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전에 제 네이버 블로그 포스팅에 댓글을 달고 간 한 논문 저자분에 대한 답변입니다.



wkchoi44님, 안녕하세요? 1년 전에 제 포스팅에 댓글을 달아 주신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wkchoi44님께서는 저의 어설펐던 비판에 대해 "풀러에 대한 논문의 논지는 마비라는 개념의 유효성이었고 수단과 방법적 측면의 검증이었는데 오해가 많으신거 같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작은 외침은 오래기억됩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의 실체보다 영향을 얘기합니다. 좀자세히 읽고 얘기하셨으면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제 비판에 기분이 상했다는 의사표시를 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그러한 wkchoi44님의 댓글에 1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답변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저의 박사학위 논문이 "2010년도 박사 논문이라는 것이 경악스럽습니다."라고 각주 2번에 쓴 것부터 사과드리겠습니다. wkchoi44님의 말씀 대로 풀러에 대한 논문의 논지는 마비라는 개념의 유효성이었고 수단과 방법적 측면의 검증이었는데 제가 한 부분만 보고 논문 전체에 대한 섵부른 비판을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제가 오류를 범한 부분이고 또 저자분을 기분 나쁘게 해 드렸으니 마땅히 사과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wkchoi44님의 논문을 읽어 보니 제가 비판한 내용에서 그러한 문장이 논문에 없었다는 점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wkchoi44님께서 논문에 써 놓으신 부분, 그 논문의 21-24쪽과 39-46쪽에 써 놓으신 소련군의 종심 작전 이론과 그 주창자인 투하쳅스키와 트리안다필로프 등이 풀러의 '전략적 마비'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는 부분은 이제까지 수집한 당대 소련의 자료들과 현대의 연구 자료들과 비교해 볼 때 확연히 오류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군사나 역사와는 관련 없는 학과에 재학중인 저라도 감히 군사학 논문에 비판을 가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wkchoi44님께서 논문에 쓰신 부분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소련/러시아의 자료를 접하지 못하고 오직 서방 측의 주장과 분석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던 1980년대 이후로는 거의 오류로만 남았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왜 wkchoi44님의 댓글을 본지 1년도 넘은 지금에서야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당시 wkchoi44님의 댓글을 보고 그만큼 자신 있게 댓글을 다실 정도면 분명 wkchoi44님이 확실한 근거자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또한 박사학위 논문을 섵불리 건드렸다는 생각에 반박을 하려면 더 많은 근거문헌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따로 의견을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당시보다 더 많은 자료를 접하였다는 점, 또 wkchoi44님의 논문과 다른 선대 논문들의 그러한 주장들의 참고문헌들이 현대에는 가치를 크게 상실했다는 점, 그리고 작년에 출간된 책에도 그러한 주장이 당연하다는 듯 반복되었다는 점이 이러한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근거문헌들을 통해 전개 될 저의  주장이 전적으로 맞으며 wkchoi44님의 논지가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wkchoi44님과 달리 볼 수 있는 국내 및 해외의 문헌들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문헌이 절판되거나 민간에 비공개된 것은 볼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혹여 저의 논지를 반박할 만할 문헌이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러한 상호 비판과 교류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미진한 후학의 짧은 소견이나마 봐 주신다면 그 만큼 고마운 일도 없을 겁니다. 삼가 부탁드립니다.



선행연구 검토


소련군의 종심 작전(глубокая операция) 이론이나 1980년대의 작전기동군(Operacyjna Grupa Manewrowa) 개념이 풀러의 전략적 마비 사상의 영향으로 탄생했다는 주장을 실은 국내 논문은 wkchoi44님의 논문에만 실려있는 건 아닙니다. 1980년대부터 가장 최근인 2014년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말이 관련 논문에서 계속해서 언급되었습니다.1


그러나 모든 논문들의 인용 출처가 거의 한결같습니다. 바로 영국의 군사이론가 리처드 심킨의 책 『Red Armor』『Race to Swift』, 『Deep Battle: The Brainchild of Marshal Tukhachevskii』입니다. 


심킨 이외에는 J. A. 잉글리시의 책 『The Mechanized Battlefield』에서 풀러의 Plan 1919의 제1 단계의 목적이나 수행이 작전기동군과 흡사하다고 쓴 이후로 이 말은 무비판적으로 여러 번 인용되었습니다. 2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아니면 아예 그렇게 쓰면서도 인용 출처 자체가 달려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3  그러나 여기서 먼저 말씀드리자면, 그러한 참고문헌들은 소련 측 원문을 직접 보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몇 안되는 서구권의 2, 3차 연구 저작들만 보고 나온 논문들이라는 점에서 감히 말씀드리자면, 비판의 여지가 충분합니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인용되고 수용되어 온 리처드 심킨의 군사이론을 제가 비판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확실한 건 심킨의 책은 『Race to Swift』를 제외하고는 전부 현재 해외에서 절판되었으며 심킨 당대나 그의 사후의 서구권의 주요 소련군 연구가들, 특히 미국의 소련 군사 연구소(현재의 해외 군사 연구소)의 주요 인물인 데이비드 M. 글랜츠, 제이콥 W. 킵, 그레이엄 H. 터르브빌, 레스터 W. 그라우, 그리고 그 외에 리처드 W. 해리슨이나 메리 R. 헤이백 등은 1930년대 종심 작전의 발전을 논할 때 소련/현대 러시아의 1, 2차 자료를 직접 보고 연구했지 리처드 심킨을 통해 연구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이들은 심킨을 인용하지 않았거나 그저 지나가듯 언급하거나 아니면 다소 비판적으로 조금 서술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소련의 군사 자료를 직접 구해볼 수 없었던 1980년대에서 1990녀대 극초반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소련 붕괴 이후인 1990년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리처드 심킨에 의존한다는 건 지극히 이상해 보입니다. 이제 관련 연구에서 인용도 거의 안되는 저자의 틀에 아직도 갖혀 있는 셈이니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심킨이란 특정 저자의 책에만 얽메여서 소련군을 서술한다는 건, 심킨에 대한 교조주의가 형성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갑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과 리처드 심킨이 지금 제가 다룰 주제에서 정확한 말을 했냐는 건 별개의 문제긴 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논문 저자들의 심킨 인용과 그 안의 투하쳅스키 재인용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논할려 합니다.


투하쳅스키는 실제로 풀러를 어떻게 보았는가?  


 "풀러의 위대한 점은 과거 경험만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진보에 발맞추어 미래 전쟁에서 효율적으로 운용될 지상군 구조와 장비의 방향을 제시한 데 있다. (중략) 풀러는 적 후방에서의 전차 운용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이는 정면에서의 동시적인 공격과 조화를 이루어 현대전의 성격을 더욱 역동적이고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후방 지경선으로의 우회기동 및 측후방 공격, 완전한 돌파, 그리고 종심 깊은 지역에서 전차로 운반된 강습부대의 기관총 공격 등이 필요하다. (중략) 우리는 풀러 자신과 그의 제자, 특히 리델 하트에 의하여 발전된 진보적인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채택하여야 할 것이다."4


이 문장은 투하쳅스키가 풀러의 군사이론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데 오랫동안 인용된 문장입니다. 분명 심킨이 인용하고 박기련과 윤형호 등이 재인용한 이 부분5은 투하쳅스키가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이었던 1930년에 풀러의 책 『전쟁의 개혁』(Reformation of War)의 러시아어판 발간에 단 서문으로 투하쳅스키 선집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박기련의 인용 출처를 더 정학히 따지자면,  사실 이 부분은 심킨의 저서『Deep Battle: The Brainchild of Marshal Tukhachevskii』의 pp. 125-134에 있는 투하쳅스키의 동일한 글을 영역한 것에서 인용한 거라 엄연히 따지면 심킨을 인용했다고는 볼 수 없겠습니다.6 애석하게도 이 책은 절판이라 저는 구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부분만 보면 투하쳅스키가 풀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전체 소련군이 채택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큰 감명을 받은 걸로 보입니다. 이렇게 짧게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풀러가 투하쳅스키에게 영향을 줬다.'라는 일반화된 명제로 치환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별개지만 말입니다. 사실 최초로 이 문단을 소개한 박기련 이후로 아무도 이것을 의심하거나 검증하려 보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명제를 일반화시키기 위해 원문 전체를 본다면, 원문의 맥락에서 이게 얼마나 엄청난 단장취의이며, 원문의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투하쳅스키의 의도를 곡해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투하쳅스키는 원문의 서두에서 우선 풀러의 군 경력과 그의 출간 저작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풀러를 소련 기준으로 전혀 긍정적이라 볼 수 없는 수식어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풀러는 그의 전쟁 이론에 철학적 기반을 보여주기를 좋아하며 스스로를 스펜서의 추종자라고 여긴다. 그러나 풀러의 철학적 측면, 풀러의 가장 취약한 측면은 가장 혼란스럽고 어떻게 보든 비판을 멈출 수 없다. 


풀러는 영국의 충실한 제국주의자로서 '삶의 법칙은 전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게 풀러가 그의 수치스러운 파시스트적 선동가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빼놓으면 안된다. 풀러는 특히 전쟁에 대해 애수에 차서 '섬멸로부터의 탈출은 연구를 통해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마 전쟁이 장기판에서 결정될 날이 올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다."7


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투하쳅스키는 풀러를 철학적 측면이 취약한 "제국주의자" 이자 "파시스트적 선동가"로 부르고 있습니다. 스탈린 시대 소련이건 그 이후의 소련이건 이러한 단어가 얼마나 강력한 의미의 비난인지 아시리라 봅니다. 그리고 투하쳅스키는 소련의 철학인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관점에서 풀러를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전쟁을 국제 내전으로 전환하기 위한 계급투쟁에 대해 풀러는 그걸 반역이라고 부르고 부르주아들의 이익을 위한 전쟁의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아니면 풀러는 국가의 모든 계급이 '자유롭게 존재'한다는 이름 아래 '국가의 유지'를 말하고 있다. (중략) 풀러는 영국의 노동 계급에 대해서 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풀러는 영국의 식민지와 반식민지에서 억압받는 인민들에 대해서는 더 잔인하기까지 하다. 풀러는 다른 평범한 영국인들처럼 인간을 두 가지 계급으로 나눈다. 영국인과 순전한 흑인이 아닌 유색인종을 포함한 제2 계급인 '깜둥이'다. 풀러는 제2 게급에 대해 배운 바가 없고, 그들을 경멸하는 게 최상의 미덕이라고 보며, 그 미덕이 대영제국에 속한다고 본다."8


마르크스주의자인 투하쳅스키가 보기에, 풀러는 레닌의 중심 테제인 "제국주의 전쟁의 국제 내전 전환"을 부르주아의 이익을 위해서 막아야 한다고 보는 영국 지배계급의 앞잡이이자 인도 등 영국 식민지의 유색인종들을 인종차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인물입니다.9 그리고 투하쳅스키는 풀러가 소비에트 연방을 보는 관점에서도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풀러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증오하고 두려워한다. 풀러는 소비에트 연방을 상대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이 연합해야 하며 적기에 '러시아의 회복'을 위한 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3년의 저술) 이것이 풀러의 계급적 묘사다."10


그리고 투하쳅스키는 풀러의 장차전 전망 또한 부정하고 있습니다. 투하쳅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필자는 다시 가장 복잡하고 얼키고 설킨 연막으로 모든 방법을 감추려는 풀러가 스스로 내린 결론을 반복하겠다. 예를 들어, 풀러는 스스로를 무혈 전쟁의 1인자라고 생각한다. 풀러가 보기에 현대전에서는 보병이 필요 없다. 전투는 끔찍한 것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중략) 풀러는 유혈전쟁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보병도 '근절'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풀러는 숫자를 기동성으로 교체하고, 적의 군대의 몸통을 격멸하는 게 아니라 적의 지휘관 같은 신경을 격멸하는게 필요하다고 보았다."11


그리고 투하쳅스키는 풀러를 비판하는 동시에 풀러의 장차전 전망을 부정했습니다. 


"풀러의 이러한 수다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무의식적으로 풀러가 대규모 전쟁의 문제를 얼버무리며 넘어가고, 대규모 전쟁에 대해 오직 약간의 주의만 기울이고 있으며, 특히 우리가 뒤에 볼 수 있듯이 대부분 영국의 소규모 전쟁과 소규모의 기계화 군대를 주로 말한다는 걸 볼 수 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러가 결론에서 간과한 대규모 전쟁은 불가피하며 소비에트 연방을 향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연합이 시행할 대전쟁에서 대규모 군대가 동원될 것이다."12


그리고 투하쳅스키는 여기에 더하여 풀러가 1차 세계대전에서 본 대규모 군대 보다는 정예화되고 차량화, 기계화된 소수 정예 군대가 장차전에서 알맞다고 본 전망도 비판을 퍼부었습니다. 


"풀러는 현대의 대규모 군대를 비판하며 군대의 크기와 근육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풀러에 따르면 가솔린 엔진은 '군대의 크기를 줄일 뿐만 아니라(대규모 인력 중 전차에 탑승할 인원은 2-3명이다) 기동 부대의 장갑 역할을 하는 기동성을 증가시킨다.' 풀러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군의 더 큰 발전은 숫자가 아닌 기동성을 향해야 한다.' 풀러는 소규모 군대의 유익함을 '역사적'으로 명백히 드러난 사실들로 증명한다. 풀러는 군사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장 결정적인 전투에서 숫적으로 열세인 쪽이 승리했는데 그 이유는 승리한 쪽의 무장 상태가 더 나았거나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지휘관의 지휘를 받았기 때문이다.' 군대의 크기와 인력을 기계화된 군대와 대치시키는 건 물론 부정확하고 근거도 없다. 필자가 풀러가 주장하는 데로 '인력을 기계로 교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다." 13


투하쳅스키는 풀러의 기계화된 정예 이론을 부정하고 대규모 군대의 출현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적 맥락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어찌 되었건 소규모 군대 사상은 인간의 근육을 기계로 교체하려는 발상에서 나왔다. 풀러는 그것이 공통된 산업과 기술의 발전에서 나왔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발전은 반대의 상황을 낳았다. 물론 더 발전된 자동차 생산 설비의 경우 노동자가 생산해 낼 수 있는 자동차의 양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도입되면 노동 계급의 기술적 진보가 감소한다고 볼 수 없다. 반대로 자본주의의 위기 기간을 제외하고는 생산력의 전체적 발전과 기술적 진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숫적 증가를 일정하게 수반했다. 군사력의 발전에서도 같은 과정을 볼 수 있다. 근육을 기계로 대체한다는 건 군의 크기를 줄이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군사기술의 진보로 일어난 대규모 군대의 팽창을 이끈다. 군사기술의 진보는 생산력 증가를 나타내 주고 전장에서 자본주의 국가들에는 희망이 없는 상황인 군의 제지할 수 없는 성장과 군사력의 팽창과 생산력 관의 상관관계가 뿌린 씨가 대규모 군대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국제 내전으로 전환하는 걸 확실히 보장시켜 주는 것을 포함하는 군의 투사 중량 증가를 가져온다. "14


심지어 여기서 나온 투하쳅스키의 풀러의 전차 유일주의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리처드 심킨도 인정했습니다. 심킨은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지상전에 관한 풀러의 견해에 대해서 발견했던 최고의 비평은 풀러가 저술한 《전쟁개혁론》의 러시아어 번역판에 기술된 투하체프스키(=투하쳅스키)의 서문인데 러시아 육군원수 선집으로 재발간되었다. (중략) 이와는 별개로 투하체프스키는 소련식 사고의 발전에 풀러가 미친 어떤 특정한 아이디어의 영향에 간하여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훌륭한 제병전투의 주창자인 투하체프스키는 '전차 유일론'이라는 이설을 현명하게 다듬고 있다. 그는 전차의 전진을 지원하기 위한 보병과 포병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기동 부대의 우회작전시에는 지레의 받침점을 제공하고 적을 전방에 고착시키기 위한 주력 부대(견제 부대)가 있을 때에만 기동 부대가 전개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15


심킨의 해석이 투하쳅스키의 의도와는 많이 엇나갔으며 "소련식 사고의 발전에 풀러가 미친 어떤 특정한 아이디어의 영향에 간하여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도 어떤 게 소련식 사고에 영향을 끼쳤는지 전혀 말하고 있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투하쳅스키의 풀러 비평에 담긴 비판은 명확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하쳅스키의 신랄함은 바로 다음 문단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전장은 미국과 캐나다 국경이다. 양군은 모두 완전히 기계화되어 있다. 그런데 영국군은 풀러가 좋아하는 18개 사단을 가지고 있고 미국은 180개 사단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전차 5,000대와 항공기 3,000대를 가지고 있고 후자는 전차 50,000대와 항공기 30,000대를 가지고 있다. 규모가 작은 영국군은 손쉽게 무너진다. 기계화, 기동화됐지만 규모가 현저히 작은 부대가 미래 전쟁을 주도한다는 것이 망상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은가? 오직 멍청한 자들만이 풀러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16


투하쳅스키의 비판은 여기에서 정점에 달한 후 다소 하강하지만 계속 신랄합니다. 투하쳅스키는 풀러의 소규모 정예로 구성된 군대 이론을 계속 비판합니다.


"대규모 군대는 게으르고 둔중한 군대가 아니다. 반면 차량화 장비와 항공 장비는 대규모 군대를 이전의 낡은 군대를 거 기동성 있게 바꾸고 더 결정적인 전략적 행동을 취할 수 있게 한다. 제6차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총회의 결론은 이렇다. '앞으로 다가올 제국주의자들의 세계대전은 기계화전 뿐만이 아니라 막대한 물질적 자원을 필요로 하는 전쟁이 될 것이지만, 교전국들의 대규모 인구가 투입되는 전쟁도 될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규모 군대들이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대규모 기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그렇게 군대의 골격을 강화하고 군사적 충돌 준비를 하고 있다."17


그리고 투하쳅스키는 풀러가 소규모 정예 군대를 주장하면서도 결국 대규모 군대의 필요를 말하는 모순을 공격합니다. 


"풀러는 영국의 군사 및 정치적 목적에 기반해서 군국주의자들에게는 불편한 문제인 풀러 스스로가 비밀스럽고 내키지 않게 말한 영국이 대규모 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다는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을 무시하려는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만약 독자들이 풀러의 주장에 담긴 핵심을 본다면, 풀러가 대규모 군대 없이 수행하는 주요 전쟁을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게 명백해진다. (중략) '모든 민간인들은 군대에 등록되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국가 인구의 한명한명이 전쟁 개시 때 병력 동원소로 가는 것이 군에는 효과적이다.' 독자들은 풀러가 프랑스의 전시병역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풀러의 이러한 주장들은 풀러 스스로가 말한 것이고 풀러가 주요 전쟁이 대규모 군대의 동원 없이, 그리고 국가의 '무장한 인민'의 준비 없이는 상상할 수 없었다는 증거를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18


그리고 또 이런 비판까지 가했습니다.


"풀러는 탐색, 수송, 보급, 군사력 운용 등의 조건들을 평가한다. 풀러는 대영제국의 군사적 경험에 대한 그의 이론과 실제를 요령으로 사용한다. 풀러는 그의 전쟁 방법을 인간성 있게 보이려고 하지만 그의 주장의 핵심을 엿보면 그가 무방비 상태의 사람들에게 화학 무기를 사용하고 그들을 감염시켜 '국가의 자원 소모를 줄이는 경제적인 전쟁'을 시행하자고 주장한 걸 볼 수 있다."19



어떻습니까? 투하쳅스키는 서평의 거의 대부분을 이러한 비판과 비난에 할당하고 있습니다. 투하쳅스키가 보기에 풀러는 제국주의자,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에 소비에트 연방을 증오하는 부르주아며 화학무기를 무방비 상태의 사람에게 써서 비용을 절감하자는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또 투하쳅스키는 풀러의 소규모 정예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볼 때 완전히 틀렸다고 봅니다.  이렇게 비난을 퍼부은 사람의 이론을 투하쳅스키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자연스러운가요? 


wkchoi44님의 참고문헌 목록에는 심킨의 『Deep Battle: A Brainchild of Marshal Tukhachevskii』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투하쳅스키가 풀러를 긍정적으로 보고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단장취의의 극치가 될 출처가 바로 그 부분, 투하쳅스키가 쓴 풀러의 『전쟁의 개혁』 서평입니다. 분명 그 글을 심킨의 영역본을 통해 전체를 읽으신 후 그러한 말씀을 하시길 망설이시고 이전의 논문들에 대해 의심을 해 보셨어야 했다고 봅니다. 


물론 wkchoi44님께서 좋아하실 부분도 있습니다. 투하쳅스키는 아마 서평의 공정성을 좀 맞추려 한 건지 풀러에 대해 위에서 말한 다소간의 긍정적 평가를 했습니다. 투하쳅스키는 먼저 풀러의 소규모 전쟁 이론에 대해서 "흥미롭다."라고 평했습니다. "풀러가 주장하는 이론에서 흐리멍텅하고, 불합리하고, 야만적인 모든 것들을 가리고 있는 휘장을 걷어낸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말입니다.20


그 뒤에 위에서 말한 긍정적인 평가 이후에도 "우리는 풀러의 사상에서 여러 발전된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고 풀러 뿐만 아니라 그의 추종자인 리델하트 등이 더 발전시킨 사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21 여기서 여기서 박기련은 단장취의의 결과로 오독을 한 거 같습니다. 박기련은 투하쳅스키가 "우리는 풀러 자신과 그의 제자, 특히 리델 하트에 의하여 발전된 진보적인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채택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22 하지만 여기서 볼 수 있는 원문의 맥락을 볼 때 "채택"이 아니라 "주목"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제까지 계속 비난해 온 이론을 '채택'한다는 건 확실히 부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서도 "풀러가 시끄럽게 떠든 걸 제쳐 두면"이라는 전제를 달았습니다. 


글의 대부분을 비판과 비난으로 몰아친 다음 마지막 2장에서 나온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 하에서 이 글에서 투하쳅스키가 풀러를 가장 긍정적으로 기술한 부분은 아마 이걸 겁니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 과거에 갇혀서 과거의 경험을 최고로 미화하는 데만 치중하고 있는 프랑스의 군사사상 보다 영국의 군사사상이 발전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23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평가가 끝난 이후, 투하쳅스키는 풀러가 소비에트 연방을 적대한다는 전제 하에 이렇게 글을 끝맺었습니다.


"1923년에 풀러는 "러시아의 회복"을 위한 군사적 개입을 주장했다. 만약 풀러가 이 책을 지금 쓴다면, 풀러는 확실히 그런 주장을 하는 데 더 신중할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사회주의 권력이 성장하고, 당의 노선을 실행함에 따른 지속적인 진보가 일어나고, 연방의 방위력과 붉은 군대의 힘이 강화되고, 계급으로서의 부농이 제거되어 완전한 집단화가 이뤄지는 이 모든 것들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소규모 전쟁의 냄새도 맡지 못하게 한다. "24


자, 이제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전체 글에서 분량도 얼마 안되는 문단을 보고, 그것도 앞뒤 맥락 다 끊어놓고 단장취의를 해서 오독까지 의심되는 문장을 통해 "풀러의 마비이론은 (중략) 구 소련의 투하체프스키에 의해 종심전투이론으로 정립되어 작전기동군(OMG)란 전법으로 발전되었다."(3쪽)라고 말씀하시는게 타당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단장취의한 문장을 제쳐 두고 우선 글 전체의 맥락을 먼저 파악하시고 고찰하신 다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고민하시는 게 타당하시겠습니까?



  1. 박기련, 「蘇聯軍 縱深戰鬪敎理의 現代的 發展」, 국방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7, 『기동전이란 무엇인가』, 일조각, 1997, pp. 152-153; 김명균, 「痲痺戰(Paralysis warfare)의 發展方案에 관한 硏究」,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8, p. 16-17, 33-39 봉길순, 「痲痺戰에 關한 考察」,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p. 60-62; 柳在甲 蘇聯ㆍ中共ㆍ北韓의 作戰術 發展傾向」, 한국전략문제연구소, 1990, p.19-22 ;최영렬, 「한국군의 마비전 수행방안 연구」,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p. 14-16; 윤형호, "영국학파-풀러, 리델 하트의 군사사상", 『군사사상론』, 플래닛미디어, 2014, pp. 303-304.
  2. 박기련, p. 152; 류재갑, p. 22; 최영렬, p. 16
  3. 김명균, p. 16-17.
  4. Тухачевский, Михаил Николаевич, "Предисловие к книге Дж. Фуллера ≪Реформация войны≫", Тухачевский М.Н. Избранные произведения, Том II (Москва, Воениздат: 1964) pp. 155-156.
  5. 박기련, p. 152; 류재갑, p. 21; 윤형호, p. 303-304.
  6. 윤형호는 Race to Swift에서 인용했다고 하는 데 실수로 보입니다.
  7. Тухачевский, p. 148-149.
  8. Ibid., p. 149.
  9. 레닌의 제국주의 전쟁의 국제 내전 전환론에 대해서는 한설, 「레닌의 전쟁관 연구: 러일전쟁부터 브레스트-리토프크스 조약까지」,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p. 129-135를 봐 주시길 바랍니다.
  10. Тухачевский, Op. cit.
  11. Ibid., p. 150.
  12. Ibid.
  13. Ibid.
  14. Ibid., p. 151.
  15. Richard E. Simpkin, Race to the Swift, Thoughts on Twenty-First Century Warfare, (Brassey's London & Washington, 1985), 연재욱 역, 『기동전』, 책세상, 1999, p. 75. 박기련은 여기서 심킨이 " 20세기 전반부를 군사 교리 변화의 세 번째 주기로서 풀러, 리델하트의 이론이 구데리안, 투하쳅스키 등에 의하여 실현된 시기로 본다."라고 했는데 아무레도 원문을 오독한 것 같습니다.
  16. Тухачевский, p. 152
  17. Ibid., p. 153.
  18. Ibid., pp. 153-154.
  19. Ibid., pp. 154-155.
  20. Ibid., p. 155
  21. Ibid.
  22. 박기련, p. 152.
  23. Тухачевский, Op. cit.
  24. Ibid., 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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