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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을 위해 문단간 간격을 원문과 달리 임의 조절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전략 >  5월 18일 게르머(Alfred Germer) 중위가 이끄는 침투부대가 505장갑벙커의 제 2지구(Block II) 일대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벙커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철갑 포탑이 구축되어 있었는데, 게르머 중위는 이 포탑 둘레에 40kg의 폭약을 설치했다. 폭약을 터트리자 강철로 된 포탑은 깨끗이 절단되어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땅에 비스듬히 쳐박혔다. 

 

1280px-Laferte_tourelle_am.JPG

 

( https://fr.wikipedia.org/wiki/Ouvrage_de_La_Fert%C3%A9 ) 

  게르머 중위는 즉시 벙커 내부에 소형 폭약과 연막탄을 던져 넣었고, 연쇄폭발이 일어나 벙커 전체가 파괴되었다. 이제 이 전역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소위 '지하의 비극'(tragedie souterraine)이라고 불리는 라 페르테에서 일어난 프랑스군의 파멸이다. 

 

  게르머가 던진 폭탄 때문에 벙커 안에 화재가 일어났고, 프랑스군이 적재해 놓은 포탄에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벙커 아래층에 있던 병사들은 지하 35m 깊이에 위치한 갱도를 통해 250m 떨어진 제 1지구(Block I)로 도피했다. 마침내 강철 포구와 관측구들로 이루어진 요새 시설도 게르머 중위가 지휘하는 침투부대의 손에 떨어졌다. 

 

  벙커 내부는 화염으로 휩싸였고 병사들은 갱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하지만 대참사를 면할 방법은 없었다. 광산에 화재가 날 때 처럼 출구 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어 내부에서는 산소마저 줄어들고 있었다. 공기가 점차 탁해져 병사들은 방독면을 써야만 했다. 한동안 소강 상태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탄약저장고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갱도 전체에 폭풍(爆風)이 휘몰아쳤고 내부 시설들이 산산조각 났다. 결국 전기도 모두 끊어졌다. 

 

  그러나 외부와의 전화선은 다행히 연결되어 있었다. 라 페르테 지역대장 부르귀뇽(Bourguignon) 중위는 갱도에 폭발성 유독가스가 가득 찼으니, 이미 독일군에게 빼앗긴 요새를 포기하겠다고 상급부대에 요청했다. 폭발이 잠잠한 틈을 타서 벙커의 상부 를 통해 탈출하면 적어도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급 지휘관들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사력을 다해 벙커를 고수하라고 지시했다.

 

  훗날 프랑스 역사가들은 이 명령을 '극악무도하고 어리석은' 지시였다고 표현했다.

 

  5월 19일 05:39분, 벙커에 갇힌 샤이(Sailly) 중사가 기침으로 말을 잇지 못하며 힘겨운 목소리로 마지막 무전을 보냈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습니다. ​ 중위님은 제 옆에 있습니다. ​ 우리는 다시 탈출을 시도할 겁니다."

 

  며칠 후 유독가스와 연기가 사라진 다음, 독일군 병사들이 지하갱도를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벙커 방어부대 소속의 시체 107구가 발견되었고 사망 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Profil_La_Ferté.jpg

 

( https://fr.wikipedia.org/wiki/Ouvrage_de_La_Fert%C3%A9 )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은 많은 소설과 희곡에서 이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내기 위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35m 지하에서 벌어진 현실은 픽션보다 가혹했다. 부르귀뇽 중위와 그의 부하들이 아무 의미도 없고 작전술적으로도 전혀 효과가 없는 505벙커 사수에 목숨을 바친 것이야말로 진짜 비극이었다.

 

  애당초 라 페르테를 공략한 제 7군단의 작전은 스당 방면에 위치한 실질적인 주공을 은폐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독일군이 5월 16일 라 페르테 요새 지역을 공격했을 때 라 페르테 북부의 마스 강 방어선이 돌파되어 이미 약 100km에 달하는 틈이 발생했다. 반면 프랑스군 지도부의 입장에서는 남쪽을 향해 3km, 4km로 팽창되던 돌파구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505 장갑벙커 지역은 의미가 전혀 달랐다. '난공불락의 마지노선'이란 신화에 흠집이 생겨난 것이다. 프랑스군 장군들 중 그 누구도 마지노선의 조그마한 흠집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프랑스군은 마지노선의 신화가 발목을 붙잡는 아이러니한 운명을 맞았다. 스당에서 돌파당한 후, 프랑스군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또 한번의 절호의 기회가 있었다. '절대적인 방어선 그 자체'인 강력한 마지노선을 포기하고 그 일대에 있던 대규모 부대들로 독일군 돌파구의 남측방을 역습했다면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장군들은 마지노선에서 전력을 차출하기는 커녕, 마지노선 방호를 위해 스당 지역에서 부대를 빼냈다. 그래서 스톤에서 한창 치열한 전투를 치르던 제 3기갑사단 예하 제 41전차대대의 샤르 B 전차들이 라 페르테 방면의 역습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전장을 떠났다. 하지만 포위된 505 장갑벙커를 구원하려던 시도도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 <중략> ​ 이들에게 마지노선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결정적인 시점에 단 19개의 사단을 보유한​ 독일군 C집단군이, 월등히 우세한데다 난공불락의 마지노선을 갖고 있던 36개 사단의 프랑스군을 끝까지 붙잡아 둘 수 있었다.

 

 - 칼 하인츠 프리저, 전격전의 전설, 제 6장 '마스 강 전선의 붕괴' 

- 제 5절 '마지노선에서 고립된 프랑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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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   ▶전쟁에서는 비록 패배했지만 처절한 대독 항쟁은 계속됐다 

 

 1940년 5월 19일 아침 5시 39분, 마지노선 라 페르테(La ferte) 지역의 프랑스 제71보병사단 505 장갑벙커 지하 속에서 프랑스군 100여 명이 결사적으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마침내 독일군 강습공병은 요새의 강철 문을 폭파시키고 벙커 내부에 강력한 폭탄과 연막탄을 집어넣었다. 곧이어 일어난 폭발과 화재에 의한 불길은 지하 35m에 있는 탄약고에 옮겨붙어 대폭발을 일으켰다. 벙커 내부는 화염으로 휩싸였고 병사들은 방독면 속으로 들어오는 연기의 고통을 참으며 지휘관의 조치를 기다렸다. 라 페르테 지역대장 부르귀농(Bourguignon) 중위는 갱도 탈출을 다급하게 상급부대에 요청했다. 그러나 상급 지휘관은 끝까지 진지를 고수하라는 단호한 명령을 내렸고 유독가스에 중독돼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독일군과의 혈투를 계속했다. 전투가 끝난 후 505 장갑벙커 내에서 107명의 프랑스군 장병 시신을 독일군은 확인할 수 있었다. 부르귀농 중위 부대원 중에서 진지고수 명령을 어기고 갱도 밖으로 탈출한 장병은 단 1명도 없었다.

 

 이처럼 전선지역에서 보여준 프랑스 장병들의 강인한 상무정신은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이후 전 국민에게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수많은 레지스탕스가 국내외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연합군과 함께 대독 항쟁에 참여했다. 레지스탕스의 지하방송과 신문은 전쟁 승리 이후 독일군 앞잡이들이 반드시 응징되리라고 수시로 적 치하의 프랑스 국민에게 경고했다. 그럼에도 나치체제 아래서 오히려 독일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레지스탕스 색출에 앞장선 일부 프랑스인들도 있었다. ​ < 후략 >

 

 -  신종태 합동군사대학 교수, 국방일보 연재물, '세계의 전사적지 탐방기' 제 14회, 

< 프랑스의 영광과 패배 그리고 부활 > 中.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20410&parent_no=1&bbs_id=BBSMSTR_000000000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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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5 장갑벙커를 둘러싼 이 비극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그곳의 방어를 담당했던 프랑스군 병사들의 치열한 감투정신일까요, 아니면 그들의 감투정신을 무의미하게 낭비한 윗대가리의 무능일까요.

 

  적어도 저는 저 상황에서조차 바로 도망치지 않고 처음엔 상부의 허가를 얻어 후퇴하려고 했던 저들의 군인정신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그런 수 많은 프랑스 육군의 용맹한 일선 장병들을 무의미하게 날려먹고, 전후 패전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 비겁하게 '후방의 제 5열'에 패전의 책임을 몰아붙이던 비겁자들의 무능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를 저런 식으로 미화해 치장하는 국방일보의 사건 설명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저 용맹한 병사들의 죽음은 진정한 개죽음이었죠. 아마 지하 35미터에서 질식사한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제 생각으론, 저런 죽음은 미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반면교사의 대상일 뿐이죠.

  

  현실적으로 제일 많이 읽는 주 독자들이 현역 군장병들인 국방부 기관지에서 이런 의도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 의도는 무엇일까요. 월 10만원짜리도 안되는 흔한 소모품이었던 시절 이 기사를 읽은 이래로 항상 벼르다가 전역하고 나서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을 다시 여기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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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폴라리스 2015.06.23. 23:38
이처럼 전선지역에서 보여준 프랑스 장병들의 강인한 상무정신은 <- 2차대전 일본군의 옥쇄가 떠오릅니다....소름이 쫙!
Profile image 22nd 2015.06.23. 23:43
딱 저 기고문을 연재한 사람이 저를 장기말로 보고 있을 시절에 저 기사를 보면서 기가 막혀서 참... 얼른 동원예비군까지 끝나야 저런 사람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텐데, 시간 참 느립니다.
Profile image 폴라리스 2015.06.24. 00:07
하드웨어는 미군을 추종하나 인력 운용사상은 배우질 않으니 명품 쇼핑이라고 비아냥만 듣는 것이겠죠.
fatman1000 2015.06.27. 15:00
- 어떤 전쟁 관련 책에서는 미군의 체제는 무일푼의 병사를 총알받이로 내모는 방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보기에 돈과 여론의 관심이 없는 미군 열화판이 바로 한국군이 아닌가 싶습니다.
Profile image eceshim 2015.06.24. 08:26
저걸 보면 우리도 빨리 다양한 탄종의 열압력탄을 배치해야 한다고 법니다.
갱도 안의 화염은 그야말로 지옥이죠.
북괴군 두더쥐놈들에게 열압력탄을 톡톡 터트리면 골로 가겟네요
Profile image 제주 2015.06.24. 09:13
저건..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오네요..
Profile image 지루남 2015.06.24. 10:28
기고문 연재자 만의 시각이겠죠. 설마 우리 군 수뇌부도 같은 견해를 갖고 있을까요. ... 암울하네요.
Profile image 22nd 2015.06.24. 11:24
적어도 2012년의 한국군은 각 군의 영관급 장교들을 교육시키는 군사대학의 교수가 군 내 기관지에서 저런 논리를 주장해도 거리낄게 없다는 수준은 될 것 같네요.
Profile image 지루남 2015.06.24. 17:58
갑자기 든 생각인데 기고문 연재자가 당시 상황을 알지 모른채 대략적인 설명만 듣고 쓰지 않았을까요? 한국엔 그런 전문가들이 워낙 많아서 추정해봅니다.
Profile image 22nd 2015.06.24. 18:21
그렇다면, 2012년의 한국군은 전후사정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보는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 군사대학 교수를 하는 군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Profile image 지루남 2015.06.26. 10:36
그런 사람들을 하도 많이 봐서요. ^^;
Profile image eceshim 2015.06.24. 12:27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 장교들이 전시에 뒤통수 쪽으로 총알이 인사한다죠
fatman1000 2015.06.27. 14:18
- 지금 한국군 총기사건을 봐서는 전쟁터에서 뒤통수 걱정해야 할 사람들은 장교들이 아니라 병장, 상병들이겠지요.
Profile image TitanArmor 2015.06.24. 19:15
아아 저런데 같혀있다가 화염과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을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니 몸서리쳐지네요...
Profile image eceshim 2015.06.24. 21:41
달리 생각하면 북한 갱도포병이 생각외로 쉽게 정리 될 수도 있습니다
shaind 2015.11.28. 22:13
군대시절 국방일보에서 본 정신교육 기고문 중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관해 헨리 D. 소로우의 명구 '극소수의 사람만이 자기 양심으로 국가에 봉사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소로우의 말의 의미를 정 반대로 써먹는 걸 봤습니다.
당동고호 2017.03.05. 00:49

잉?? 가만....이거 북괴놈들 제대로 엿먹일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그넘들 이제 슬슬 군량미도 검게 될정도로 썪어가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 아무리 지하에 숨는다 한들 지상을 통해서 불을 지르거나 수공을 해버리면 끝장아닐까요??

샘소 2017.03.06. 22:04

유럽전역은 잘 몰라서 글쓴분 주장에 딴지를 걸고싶진 않고 그냥 링크따라 국방일보 기사 전문을 읽어보니 글 전체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네요. 글쓴분이 기고를 읽기전부터 잘 알고 있던 내용이라 문장의 국지적인 부분에서 같은 결론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화가 날수도 있겠다는 부분도 이해가 가고 한켠으로는 저 기고자도 자신의 주장을 위해 끌어온 예시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은 부분(위의 본문을 쓴 분이 분노하게 만들었던) 같은것은 글을 쓰다보면 있을수 있다고 봅니다.

프랑스 이야기와 국내현실을 비교하여 짚는 부분에서 일반 대중들이 갖고있는 2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변변치 못한 대응에 대한 나쁜 이미지의 이면에는 프랑스군이 독일군 만큼 감투정신이 없는 군대가 아니었다는 예를 들고 싶었던것 같고 그외의 전체적인 낫질작전의  결과는 대다수가 뻔히 알고있으니 프랑스 군부의 오판과 잘못된 대응에 대해 굳이 짚지 않은것은 역사를 아는사람 입장에서 한켠으로 아쉬울수 있으나 그런것때문에 소모품이라는 병사 자신의 처지에 대해 몇년을 별러야 할정도로 분노에 휩싸이는것도 문학작품 구절을 인용하자면 지나친 앎의 병 같은 감정과잉으로 보일 여지도 있겠다 싶습니다. 사실 애초에 각개병사의 목숨이 중요시 여긴다면 최소한 국가규모의 선제적 전쟁행태는 완전포기하고 세부적으로는 발발한 전쟁에서 승패에 관계없이 빠른 항복이나 신속한 후퇴같은것이 도움이 되겠지요.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전쟁은 결국 나면 안되는걸로.

QWERASDF 2017.04.11. 20:18

국방일보 기고자가 말하고자 하는건 505벙커에서 보여준 일선 프랑스인들의 상무정신입니다. 22nd님은 상부 지휘관들의 무능이 빚은 사건이라는 점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기고자가 전달하려는 바는 해당 사례에서 얻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만 같은 사실이라도 여러가지 다른 교훈점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기고자가 상부의 무능한 명령을 내린 사람을 변호한다거나 칭찬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언급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군이 장병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에 매몰된 평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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