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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글로벌 워게임 시리즈 1984-1988 (4)

푸른매 | 조회 수 154 | 2016.08.20. 01:23

극동

 

태평양 전구에서 근본적으로 수동적이었던 이전 글로벌 워게임과 달리, 1984년에는 적군이 주도권을 가졌다. 외교적 압력과 군사적 위협으로 일본을 중립에 묶어둘 수 없음을 인식한 적군은 항공기와 SS-22를 이용해 청군/일본 방공자산에 대규모 항공공격을 가했다. 이 공격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일본은 근본적으로 방공능력을 상실했다. 그 효과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는 D+2일차에 치토세와 미사와 비행장에 가해진 공격으로, 두 기지 모두 48시간 동안 작전불능상태에 빠졌고 저장된 POL의 85%가 파괴됐다.

 

적군은 태평양 전체에 걸쳐 청군 표적을 타격했다. 아다크, 세미야, 암치트카가 D+ 1, 2, 5일 피격됐다. 게다가 괌, 하와이의 핵심 시설이 비정규전력에 공격받았으며,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는 고주파 방향탐지기HFDF 사이트와 초고주파SHF 스테이션이 포함됐다. 디에고 가르시아 또한 폭격 당해 3일간 작전불능상태에 빠졌고 모든 POL, 격납고, 그리고 항만시설 가운데 50%를 잃었다. 이러한 “전세계적” 타격은 적군이 전쟁을 확대하고자 벌인 것이 아니라 잠재적 측방위협을 감수할 수 없었으며 가능하다면 최대한 선제공격을 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적군은 상호불가침조약을 제안함으로써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시도했다.

적군은 대 CVBG 작전을 위해 D-Day 이전에 대량의 SSN/SSGN을 홋카이도와 쿠릴 동쪽으로 쏟아냈다. 적군 해군의 나머지는 동해와 오호츠크해에 남아있었다.

 

적군 전개에 경계상태에 돌입한 청군은 적대행위 이전에 SSN을 베링해와 동해, 오호츠크해의 고강도 ASW 전역 수행을 위한 지점에 투입했다. 초기 적군 SSBN 손실은 심각했으나, 적군이 남은 자산을 오호츠크해 북쪽의 수심이 얕고 잘 방호된 바스티온으로 불러들인 D+16일 이후에는 없었다. 청군 미 해군USN/미 공군USAF 공격은 적군 폭격기를 파괴하고 소형 전투함 몇 척을 격침시켰으며 캄란만의 수리시설에 피해를 입혔다.

 

인도양에서도 소규모 교전이 있었다. 키티호크 전단이 필리핀 근해의 다른 태평양함대 CVBG들과 합류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찰리급 SSGN에게 공격받았으나, 미사일은 호위하던 이지스 순양함이 격추했고 찰리급은 지원 SSN에 격침 당했다. 또한 이 CVBG는 공중발사 하푼으로 크리박급 호위함을 가라앉혔고 함포로 AGI 한 척을 파괴했다. 카라와 또 다른 크리박급은 D-Day 직후 아라비아 해에서 공중발사 하푼이 처리했다. 인도양에서 벌어진 주요한 행동은 이것뿐이긴 하지만 적군은 청군/NATO/일본의 에너지 공급을 교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석유생산시설에 주기적으로 폭격이 가해졌고, 라스 타누라는 맹폭당했으며 인도양에서의 산만한 대SLOC 전역으로 12척의 초대형유조선이 침몰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동은, 특히 에너지 상황은 청군의 주요한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청군은 전쟁 초기 쿠릴열도와 홋카이도 동쪽 수역의 적군 잠수함 격멸을 기다리며 키티호크를 포함한 여섯 척의 CVBG를 필리핀에 묶어두고 있었다. 이 CVBG 위치선정은 장기화된 극단적 악천후와 함께 청군 항공작전을 방해하여 적군에게 홋카이도 침공의 “창window”을 열어주었다. D+11일, 적군 2개 SNI 연대가 선도하고 Ro/Ro선에 실린 차량화소총부대가 뒤따르는 대규모 상륙돌격이 시작됐다. 18척의 상륙함과 상선이 이 돌격에서 상실됐고, 적군 태평양함대의 키예프급 두 척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적군은 해안에 도달했고 왓카나이 반도와 삿포로 지역에 두 개의 거대한 중점을 형성했다. 적군의 이러한 성공에 주목한 조선인민공화국DPRK도 동원을 개시해 D+15일 한국을 침공했다.

 

날씨가 맑아지고 대잠작전이 진전을 보이자 청군 CVBG가 북쪽으로 이동해 홋카이도 해안의 적군을 두들길 수 있게 됐다. D+30일, 상륙한 적군 5개 사단은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했고 이들을 철수시킨다는 결정이 내려져 D+32/33일 달성됐다. 적군은 부분적으로는 이 철수를 가리기 위해 도쿄 남서쪽에서 작전 중이던 청군 CVBG에 대규모 항공공격을 감행했다. 적군은 백파이어, 배저, 베어, 폭스하운드, 펄크럼, 플랭커, 펜서를 비롯한 항공기 182기를 상실했다. 청군은 항공기 101기를 상실했고, 수 척의 호위 함정과 보조함이 격침 당했으며, 심각한 피해를 입은 링컨과 미드웨이는 수리를 위해 일본의 조선소로 끌려갔다.

 

청군은 쿠릴 열도 남단의 쿠나시르를 침공하고 후속해서 시무시르와 이투루프에 상륙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을 계속하고자 했다. 북한의 침공에 맞서 자력으로 버티는 동안 CVBG의 추가적 항공지원을 원했던 대한민국ROK의 급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결정이었다. 청군 해상전력이 쿠나시르에 대한 공격을 위해 기동하자 적군은 이제 홋카이도 동쪽에 위치한 CVBG에 또 다른 대규모 항공공격을 가했다. 레인저는 여섯 발을 피격 당했고 화재 발생으로 전열에서 탈락했다. 수리예정시간ETR은 10개월이었다. 호위함정 일곱 척도 격침됐다. 대규모 B-52 공습을 포함한 청군의 쿠릴 열도 폭격은 적군이 열도 내에 가진 모든 군용 기자재를 무력화시킨 것으로 보였다. 핵지뢰ADM을 설치하겠다는 적군의 위협을 고려한 끝에 청군과 일본은 침공할 군사적 필요성은 없다는 결론에 각각 독립적으로 도달했다.

 

한반도의 상황은 교착상태였다. 동부에서의 북한의 초기 성공은 한국의 역습에 의해 둔화됐고, 서울은 여전히 한국의 손에 있었다. D+40일 이후부터는 거의 변화가 없었기에 청군은 한국의 CVBG 지원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게임 종료 시점에서 적군은 평양에 MiG-21을 공여하기로 합의했고 이는 공중우세를 북쪽으로 기울일 위협으로 보였다.

 

중화인민공화국PRC는 전쟁 초기에 동원을 시작했으나 적군에 대해 공격적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적군은 가능한 비상상황에 대응해 정규 방어배치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꼈으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운용되는 부대를 다른 곳으로 빼돌리지 못했다.

 

이상이 태평양에서 핵심적 중요성을 갖는 사건들이지만, 출항한 적군에 대한 지속적인 잠수함 작전도 있었다. 또한 청군 공군과 해군항공자산은 벨킨 해안을 공격했으며, TLAM(C) 미사일도 블라디보스톡과 사할린 공격에 활용됐다.

 

통찰

 

1984년 글로벌 워게임의 주요 이슈는 세 가지의 폭넓은 토픽으로 나눠볼 수 있다.
    60일 이상의 장기전에 주목.
    통합된 전지구적 전략에 대한 통찰 발전.
    1990년대의 장비와 전술적 혁신으로 싸운다는 것의 함의

 

“장기전” 가설을 고려할 때의 첫 번째 문제는 청군과 NATO가 성공적으로 장기화된 재래전을 수행할 능력뿐만 아니라 청군의 그럴 의지와 역량이 억지에 미칠 영향까지 포함한다.

 

후자의 문제를 다루는 한, 청군의 장기전 전략을 적용할 때의 억지 능력은 시나리오 의존적이다. 장기전의 전망은 적군에게 우려할 원인을 제공할 것이지만, 동독의 상실이나 독일의 통일이라는 전망에 직면한다면 적군은 장기화된 전쟁이 예상되어도 싸움을 택할 것으로 보였다. 전투에 일단 들어간 후 제한된 자원과 측방의 잠재적 트러블에 마주했을 때 적군은 최초 목표를 축소해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전전 현상유지나, 가능하다면 비무장화된 독일 같은 보다 온건한 목표로 만족할 것이었다. 그러나 적군이 초기 시간계획을 말아먹고 강력한 청군 공세이전에 두들겨 맞는다면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은 매우 현실적인 가능성이 되었다.

 

1984년 글로벌 게임이 진행되면서 합리적인 동원소요시간과 경고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경우 미 유럽주둔군 사령관/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CINCEUR/SACEUR은 많은 사람들이 인식한 것보다 더 강력한 방어전투력을 갖추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동과 측면공격을 운용하는 “유연방어”는 조약군 공세를 늦추는 데 성공했다. 공지전 개념은 잘 작동했으며, (NATO와 구별되는) 청군은 일반적으로 적절한 군수품 및 탄약 재고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D+48일경 청군은 우랄산맥 서쪽의 적군 전 병력 투입으로 강하게 압박 받으면서도 버텨냈다. 사실상 중국과의 국경을 제외한 모든 전구에서 적군 병력이 벗겨졌는데, 이런 상황은 “현실 세계”의 상황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것으로 보였다.

 

게임 결과는 장기전 전략이 일정한 억지 요소를 가지며 청군/NATO에게 유효한 전쟁수행 옵션임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전략의 성공적 수행이 청군의 핵 옵션 선택을 회피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적군을 그 방향으로 몰아붙이는 효과를 갖고 있었다. 게임 종결 시점에서 적군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전과 만족스러운 종전안을 확보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적군은 만약 전쟁이 계속될 시 장기적(2~3년)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공세작전을 전체적인 전쟁 목표와 연결하는 전지구적 전략의 개발은 1차 글로벌 워게임 시리즈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인식됐다. 해양우세는 적군에게 군사적, 정치적 압력을 가할 다양한 옵션을 청군에 제공하지만 해군, 육군, 그리고 공군 자산을 제병협동 및 합동지상작전을 위해 협조시킬 “큰 게임플랜”도, 후속 전역과 군수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적대행위 이전 단계의 어떠한 계획수립도 없었다. 막상 일이 터지자 북유럽연합군AFNORTH, AFCENT, 남유럽연합군AFSOUTH은 별개의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청군이 전체적인 전략을 적용한다면 초기 공세계획이 틀어지고 시간계획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적군은 이에 대응하도록 강요 받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없다면 양측은 적군이 원래, 혹은 수정된 목표를 향해 압력을 가하기에 충분한 전력을 구축할 때까지 반응적인 태세로 머무는 경향이 있었다.

 

청군은 레버리지의 네 가지 주요 지점을 식별해냈다.
    북부 노르웨이
    발트 접근로
    서지중해(리구리아해)
    동지중해

 

서지중해와 발트 접근로는 중부전선에 직접적인 지원기회를 제공하고, 북부 노르웨이와 동지중해에서의 공격은 적군 본토를 위협할 수 있었다.

 

글로벌 워게임 ‘84에서 청군은 공세작전을 세 단계에서 이용했다.
    작전적 – AFCENT의 NORTHAG와 CENTAG 예비대를 이용한 주요 양익포위 1회
    전구 차원에서는, AFSOUTH의 발칸반도에 압력을 형성하려는 시도
    전략예비의 유틀란드 침공과 발트 해안 위협에 대한 계획된 이용

 

만약 D-Day에 시작된 적군 전진을 좌절시키기 위한 노르웨이 북부의 작전을 고려한다면, 청군/NATO는 그럼으로써 위에서 식별된 네 가지 레버리지 지점 중 셋을 시험했다.

 

노르웨이 북부의 청군/NATO 전력은 적군 공격을 목표 도달 이전인 시보튼 계곡에서 저지하는 데는 성공다. 하지만 전쟁 극초기 단계 이후 노르웨이의 연합군에 주목할만한 보강은 없었다. 근본적으로 CVBG는 노르웨이해에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콜라 반도에 대한 형식적인 TLAM 공격만 있었고 단독 지상 공세를 실시해 적군 본토를 공격, 심각하게 위협하기 위한 어떠한 종류의 부대 집중도 없었다. 적군은 레닌그라드 군구의 병력으로 자유롭게 중부전선을 증원할 수 있었고 노르웨이 북부에서의 최소한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합리화할 수도 있었다.

 

유틀란트 반도에서의 청군 상륙은 반격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 덴마크가 전쟁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치적 이유로 시작되었다. 청군은 게임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보잘 것 없어진 교두보 너머로 돌파해내지 못했지만 이 작전은 몇 가지 잠재적 이점을 드러내 주었다.
    다수의 적군 사단이 중부전선에서의 공세작전에서 전용됐다.
    CVBG 항공대로 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은 보나 남쪽에 지상발진 항공기를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    만약 적절한 수준의 전력 수준을 확보할 수 있다면 계속 동쪽으로 공격해 발트 연안을 통해 계속 동쪽으로 공격하거나 직접 남쪽, 적군 공세의 측방을 향해 이동해 중부전선 전역을 직접 지원할 수 있었다.

 

지중해의 D-Day 교전에서 청군이 달성한 결정적 승리는 터키와 그리스를 향한 SLOC을 개방했고 특히 이 지역의 무슬림 국가들 사이에서 지역적 안정성을 증진시켰다. 청군은 이 상황을 이용하기를 원했지만 불가능했다. 부분적으로는 연합이 이 지역에 공세계획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지상군과 보급 지속능력이 부재했다. 청군이 항공 및 TLAM 자산을 불가리아와 흑해 항구를 공격하는 데 이용하는 동안 트라키아에서의 지상작전은 D+47일까지 시작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이러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동안 청군은 쿠릴 열도를 침공한다는 목표를 갖고 북서태평양에서 주도권을 탈취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 작전은 쿠릴 열도에 ADM을 설치할 것이며 청군 침공시 작동시키겠다는 (그리고 청군이 핵전쟁을 시작했다고 비난하겠다는) 적군의 위협 때문에 결국 보류됐지만, 쿠릴 열도를 점령하는 것보다 무력화만 하는 것이 더 나은 정책인가 하는 더 커다란 문제가 떠올랐다.

이러한 작전은 적군 주변부에 대해 행동을 고려할 때 감안해야 할 군사적 기준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기준들은 지상작전 외에 항공 및 해상작전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    작전에서 얻을 수 있는 레버리지가 비용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    해양우세로 만들어낸 기회를 이용하기에 충분한 전력 패키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가용한 모든 자산을 활용하는 일관된 전략의 중요성은 장기전 전략의 성공에 필수적이다. 이러한 전략은 “KO 펀치”에 의존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떤 사건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핵심 전략은 적군 지상 공세를 멈추고 예비대를 구축하여 반격에 돌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핵무기 사용을 제외한다면 전쟁은 아마도 한 적대진영이 대가가 너무 크고 승리는 너무 멀다고 결론 내렸을 때 끝날 것이었다.

1990년대의 장비와 혁신된 전술로 싸우는 것은 다수의 가치 있는 통찰을 이끌어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일부는 다음과 같다.

 

    대잠전 – 청군 잠수함에 탑재된 SQR-19 선배열예인소나는 청군 능력의 엄청난 도약임이 드러났다. 적군의 SSN 소음 감소 노력이 청군의 이점을 약화시키리라고 예상됐지만 이는 실제로 입증되지 않았다. 청군은 한 가지 전술적 이슈에서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점을 찾아냈다. 적군의 손실이 증가하고 적군 부대가 바스티온 안으로 더 깊이 이동할수록 청군은 수익체감점에 접근해갔다. 언제 대 SSBN 전역을 축소하거나 정지할지에 관해 변수들을 공식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    적군은 통상탄두를 탑재한 SS-22를 일본과 터키의 공군기지에 대한 공격에 사용했다. 이러한 역할에서 SS-22는 극도로 효과적임이 증명됐으며, SS-22의 활용과 효과성 모두 청군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    적군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은 청군의 우려사항이었다. 적대행위 개시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자 청군은 적군이 화학무기CW를 개전 시점에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와 그렇다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숙고했다 청군은 적군이 CW로 공격할 시 어떤 대응을 할 것인 가에서 핵심 이슈는 종심타격능력의 결여로 인한 인식된 대칭적 대응의 부재라고 생각했다. 전술핵무기TACNUC 보복의 가능성도 논의됐다. 전반적으로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은 초기에는 청군과 적군 모두 상대의 대응이 통제를 상실하여 의도되지 않은 에스컬레이션으로 치달을 것을 두려워했기에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D+48일차에 적군은 대규모 화학무기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마음먹었다. 적군은 화학공격의 범위를 제한할 어떤 중요성도 없다고 믿었다. 만약 청군이 핵무기로 대응할 것이라면 적군 화학무기 사용의 규모와 무관하게 그렇게 할 것이었다. 반대로 청군은 적군의 CW 사용이 대규모이며 파괴적일 때만 핵대응이 적절하다고 믿었다. 프랑스 독립핵전력INF의 보복에 대한 공포로 적군이 프랑스를 향해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한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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