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관련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입니다.

(장문)에스코바르 참수 작전에 고용된 전직 SAS 요원과 용병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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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bbc.com/news/uk-scotland-563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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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hesun.co.uk/news/14533573/drug-cartel-mercenary-basingstoke-dave-kill-pablo-escobar/

https://en.wikipedia.org/wiki/Pablo_Escobar#/media/File:Pablo_Escobar_Mug.jpg

https://www.thetimes.co.uk/article/the-rambo-of-riddrie-the-scottish-man-hired-to-kill-pablo-escobar-v3mm9f80w

https://www.comunidadclubmarcopolo.com/la-hacienda-napoles-pasado-pablo-escobar-colombia

https://ko.wikipedia.org/wiki/A-37_%EB%93%9C%EB%9E%98%EA%B3%A4%ED%94%8C%EB%9D%BC%EC%9D%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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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 카르텔의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

 

지난 70~80년대 콜롬비아 메데인 시를 기점으로 활동한 세계 최대의 마약 범죄,테러 조직이었던 메데인 카르텔과 두목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와 전 세계 뒷 세계에서 강한 세력을 누렸으며 그의 지지자를 제외하면 매우 잔인하고 안하무인 적인 행동 에 많은 증오와 원한을 받고 있었습니다. 미국, 영국 같은 나라도 그를 약화 시키고 제거 하기 위해 특수부대, 정보 기관을 파견 했었죠. 

 

근데 이 에스코바르를 죽이라는 누군 가 의 의뢰로 인해서 전직 영국 SAS 출신의 스코틀랜드 계 군인과 그 일원들이 용병으로 활동했다는 소식을 지난 3월 12일 영국 BBC를 비롯한 언론에서 보도한 적 이 있습니다. 주로 그 전직 군인의 이야기를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휘트니 씨가 다큐 로 제작 한 것 및 그 군인의 이야기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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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아프리카에서 활동 했던 피터 매칼리스 씨의 여권 사진)

 

1942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에서 태어난 피터 매칼리스 씨는 제작자 데이비드 휘트니 씨가 봐도 내면의 혼란이 많은 복잡한 인물이라고 했는데 피터 매칼리스 씨는 어릴 적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가정 폭력에 매우 많이 노출 됐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제작자에게 "전 군대에서 살상 훈련을 받았지만 전투 본능은 글래스고 에서 왔죠." 라고 답했을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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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 요원 시절 피터 매칼리스의 모습)

 

그 후 매칼리스 씨는 1960년 17살의 나이에 자신의 이런 공격성을 쏟기 위해서 집을 나와 육군에 입대했고 2년 뒤 최정예 특수부대 SAS 제 22연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멘, 바레인, 키프로스에 파견 되고 징계도 받았다가 그 후 보르네오 전투까지 한 베테랑으로 10년 간 복무하다 69년 제대했으나 매칼리스 씨는 SAS에 들어간 것을 자기가 한 최악의 결정이라 면서 후회했습니다. 

 

보르네오 전투: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 또는 보르네오 섬 대치 1963-1966년 까지 영 연방인 말레이시아의 건국을 인도네시아가 거부하면서 일으킨 전쟁으로 영국,ANZAC은 말레이를 돕기 위해 군대(특수부대 SAS 포함)를 파견했고 말레이시아의 승리로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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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공수 부대 44 공수 여단 교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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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디지아 내전 당시 로디지아 SAS로 활동 시절) 

 

오히려 그의 상실감, 공격성은 더더욱 악화 됐고 결국 1970년대 초 자신의 애인을 폭행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 됐고 76년 출소 후 그는 용병으로 당시 내전 중이던 아프리카 앙골라에 가서 NLFA의 편에 서서 싸웠고 그 후 77년 로디지아 내전에 참가 로디지아 SAS 요원으로 활동 후 80년 부터 남아공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남아공 육군 44 공수 여단에서 교관으로 있었고 새로운 특수 정찰 부대의 창설을 보조 함 과 동시에 남아공 국경 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NLFA: National Liberation Front of Angola, 앙골라 민족 해방 전선
 
로디지아 SAS: 영국 SAS의 형제인 SASR, NZSAS, 1er RPIMA 와 더불어 또 다른 형제 특수부대였으나 로디지아(현 짐바브웨)가 무너짐에 따라 해체 됐고 구성원 대다수가 남아공 등지로 넘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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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상인 겸 용병 데이빗 톰킨스)

 

이것만 봐도 정말 엄청난 인생이라 할 수 있지만 더 엄청난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89년 까지만 해도 그는 남아공에서 그렇게 살고 있었지만 그에게 앙골라 전쟁 시절 친한 동료인 무기 상인이자 모험심 가득한 용병 데이빗 톰킨스가 찾아왔고 매칼리스 에게 "콜롬비아의 에스코바르를 죽이자는 의뢰가 있다" 면서 처음으로 말했습니다.

 

데이빗 톰킨스: 1941년 생으로 모험심이 매우 많은 성격에 비록 군 생활은 하지 않았더라도 각종 전쟁에 참가 했으며 뛰어난 거래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

 

데이빗 톰킨스는 당시 메데인 카르텔과 라이벌, 적대 조직이자 그들과 동급으로 악명 높기로 소문난 칼리 카르텔 의 의뢰로 당시 100만 달러를 받기로 했으며 그 임무에 적합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온갖 전쟁을 다 겪은 베테랑 매칼리스 씨 에게 에스코바르를 사살할 용병 부대의 지휘를 이끌어 달라고 부탁 한 것입니다.

 

칼리 카르텔 : 콜롬비아의 산티아고 데 칼리 시를 기점으로 활동했던 마약 카르텔로 에스코바르 사살 이후 메데인 카르텔의 세력이 악화된 93년부터 왕성한 활동과 악행을 벌였지만 95년 미국의 개입으로 결국 두목 및 조직원들이 전원 체포 되고 와해 됨.

 

매칼리스는 에스코바르의 악명을 많이 알았는지 "난 그를 죽이는데 있어서 어떠한 도덕성도 없었습니다", "그를 죽이는 건 살인이라 부를 수 없었고 난 그것을 목표로 삼았죠."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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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엔다 나폴리)

 

고용주인 칼리 카르텔은 계획을 실행 할 날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휴양지 하치엔다 나폴리 를 방문할 것이며 그때를 노려서 사살하면 된다고 설명을 했으며 칼리 카르텔의 막대한 지원 아래 엄청난 양의 당시 가장 최신형 총기 및 폭발물은 물론 침투 및 퇴출 자산인 헬기도 두 대 받았습니다. 

 

하치엔다 나폴리: 1979년 에스코바르가 만든 초대형 휴양 시설로 동물원, 놀이 공원, 워터파크 ,레이싱 경기장 등이 있었으며 에스코바르가 지지 세력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들었으며 에스코바르 사후 대다수의 시설은 철거되거나 용도가 바뀌어 현재까지 관광 시설로 사용됨.

당시 에스코바르가 동물원에 전시한 아프리카 하마들이 그의 죽음 이후 탈출 현재 콜롬비아 생태계를 크게 위협 하는 외래종이 됨

 

그렇게 추천과 모집으로 선발된 용병 12명은 피터 매칼리스, 데이빗 톰킨스의 지휘 아래 훈련을 했으며 용병들은 매 달마다 당시 돈 5.000 달러의 거금을 받았는데 피터 매칼리스는 가장 전문가에 지휘관 이다 보니 하루에 1.000달러를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그가 회상하길 "무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거기에 있었어요. 마치 크리스마스 같았습니다" 라고 말 할 정도로 좋은 대접을 받은 것 같습니다.

 

물론 피터 매칼리스, 데이빗 톰킨스만 이런 훈련의 목적(에스코바르 사살)을 알았지 나머지 12명의 용병 들은 자신들이 하는 임무가 어떤 임무인지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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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 중인 매칼리스의 용병 부대)

 

구체적인 계획은 하치엔다 나폴리의 삼엄한 보안을 뚫기 위해 헬기로 침투, 에스코바르 를 사살 한 뒤 그의 머리를 참수, 전리품으로 칼리 카르텔에게 가져 온 후 돈 백만 달러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칼리 카르텔은 데이빗 톰킨스에게 "에스코바르 의 머리를 가져오라!" 는 명을 내렸는데 이것으로 이들의 잔인함을 알 수 있죠.

 

계획이 가까워 오자 이들은 정글 깊숙이 숨어 들어가서 총기 사격, 폭발물 폭파, 헬기 이 착륙 등 문자 그대로의 참수 작전 훈련을 진행 중이였습니다. 그러나 이 작전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에스코바르 가 93년 도주 하는 도중 콜롬비아 군, DEA의 특수부대의 작전에 죽었을 리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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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를 이용해서 훈련하는 용병 부대)

 

칼리 카르텔 정보원이 에스코바르 가 작전 위치에 있다는 첩보를 들은 후 작전을 위해 헬기 두 대가 안데스 산맥을 낮은 고도로 비행을 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추락으로 인해서 매칼리스, 톰킨스의 용병 부대는 부상을 입었고 조종사들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정보 력이 매우 빠른 에스코바르는 그 소식을 듣고 당장 그들을 찾으라고 부하들 에게 명하였죠.

 

톰킨스 와 용병 부대 원들은 그리 심한 부상이 아니라서 탈출에 성공했지만 매칼리스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홀로 낙오됐습니다. 매칼리스는 "파블로에게 붙잡혔다면 난 매우 길고 고통스럽게 죽었을 겁니다" 라고 말했고 거기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 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비열하고 더럽고 형편없었으며 자기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행동은 자신의 군 생활 및 에스코바르 암살 의뢰가 아닌 가장으로서의 실패였다고 합니다. 그는 신께 빌었다고 하며 인터뷰에서 "전 많은 후회를 가지고 있고 그 어떤 것도 제 군인 인생에 포함 되지 않습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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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올해 78세인 피터 매칼리스)

 

그렇게 3일간 낙오되어 있었던 때 정말 신의 기적이 일어났는지 산악 구조 대원 들 이 매칼리스를 발견하여 구조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 90년대 그는 러시아에 가서 경호원 일을 했고 그 외 알제리, 이라크 등지에서도 각종 보안 관련 업종에서 일했으며 93년도에는 No Mean Soldier 라는 책을 저술 했고 현재도 저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잘 살아 계시는 78세의 피터 매칼리스씨는 이제서 야 평화를 찾았다고 하며 인터뷰를 끝냈는데 그동안 진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신 만큼 편안하게 잘 쉬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작전은 실패했으나 결국 에스코바르도 부주의한 행동 으로 인해 도망가다 사살되고 자신의 고용주 칼리 카르텔도 결국 와해 됐으니 보복을 당할 일은 없으나 그래도 조심하셨으면 하네요.

 

※ 에스코바르는 도청을 피하기 위해 전화를 바꿔서 사용 하고 항상 통화를 5분 내에 끝냈으나 사랑하는 자신의 아이와 통화를 5분 이상 하다가 미국, 콜롬비아 정보 국의 도청에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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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올해 80세인 데이빗 톰킨스)

 

그리고 그 이후의 얘기로 데이빗 톰킨스씨는 여전히 에스코바르를 죽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는지 1991년 콜롬비아에 잠복 중 이던 연방 요원(아마 콜롬비아 정부 소속) 들 에게 무려 A-37 드래곤 플라이 경 공격기를 구매하여 에스코바르가 있는 감옥에 폭격을 시도하려는 발상을 했었고 그걸로 미국의 침공을 유도하려 했지만 결국 걸려 미국으로 압송 될 위기에 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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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7 드래곤 플라이 경 공격기)

 

에스코바르가 죽은 94년에도 데이빗 톰킨스는 저 공격기를 사려고 한 음모가 적발 되자 미 정부가 그를 기소했고 어떻게 든 그 기소 또한 피했는데 이 사람이 안일하게 행동했는지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 생존 과정에 참가하여 이라크에서 일하기 위해(물론 생존 과정은 뻥 이고 실제로는 무기 거래를 위한 목적이 큼) 미국에 왔다가 긴급 체포 1년 뒤 04년 재판으로 약 33개월 간 수감 생활을 했습니다.

 

데이빗 톰킨스는 지금 잉글랜드의 베이싱스토크 시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는데 80대가 넘었음에도 그는 "만일 누군가 가 내일 한 소국의 쿠데타를 시도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거기에 갈 겁니다" 라고 말을 했는데 자기 보다 더 인생을 험난하게 살고 목숨까지 잃을 뻔한 피터 매칼리스씨는 두 번 다시 그 짓을 안 하는데 여전히 한다고 하니 진짜 어느 의미로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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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킬링 에스코바르)

 

정말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말이 있듯 진짜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입니다. SAS 출신 중 용병 일을 한 사람들이 은 근 많은 것 같은데 20세기 중후반의 냉전 시대는 정말 스팩타클 한 시대였네요. 근데 피터 매클리스 씨는 그런 용병 일을 한 사람 중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을 겁니다. 적도 기니 쿠데타에 참가하다 붙잡혀서 풀려난 사이먼 만 만큼 위험했네요

 

사이먼 만: Simon Mann, 52년 생, 대위 출신으로 SAS에서 복무, 그 이후 용병으로 살다가 04년 적도 기니 쿠데타를 위해서 짐바브웨 하라레 국제 공항에서 무기를 밀수하려다 현지 경찰에 적발, 곧장 적도 기니 의 블랙 비치 교도소에 수감 됨, 그 이후 영, 미의 외교 전으로 결국 08년 풀려남.

이 쿠데타 계획에는 마가렛 대처 전 총리의 친 아들인 마크 대처도 포함되어 한동안 시끄러웠음

 

 

그나저나 저 용병 부대의 고용주가 콜롬비아 정부 및 연관 세력도 아닌 메데인 카르텔과 적대 관계인 칼리 카르텔이었다니 예전에 칼리 카르텔에 대한 정보를 보던 도중 용병 부대와 연관이 있다는 게 저걸 뜻하는 것이었군요. 그들의 정보 력 과 자금력이 매우 뛰어난 것인지 사진에서 보듯 당시 최고의 무기 및 장비와 헬기 두 대를 순식간에 준비하는 게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목을 잘라서 가져오라는 잔인함과 그 이후 각종 악행을 보면 저들도 결코 좋은 세력이 아니란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죠. 아마 내 적의 적은 내 친구 라는 논리로 서로 협력을 한 것 같은데 실제로 칼리 카르텔은 메데인 카르텔을 없애기 위해서 미국, 콜롬비아 정부와 협력을 많이 했었고 저것 또한 영국과 암묵적 협력이 있었을 겁니다. 아까 언급 하듯 SAS가 콜롬비아에 파견 된 적 있고 말이죠.

 

그렇게 대형 마약 카르텔들이 없어져도 21년 여전히 콜롬비아는 마약 카르텔이 번성하고 있고 그와 별개로 내전을 치르는 반군 세력들 또한 마약을 팔아서 그 세력을 높이고 있어 더더욱 강력한 무장을 하고 있어 콜롬비아는 여전히 혼란스러우니 저 작전이 성공했다 해도 콜롬비아는 혼란의 연속이라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히려 더 심해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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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디시토치 2021.05.03. 15:27

시카리오가 생각나는 일화입니다.

성공했다면 성공한 대로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사례가 되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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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델타147 글쓴이 2021.05.03. 16:06
스웨디시토치

맞네요. 시카리오가 생각납니다. 거기서도 베네치오 델 토로가 알레한드로 라는 배역으로 CIA에 고용되어 임무를 수행하죠. 다만 알레한드로는 그 죽여야 하는 카르텔 두목과 원한 관계지만 저 SAS용병은 그저 죽일 목표로만 봤다는거죠.

 

다만 성공했다해도 콜롬비아는 지금 보다 더 엄청난 혼란의 도가니였을겁니다. 마치 고스트리콘 와일드랜드 배드 엔딩 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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