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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심심해.”

 

  야전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초점이 없는 눈을 무의미하게 테트리스 화면에 고정시켜 두면서, 한참을 게임기만 만지작거리던 내가 갑자기 말하자, 각자 아는 얼굴들 찾아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던 우리 팀원들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할 거 없으면 그냥 조용히 있어. 그런 말 하면 없던 일도 생긴다.”

 

  “그래 맞아, 니 동기가 전쟁 난다는 데 돈 걸었다가 떼돈 번 거 기억 안나냐.”

 

  “아니 거기서 왜 제 이야기가 나옵니까. 저 아니었음 내기가 성립이 안 됐잖아요.”

 

  앨런과 에드의 말에 살짝 불편함을 느낀 매튜 녀석이 궁시렁대던 말던, 난 몸을 일으켜 세워 스트레칭을 하려다 말았다. 몸에 걸치고 있는 장구류가 새삼 무겁게 느껴진다. 그냥 계속 MP5를 갖고 있을걸 그랬나.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강당에 우락부락한 인상의 남정네들 십 수 명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 친구들의 정체가 누구인고 하니, 베를린 여단 287헌병 중대에 파견되어 있던 ‘그린베레’ 병력중 일부였는데, 아무래도 여단에서는 전시가 되다 보니 특수부대원들을 한데 모아두고 통제하려는 듯 했다.

 

  우리 팀 인원들은 대부분 저들의 소속인 특전단 출신인데다, 지금 R팀이 수행중인 기관원 호송작전 건으로 호흡도 몇 번 맞춰 본 지라, 대부분 우리 팀의 인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있었지만, 저들이 조금 껄끄러워하는 ‘예외’가 하나 있었다. 특수부대 경험은 델타가 처음인데다, 결정적으로 성이 여자인 제인 말이다.

 

  “왜 혼자 그렇게 있어요. 남자들밖에 없으니까 인기 좋을 텐데.”

 

  “여자가 총 들고 설치는 꼴이 영 아니꼽나봐. 못 볼 꼴 본 거 같은데.” 제인은 피식 웃으며 그대로 자기 야전 침대에 기지개를 펴며 드러누웠다. “울 아부지 오시면 눈동자도 못 돌릴 새끼들이 낯가림 하기는…….”

 

  “제인, 우리 이렇게 가만 있어도 되는 거에요?” 전쟁의 댓가로 400달러의 공돈을 벌은 내 동기, 매튜 쿠퍼 중사가 그런 우리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화에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끼어들었다. “도시 곳곳에 빨갱이 스페츠나즈가 나타났는데 너무 한가한 거 같은데요.”

 

  “그래서 걔들 찾아 나선 애들도 있잖아. 우린 일단 시키는 대로 기다리고 있자고. 중사 짬 먹었으면 잘 알 거 아냐.” 제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건빵 주머니에서 새 풍선껌을 찾아 입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프리드리히 대왕 가라사대, < 예비대를 갖지 못 한 지휘관은 대 사건의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다. >”

 

  “에이, 제인. 18세기 독일 카이저 이야기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마는, 그거 말고 다른 이유도 있을 걸요.” 방금 테트리스 블럭 다섯 줄을 파괴시키며 최소한의 ‘종심’을 확보한 내가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 여단장의 특수부대 혐오 증세가 보통이 아니래요. 베트남에서 물먹은 적이 여러 번 있어서, 레이건이 특수부대에 돈 낭비 하는 게 싫다고 듀카키스한테 투표 했다던데요.”

 

  “미친, 남 투어 가 있는 동안 사이먼스 대령이 자기 현지처랑 떡이라도 쳤대?”

 

  “낸들 아냐, 특수부대라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쫄보 새끼들이 한둘이라야 말이지.”

 

  “안되겠다. 특수부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각인을 시켜주자.” 어느새 이쪽의 대화에 재미를 붙인 내 동기가 이상한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스탈린>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거지. 너 그 차림 그대로 여단장실 쳐들어가서 러시아 악센트로 가오 좀 잡아봐. 그러면 오줌 지리면서 우릴 찾을걸.”

 

  나는 손가락을 바쁘게 놀려 길죽한 블럭을 가로 모양으로 눕혀 놓으면서, 까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적당히 맞장구 쳐 주었다. 바로 그 때 문이 벌컥 열렸다. 안경잡이 일병 나부랭이다.

 

  “임시 H팀 나오시랍니다.”

 

  “아 젠장, 최고 기록 갱신중이었는데.”

 

  “니 최고 기록이란거 매번 작전 대기중일때 갱신했잖아. 이제 익숙해 질 때가 되지 않았어?”    

 

  필요한 것들은 다들 몸에 걸치고 있던 터라 몸만 일으키면 준비 끝이었다. 정글화 저벅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타고 온 방탄 벤츠를 주차 시켜 둔 차고에 다다르자, 험비 한 대에 병사들 몇 명이 몰려서 이것저것 챙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M60의 7.62밀리 실탄 100발들이 깡통 두 개를 동시에 험비 지붕 위에 올려주는 어느 병사의 뒷모습을 보며 양 손목에 느껴질 그 중량감을 머리 속으로 상상할 무렵에 헌병 중위의 말에 잡념이 날아갔다.

 

  “젠킨스 소위입니다. 목표 지점까지 저희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델타 HRT의 임시 H팀 팀장 <이블>입니다. 무슨 일로 저희를 부른 거죠?”

 

  “급하니까 일단 차로 이동하면서 이야기 합시다. 지금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에드는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탑승했다. 난 잽싸게 뒷좌석에 몸을 부렸다. 매튜 녀석은 반 박자 늦게 벤츠 뒷쪽으로 몸을 옮기려다 이미 만원이 된 모습을 보고 툴툴대며 운전석에 몸을 앉혔다. 그러니까 니가 이 형님한테 안 되는거다, 인마.

 

  [ - 컨보이가 연락 두절이에요. 민간인 호송 대열인데 정시 연락도 없고, 호출해도 응답을 안 합니다. ]

 

  “컨보이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 - 선두에 M60 한 정으로 무장한 무장 험비 한 대, 중간에 40인승 대형 버스 한 대, 후방에 트룹캐리어 험비 한 대입니다. 원래 계획 대로면 항공대의 휴이까지 붙어야 하는데,  제공권을 저쪽에 장악 당해서 헬기는 못 떴습니다. ]

 

  이런저런 임무 관련 정보들을 차 내에서 무전으로 취합 받으면서 이동했다. 단순한 연락 두절이 아닌, 소련군 특수부대의 공격이 의심되는 상황이라 우리를 불렀다는 이야기에 이르자 새로운 의문점이 생겼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제인이 의문을 제기했다.

 

  “민간인 호송 대열을 소련군이 뭐가 아쉬워서 건드려요? 말단 공무원 몇 명 잡자고 그 지랄 떠는 거면 낭비도 그만한 낭비가 없는데.”

 

   [ -그게 사실… 행정 상의 착오로 중요 인원 한 명이 일반 컨보이에 탑승한 상태였습니다. ]

 

  “얼마나 중요한 인원이길래?”

 

   [ - 제대로 됐으면 지금 쯤 시 외곽으로 나가야 할 인원입니다. ]

 

  “…CIA, NSA 인원들 처럼요?”

 

  제인이 혀를 차며 교신을 이어나가는 동안, 다른 팀원들 역시 기가 막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궁시렁거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씨발, 빵꾸는 헌병대가 치고 수습은 우리가 하네.”

 

  “심심하다면서. 그런 소리 하니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는 거잖아.”

 

  “워 - 워 - 워, 속도 줄여. 거의 다 온 거 같다.” 우회전을 한번 하자 차량 전방에 우두커니 멈취선 험비의 뒷통수와 시체 몇 구가 헤드라이트 불빛과 가로등 불빛 아래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에게 길 안내를 하던 헌병의 험비 역시 멈춰서서 몇 명의 인원이 하차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일단 차에서 내렸다.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적이 있다는 가정 하에 두 명 세 명씩 짝을 지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드와 제인이 시체가 주위에 나뒹구는 병력수송형 험비의 뒤쪽에 몸을 엄폐시키며 전방을 경계하자, 방탄 차량의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우리가 뒤이어 움직였다. 언뜻 바닥에 나뒹구는 시신에 시선이 갔다. 몇 년만에 보는 미군 전사자의 모습인가.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뛴다.

 

  헌병 인원들이 버스를 지나쳐 사거리 앞 부분에서 사주 경계를 할 무렵, 버스 안에 들이닥친 에드와 제인은 버스 안에 적이 없음을 알려왔다. 우리나 헌병들이 보기에도 이미 적들은 짐 싸서 자리 비운지 오래였다. 헌병 인원들을 따라 사거리 안쪽으로 들어간 우리가 전방 무장험비의 비참한 말로를 목격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도대체 뭐로 들이 받았길래 차가 여기까지 밀린 거야……?”

 

  “기차로 밀어버리면 이런 비쥬얼이 나오는거냐?”

 

  헌병 몇 명이 궁시렁대고 있는 가운데, 헌병 소위는 기관총수의 해치 자리를 통해 험비 안을 한참을 말없이 들여다 보고 있었다. 기관총수의 시신은 차량보다 몇 미터를 더 밀린 채 시신 관절 두어 군데가 뒤틀려있었다. 차량 좌측면이 하늘을 바라보게 뒤집힌 험비를 잠깐 살펴 보다가, 에드의 호출에 우리는 현장 수습을 헌병에게 맞기고 버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언뜻 헌병 무전병이 지원 병력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량 자체엔 손상이 없네요. 운전병만 구해서 차량 채로 이송하면 되겠는데요.”

 

  제인과 에드가 버스 안의 인원들을 안심 시키면서 몇 가지 정보를 취합하는 동안, 버스를 한 바퀴 둘러본 내가 그와 같은 소감을 드러냈다. 부팀장인 앨런 역시 내 의견에 동의하며, 헌병들이 관련 조치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 버스 탑승 인원 중 유일한 사망자인 운전병의 시신을 살펴보던 내가 매튜와 앨런에게 특이점을 이야기했다.

 

  “탄흔을 살펴 보세요. 관통력이 장난 아닌데요.”

 

  시신의 방탄모는 반대쪽까지 구멍이 나 있었다. 상당한 방호력을 자랑하는 신형 케블러 방탄모라도 소총탄에게 정통으로 맞으면 관통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반대쪽까지 구멍을 내 놓고 관통 될 정도라면 일반적인 칼라시니코프의 M43이나 M74 탄약보다도 한 수 위라고 봐야 했다. 강화 철판 플레이트를 앞뒤에 삽입한 무게 수 십 킬로그램의 방탄복을 착용한 우리라도 안심할 수 없는 수준같았다.

 

  “조심해야겠는데, 맞으면 많이 아프겠어. 몸에 구멍 뚫릴 각오 해야겠는데.”

 

  “그런 건 각오하기 싫은데…….”

 

  “무슨 이야기들이야?”

 

  버스에서 나온 에드와 제인이 우리에게 물어본다. 다시 한번 더 설명을 해 주려고 했는데, 내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제인의 손에 왠 서류 가방이 들려 있던 것이다.

 

  “아, 이거? 중요한 물건이야.” 제인이 버스 후방의 험비 본넷에 가방을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납치 당한 녀석이 아주 중요한 인물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지.”

 

  제인이 개봉한 가방 안에는 여러가지 다이얼과 버튼, 전화기의 송수화기가 들어 있었다. 가방 한구석에는 접이식 위성 안테나가 가지런히 정리된 상태로 들어 있었다. 용도가 대충은 짐작이 간다.

 

  “일종의 통신 장비라는 것은 알겠는데 말이죠…….”

 

  같이 이 물건을 주의깊게 바라보던 매튜가 그 진지한 시선에 비해 너무나도 쉬운 감상을 늘어놓자, 제인이 더 심화된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보통 전화기가 아니야. 안테나만 꽂고 비화 코드만 제대로 입력해 두면, 지구 어디에서도 본토의 주요 정부기관과 암호화된 음성 통신과 전문 송수신이 가능한 물건이야.” 당신은 이런 걸 어디서 봤냐고 우리가 미처 묻기도 전에, “레바논에 있을 때 만난 회사원들이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어. 빨갱이들이 두고 간 게 천만 다행이네.” 라고 말하며 제인이 자신의 설명에 신빙성을 더해줬다.

 

  “그럼 이제 베를린 바깥으로 통신할 수 있는겁니까?”

 

  “그건 아니지. 빨갱이들의 재밍은 여전 하니까. 하지만 저놈들한테 넘어가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는 물건이야. 규정 상으로는 이 물건은 비상시에 최우선적으로 파기하게 되어 있는데… 경황이 없어서 그랬나. 이놈은 멀쩡한 상태야. 스페츠나즈 눈에 띄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아직 안심하긴 일러.” 에드가 입을 열었다.

 

  “이 놈들은, 아측 기관원이 행정상의 착오로 잘못 분류된 것 까지 파악하고 이 컨보이를 덮쳐서 인원을 빼돌려 갔어. 이 마당에…….” 그는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마티, 제시카… 그 외 다른 기관원들이나 R팀은 무사 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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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흑표 2018.06.09. 12:53

베를린 여단에 M-1A1 Abrams라도 배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저 혼자만의 생각인걸까요 ㅎㅅㅎ 

Profile image 22nd 2018.06.09. 13:08

실제 역사선에선 89년 연말인가 90년초 즈음에 M1A1 에이브럼스로 교체되며 부대 규모가 중대규모에서 대대규모로 확대되어 6기갑대대로 개편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되기 전에 전쟁이 터졌네요.

Profile image 흑표 2018.06.09. 18:37

베를린여단이 M-270 MLRS, M-1A1 Abrams 대대만 갖추고 있었어도 적과 교전할 만할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봅니다 ㅎ;

Profile image 22nd 2018.06.09. 18:50

근본적으로 피아간 병력차이가 너무 극명한데다 전선에서 한참 떨어진 적후방에서 포위당하고 시작하는거라 뭘 갖다놔도 결말은 뻔한데, 어떻게 해볼만하겠다는 생각을 하시는지 저는 이해할수가 없군요. 저기는 정말 전쟁이 터진다면 전멸이 예약되어있는 사지였어요. 

 

오히려 전 그 당시 배치돼있던 병력만으로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좁아터진 동네에 미군 기갑전력만 전차 1개중대(20여대)에 APC 72대, 영국군도 치프틴 전차중대로 증강된 기계화보병대대를 배치하고 있었고 프랑스군은 기갑연대(3개 중대로 편성) 하나에 VAB 장갑차로 기동하는 보병연대 하나를 배치시키고 있었습니다. 상징적인 효과 외엔 가치가 전무하다싶은 저 곳을 지키기 위해 서방측이 너무 많은것을 희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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