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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 현리 전투에 대하여...

폴라리스 | 전쟁사 | 조회 수 2670 | 2016.06.26. 01:30

오랜 지인인 김병륜 님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설명을 허락하에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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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5월 벌어진 현리전투와 당시 3군단장인 유재흥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들이 자꾸 반복되는데, 중국측이 작성한 아래 상황도를 보면 좀 더 명확하게 당시 상황이 이해가 될 것이다.


중공군이 동원한 군단은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15, 12, 27, 20 등 4개 군단, 북한군이 3, 5, 2 등 3개 군단이다. 이를 방어하는 아군이 미 10군단(실제로 한국군 2개 사단이 배속된 한미혼성군단), 한 3군단, 한 1군단이다. 군단 수로는 7대 3. 미군 군단과 사단은 몰라도 국군 군단과 사단은 중공군 군단과 사단에 비해 중장비가 더 많은 것도 아니어서, 이 정도 병력 차이면 정상적인 방어가 불가능하다.


중공군 5차전역 2단계 작전은 6.25 전쟁의 여러 전투와 달리 특이하게 동부전선 산악지대에 주공을 두었던 것이 특징이다. 미군은 5차전역 2단계 작전 직전까지도 중공군이 이 지역에 주공을 둘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중공군은 은밀한 기동으로 미군의 항공정찰에 거의 포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2개 병단(야전군급)을 동부전선으로 이동하는데 성공했고, 아군의 의표를 찌르며 동부전선을 반토막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군사편찬연구소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미 제8군사령관이 행한 최소한의 조치와 병행하여 미 제10군단장도 방어계획을 조정하는 대신 동부 축선의 방어계획을 그대로 두어 그 방향으로 대규모 공세를 펼친 공산군이 동부 산악지역에서 힘을 소진하게 한다는 작전방침을 채택하였다.”


전투 직전에야 미군들도 중공군이 서부전선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동부전선의 아군 방어부대를 보강하는 방식으로 방어계획을 바꾸지 않고, 그냥 중공군이 동부전선에서 힘을 빼도록 방치했다는 의미다.


절제된 표현 속에 행간에 숨은 의미가 많다고 생각되지만.... 이런 아군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병력 배치 속에 동부전선에서 중공군이 힘을 소진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지상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짐작을 할 것이다. 국군 3군단이 맡은 역할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당시 국군 3군단이 오마치 고개를 통해 돌파를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지금도 많은데, 작전상황도를 한번 보시라. 포위된 국군 3군단이 오마치고개를 돌파해서 철수할 경우의 경로를 거칠게 표시한 것이 파란색 점선이다. 이에 비해 국군 3군단 병력들이 (건제가 붕괴된 상태에서) 실제로 철수한 경로는 파란색 실선이다. 실제로는 더 복잡했는데 큰 틀에서 대략적 방향만 표시한 것이다.


상황도에서 중공군 4개 군단의 기동로를 한 번 보시라. 과연 국군 3군단이 오마치고개를 돌파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같은 중공군과 북한군 2중, 3중의 포위망에서 과연 도로를 중심으로 국군 3군단이 후퇴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방태산으로의 철수는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 철수였지만, 중공군의 의도와 실제 기동을 파악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 보면 오마치고개를 통한 철수보다는 방태산을 통한 국군 3군단 병력의 철수가 보다 현실성있는 방책일 가능성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국군 3군단의 철수전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오마치고개를 통한 철수를 포기하고 대부분의 병력이 방태산을 통해 철수할 당시 3사단과 9사단의 지휘체계가 마비된 문제, 전투 초반은 어쩔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라고쳐도 5월 20일 시점 3군단의 병력 통제가 적절하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하더라도 이 전투가 전체적인 국면에서 볼 때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아는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전투는 최종적으로 중공군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동쪽에서는 태백산맥과 동해안의 국군 1군단이 건재했고, 서쪽에서는 국군 5사단 35연대가 18일,국군 5사단 36연대가 19일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그리고 미 2사단이 중과부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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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whitecloud 2016.06.30. 14:33
그나마 오마치 고개로 안가서 다행인 상황이였네요
gslky 2016.07.04. 10:09
아닙니다
저 이야기에는 솔직히 시간관계,인과관계,책임감, 중공군의 전력등등 수많은 이야기가 빠져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평리전투나 용문산전투에서 보듯이 피해를 입어도 그렇게 괴멸당하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리고 오마치를 충분히 통과할 능력이 아군은 분명히 있었고(그 당시 중공군1개대대가 점거하고 있었는데 단지 경장비만 가지고 있는 부대일뿜이기에) 또한 저기 강원도의 기동로가 뻔하기에 충분히 우리가 저항했다면 확실히 피해를 입어도 절대로 괴멸되지 않았을겁니다
중공군의 침투로가 적나라하게 나와 있어도 처음부터 저렇게 된것이 아니라 기습을 하고 내려온 결과이지 처음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며 또한 제공권은 우리가 100%장악한 상황이기에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결과로 3군단을 해체시켰는데 미군이 바보가 아닙니다
그 단적인 예가 6사단장인 장도영이 용문산전투전에 어이없는 패배와 후퇴를 하였는데 벤프리트사령관이 해체시키지 않고 사단장도 축출하지않고 유임시켜 그후에 용문산전투에서 중공군에 대승을 거둡니다아닙니다
저 이야기에는 솔직히 시간관계,인과관계,책임감, 중공군의 전력등등 수많은 이야기가 빠져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지평리전투나 용문산전투에서 보듯이 피해를 입어도 그렇게 괴멸당하지는 않았을겁니다
그리고 오마치를 충분히 통과할 능력이 아군은 분명히 있었고 또한 저기 강원도의 기동로가 뻔하기에 충분히 우리가 저항했다면 확실히 피해를 입어도 절대로 괴멸되지 않았을겁니다
중공군의 침투로가 적나라하게 나와 있어도 처음부터 저렇게 된것이 아니라 기습을 하고 내려온 결과이지 처음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며 또한 제공권은 우리가 100%장악한 상황이기에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결과로 3군단을 해체시켰는데 미군이 바보가 아닙니다그 단적인 예가 6사단장인 장도영이 용문산전투전에 어이없는 패배와 후퇴를 하였는데 벤프리트사령관이 해체시키지 않고 사단장도 축출하지않고 유임시켜 그후에 용문산전투에서 중공군에 대승을 거둡니다
결국 벤플리트사령관이 3군단해체밎 군단장해임은 어이가 없고 졸렬한 대응과 피해때문에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결국 벤플리트사령관이 3군단해체밎 군단장해임은 어이가 없고 졸렬한 대응과 피해때문에 정당한 행위였습니다
Profile image whitecloud 2016.07.04. 10:24
조금 생각해볼만한게 결국 저 오마치고개에 1개대대만 있었다는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이때 당시 3군단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만약에 오마치로 3군단이 향했다면 중공군에게 대응해서 오마치를 틀어막을 전력자산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無名人 2016.07.04. 19:28
http://m.blog.daum.net/af185/11751722
gslky 2016.07.07. 16:49
無名人님 저도 그 내용을 잘알고있습니다
물론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책임을 지울수는 없지요
모든지 이유는 많습니다
한때 80년대에 있었던 인신매매범도 절박한 이유가 있습니다
말이 않되는 것같죠 아닙니다 말이 됩니다
그 사람의 인생성장기나 내면을 보면 가능도 한 일입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납하질 못할 행위이기에 용서를 못하는거죠
손도 바닥이 있고 등이 있는데 바닥이 더 더러운 법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인 김태희도 혐오스러울 정도의 더러운 것도 분명이 있을 겁니다
그만큼 어떤 관점에서 보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데 말을 위한 말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것이 불확실의 연속이기에 하나로만 판단할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분명히 명약관약한 사실은 있습니다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상황이 어려워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시도도 않하고 모래성처럼 결국 무너졌다는 사실은 아무리 변명을 하여도 변명이 않되는 겁니다
또한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통솔자입니다
그러기에 전쟁에서 이기면 그 장수의 이름이 아려지는 것이고 패배하면 또한 그 장수이름이 알려지는겁니다
반격을 못할 만한 여력도 없는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도 시간도 없는것도 아닌게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모래성처럼 무너졌지요
그런데도 그 통솔자에게 책임을 않물은다는 것은 솔직히 문제가 있네요
그리고 한가지 말하자면 요사이 분들이 잘못생각하시는게 있는데 통솔자는 전쟁시 부하의 생사여탈권을 가지는 대신 무한한 책임을 지게되어 있습니다
이건 어떠한 이유를 붙혀도 변병거리가 되수 없습니다
누구 하나를 매장시키는게 아닙니다
하여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 좋은데로 생각하십시요
이건 각각 그 사람의 인지능력만큼 판단하실테니까요
물론 제가 낮을수도 있겠지요
gslky 2016.07.07. 17:28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이순신장군을 우리는 성웅이요 불후의 명장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이순신장군이죠
과연 선회하기 좋은 판옥선이나 가장 결정적인 일본군보다 먼거리및 화력이 우수한 대포나 또는 우수한 장병이 열심히 않 싸웠다면 과연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후세에 유명하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승리를 분석할 때 나오는 이야기지 솔직히 우리는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자만 대부분 기억할 겁니다
이 모든것을 준비하고 만들고 활용하는 것은 통솔자입니다
그만큼 통솔자가 중요하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원균도 욕마 얻어먹지요
과연 원균혼자의 책임만일까요
아니죠 무리한 원정을 시킨 조정이 더 나쁘죠
그래서 불리한 중 알면서 나아가 전멸에 가까운 실패를 맟보줘
과연 무리한 원정만 있을까요 아니죠 좀더 원균이 무리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여차 하면 무리않하고 도망갔으면 그런 상황을 완전히는 아니라도 전멸은 않당하였을겁니다
분명한 것은 원균혼자만으로 책임을 돌릴수는 없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조직하고 활용하는 것이 통솔자입니다
그 통솔자는 원균이지요
그에게 제일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일로 책임을 물어야할 사람이 통솔자라는 겁니다
이제 그만 적겠습니다
Profile image whitecloud 2016.07.07. 18:56

네 맞습니다 통솔자가 책임을 지는게 당연한 것이죠. 그것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단순히 패전했다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책임을 전부 전가해야 할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대표적인 예가 천안함 피격사건이죠. 그 당시 천안함에는 여타 이유로 인해서 소나장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무리하게 초계임무를 수행하다가 결과적으로 잠수함에게 피격당하여 격침당하고 맙니다. 이러한 책임을 당시 함장이였던 최원일 중령에게 물려야 할까요? 물론 최원일 중령이 좀더 강하게 현 함선은 소나 장비가 좋지 않으니 초계임무를 맡기에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주장할 수도 있었을겁니다. 그렇지만 그러하지 못했다 해서 최원일 중령에게 패장이라능 굴레를 씌워야만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통솔자가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실제 그때의 상황에 비추어 잘잘못을 따져 제대로된 진실이 밝혀진 후에 알맞은 크기의 책임을 지워야 하는 것입니다.

Profile image 푸른매 2016.07.07. 22:48

3군단이 오마치를 돌파해 조직적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는 종래 학설은 중국이 관련 사료를 공개하면서 깨어진지 오래입니다. 이미 17일 오후에 중공군 81사단이 오마치 남쪽 5km 침교를 탈취, 이중포위망을 완성한 상태였고 오마치로 탈출했다간 침교에서 가로막힌 다음 오마치까지 다시 닫히면서 3군단 전체가 완전히 포위섬멸당했을 겁니다. 오마치 돌파 시도가 17일 야간이었는데 이 시점에서 침교에는 중공군이 득시글대고 있었죠. 오마치만이라면 몰라도 오마치에 이어서 침교까지 돌파하는 건 도저히 무리입니다.

울프팩 2016.12.02. 22:57
썰겉은 수준의 생각은 벤플리트가 한국군 군단1개를 유인책으로 써서 중국군을 끌어들여 포위 섬멸을 했다. 8사단의 횡성덩투와같은 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중국군은 이때 입은 타격이 엄청나서 1953년 금성전투때까지 대규모 공세를 하지도 못했죠. 그렇다고 공세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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