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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참 요원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심심하면 몸을 실었던 Mi-8 수송헬기 안의 그들은 언제부턴가 지금 자신들이 가고 있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이는 여러 번 이 헬기를 타 본적은 있지만 그것은 훈련 경험이 전부인 일부 신참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금새 이야깃감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이야기가 삼천포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이야깃감이 떨어지기 전, 이들은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보고 좀 편하게 집에 가라고 여기다 태워준 건 아닐 건데 말이야.”
 
  RPK 기관총의 총구를 기체 바닥에 두고, 개머리판이 기체 상부를 향하게 한 채로 두 다리 사이에 낑궈놓고서 한 손으로는 위장무늬가 프린트된 전투모를 벗어 휙휙 돌리고 있던, 적당히 짬을 먹은 기관총수가 그렇게 던지듯 뇌까렸다.
 
  “설마 위에서 또 뭐 시키는 건 아니겠죠?
 
  “모르지, 뭐. 이거 타고 바로 국경 넘어서 NGP에 쩜프하라고 시킬지.”
 
  “지금 낙하산 없잖슴까.”
 
  “우리 조국이 그런 세세한 데 까지 배려 해 주더냐.”
 
  마치 고도를 기다리면서 주고 받을 법한 대화들의 와중에서, 독일어랑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군사 대학 출신의 중위 짬찌 녀석 하나는 혹시 어디 가서 말 못할 비밀 공작이라도 하러 가는 거 아니냐는 공상을 했고, 다른 인원들은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대화 중에 나왔던 수많은 개소리들 중 하나로 치부했다. 그리고 대화는 자연스레 삼천포를 타고 다른 주제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2주간의 야외 종합 전술 훈련의 마지막 날, 불침번만 냅두고 조용히 자고 있던 그들은 그렇게 갑자기 끌려와서, 아침밥도 못 챙겨 먹고 독일 동부 모처의 헬기장에 내려 앉았다. 내려앉았을 때, 그들은 매우 살기등등하고 표정이 일그러진 것이, 매우 흉폭한 인상을 띠고 있었다.
 
  이유는 별 것 아니었다. 밥을 제때 못 먹이면 폭동이나 폭동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게 인류 역사의 법칙이다. 이들은 여차하면 전투 식량 이라도 까 먹을 기세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기체 내 취식 금지라서가 아니라, 훈련 기간 동안 유통기한이 한 달 남은 깡통들을 죄다 먹어 치운 지 오래 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먹을 것이 수중에 전혀 없었다.
 
  먼 미래에 홍콩에서 나오게 될 영화, ‘중경삼림’에서 처럼 유통기한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게걸스레 까 먹는 짓은 지금의 이들이 보기엔 배가 부른 놈들이나 하는 뻘짓인 셈이다. 물론 이들은 영화 속의 금성무 보다는 훨씬 상식인이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통기한 통조림을 던져 준다면 좋다고 받아 먹기보다는 그것을 던져준 인간의 머리통을 통조림으로 찍어버릴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자네들이 792중대?”
 
  “3충격군 예하 독립 792특수목적중대입니다.”
 
  도착 해 보니, 여기에는 그들 말고도 여러 특전팀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여기에 상주하는 인원들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방금 밥도 못 먹고 헬기를 타고 온 그들과 같은 처지였다. 시간대를 보아 밥 못 먹은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KGB 국경수비대의 위장복을 입은 소령을 따라 우랄 트럭에 다시 몸을 싣고 조금 달려, 한 구석의 커다란 격납고 안으로 들어가 내렸다. 급조된 숙소의 느낌이었다. 일류신 수송기가 들어가도 될 것 같은 넓직한 격납고 안 한쪽에는 위에 매트리스까지 올라간 간이 침대들이 늘어 서 있었고, 한 구석에는 브리핑을 위한 차트가 미술용 이젤같은데에 올라가 있었다. 그들 인원수보다 조금 더 많게 준비된 접이식 의자들도 보였다.
 
  “아, 시발, 밥은 쳐 멕이면서 일을 시키던가.”
 
  이것이 자신의 공상이 어느 정도는 적중했음을 직감한 그녀의 첫 반응이었다.
 
  “제군들, 상황이 심각하다.”
 
  그들을 끌고 왔던 소령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고, 대신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몇 명의 사람들 중 최선임자인 다른 소령이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들 앞에서 그렇게 운을 떼었다. 심각한 상황이라지만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이 식판을 하나씩 들고 식사를 우적거리고 있는 꼴을 본다면 브리핑 하는 입장에선 많이 맥이 빠질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중대원들에게 기꺼이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누군가는 생각 없이 밥만 쳐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정의 특수 교육을 이수한 그들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요구 사항 조차 받아질 정도로, 자신들이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 이라는데 생각이 미치고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모여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지하고 심각했다. 숟가락을 닥닥 긁는 소리가 묘한 위화감을 주고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그들이 늘어놓는 밥 얹히는 소리는 요약하자면 이런 소리였다. 지난 밤사이, 갑자기 나토 놈들이 일제히 예하 부대를 전진 배치 시키고 있는 상황이라, 군사적 경계 태세를 보다 강화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수 많은 특전팀들이 전시 1차 집결지인 이 곳으로 모이게 된 것이었다. 매년 리포저 훈련때마다 있던 일이었지만, 에이블 아처때보다도 갑작스러운 병력 이동이라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식사 겸 브리핑을 마치고, 각 팀이 자기들끼리 흩어져서 탄약과 장비들을 수령하고 군장 검사를 하는 일련의 작업 중에 있었던 일이었다.
 
  “대위?”
 
  “예, 소령 동지.”
 
  “동무의 작전팀의 전시 작계는 예비 팀이 수행하게 될 것이다. 아직 애들 짐 안 풀었지? 팀원들 데리고 따라오도록.”
 
  그리고 다른 건물로 다시 UAZ 두 대에 나눠 타게 되었다. 대위는 중대장인 소령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고, 팀원들은 다른 중대원과 인사를 주고 받으며 그렇게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이 순간 이후, 다른 중대원들은 그들을 영원히 볼 수 없었다.
 
  장소에 도착한 그들은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진짜 프로들 투성이였다. 계급장이나 일체의 표식이 전부 제거된 KGB 국경수비대의 전투복에, 몇몇은 티타늄 방탄헬멧을 쓰고 있었다. 모두들 개인화기로 권총을 하나 씩 더 가지고 있었다. KGB니 GRU니 하는 녀석들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 내어 준 작계는 많이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자네들의 목적은, 이 남자를 확보해서 모스크바로 데려갈 KGB 특전팀에게 인계하는 것이다.”
 
  KGB쪽 인원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보여준, 적당히 살찌고, 얼굴엔 잡티가 좀 낀 갈색 머리의 안경잽이 사내의 사진을 신통치 않은 얼굴로 잠깐 훓어 보던, 밥이나 먹이고 일을 시키라고 툴툴대던 소피야 ‘소냐’ 페트렌카(София 'Соня' Петренка) 중위(Лейтенант)가 먼저 입을 열었다.
 
  “표적의 신상명세는 어떻게 됩니까?”
 
  “이름은 레너드 길버트(Leonard Gilberts), 올해 나이 25세, 키는 176에 체중은 86킬로그램, 머리 색깔이랑 눈동자 색, 피부색은 컬러 사진이니까 저거 보고 해결하고, 서베를린 주재 미 국무부 베를린 오피스에서 근무하고 있지. 표면적으로 그의 직함을 말단 행정공무원이지만, 그의 실제 직함은 NSA의 정보분석관이야.”
 
  뿔테 안경을 낀 비만 환자의 얼굴을 영 한심한 느낌으로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를 뒤로 하고 부팀장인 상위가 다른 질문을 이었다.
 
  “정보분석관이라고 하기엔 지나친 햇병아리 같은데요.”
 
  “저래 보여도 하버드에서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사내 근무 평가 자료는 아쉽게도 빼올 수 없었지만 정황을 보면 그럭저럭 일 잘 하는 녀석이라더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계급조차 알 수 없는 브리핑을 진행하는 사내가 어깨를 살짝 으쓱 하고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가려는데, 아까 전의 그 중위가 다시 질문을 하였다.
 
  “동지, 이런 일은… 우리 같은 녀석들에겐 너무 과분한 임무같습니다?”
 
  말이 끊기는 바람에 살짝 기분이 언짢아진 그는 질문에 다시 응대했다. 귀여우니까 봐준다. 사지로 들어갈 애들이니까 봐준다. 뭐가 더 큰 이유였을까, 당사자도 모른다.
 
  “…우리도 어지간해선 동무들에게 맏기고 싶진 않았지.”
 
  “솔직하시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우리가 이런 녀석을 맡게 된 이유를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대략 세 시간 뒤, 팀원들은 새로 수령한 전투용 물자들의 내역과 장비 상태를 바쁘게 체크했다. 이제 그들은 얼떨결에 최고 등급의 비밀 공작임무를 수행하게 될 판이었다. 그를 위해서,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기 직전까지, 보다 안정적으로 해당 지역에 대기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팀장님. 요청하신 물건 수령하고 왔습니다.”
 
  2월에 막 전입 온 막내가 적당히 밥 되는 의무 담당이랑 같이 옷가방들을 낑낑대며 가져왔다. 그것을 테이블 위에 풀어놓았다. 적당히 무난한 피복들. 하지만 여기서 입고 다니면 너무나도 티가 나는 그런 복장들이었다.
 
  “시가전용 위장복으론 이게 딱이지.”
 
  “근데 운동화 봐라. 우리가 칸다하르에서 쓰던 거 그대로잖아.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냐?”
 
  “아무튼 갈아 신어. 장화보단 낫겠지.”
 
  “신형 전투화보다 가볍기도 하고요.”
 
  팀장이 청구해서 지원받은 ‘시가전용 위장복’이란 다름아닌 민간용 사복이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인민들 사이에서도 지나치게 튀지 않는 무난한 느낌의 사복을 팀원들 신체 치수를 첨부하여 구두로 청구를 넣었는데, 삼십 분도 안 돼서 물건이 도착했다.
 
  팀장이 신청한 물건은 이것 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나름 머리를 쥐어짜서 필요하다 싶은 물건들을 신청하면, 뭐든지 다 들어 주었다. 물건을 신청하자마자 바로 지원해 준다니, 자신들이 수행하게 될 작전이 보통이 아님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그들이 새로 부여 받은 임무는, 평소 자신들이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던 지역에서의 작전이었다. 그들이 전시 작계는 원래대로라면, 후방의 어느 탄약고를 다른 특전팀 두개와 연합해서 타격하는 흔하고 평범한 임무였다.
 
  중부유럽의 삼림이나 힌두쿠시 산맥의 돌무더기같은 야지에서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지만, 콘크리트 정글에서는 완전 캄캄절벽인 이들이 이런 고가치표적 확보작전에 투입되게 된 경위는 꽤나 한심했다.
 
  “표적이 둘로 늘었기 때문이다.”
 
  “네?”
 
  충분한 부연 설명 없이 다짜고짜 말을 시작하는 스타일에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며, 보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려 할 때, 그가 먼저 선수를 치고 후속 설명에 들어갔다.
 
  “지금 자네들이 담당하게 된 녀석은 신참이다. 사실 원래 서베를린에 배치된 NSA 정보 분석관은 바로 이 여자야.”
 
  “흠. 반반한데요. 이 여자 잡으러 가면 안됩니까.”
 
  “이름은 저래도 남유럽계지. 흑발이 매력적이야. 아무튼. 원래는 저 여자만 잡으면 됐고, 저 여자를 잡기 위한 전담 팀이 따로 있었지. 근데, 2주 전에, 저 여자의 역할을 대신할 새로운 담당관이 전입 왔어. 한 달 정도 인수인계를 받은 뒤 여자는 본국으로 가고, 남자만 남을 예정인데, 문제는 이 남자는 아직 공식 신분이 일반 직원이라 전시 상황이 되면 이 여자랑 떨어져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단 말이야.”
 
  “에이, 설마요.”
 
  “아냐. 가능성은 충분해. 쟤들도 본질적으론 공무원에 군인들이니까. 아무튼,”
 
  여기서 브리핑을 하던 군인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운 군복 차림의 남자는 미리 종이컵에 따라 두었던 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한 달 동안, 저 후임자를 잡으러 갈 임시 팀이 필요했어. 우리 애들은 모두 바쁘고, 그래서 자네 중대 아래의 특전팀 하나를 찍어다가 서류에 이름만 올려 뒀지. 그리고 비상이 걸린거고말야.”
 
  “뭔가 행정이 졸속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입니다, 동지.”
 
  “말이 찍은거지, 그래도 나름 검토 해 보고 골랐던거네. 사전 통보가 없었던 점은 이 자리를 빌어 양해를 구하도록 하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연유로 이런 최고 등급 비밀 공작에 투입되다니. 군대 꼴 개판이라는 생각이 지금 장비들을 점검하는 팀장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전혀 새로운 환경, 전혀 새로운 작계, 저 자식은 나름 골랐다고 설명했지만, 팀장이 보기엔 정말 대충 땜빵 하려고 찍어서 올린 게 맞는 것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이다. 작계까지 그들이 짜야 했으니까.
 
  “뭐? 작계가 없다고?”
 
  팀원들 모두가 벙 찐 목소리로 입을 모아 말했다. 결국 KGB 작전팀의 선임자의 납치 계획을 참조하기로 했다.
 
  KGB 작전팀의 계획은, 대피를 위해 기관원들을 전용 컨보이에 옮겨 싣고 빠져 나왔을 때, 그 컨보이를 적당한 기만 작전을 써서 덮친다는 계획이었다. 대사관을 공격한다는 것은 애초에 염두에도 안 두고 있었다. 그들보다 훨씬 인원도 많고, 장비도 좋고, 훈련 상태 역시 월등한 KGB 녀석들이 포기한 그곳을 고작 아홉명의 ‘일반 특수부대원’들이 공격 한다는 건 몽상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결국 그들도 컨보이를 기습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도 녀석들의 길을 막고 덮쳐야 해. 차량 추격전은 아무도 안 배웠잖아.”
 
  “하지만 우린 검문소를 세우기에는 인력이 너무 없습니다. 영어 할 줄 아는 것도 팀장님이랑 소냐 둘 뿐이고.”
 
  “꼭 그렇게 얌전하게 길을 막을 필요는 없어. 우리가 실제 작전을 하게 될 때면 이미 전면전이 기정 사실이라는 이야기니까.”
 
  “그럼 길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요?”
 
  팀장에게 다행인 점이라면, KGB 녀석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대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준비한 로드 블럭 역시 그가 요청하자 마자 계획을 짜는 자리에 같이 있던 KGB 요원의 신속한 업무 연락을 거쳐 슈타지에 직통으로 꽃혀서, 바로 그들이 원하던 차량과 운전수가 확보되었다. 그들이 필요한 만큼은 아니지만.
 
  “72시간 내에 두 대는 힘들답니다. 시내에 확보한 해당 차종이 하나밖에 없대요.”
 
  “어쩔 수 없지. 그럼 임시 계획으로 72시간 안에 임무를 수행하게 될 시 로드 블럭은 컨보이 전방에만 전개 하자구. 후방은 팀 일반 기동 수단인 미니버스로 차단한다.”
 
  “그렇게 하면 후방은 옆 차선이 남습니다.”
 
  “사람으로 막아.”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다음 문제는 로드 블럭을 까는 타이밍이었다.
 
  “누군가 차량 유도를 해야 돼. 한 명은 밖에 나와 있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외국어 구사 가능자는 두 명. 그나마 한 명은 팀장에다, 팀장은 영어는 몰라도 독일어는 어설펐다. 먼저 소냐가 손을 들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거기서도 바지로 그런 거 입으면 남자들이 추근댈거야. 대화하다 티 나지 않게 처신 잘 해. 잠간만 다른 바지를 입고 있던가.”
 
  평소 소냐가 운동복으로 즐겨 입는 스패츠 차림에 대해 가볍게 농담하며 심각한 분위기를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고 팀장이 농을 던지자, 그녀는 피식 웃고는 바로 받아쳤다.
 
  “말로 하기 전에 무릎으로 거시기를 찍어버려야죠. 바디 랭귀지는 만국 공통 아닙니까. 좌파든 우파든 좆은 가운데 달렸습니다.”
 
  “그래, 그래야 우리 소냐답지.”
 
  모두들 실실 히죽히죽. 팀장이 농을 던진 의도는 제대로 그 효과를 보았다. 스페츠나즈 선발 과정에서 전시 고문에 대한 대비랍시고 추근거리던 교관 하나를 진짜로 고자로 만들어버린 그녀 다운 반응이었다. 스페츠나즈 훈련 교관을 고자로 만든 여자라면, 거리의 양아치 한둘도 충분히 고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폭행죄로 잡아갈 경찰 걱정도 안 해도 된다.
 
  “그럼 이건 우리 고자 제조기에게 필요할 것 같구만.”
 
  통신 담당은 그렇게 말하면서 수령해온 물품들이 담긴 가방들이 잔뜩 실린 수레에서 무언가를 잠시 뒤적거리더니, 물건을 꺼내 주었다. 박스도 뜯지 않은 일본제 휴대용 무전기 세트와 성대 마이크였다.
 
  “이걸로 신호를 주면, 바로 도로를 차단하는거지.”
 
  무전기 박스를 즉석에서 뜯어 내용물만 챙겨서 청테이프로 묶고, 본체는 따로 챙겼다. 즉석에서 주파수를 맞추고, 시범적으로 마이크를 착용하고 교신을 했다. 혼자 웅얼거리는 소리까지 상대방이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런 건 전차병들이 쓰는 거 밖에 못 봤었는데. 왜 우리가 쓸 생각을 못 했지? 편하긴 편하네.”
 
  그런 식으로, 완전 무계획 상태에서 시작한 그들은 어느새, 그럴싸한 전시 작계는 물론 몇 개의 예비 계획까지 완성하였고, KGB는 그런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 일주일 전 쯤에 이들에게 미리 통보를 해 줬더라면, 예행 연습까지도 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라면, 이제 이들은 곧 이동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침낭도 빼고, 야전삽도 빼, 도시에서 필요 없는 것들은 다 빼. 그 자리에는 대신 탄약과 시가전용 피복을 채운다. 0930시까지 군장 검사 마치고, 버스로 이동한다!”
 
  그들의 새로운 임무는 그 특성상 다른 팀들보다 훨씬 일찍, 사전에 침투해서 대기해야 했다. 그도 그럴것이. 전쟁이 시작될 즈음엔 그런 종류의 표적들은 이미 모종의 대피작업을 마무리 지은 후 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런 종류의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은 그들 역시 벌써부터, 서베를린행 땅굴로 향하는 버스에 곧 몸을 실어야 했다.
 
  “팀장 동지, 질문 있습니다.”
 
  “무슨 일이지, 상위?”
 
  “버스에서는 눈 좀 붙여도 되겠습니까?”
 
  팀장은 그 말에 부하들의 얼굴을 다시 한번 쭉 훓어봤다. 생기 넘치지만, 피곤해 보이는 얼굴. 그래. 지금은 괜찮겠지. 그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마 자신은 볼 수 없는 자신의 얼굴도 같은 몰골일 터였다. 갑작스럽게 새 임무를 받고도, 군소리 없이 따라주는 팀원들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십여분 후, 군장 검사가 끝난 뒤, 팀장은 어디에선가 꿍쳐온 반쯤 빈 싸구려 보드카를 한 병 들고 서, 팀원들에게 한 잔씩을 돌렸다. 버스에서, 이들의 평화 시대의 마지막 단잠을 1 분이라도 더 만끽할 수 있도록 준비한 최소한의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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