언급(인용이 아닙니다)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심킨의 말 처럼 트리안다필로프가 풀러를 '광범위하게' 인용한 적은 없습니다. 트리안다필로프는 풀러를 단 두번밖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있는 풀러에 대한 언급도 전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트리안다필로프가 풀러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봅시다. 


"우리는 풀러, 졸단 등의 이러한 발상이 막을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두려워하여 나온 것을 안다. 그들은 정말로 소규모의 차량화된 군대가 현대전에서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보다는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동안 더 계급 의식을 각성한 대중을 매우 크게 불신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 것이다." 2


그리고 트리안다필로프는 또 이렇게 언급합니다.


"풀러와 졸단의 개별 군사 저술들은 오직 대중과 계급 투쟁의 강력한 격화가 발생 시 군사력의 조직 발전의 가능한 형태 간의 관계에 직면한 자본주의의 어려움만 보여주는 부류의 특징이 된다." 3


이건 투하쳅스키의 풀러의 소수 정예 비판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트리안다필로프의 책이 1929년에 출간되었고 투하쳅스키는 1930년에 서평을 썼으니 이게 더 먼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게 트리안다필로프가 풀러를 언급한 전부입니다. 풀러에 대해 이러한 수준의 언급만 한 트리안다필로프가 풀러의 저서를 긍정적으로 읽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까요? wkchoi44님께서 논문을 쓰시기 전에 트리안다필로프의 책을 직접 읽어보셨다면 그게 자연스럽다고 하시지 못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wkchoi44님께서는 논문에서 역시 소련군의 중요한 이론가인 게오르기 사모일로비치 이세르손도 언급하셨습니다.(21쪽) 정확히는 박기련의 국방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소련군 종심전투교리의 발전」에서 그대로 따 오신 걸로 보입니다.4 그리고 박기련과 마찬가지로 이세르손의 로마자 철자 Isserson만 보고 '이서슨'이라 읽으셨습니다. 이세르손은 소련인(정확히는 라트비아인)이므로 저는 계속 이세르손으로 표기하겠니다. 


이세르손은 그가 1932년에 쓰고 1937년에 개정판을 낸 대표작이자 트리안다필로프의 책과 함께 소련군 종심 작전을 논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도서 중 하나인 『작전술의 진화』에서 "전차가 방어 수단과 공세 수단의 상관관계에서 공세 수단이 유리하게 바꾸었다는 풀러의 이론은 정확하다."5 라고 말하고 또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풀러는 종심 전투에 대한 문제를 역사상 최초로 만들었다. 풀러가 쓴 1919년에 있을 결정적 공세에 대한 전망(이 문건은 1918년에 전쟁이 끝남에 따라 실제로 되지 못했다.)에서 그는 적 방어 전단에 대한 동시 공격과 고속으로 움직이는 전차로 적의 전술 방어 종심을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당시에 장거리 전차 집단 개념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었지만, 풀러의 제안은 모든 전술적 사전조건을 형성했다."6


1965년에 이세르손이 소련군의 정기 간행물 <군사사 저널>에 쓴 논문 「1930년대 소비에트 작전술 이론의 발전」에서 이렇게 말한 것도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 종심 전투의 문제는 영국의 군사 이론가 풀러가 1918년 말에 최초로 말했다는 것을 언급해야 한다. 풀러는 1919년에 있을 결정적인 공세 작전 계획(Plan 1919)에 참여하면서(이 작전은 1918년에 전쟁이 끝나서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적의 전술적 배치 종심을 전차 공격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할 고속 전차 공격을 조직할 것을 제안했다."7


이것만 보면 이세르손이 풀러가 소련군의 종심 전투의 원조인 것처럼 쓴 걸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세르손은 그 다음에 책에서 풀러에 대해 이렇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풀러의 이론적 관점은 더 발전하지 못했다. 부르주아 군사이론의 상황은 풀러로 하여금 대규모 군대를 버리고 매우 다른 차원에서 공세의 문제를 재정의한 소규모의 전문 군대에 대한 이론을 선호하게 했다. 이 이론은 제국주의 체제의 계급 성격이 장차전에서 실제 필요한 것과 함께 명백히 반영한다. 풀러에게 종심 전투는 제병협동 현상이 아니다. 풀러이 종심 전투 개념은 우리의 개념과 명백히 다르다. 우리에게 종심 전투는 제병협동 전투고, 반면에 풀러의 발상은 이렇다. '전차를 보병과 협동시키는 것은 말이 트랙터를 끌게 말에게 마구를 채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발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보병을 트랙터 끄는 말로 다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병은 현대의 공세 전투 대형 내애서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기 때문이다."8


이세르손은 이러한 풀러가 제병협동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30여년 후에 다시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풀러의 종심 전투 문제에 대한 이론적 관점은 다음에 근거했다. 부르주아 군대의 자본주의 발전 환경은 풀러가 공세의 문제를 소규모 정예 군대 이론으로 전환하게 했다. 이 이론은 자본주의 군사 체계의 계급 환경을 반영했고 현대 전쟁의 실상과 확실히 모순되었다. 풀러에게 종심 전투는 제병협동 전투가 아니었다. 풀러는 이렇게 썻다. '전차 제대와 보병 제대가 함께 활동하는 것은 트랙터와 짐마차를 억지로 같이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런 관점은 우리로서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9


그리고 이세르손의 책의 전체 맥락을 볼 때, 이세르손이 "풀러가 종심 전투의 문제를 최초로 말했다."라고 한 말에서 '종심 전투'는 소련군만의 특수한 기동전 방법이 아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방법으로 탐구해서 알아낸 어느 나라 군대라도 다 적용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방법이라는 뜻이 더 강합니다. 이세르손은 이렇게 썼습니다.


"세계대전 시기의 공세 전술 문제의 핵심은 직접 접촉을 하는 유일한 선을 따라 선형 전투를 수행하는 것에 놓여 있었다. 적의 여러 다른 선을 동시에 파괴하거나 전술적이고 작전술적인 방어를 단계적으로 파괴하기 위해 선형 전투를 종심 전투로 전환하는게 필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전술의 특성을 종심의 전술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전술은 선형 전투 대형의 낡은 전술의 원칙들과 핵심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 도전은 적의 전체 방어 종심을 파괴할 새로운 물질적 기반과 새로운 기술적 기반과 돤련되어 있다. 이 요소들은 더 큰 문제의 측면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이고 이론적인 견지에서, 공세 문제의 해결책은 종심 전투의 새로운 전술적 형태로의 전환 없이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현대의 시대 동안 종심 전술(이나 종심 전투)는 단지 가능한 전투 형태가 아니라 필요하고 불가피한 전투 형태다. 이러한 전술 없이는 어떠한 돌파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10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해외의 부르주아 저작에서 우리는 이미 우리 전술의 형성에 놓인 종심 전투와 같은 개념을 찾아볼 수 없다. 해외의 군사 교범들은 우리의 적 전체 종심의 동시 무력화에 대한 이해에 따른 종심 전투에 대한 어떠한 언급을 담고 있지 않다.이런 점에서 우리의 전투 교범은 그 분야의 전위대를 구성하여 매우 앞서나가 있다. 우리는 막대한 이론적 연구와 새로운 전투 형태의 경험을 통해 현대 종심 전술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11



보시다시피 이세르손은 종심 전투를 소련군만의 특별한 방법이 아닌 보편타당한 방법의 전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말하자면 이세르손의 책은 1932년에 초판이 나왔고 이 부분은 1937년에 개정판을 내며 추가한 부분입니다.12 이미 이세르손은 풀러를 말하기 전에 종심 작전 이론에 대해 책에서 말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박기련과 wkchoi44님은 이세르손 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사사학자 얼 F. 짐케도 종심 작전이 풀러에게서 나왔다고 하셨습니다. 그 논문은 이세르손이 미 육군 저널 <Parameters>의 1982년 3월호에 쓴 논문입니다.13 그러나 본문을 직접 본 결과, 박기련이 당시에 짐케가 이세르손의 1965년 논문에서 제가 위에 써 놓은 부분을 인용한 걸 보고 오독한 게 아닌가 합니다. 짐케는 이세르손의 논문을 인용하기 전에 소련 저자들이 "소련 밖의 저작들은 최소로 참고"했다고 썼으며 소련군이 당시 참호전을 다룬 프랑스의 라파르주의 저작이나 독일군의 교범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문단의 맥락은 소련군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던 겁니다.14 그리고 짐케는 이렇게 썼습니다.


"소련군 총참모부는 B. H. 리델 하트와 J. F. C. 풀러가 촉진한 거의 전차와 항공기만으로 무장하고 고속으로 넓은 거리를 기동하는 소규모의 전문 군대라는 인력과 기동성을 교환하는 발상을 믿지 않았다."15


이 또한 결국 단장취의의 또 다른 사례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것으로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1920-30년대의 소련군 종심 작전의 이론가들이 풀러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셨던 근거들은 전부 앞뒤 문맥 다 자르고 인용한 단장취의의 결과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투하쳅스키 등이 풀러의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말씀하시고 싶다면, 더 명확한 증거자료가 필요하실 겁니다. 



  1. Richard Simpkin, Red Armour: An Examination of the Soviet Mobile Force Concept, (London: Brassey's Defence Publishers, 1984), p. 140.
  2. V. K. Triandafillov, The Nature of the Operations of Modern Armies, trans by Kent E. Lee, (New York: Routledge, 1994), p. 26.
  3. Ibid., p. 27.
  4. 박기련, p. 152
  5. G. S. Isserson, The Evolution of Operational Art, translated by Bruce W. Menning, (Fort Leavenworth, Kansas: Combat Studies Institute Press, 2013) p. 51.
  6. Ibid., p. 102.
  7. G. S. Isserson, "Razvitiye teorii sovetskogo operativnogo iskusstva v 30-ye gody," Voyenno-istoricheskzy zhurnal, No. 1 (January, 1965), translated by Herold Orenstein, Sellected Readings in the History of Soviet Operational Art (Fort Leavenworth, Kansas: Soviet Army Studies Office, 1990), p. 29.
  8. Isserson, Op. cit., p. 102.
  9. Isserson, "Ravityie teorii...", p. 29.
  10. Isserson, The Evolution of..., p. 102.
  11. Ibid., p. 103.
  12. Isserson, The Evolution..., p. 5.
  13. Earl F. Ziemke, "The Soviet Theory of Deep Operations", Parameters (Vol XIII, No. 2) , pp. 24-25.
  14. Ibid.
  15. Ibid., p.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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