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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잠들어 버렸을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짐칸에 쳐 박아 둔 채로, 우리는 CIA에서 빌려온 승합차에 몸을 싣고서 다시 제 갈길을 향했다.

 

  이미 기절시켜 놓았지만 혹시 중간에 깨어나더라도 여기가 어딘지 유추할 수 없게끔 하기 위해 친절하게 눈구멍 안 뚫린 두건을 표적의 얼굴 위에 씌워놓은 뒤, 나는 표적 건너 옆자리에 몸을 부리고 있는 조셉에게 손을 척 내밀었다.

 

  “뭐냐?” 짙게 썬팅된 창밖을 내다보던 조셉이 고개도 안 돌리고 물어봤다.

 

  “그 손수건좀 주라.”

 

  “이거? 아니면 내꺼?” 그제야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 조셉이 물었다. 난 주저 없이 ‘이거’를 달라고 했다. 방금 빨갱이를 잠재운 그거 말이다.

 

  “피곤해 죽겠어. 나도 좀 잘래.”

 

  “음, 니가 잠들면 그 다음에 내가 뭘 할거같아?”

 

  “얼굴에 치약이라도 바를거냐?”

 

  “아니, 너랑 저 빨갱이놈의 옷을 갈아입히고 케이블타이를 손목에 채울 거야.”

 

  “미친 새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잠 잘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그만 짬이라도 나면 바로 고개를 어딘가에 쳐 박고 새우잠이라도 자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날밤 꼴딱 새고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지.

 

  탁한 차 내 공기가 졸음을 한층 강화시켜 주고 있었다. 창문을 썬팅해 놓은 데서 알 수 있듯 함부로 창문을 열고 다닐 수 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잘 보이지도 않는 앞 유리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앞에 뭐가 있는지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 내가 무심결에 고개를 다시 옆 창문으로 향하자, 눈에 새로운 것이 들어왔다. 입이 열렸다.

 

  “어라? 벌써 시내에 쫙 깔렸네.”

 

  골목길과 주택가를 나와 시내로 나오자,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험비와 2.5톤 트럭, 그리고 병사들을 볼 수 있었다. 운전석의 전자시계를 들여다보니 시간은 벌써 18시 40분을 조금 넘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거 같아.”

 

  승합차 후방에서 후방경계를 하고 있던 부팀장 앨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용케도 목소리를 들었는지,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데프콘?”이라고 반대쪽 끝, 운전석에서 에드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데프콘 말이야. 아까 데프콘 3 떨어진 게 11시였잖아, 그리고 5시간 만에 데프콘 2가 떨어졌어.”

 

  “2로 올릴 상황이었잖냐. 그놈의 빨갱이 참모회의 끝나기도 전부터 동독군의 움직임까지 이상해지고. 갑자기 체코에서도 소련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우리도 가만 있을 순 없지.”

 

  “아니 내 말은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앨런은 시선을 차량 후방에 고정시켜 둔 채로 계속 말을 이었다. “참 아귀가 잘 맞아 돌아간다 싶어서 말이지.”

 

  “그건 그래. 여기서 뭐하면 실시간으로 반대쪽에서 받아 치고, 점 점 점 3차대전이 목전으로 다가오는 느낌이야.” 운전대를 잡고 있던 에드가 계속 말했다. “그러고보니 벌써 데프콘 2야. 쿠바 미사일 위기때도 데프콘 2까지 간 건 공군 애들 뿐이었잖아.”

 

  “어제 밤에만 해도 아무 일도 없었는데.” 앨런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늘어지게 늦잠 자고 일어나서 대충 아침 먹고,” 조셉이 MP5K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키보드라도 두들기듯 움직이면서 입을 열었다. 어제 그맘때 내가 뭐 하고 있었더라? 집에 전화하고 있었나.

 

  “느긋하게 회의 가서 먹물들이랑 미팅하고,” 이번엔 제인이 피식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음, 다음에는 왠지 내 차례 같다.

 

  “이러다 진짜, 내일 이맘때 되기 전에 리포저 유닛들 여기로 불러오는 거 아니에요? 62년에도 이렇게 스피드하게 에스컬레이션이 진행되진 않았던 거 같은데.”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슬프구나.” 제인이 마운틴 듀 캔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내기 할까? 내일이 되기 전에 전쟁이 난다, 안 난다에 100달러씩.”

 

  “준위님은요?” 나한테 물어봤는데 내가 반응이 없으면 그건 매너가 아니다. 나는 어느족에 걸어야 하나 마음 속으로 약간의 저울질을 하면서 제인의 반응을 떠 보았다.

 

  “난 전쟁 안 난다에 100달러.” 그리고서 제인이 차 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늬들은 안 끼어들래?”

 

  “그런 걸로 내기를 하고 싶진 않았는데… 저도 안 난다에 걸게요.” 조셉이 자신의 희망인지 승부수인지 모를 그런걸 걸자, 분위기가 다들 묘하게 전쟁이 안 난다로 몰리는 것 같았다. 나는 왠지, 여기서 누구 한명은 전쟁이 난다에 돈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전쟁이 나더라도 돈 벌고 싶은거야?”

 

  “별 이유는 없고, 그래야 내기가 성립이 되잖아요. 다 한쪽에 돈 걸면 돈은 누구한테 받을 거에요.”

 

  “그래 뭐, 돈 버리고 싶으면 거기다 걸던지.” 제인은 그렇게 말하고선, 무거워진 실내 공기를 환기라도 시키듯 낙관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전쟁 안나. 우리가 넘어갈 생각 없고, 쟤들도 넘어올 생각 없다는데 전쟁이 왜 나겠냐? 나면 서로 속 쓰릴걸.”

 

  “그래. 니 말이 맞다. 우리가 밀가루 안 팔면 단체로 굶어 죽을 놈들이 미쳤다고 전쟁 걸겠냐.”

 

  그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사거리에서 검문소를 하나 만났다. 제인의 말로는 방금 위에 이야기가 되었으니 바로 통과가 될거라고 했지만, 아직 이들에게 관련 사항이 전파되지는 못했는지 잠깐 차를 세우고 기다려야 했다.

 

  나는 창 밖의 풍경을 하나 하나 머리 속에 심어두었다. 어차피 이 안에 결박당한 남자 하나가 있다는건 검문소의 땅개들도 확인해 둔 터라 창문을 내려도 상관 없었다. 탁탁한 차 내 공기가 상쾌해지는 것 만으로도 여기 멈춰 서 있을 가치가 있었다.

 

  “야, 쿠퍼, 저 놈 봐봐.”

 

  “뭐 재밌는 거라도 있어?”

 

  우리 대신 베를린에서 근무하게 될, 그리고 나와는 베를린 이전부터 여러번 안면을 익혀둔 사이였던 <노크> 페더슨(Pederson)중사가 검문소 한켠을 턱으로 가리켰다. 키가 족히 6.5피트는 될 것 같은 거구의 흑인 SAW사수가 똥 씹은 표정으로 툴툴대고 있었다.

 

  “저 새끼 말이야. 아까 잠깐 얘기 해 봤는데, 휴가를 14박 15일로 끊어놓고 빨갱이들이 저 지랄터서 하루만에 원대 복귀했대. 존나 불쌍하지 않냐?”

 

  “비행기 안 타서 다행이네. 기왕 이 지랄 날거면 비행기 표 값 날아가는 것 보단 낫지.”

 

  난 그렇게 말하며 창 밖으로 내밀었던 고개를 하늘로 올렸다. 너무나도 맑고 청명한 하늘이었다. 이 하늘 아래, 저렇게 휴가 복귀당한 세계 각국의 장병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조금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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