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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이맘때 우리는 뭘 하고 있었더라. 나는 무신경하게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다가 차고를 통해서 들어온 앨런과 제인이 한아름 안고 온 맥주병과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에 반색을 했다. 

 

  매튜와 조셉은 R팀의 인원들과 함께 애들처럼 반색하며 자리를 깔았고, 그 와중에 제인은 R팀의 팀장인 오스틴(Austin) 상사(MSG)를 만나자신의 운동 스케줄을 어느 시간 즈음에 잡아야 하나 조율을 하고 있었다.

 

  24시간 전에만 해도 오지게 한가했는데.

 

  “10분 안에 정리하고 여기를 떠난다. 10분이야!”

 

  사실 요란 법석을 떠는건 레인저 애들처럼 쓸데 없이 기합 들어간 해병대 녀석들이었다. 지들끼리 울라 울라 겟 섬 거리면서 여기 저기서 민감한 물건들을 부시고 태우고 폭파시키고 난장판을 피우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손들 덕분에 생각 외로 일이 편해진 터라 오히려 생각보다 여유롭게 짐을 꾸리고 있었다. 

 

  “에드!”

 

  코왈스키가 SATCOM 세트를 챙겨 와야 하는데 손이 부족하다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 일도 끝났겠다 옳타꾸나 따라 나선 나는 지하실로 군홧발을 성큼 옮기며 세탁실 옆의 조그만 구석방에서 여러 큼지막한 물건들을 케이스에 넣어 코왈스키와 함께 들것을 옮기듯 들고 계단으로 발걸음을 다시 옮기려던 차였다.

 

  “지금 뭐 하는거에요?”

 

  “아, 이 녀석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었어요. 본인 말로는 자기를 풀어달라는데.”

 

  “제기럴.  마티, 너무 심하게 팬거 아니에요?”

 

  누군지는 따로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눈빛이 아주 기분 나쁜 KGB 빨갱이 녀석. 소속이 소속이라 그런지 뻔뻔한 소리를 아무렇잖게 지껄이고 있었군 그래.

 

  “젠장, 이봐요 아저씨들. 고민하고 말 들어줄 거 있어요? 나한테 맡겨 주면 싸 놓은 짐에서 바디 백 하나만 꺼내 오면 끝이에요. 그게 싫으면 좀 귀찮더라도 베를린 밖으로 나갈 때 같이 데리고 가시던가.”

 

  “자네 좀 성질이 급한 것 같은데.” 면전에서 자기를 죽여버리자고 하는 삼십대 떡대가 영 마땅치 않았는지 당사자인 KGB의 푸틴 소령이 코왈스키 중사에게 입을 열었다. 러시아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세련되고 깔끔한 영어였다.

 

  “우린 아직 이 전쟁을 막을 수 있어. 너희들이 삽질 하는 바람에 그 과정이 많이 복잡해 지긴 했지만, 진상을 파악하고 있는 우리 같은 놈들 몇 명이 윗대가리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면 끝날 일이야. 나야 뭐, 사태가 수습되기도 전에 시베리아로 팔려가거나 루비앙카 지하실에서 바로 총살 당할지도 모르겠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지랄.”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코왈스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순간에는, 누구나 제 2외국어보다는 자신의 모국어가 튀어 나오기 마련이다. 뭐, 지금 이 자리에서 러시아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소령 동지, 미안하지만 그런 소리는 아무리 늦어도 삼십 분 전에는 했어야지. 당신이 뜸 들여놓고서 이미 전쟁이 터진 마당에 그딴 개수작에 놀아나 달라는거야? 미안하지만 미합중국 공무원들은 당신 생각만큼 무능할지는 몰라도 당신 생각만큼 멍청하지는 않아.”

 

  “상황 파악 못한 건 내가 아니라 여기 우크라이나 촌뜨기같으니 제대로 된 현 상황을 다시 한번 설명해주지. 지금 벌어지는 소동은 침공 작전에 앞선 소수 특작부대의 사전 준비 작업에 지나지 않아. 여기 단독으로 수행되는 작전 계획이라면 아직 무력 행동은 독일 내부에서까지, 아무리 크게 벌여봤자 서유럽을 넘지 않을 테고, 이 정도면 아직 서로가 대화로 오해를 풀어 나갈 이성은 남아 있을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영어로 번역하자면 ‘빌어먹을 러스키 씹새끼들’정도로 표현 가능할 이야기를 운운하며 말을 받아치려는 코왈스키를 제지시킨 것은 과자 공장 영업 사원 치고는 예절도 있고 말도 통하는 마티 녀석이었다.

 

  “흥분하지 말고 넌 좀 가만히 있어 봐. 그래서, 푸틴 소령. 당신은 지금 이 난리 굿 판을 수습할 능력이 된다는 거요?”

 

  “왜, 아메리끼 정보부 놈들도 설득 시킨 내가 우리 나라 장군들을 못 말릴 것 같소?  나 이래 뵈도 KGB 소령이야.”

 

  푸틴 소령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지금 시간이라면 아직 정규군의 전면적 침공단계까지는 네다섯 시간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다. 그동안 윗대가리 눈치 보느라 말을 못 한 거였지, 지금 같은 마당에선 장벽 넘을 때만 빼고 대중교통으로만 움직여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이쪽에서 먼저 통신 차단을 비롯한 적대 행동을 멈출 동안, 당신들이 위에다 사태의 진상을 알려 준다면 당신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나중에 오늘 있던 일로 책 한권만 써도 평생 놀고 먹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글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다들 최소한 돈 욕심이 나지는 않았다. 다들 그런 것 보다는 이번 사태를 전쟁까지 발전시키지 않고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간 듯 싶었다. 나도 그랬다. 이 녀석의 화술을 생각한다면, 자기네 장군들을 설득하는 것은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말 그대로 언제 도착하느냐의 시간 문제로 느껴졌다.

 

  “풀어 줘 버리죠.”

 

  “E…, 아니, 팀장님, 지금 제 정신이에요? 이 새끼는 지금 우리 얼굴까지 다 알아 봤다구요.” 

 

  “저 새끼는 목소리만 듣고도 여기 마티랑 제시카가 누구인지까지 알아 맞춘 놈인데, 그런 것은 이미 무의미하지 않겠어? 나나 너 같은 말단 작전 요원 신상까지는 알지도 못 하겠지만, 어차피 저 녀석이 짐작할 수 있는 건 니가 우크라이나 이민자 집안 출신이란 거 외엔 아무것도 없어. 이름은 커녕 우리 콜사인의 앞 글자도 몰라. 자료로 남겨 가려고 해도 이 녀석에겐 사진기 하나, 녹음기 하나도 없는 완전한 맨 몸이지. 우리 신상을 데이터화 할 수 있는 능력은 지금의 이 자식에겐 전혀 없어.”

 

  나는 여전히 뚱한 표정이지만 딱히 반박을 못 하는 코왈스키를 잠시 내버려 두고 바로 서 베를린 주재 미국 정보기관의 양대 수장인 마티와 제시카에게 이야기했다.

 

  “이 당돌한 빨갱이 놈 말이 맞아요.” 코왈스키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지만, 그래도 내 생각엔 변화가 없었다. “지금 진상을 파악한 것은 전 세계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나마도 통신이 막혀서 벙어리 신세 아닙니까? 전쟁을 막는 방법은 러시아인들이 알아서 총을 내려놓고 잠시 기다리게 하는 것 뿐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무슨 말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설령 훈장과 특진은 커녕 알아서 빨갱이 쥐새끼를 풀어줬다고 저나 먹물들 당신들이나 경력이 끝장 나더라도, 최소한 여기서 뒈지거나 핵폭탄 맞아 뒈지는 것 보단 나을 텐데요.”

 

  “내 생각도 팀장님과 같아요.” 평소에도 제법 예쁘다고 생각한 NSA의 그녀였지만, 지금 유독 예뻐 보이는 듯 했다. “나중에 짤리면 오늘 있던 일로 책이나 써서 연금 대신 인세 받아먹고 살아 보자구요. 막말로 이 자식 끌고 가 봤자 베를린에 소재 중인 돈키호테 피래미들 몇 명 신상밖에 우리가 알아 볼 게 있긴 하겠어요? 전쟁 나면 그딴 테러리스트는 본사 누구의 안중에도 없고 스페츠나즈 코만도가 더 신경 쓰일텐데.”

 

  “고마워요. 제시카. 나중에 짤리면 러시아로 오라구. 아까 한 말 농담 아니니까.”

 

  “대가리에 총알 박기 전에 같잖은 성희롱은 집어 치지 그래요?”

 

  일단은 푸틴이 없는 자리로 떠나, 부팀장인 앨런과 R팀의 팀장 부팀장, 그리고 정보분석관 제인까지 불러 와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결론은 의외로 금방 났다.

 

  “어쩐지, 너무 쉽게 잡았다 싶더라니까. 우리네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코왈스키의 의견은 소수자의 의견일 뿐이었고, 기관원들과 델타 양 팀 지휘부의 의견은 이 녀석을 풀어 주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받아라.”

 

  손발이 완전히 자유로워진 KGB의 볼로쟈에게 내키지 않는 선물을 하나 쥐어줬다.

 

  “실탄은 여기 따로 들었으니까 허튼 생각 하지 말고. 네 녀석 앞길을 가로막는 녀석들 에게만 써라. 기왕이면 미국인한테는 될 수 있는 한 쏘지 말고.” 

 

  오른손에는 어쩌다보니 안가에서 굴러다니던 적성화기인, 본토 물건보다 품질이 오히려 좋다는 동독제 마카로프 자동권총을 예쁘게 생긴 가죽제 숄더 홀스터 채로, 오른손으로는 러시아제 9밀리 권총탄이 50발 단위로 묶인 종이곽 하나를 든 채 그에게 내밀었다. 

 

  생각 외의 호의에 조금 당황한 듯 한 녀석은 범죄 수사물 영화에서 형사들이 차고 다닐 것 같은 숄더 홀스터를 차고 위에 상의를 걸친 다음, 실탄을 점퍼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마음을 가다듬은 듯  “이거보단 내가 갖고 있던 권총은 어때?” 내게 이렇게 말했으나,

 

  “그걸 찾고 싶으면 나중에 포트 브랙의 박물관으로 와 보시지.”

 

  녀석은 그러고 나서도 예비 탄창을 달라는 여유를 부렸고, 기어이 예비 탄창 두 개를 얻어낸 후  훌훌단신으로 그렇게 글려 들어온 집의 대문을 제 발로 걸어 나갔다. 조금은 허탈한 마지막 모습이었다.

 

  “보스!”

 

  CIA의 먹물 하나가 마티를 부른 것도 그 때였다. 지난 몇 일 간 우리가 벼르고 있던 녀석을 제 손으로 풀어준 데에서 느끼는 약간의 허탈함을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몇 명과 공유하고 있던 CIA의 서베를린 총 책임자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전화를 끊을 생각인데, 혹시 지금 연락할 곳 있으십니까?”

 

  마티가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 ‘나 전화 좀 쓸게.’무슨 생각이 난 듯 제시카가 먼저 말하자, CIA 블랙은 무선 전화기를 그녀에게 휙 던졌다. 조금 엉거주춤하게 전화기를 받은 그녀가 제일 먼저 전화를 건 곳은 베를린 오피스였다.

 

  “예, 저 NSA의 제시카입니다. 다른게 아니라, NEO를 시작해야 합니다. 시작 했다구요? 젠장, 이쪽에는 왜 말씀을 안 하셨… 예. 저희 전화가 조금 빨랐네요. 예. 예. 마티도 여기 있습니다. 예. 거기 없는 기관원은 다 여기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보내 주셨다구요? 감사합니다. 예.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습니다.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 그녀는 마티에게 말했다.

 

  “대피 계획이 시작 됐나봐.  통신 시설에 대한 사보타주 직전에 퇴출 헬기 지원 요청도 끝냈대. 곧 이쪽으로 차가 올 거 라는데.”

 

  “그 새끼, 몸은 겁나게 사리는구만. 차라리 다행인가. 이제 빨갱이들이 나나 네 목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마티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제시카는 생각보다 진지했다. “‘있을지도’가 아냐. 여기도 위험해. 일단 들어 가자.” 라고 말하자, 홀린 듯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KGB의 별난 소령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제시카! 전화 다 쓰셨어요?”

 

  “어. 아, 아니야. 한 번만 더.” 제시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길, 나야. 대피 훈련 받아 봤지? 아직? 제기랄. 쫄지 말고 거기서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긴장 하지 마. 알았지? 이따 보자.”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됐을 줄은 그들은 짐작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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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흑표 2018.06.02. 21:31

소설상의 베를린여단 편제가 궁금합니다. 

Profile image 22nd 2018.06.02. 21:57

현실의 89년도 편제와 같아요. 101공수의 502연대가 파견나와서 여단의 주력을 담당하고 있고, 전차 1개중대와 포병 1개포대, 그리고 헌병대 등 약간의 직할대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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