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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의 軍史世界

 

그 숫자 속에 담긴 역사 [ 끝 ]

 

 

 

경기 이상의 경기

 

르네상스가 시작된 14세기 이후는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에 대한 향수가 커지기 시작한 시기로, 특히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런 경향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문명이 꽃을 피웠던 발칸반도, 소아시아는 19세기 말까지 이슬람 세력권이어서 기독교 유럽인들이 접근하기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가까이하기 힘들다는 제약은 역설적으로 헬레니즘의 원류에 대한 갈망을 더욱 증폭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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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부터 중근동 지역에서 대대적인 고대 문명 발굴이 붐을 이루었습니다 ]

 

19세기 말 올림픽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시대사적 흐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크로스컨트리 같은 장거리 경기가 존재하였는데 굳이 마라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종목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습니다.  한마디로 동양 문명의 도전을 일선에서 막아낸 고대 그리스 문명에 대한 동경이라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 만큼 19세기에 이르러 서구는 세계를 자신의 뜻대로 선도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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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주경기장의 모습 ]

 

이렇게 옛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탄생한 마라톤은 역사가 겨우 한 세기를 갓 넘겼기 때문에 고대 올림픽 당시부터 있었던 권투나 레슬링 같은 종목에 비한다면 명함도 내밀기 힘들 정도로 역사가 짧지만 어느덧 올림픽을 상징하며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암구호처럼 되어버린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 코스는 페이디피데스가 달렸다는 코스를 정확히 측정해서 나온 거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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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의 소식을 전하고 숨진 페이디피데스 ]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마라톤이 처음 선보였을 때는 약 41킬로미터였고 이후 대회들도 대략 40여 킬로미터 내외에서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1908년 제4회 런던 대회도 원래 40킬로미터였는데 공교롭게도 출발지가 윈저(Windsor)성 부근이었습니다.  이때 영국 왕실이 출발 광경을 직접 보고 싶다고 요청하여 출발지를 성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길이가 42.195킬로미터가 되었고 1924년 7회 대회부터 이를 공식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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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의 마라톤 출발 장면

이 대회 때 코스 길이가 바로 42.195킬로미터였습니다 ]

 

그런데 이처럼 세계사의 엄청난 사건을 근거로 해서 탄생한 마라톤은 우리에게도 스포츠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 서쪽 문으로 한 명의 젊은이가 뛰어 들어왔고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었습니다.  제11회 올림픽의 마라톤 승자가 결정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선수는 열화와 같은 성원을 등에 업고 마치 단거리 선수처럼 마지막 100미터를 12초에 주파하며 결승선을 통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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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킬로미터부터 독주를 거듭한 고 손기정 선수 ]

 

2시간 29분 19.2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인물은 바로 손기정(孫基禎)이었습니다.  비록 일장기를 달고 나라 잃은 설움을 곱씹으며 일군 우승이었지만 그의 승리는 모든 한국인들을 환희에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종목을 통틀어 한민족이 모든 세계인과 겨루어 이룬 최초의 우승이었지만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승리는 단지 스포츠 분야에서의 업적만이 아니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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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장기 말소는 독립을 갈망하는 의지이기도 했습니다 ]

 

손기정의 우승은 일제의 탄압과 수탈로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인들에게 우리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으며 결코 2류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시켜 주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감소하였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마라톤은 한국인들에게 단순히 스포츠를 넘는 거대한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마라톤은 한국인에게 남다른 의미이지만 사실 세계사적으로 더욱 의의가 있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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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의 사건이었지만 마라톤 전투는 아직도 그 잔영을 현재까지 비추고 있습니다 ] 

 

앞에서 알아 본 것처럼 원래 마라톤은 2,500년 전, 동서양의 대표 세력이 격정적으로 충돌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 중요한 공간의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했던 과거사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고 지금은 경기 종목을 이르는 고유명사로 더 많이 취급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이 현재 마라톤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무조건 과거의 낭만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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