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회사원들은 자기들끼리 정보를 맞춰 보고 있느라 정신 없었다.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나는 매튜의 손에 벤저민 프랭클린 한 장을 쥐어주고 잠깐 방에 올라간다고 행선지를 밝히며 세탁실에서 나왔다. 어차피 내가 도움이 될 단계는 지났고, 추후 상황에 맞는 정보는 먹물들이 지금 정리중인 내용을 들으면 될 터였다.

 

 아직 교차 검증 단계이긴 하지만, 신빙성이 높은 믿기 싫은 정보를 제공해 준 KGB의 볼로쟈나, 그 정보의 신뢰도에 대한 1차 평가를 마친 회사원들이나 다들 정신이 없어서 이쪽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나는 기묘하게 생긴 KGB 녀석의 두상을 잠깐 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저기요… 이제 우리 모두 죽는 겁니까?”

 

 문을 지키고 있는 해병 두 녀석 중 하나는 오피스를 종종 지나다니며 나와 안면이 있던 녀석이었다. 녀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남들 귀에 안 들리게 조용히 내게 말을 걸어왔다. 두 시간 전의 나라면 ‘쫄지 마 새끼야.’하고 등짝을 탁 치고 나갔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확신에 찬 어조로 전쟁 가능성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여기서 들었던 이야기는 밖의 누구한테도 이야기 하지 마. 빨갱이들이 잡아 가더라도. 알았지?”

 

 귓가에 대고 살며시 속삭이는 이야기에 녀석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방탄모를 두 번 탁탁 두들기고 지하실 입구를 나와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섰다.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지만 창 밖은 마당의 캠프 파이어 탓에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젠 언뜻 무한궤도가 끼릭끼릭 굴러가는 소리도 들리는 것이 사람 마음을 한층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럴 때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인가.

 

 문서 파기 작업을 대신 해주던 CIA 직원들이 심문실에 내려가 본업에 집중하게 되면서, 해병들의 문서 파기 작업 진행 상황을 감독하고 종종 거들어 주고 있던 R팀 녀석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아래에서 뭐 쓸만한 이야기라도 나왔냐는 이야기를 내게 하고 있는 아직은 여유로운 인상의 그들이 보기엔 우거지상이 조금 섞여있을 내 얼굴 표정이 꽤 신경 쓰여 보일 터였다.

 

 “제군들, 빨리 짐 싸서 베를린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지금 준비 하고 있잖아. 아니, 전시 작계 준비하란 이야기야 지금?”

 

 “아마 미리 준비 해 두는 게 좋을 거야. 그놈의 < 작계 V >인지 뭔지 하는 게 실은 예방 공세를 기본 개념으로 깔아두는 방어 작전이었대.”

 

 “Holy shit.”

 

 “씨바, 여기 온 지 몇 일이나 지났다고.”

 

 이젠 알아서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는 틈을 타서 나는 다시 계단을 밟고 올라가 한 구석의 내 독방으로 몸을 옮겼다. 테러 조직들의 상관 관계도가 깔끔하게 정리된 화이트보드가 걸린 벽은 분홍색 벽지로 싸여 있어 묘한 위화감을 주었다.

 

 전화기가 내 손에 쥐어졌다. 누구에게 먼저 전화를 할까? 빨갱이 녀석이 세상 달관한 표정으로 이미 늦었다고 넋두리를 하던 것이 영 맘에 걸렸다.

 

 전화기를 잡을 때만 해도 멀쩡하던 손이 번호를 누르면서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전쟁이 두려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런 빅 스케일의 전면전은 나로서도 첫 경험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 따위는 지겹게 봤고, 일상이 작전이었다.

 

 내 손이 떨리기 시작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전화를 걸려고 하는 상대방 때문인 것 같았다. 오해 때문에, 거리감 때문에, 떨어져서 살아오며 사랑이 풍화되면서 헤어진 뒤로 전화 해 본 적이 없다가, 어제 처음으로 전화를 걸어봤던 그 녀석, 빨간 머리의 순진한 그 녀석.

 

 사귀는 여자애도 있다는 데 내가 무슨 주책인지 모르겠다. 막상 그 녀석이 전화를 받으면 무엇을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입이 열려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슴 한켠이 저려왔다.

 

 성의 없는 국제 전화 교환원의 늘어지는 응대가 사람 애간장을 더욱 타들어가게 만들었다. 이 씨발년이 왜 이렇게 말을 돌려서 하는 거야. 카드로 계산한다고 몇 번을 말해. 뚜우 - 뚜우 - 착신음이 이어진다. 숨이 멎는 것 같아. 지금 미국은 몇 시지? 일 할 시간인데 전화 받을 수 있을까?

 

 [ - 안녕하세요?……. ]

 

 “젠장, 안녕 나 제인이ㅇ…….”

 

 [ - …라이언 왓킨스의 전화기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까, 급하신 일 있으면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 삐 - ]

 

 쿵쾅거리던 심장이 감자기 멈춰서 심장마비라도 걸리는 줄 알았다. 왜 이럴까. 그동안 잘 잊고 살았는데. 다른 여자 만나고 있다는 녀석한테.

 

 “안녕, 나야… 제인, 제인 하코트.”

 

 일단은 가볍게 운을 떼었다. 입이 열려도 뭐라고 말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후우,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도 녹음 되었다.  그래, 일단 거짓말만 하지 말고, 진심을 이야기 해 보자. 무슨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나를 속이지 말고, 국가 안보와 기밀 유지에 위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거라면 될 거야.

 

 “만나는 사람도 있다는 데 자꾸 거북하게 전화해서 미안해. 난 그저… 전화를 한 이유가… 사실 좀 심란해서 전화 했어. 왠지 어쩌면… 이게 너와 할 수 있는 마지막 전화가 될 지도 모를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 일은 있어선 안되겠지만, 사람 일이란 것은 모르니까 그래.”

 

 도입부는 잘 넘긴 것 같아 다행이었다.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이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이렇게 가슴이 떨려온 적은 없던 것 같았다. 차라리 저쪽에서 지금 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하고 싶은 말이 더 잘 생각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서로 수화기를  붙잡고 이상한 오해가 쌓여서 싸우는 것 보다는 이 편이 혹시 모를 마지막 인사가 되더라도 깔끔할 것 같았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흠 나 지금 엄청 떨리는 거 아니? 차라리 네가 지금 듣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서 말 하기가 더 쉬운 것 같아. 어제도 통화해 봤지만… 알잖아. 우리 사이 너무 어색해 진 거. 예전엔 수화기 한번 잡으면 열 시간도 자신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싶네.”

 

 다시 한번 심호흡.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 속이 또렷해진다. 어느새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 시절, 어느 새 부터 친구가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던 그 시절 수화기를 잡던 열 여덟 살 소녀의 느낌으로,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무거운 이야기였다.

 

 “오늘 전화한 이유가 있어. 여기는 어제 말 한 대로 독일이 맞아. 베를린이야. 사실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태야. 뉴스 봤는지 모르겠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건 비교도 안 되게 심각해. 진짜야.”

 

 잠깐 말문이 막혔다. 무언가 속에서 올라오려는 것 같아서 막혔지만, 이내 감정을 가라 앉혔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기쁘고 아련하고 애틋하고 비장한 일인 줄은 몰랐다. 연애 하던 그 시절에도 몰랐다.  말문이 트였다.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너한테 처음 거짓말 한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어. 자랑은 아니지만, 사람도 많이 죽여 봤고, 실전이라고 할 일도 엄청 많았어. 사실 지금도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 근데… 니가 보고 싶어. 진짜야. 그 때 거짓말 할 수밖에 없던 게, 우리가 헤어질 수 밖에 없던 게, 그동안 잊고 지낼 수 있다고 믿었는데, 아닌 것 같아. 정말 보고 싶다.”

 

 잠깐 베게에 얼굴을 묻었다. 목이 메이는 것 같았지만 여기서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었다.

 

 “만나는 사람도 있는데 주책 떨어서 미안해. 다시 사귀자 뭐 이런 이야기는 절대 아니야.”

 

 거짓말.

 

 “그냥… 이번 파견이 끝나면, 꼭 미국으로 돌아 올 거야. 그럼 그때 다시 꼭 만나자. 십 년 전 처럼은 힘들어도, 십 오년 전처럼, 친구로 다시 한번 만나자. 아저씨 아주머니 뵌 지도 너무 오래됐어. 아버지는 가끔 독일 오셨을 때 만나 뵌 적은 있지만, 어머니 뵌 적도 너무 오래 됐어. 다 만날 거야. 아, 집에 가고 싶…….”

 

 [ < 딸깍 > - 제인? 젠장, 너 지금 어디야? 지금 무슨 일 있어? 목소리가 왜 그러는……. ]

 

 수화기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베이루트 뒷골목에서 처음으로 자살 폭탄 테러 진행 과정을 우연히 목격했을 때 만큼이나 놀랐다.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녹음해야 하나 살짝 고민하고 있었는데, 생각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하다 보니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는데,  이 괘씸한 녀석이. 그런데 기뻤다. 직접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게. 혼자만의 일방적인 주저리로 끝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씨발 새꺄, 왜 전화를 안 받는건데? 니 내가 그렇게 싫냐? 메시지 지우고 다시 녹음하려고 했단 말이야. 씨발…….”

 

 [ - 미안. 미안해. 수화기를 들을 용기가 나질 않았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

 

 “나는 뭐 생각 하고 전화 한 줄 아냐, 이 멍청아!”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전화기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내가 갑자기 너무 이상하게 굴어서 얘가 전화를 끊기라도 했나? 하지만 전화기에선 진짜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때, 불길한 예감이 들은 나는 오른손으로 눈을 훔치면서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컴퓨터의 전원에 손을 대려는 순간, 창 밖에서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폭음이 아니었다. 강렬한 폭발음, 파괴, 그리고 붕괴의 소리가 이리저리 뒤섞인 느낌이었다. 익숙한 소리였다. 베이루트에서, 폭탄 테러로 건물이 붕괴될 때, 심심찮게 들었던 소리였다.

 

 연속적으로 울리는 그런 익숙해지기 싫었던 소리들을 뒤이은 것은 충격이었다. 물리적인 충격이었다. 그다지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아마 폭심지 주변으로 추측되는 곳에 주차되어 있을 수 많은 차량들의 도난경보기들이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현대화된 도시의 불야성 속에서, 차량 도난경보기들이 잉잉거리는 눈살 지푸리는 소리들이 아련하게 공명하며 사람을 자유롭게 만드는 도시의 공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앞으로 있을 사태를 경고하는 사이렌처럼.  베이루트에선 경보기가 달린 차량을 찾기가 쉽지 않아 조금 이질적인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의 진원지에 생각이 미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나의 불길한 추측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장벽 너머, 장막 너머 자유 진영에 주둔 중인 미군, 정보기관과의 컴퓨터 전산망 역시 완전히 먹통이었다.

 

 “시발, 방금 들었어? 너 저게 무슨 소리인지 알지? 지금 뭔가 터져서 집 무너진 소리 난 거 맞지?”

 

 앨런이 내 방문을 벌컥 열고서, 조금 전부터 도시 외부와의 통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시 지하로 내려가 보니, 회사원들의 넋이 나가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자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어 보였다.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KGB 녀석의 기분 나쁜 눈동자가 내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내가 물어보았다. 아마 소리를 질렀을거다.  

 

 “지금 무슨 장난을 벌인 거야?”

 

 “내가 말했잖아. 이미 늦었다고.”

 

 기분 나쁜 담배 연기가 다시 지하실 공기에 가득 찼다.

 

 “스페츠나즈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 놈들이 시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 한 거지. 희망은 당신들 뿐이었는데.”

 

 조금 목이 탔는지 녀석은 자기 앞의 생수병으로 살짝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이제, 누군가는 벽을 넘어가야 해.”

 

 전쟁을 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벽을 넘어야 한다.

 

< 챕터 2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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