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에 대한 편견과 그 극복-6

PKKA | 전쟁사 | 조회 수 33 | 2020.05.06. 15:04
편견의 대중화
 
학술의 영역에서 나타난 편견은 원래 강했던 대중들의 편견을 통해 더 빠르게 전파되었다. 톰 클랜시, 프레드릭 포사이스, 존 르카레 등의 군사 및 첩보소설들은 의도적으로 주입된 편견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전후 서구의 대중매체들에서 동부 전선을 다룰 때는 주로 독일군의 입장에서 반영되었고, 그에 따라 동부 전선은 멋진 군복을 입고 나치를 경멸하지만 조국을 사랑하고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는 뛰어난 전사인 독일군이 야만스럽고 인명을 경시하며 우악스럽게 몰려오기만 하는 소련군을 상대한 전쟁이라는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서 소설, 보드게임, 만화, 인터넷 팬사이트 등을 통하여 널리 퍼져나갔다. 
 
그러한 편견은 냉전체제와 반공주의의 주입으로 시정되지 않고 훨씬 공고화되었으며, 이는 일본의 대중매체들에도 반영되었다. 비록 소련군에게 만주에서 관동군 전체가 끝장나긴 했지만, 그건 단기간에 경험에 불과했고, 또 만주의 패배에 대해서는 소련군의 군사적 능력보다는 소련군이 불가침 조약을 일방적으로 깬 행위에 더 초점을 맞춘 일본의 대중들에게서 소련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리고 같은 추축 동맹국이자 오랜 선망의 대상인 독일에 대한 애호 감정은 전후에도 계속 대중매체를 통해 나타났다. 
 
예컨대 유명한 군사 만화가인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작품들이 있다. 고바야시 모토후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삼을 때 실존인물인 나치 친위대의 미하엘 비트만을 비롯하여 거의 독일군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고바야시가 묘사하는 독일군 인물상은 한결같다. 미남에다가 모든 군복 중에 가장 멋진 군복을 입고, 빛나는 철십자 훈장을 달고, 국가에 충성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멀며 나치즘은 경멸하고, 천하무적에다가 외관까지 멋진 티거 전차를 몰고 무지막지하게 몰려오는 소련 전차들을 상대로 10:1로 싸우는 전사 중의 전사의 이미지로 말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고바야시의 만화에서 소련군은 철저히 독일군 주인공의 멋진 활약에 머릿수만 믿고 몰려오다 무너지는, 앞에서 설명한 이미지의 부합하는 존재로만 나온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만화 <늑대의 포성>이다. 여기서 고바야시는 그린 만화 중 최초로 소련측 주인공인 고르도크를 독일측 주인공인 하겐과 함께 화자로 삼았지만, 그건 이제까지 보여준 고바야시의 독일관과 소련관을 재확인해 시켜주는 인물에 불과하다. 하겐은 미남이고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적을 이기는 긍정적 인물형이다. 그러나 고르도크는 후줄근한 외모에 비합리적인 우스꽝스러운 행동만 하다가 하겐에게 패하는 지극히 희화화된 부정적인 인물형이다. 이러한 인물형의 대비를 통해 고바야시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독자에게 주입시킨다. 소련군에 대한 편견 형성과 주입까지는 아닐지라도, 독일군에 대한 감정이입 경향에 대해서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옛날에 그린 단편만화들에서도 크게 벗어나진 않다.
 
그리고 2013년에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 <걸스 운트 판저>를 보자. 이건 고바야시의 만화만큼이나 노골적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소련군을 모티브로 한 학교는 이제까지 형성된 이미지들을 죄다 집합시켜 놨다. 여기서는 제대로 지휘도 못하면서 시끄럽게 소리만 지르는 지휘관과 경직된 지휘에 기계처럼 반응하다 다 잡은 승리도 놓치는 병사들의 이미지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소련군을 모티브로 한 학교의 지휘관은 스탈린에 대한 서방측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그게 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경박함과 미소녀라는 적절한 포장 요소를 가져다놓긴 했지만, 그 뒤에는 수십 년간 형성된 의도된 편견들이 2010년대에도 수정되지 않은 채, 그리고 어떠한 비판을 거치치도 않은 채 시각적 이미지로 집약되어 시청자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편견을 확대 재생산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냉전 시대적 적대감과 편견을 주입할 정치적 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하면 심한 비약이겠지만, 원래 있던 이미지를 의심 없이 집어넣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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