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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몇번 일해본 SAS쪽 사람들의 말로는, “이렇게 지랄맞게 총을 못 만드는것도 능력이다” 라던 영국군의 신형 제식소총을 들고 있는 위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량 대열이 잠시 멈추고, 최선두의 차량으로 버섯대가리를 연상시키는 동글동글한 방탄모를 쓴 위병 하나가 다가가는것이 언뜻 시야에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 한 것이 틀림 없다.

 

  차가 잠깐 멈춘 틈을 노려 난 동동 띄워놓은 얼음이 꽤 녹아 처음에 비해 많이 맹맹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입에 댔다. 옆자리에는 인원들중 계급이 제일 높아 선탑자가 된 제인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적어도 군바리들 중에서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그런 노래였다.

 

  “제인, 궁금한게 있는데요.”

 

  그런 제인의 흥을 깨듯 누군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 들어보니 쿠퍼 중사다. 하긴, 이런 식으로 제인에게 치고 들어갈 녀석은 걔 밖에 없다.

 

  “이번엔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군대에서 썩기엔 너무 아까운 거 같은데, 왜 군대엘 온거에요?”

 

  “평범한 새끼는 군대에 가지 않는 법이니까.”

 

  노래가 노래인지라 이 녀석 혼자 머리 속으로 아슬아슬한 웨딩 드레스를 입은 제인이 무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구는 상상이라도 한 것 같았다. 저런 질문을 한 두 번 들어 본 것도 아닌지, 대답은 즉각 튀어 나왔다. 에휴, 노래 좋다. Like a Virgin, bla bla bla.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장소는 영국군 섹터의 알렉산더 배럭(Alexander Barracks) 이었다. 멈춰있던 대열이 다시 움직이자, 나도 중립에 놨던 기어를 1단에 놓고 서서히 서행했다. 바리케이드를 피해 몇 번 지그재그로 움직여 영내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분주한 영국인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저거 봐.”

 

  “별들 납셨구만.”

 

  영국군 장군 계급장에는 별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은 뭐 대충 넘어가도록 하자. 예쁘게 생긴  캐피 군모를 쓴 사람들도 몇몇 보이는 것으로 볼 때 프랑스쪽 사람들도 와 있는 듯 했다. 가장 평퍼짐하고 무난해보이는 미군도 있다. 그들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이미 다들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베를린 오피스에서 같이 온 험비 안에 타 있던 헌병 녀석에게 잠깐 방탄차의 주차를 맞기고 다른 검정 세단에서 내린 제시카와 마티의 일행에 달라 붙었다. 이제부터 이 곳에 있는 미국측 정부기관과 군의 VIP에 대한 1선 경호를 헌병쪽 인원들과 함께 책임지게 된다.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다들 일반적인 경호 업무 때처럼 사복에 장구류 만 착용한 수준이 아니라 기본적인 전투 복장으로 왔는데, 검은 세단에서 우르르 내리는 위장복 차림의 요원들은 어색한 모양인지 여기저기서 우리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듯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역시 계단을 성큼 성큼 밟고 올라가 본관 안으로 몸을 옮겼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있는 듯, 우리 쪽 인원들의 무장을 해제하려 드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친한 척 다가오는 녀석들이 있었다.

 

  “하여튼 식민지 민병대놈들이 돈은 무지하게 많아요. 총에 달린거 합치면 다 얼마냐?”

 

  깔끔하게 양복을 빼 입었지만 손에는 그들이 ‘아말라이트’라고 부르는 AR15과 MP5가 들려있는 영국인 무리중 한명이 매튜에게 말했다. SAS의 베를린 파견팀장인 맥마흔(McMahon) 상사로, 매튜와는 과거 그의 영국 파견시절에 벨파스트 뒷골목에서 같이 뛰어 본 사이라고 한다. 둘은 어느새 공수부대 옷차림으로 IRA 저격수가 숨어있는 곳에서 깔짝대며 목숨을 걸고 낚시를 하던 시절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경호 업무를 하러 왔다는 녀석들이 이렇게 딴 짓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지금 높으신 양반들은 다들 회의실에 들어 갔기 때문이다.워낙 민감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장소라서 회의장 안에는 직접 참석자 외엔 최소 인원만 들어 갈 수 있었다. 혹시나 모를 정보에 대한 공유를 위해 꼽사리 따라온 제인 조차도 안에서 부르기 전 까지는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지금 회의실에 들어와 있는 델타 요원은 오직 팀장인 나 뿐이다.

 

  회의장 안은 소소한 느낌이었다. 각국의 군 지휘부 요원들이 모인 나름 국제적인 회의라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 나오는 펜타곤 지하상황실 같은 모습은 아니어도 제법 웅장한 모양새를 기대했지만, 내 주관적인 기준이 너무 높았는지 생각보다는 소소한 느낌의 인테리어였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고, 영국놈들 사는 곳 아니랄까봐 제법 고풍스런 느낌의 벽 장식이며 원탁과 의자들이 그럭저럭 분위기는 살려 주고 있는 듯 했다.

 

  “결론은, 녀석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군요.”

 

  회의 과정의 서론이라 할만한 이야기들이 대충 끝난 뒤, 그냥 저냥 특색없는 느낌의 갈색 정복을 입고 있는 프랑스군 쪽 대표가 와인에 혀를 담군 듯 한 억양의 영어로 혀를 차며 그렇게 말했다. 미군이나 영국군 소속 참석자들 역시 비슷한 눈치였다. 독일 측 참석자는 경찰서장 뿐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서베를린에는 독일군이 없기 때문이다.

 

  심각한 상황인줄은 알지만 군사적인 배경 지식은 전무한 베를린 경찰서장은 속으로는 뭔 이야기를 주고 받는지 잘 이해가 안 돼 답답할 터였다. 그래도 이런 이른 시간에 바로 달려와서, 알아먹지 못할 이야기가 외국어로 오고 가도 졸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워 듣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무능한 인간은 아닌 듯 싶었다.

 

  “최근 몇 년 사이 GSFG에 대해 쓸만한 정보를 많이 뽑아내고 있는 CIA쪽의 정보 제공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리지만, 결국 결정적인 정보는 하나도 없는 셈이군요. 다른 분들은 뭐 특별히 말씀하실 것 없는 겁니까?”

 

  영국 쪽 인원이 할 말이 있다면 아마 지금 저렇게 다른 참석자들에게 물어보고 있지도 않을거다. 프랑스쪽 기관원도 우리가 파악한 레벨 이상으로는 아는 것이 없는 듯 하고. 

 

  “저는 기본적으로 군사적인 부분에선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일단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을 요약 해 보았습니다. 모스크바 시각 00시즈음에 쿠데타로 추정되는 무력 충돌 사태가 벌어졌고, 이에 따라 아군은 일단 적국의 정치적 급변 사태에 대한 대응 조치로서 비상 경계령을 하달했으나, 언론 통제에 실패하는 바람에 정보가 새어 나갔고, 주독소련군이 아군의 이런 움직임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 맞지요?”

 

 살집 있는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베를린 경찰서장이 그렇게 말을 하고서는 한구석에 있던 조그만 패트병에 입을 가져다 댔다.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입안에 약간 남아있을 담배 연기를 목구멍 속으로 넘겨버린 그는 다시 굵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초 영국인들이 모스크바에서 보내 준 첩보에 의하면, 쿠데타는 군 내부 강경파의 소행으로 의심된다는 이야기도 있었구요. 최근 소련 지도부의 유화책에 반발하는 군 내 일각이 국지적인 도발이나 전쟁을 의도하는 것 아닐까요?” 

 

  조심스러운 독일측의 유일한 참석자이자 군사적 문외한인 경찰서장의 조심스런 의견 개진에 대해 정중하게 전쟁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마 선제 공격의 의도는 없으리라 추측됩니다. 일단 우리의 병력 이동이 있기 전까지는 저쪽의 군사적인 조치는 전무했었고, 결정적으로 전시 동원계획의 실행 징후가 전혀 없습니다. 동원 없이 군사적 도발이나 국지전, 전면전을 감행하겠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무조건 필패니까요. 안 하느니만 못 한 짓입니다.”

 

  “그럼 놈들이 지금 무엇 때문에 움직이고 있다는 겁니까?”

 

  “그거야 간단하죠. 우리가 움직였으니 그에 대응해서 움직인 것 아니겠습니까?”

 

  베를린 경찰서장의 질문에 CIA의 마티가 그렇게 운을 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주독소련군 녀석들은 방어의 일환으로 ‘작계 V안’이란 작전의 실행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소스는 주독 소련군의 동향을 보고한 라인과 같습니다.”

 

  “그럼, 그 ‘작계 V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소?”

 

  “예. ‘작계 V안’은, 기본적으로 방어 작전입니다.”

 

  “공세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소련군이 우리와의 무력 충돌에 대비해 상정한 여러 시나리오들 중 하나인, 재래식 국지 도발이나 제한전 상황을 상정한 방어 작전 계획입니다. 갑작스런 기습적 국지전 상황에 처했을 때, 본토에서 증원이 오기 전에 GSFG같은 일선 군 사령부가 자체 역량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이끌어내는 방어 작전, 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여기 까지가 전부입니다.”

 

  “그럼 결국 말만 뻔지르르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거나 다름 없지 않소.”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죠. V 작전의 실행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최소한 먼저 넘어올 생각은 없다는 것이 확인 되었으니까요.”

 

  “저쪽이 먼저 넘어오지는 않더라도 말입니다.”

 

  아예 전투복 차림으로 회의장에 들어온 우리 미군쪽 참석자, 베를린 여단장 마쉬(Marsh) 장군이 입을 다시 열었다.

 

  “최소한 저들의 작전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계속 회의실 한 귀퉁이의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으려니 몸이 찌뿌둥해서 앉은 자리에서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기지개를 쭉 펴는 가운데, 그의 발언이 계속되고 있었다.

 

  “저들이 언제까지고 저렇게 죽치고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우리쪽에서 지금 움직임이 확인되기 시작한 러시안 스팀롤러에 대해 먼저 선빵을 갈기라는 명령이 날아 올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먼저 치고 들어갈 경우를 생각 해서라도, 저쪽의 작계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쪽 정보력이 이거밖에 안 되는 겁니까?”

 

  잠깐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더니 3국의 기관원들 중 대표라도 되는 양 영국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V 작계에 대한 정보는 저희들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습니다. 다만 작계의 내용이 계속 동일한 것이 아니라 문제이지요. 현 작계는 86년판 개정판인데, 우리가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는 작계는 그 이전의 84년판 입니다. 내용 자체는 동독 영내에서 지연전을 수행하면서 본국의 증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그런 흔한 내용이었구요.”

 

  “그런 불확실한 이야기에 매달릴 수는 없습니다.”

 

  마쉬 장군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정보망으로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면, 뭐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는 없는 겁니까? 정보망 구축이 그렇게 단시일 내에 이뤄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알아볼 시도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이 말입니다.”

 

  잠시간의 침묵 후, 다시 MI-6쪽 아저씨가 무어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우리의 마티가 뒤늦게 무언가 생각이라도 났는지 마이크 전원을 먼저 켜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례함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띠는 영국 쪽 영감님을 뒤로 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했는데, 그녀석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와도 연관이 조금은 되어 있는 이야기였다. 이런 걸 나비 효과라고 해도 될까. 

 

  “베를린 현지 시각 5월 7일경, 아군의 특수 작전 부대가 대테러작전의 일환으로 바더 - 마인호프단의 중견 간부를 하나 체포했습니다. 현재 CIA의 안가에 있는데, 이 녀석이 서베를린 안에 침투해있는 KGB의 고정 간첩의 소재지를 알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난 몇 달 간 우리를 애먹였던 CIA 고문기술자들의 새로운 장난감, 닥스훈트의 이야기를 들은 별들의 표정이 묘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빨갱이 테러리스트를 어르고 달래서, KGB 녀석 하나를 잡아다가 뭐 아는 거라도 있는지 추가적으로 조사를 해 보시겠다?”

 

  “예. 그렇게 잡은 러스키가 설령 V작계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도, 최소한 우리 정보망의 가지 하나를 더 뻗어둘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가를 물고 있던 입에서 굵은 시가가 나오고, 담배 연기가 훅 바깥으로 나오고, 재떨이에 대고 담뱃재가 툭툭 떨어진다. 반 쯤 남은 시가를 다시 입에 물기 전, 마쉬 장군이 마티를 쳐다보았다.

 

  “흥미롭군요. 그 녀석 지금 어디 있죠?”

 

  “저희 안가의 심문실에 있습니다.”

 

  “12시간 안에 그 망할 빨갱이 자식 소재지 알아봐 주세요. 최대한 빨리.”

 

  “말씀하신 대로 전해두겠습니다.”

 

  베를린 경찰서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보며 담뱃불을 붙이는 것이 보였다. 그럴만도 하다. 알아 볼것만 대충 조사하고 돌려 받기로 되어 있던 녀석인데, 살아서 나오긴 글렀으니 말이다.

 

  그동안 혁명의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시민들을 죽이고 다닌 벌을 확실하게 받게 생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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