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image

2차 글로벌 워게임 시리즈 1984-1988 (3)

푸른매 | 조회 수 150 | 2016.08.14. 14:52

중부전선


1990년 8월 16일 바르샤바 조약군WP의 NATO군에 대한 전면공세와 함께 전쟁이 시작됐다. 적군 공격의 중심은 북부집단군NORTHAG 섹터에 쏠려 있었고 첫 이틀 사이에 50km, 사흘째에는 70km까지 전진했다. NATO군은 풀다 지역에서 북동쪽으로 타격하여 적군이 남측방을 중점으로 전환하도록 돌파에 대한 역습을 시도했다. NATO 공군이 공세를 지원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제한적인 역습은 WP 증원 일부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북독일평원에서의 진격은 계속됐으며, D+6일차에 역습부대는 철수했다. D+7일차에 NATO 예비대와 B-52를 포함한 항공력이 적군 공세를 둔화시켰다. 적군 작전적 제2제대가 근접한 D+10일차에 북부집단군의 전선부대진출선FLOT은 함부르크와 하노버 외곽에 있었다.

 

적군의 증강과 강화는 D+11일에도 계속됐다. 폴란드군 2개 군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으로 밀려들어 덴마크를 NATO 여타 지역과 차단했다. NORTHAG에 대한 바르샤바 조약군 공세는 D+12일 재개됐다. 적군은 브레머하펜에 공정공격을 가했다. 곧이어 엘베강 전역에서 실시된 공세의 일환이었다. D+13일 브레머하펜이 함락됨과 동시에 적군이 남쪽에서 뮌헨을 향해 돌진해왔다. 뮌헨은 D+15일 아우크스부르크와 함께 피탈됐고 적군은 슈투트가르트로 전진을 계속했다. NORTHAG에서 NATO는 대규모 항공지원과 함께 베저 강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해 고수하고 있었다. D+19일에 NORTHAG의 상대적 전투력은 적군과 대체로 동등했으며, 남쪽에서는 NATO 증원이 적군의 슈투트가르트로의 전진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D+20일 청군은 중부전선에서 두 가지 커다란 문제에 직면했다. 첫째, 적군 전략적 제2제대가 근접해 프랑크푸르트를 위협하는 강력한 공격을 개시했다. 둘째, 적군 부대가 유틀란드의 폴란드군을 증원했고 덴마크로의 공세를 재개했다. NATO 회원국 함락의 정치적 영향은 동맹이 D+22일 덴마크 반도 서쪽 해안에서의 상륙작전을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항공모함CV 다섯 척과 대략 250척의 기타 함정이 지원하는 1개 해병상륙군MAF과 육군 사단을 제82공수사단의 강습이 보강했다. 베저 선은 고수됐고 남쪽에서는 두 번째 방어벨트가 적군의 프랑크푸르트로의 돌진을 봉쇄했다. 프랑크푸르트 시가지가 적군 사단포병의 사거리 내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다. D+23일 이 공격은 기세를 잃었고 적군은 추후 진전을 기다리기 위해 공세작전을 종료했다.

 

NATO는 6개 사단으로 함부르크에 공세를 가해 주도권을 탈취했다. 공세가 성공한다면 청군 교두보와 대치중인 유틀란드 반도의 바르샤바 조약군이 철수하도록 강요할 수 있었으나 기존 전력에 제101공수사단이 증원됐음에도 돌파는 달성되지 못했다. NATO의 3단계 역습이 이 공격을 뒤이었다.

 

    중부유럽연합군AFCENT은 프랑스군 13개 사단을 카셀과 풀다 사이에서 할레로 발진시켜 적군 LOC를 파괴하고 북독일의 WP 부대를 차단하는 남부 측면공격pincer을 구성한다.
    NORTHAG은 마그데부르크 방향으로 공격, 함부르크 남쪽에서 돌파해 북부 측면공격을 형성한다.
    또한 AFCENT는 오데르 강 방면으로도 공격한다. 공격 목표와 방향은 적군 전략적 제3제대의 배치에 따라 결정한다.

 

1단계와 2단계는 D+26일 프랑스군이 북동쪽으로 돌파해 전진하는 사이 NORTHAG 부대가 경미한 저항을 받으며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공격과 함께 베를린 지역의 비행장에 대한 적지종심침투 임무를 위해 레인저가 운용됐다. 한편 적군은 레닌그라드 군구MD의 9개 사단과 키예프와 코카서스 군구의 25개 사단으로 구성된 증원부대를 이동시켰다. D+29일, 남부 공세의 프랑스군이 할레를 D+27일부터 점령하고 있던 2개 공수사단과 연결됐다. 그러나 북부 공세는 적군의 단호한 저항에 뤼네부르크에서 멈춰 섰다. 유틀란드 교두보는 안정적이었지만 돌파 시도는 실패했다. NATO군 반격의 세 번째 단계는 D+29일 브라운슈바이크 방향으로 개시됐다. 프랑스군 주력의 북쪽 견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중부집단군CENTAG은 만하임 인근에서 점점 증가하는 적군의 프랑스군에 대한 압력을 우려하고 있었다.

 

D+30일, 예상보다 신속한 적군 전략적 제3제대의 도착으로 인해 강력한 저항을 받으면서도 NATO군 반격이 계속됐다. 프랑스군은 좌측에서 IGB를 월경, 동독으로 진입해 브라운슈바이크를 향해 전진하는 CENTAG의 지원을 받으며 할레 너머 마그데부르크와 라이프치히로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프랑스군 돌파의 노출된 우측방에 대한 압력은 증가하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뤼네부르크에서의 저항이 NOTHAG의 목표를 재설정하게 만들어 북부 공격부대는 남쪽의 윌첸-볼프스부르크 축선으로 방향을 돌렸다. 남독일에서는 슈튜트가르트를 향한 적군 공세가 재개돼 NATO군이 심각한 손실을 입고 있었다. D+33일에는 양 공격부대가 첼레에서 연결되면서 NATO 공세작전이 한계에 도달했다. 상승하는 적군의 압력은 세 단계에 참여한 부대 모두가 후퇴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이 역습은 적군 시간표를 망쳐놓았으며 노르웨이와 발칸에 투입될 부대의 전환이 불가피하도록 해 두 지역의 적군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D+35/36일 전략적 제3제대의 34개 사단이 적군에게 주도권을 되찾아 주었고 D+37/38일 NATO는 전 전선에서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미국 대륙CONUS의 육군 예비군과 주방위군 부대 제1파가 D+38일 전구에 도착해 즉시 브레멘, 프랑크푸르트, 슈튜트가르트로의 바르샤바 조약군 3개 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전투에 돌입했다. 유틀란트의 청군 분견대는 교두보에 갇힌 채 남아있었다. 이것이 D+48일 세미나 포맷으로 넘어갔을 때의 상황이다(지도 2).

 

GWG84.png

 

 

노르웨이

 

적군은 D-Day에 핀마르크를 통해 이동한 2개 차량화소총사단MRD와 소련 해군보병SNI 연대의 포르상겐 피요르드 상륙작전으로 노르웨이를 공격했다. 바낙의 비행장은 탈취당했고 노르웨이군 조기경보전초 4개가 폐쇄됐다. 적군의 시보튼을 향한 진격은 계속됐지만 악천후와 청군, 노르웨이군, 영국군 연합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둔화됐다. 청군 구성군(1개 해병상륙여단MAB와 해상사전배치선단MPS)은 D-9일에서 D-7일 사이에 이미 노르웨이에 도착해 있었다. NATO의 호크 개량형 포대와 전술공군은 제공권을 효과적으로 장악했고 청군 공습은 적군이 목표 시보튼에 못 미친 알타에서 방어로의 전환을 강요하도록 도왔다.

 

발칸

 

지중해에서 최초의 “교전” 이후 청군 해상전력은 유리한 위치를 잡았다. 소수의 잠수함과 대량의 기뢰를 제외하면 청군을 방해하는 적군은 거의 없었으며 청군의 신속하고 완벽한 승리는 적군 위성국들이 중립을 선언하도록 몰아갔다. 게다가 표적정보를 상실한 적군 해군항공대와 장거리항공군SNA/LRA은 D-Day 이후 공세행동을 실시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이는 NATO가 적군이 가졌을지도 모르는 트라키아 침공계획을 지연 혹은 와해시키기 위해 불가리아에서 대규모 전술항공전역을 실시하도록 내버려둔 것이었다. 이 전역은 이 지역에서의 적군 전투공중초계CAP 능력을 근본적으로 파괴했고 트라키아 침공을 위한 적군 증강을 지연시켰으며 NATO의 D+47일 공세 기반을 놓았다. 이 공격은 청군 육군 2개 사단과 1개 MAB로 뒷받침되는 6개 그리스/터키 사단으로 구성됐다. 적군은 헝가리에서 2개 사단을 전환하는 것으로 대응했으며, 전투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대서양

 

전쟁을 향한 적군의 움직임은 GWG 84의 적대행위 이전 단계인 D-15일차에 80%의 적군 잠수함과 전투함정이 출격하고 흑해함대가 몰려나오면서 명백해졌다. 이 날부터 D-10일 사이 발트해의 바르샤바 조약군 함대 역시 항구를 떠났다. NATO는 즉각 이 경고를 이용해 D-Day에는 SSN 16척이 노르웨이해, 카라해, 바렌츠해에 자리를 잡았다. 또한 청군은 무력시위로서 다른 전력을 잠재적 전투지역에 배치했다. 아메리카, 새러토가, 위스콘신 전투단은 쿠바를 맡았고 루즈벨트, 코럴 시, 링컨 전투단은 아이슬란드-영국 간격의 남쪽으로 이동했으며 인디펜던스는 제6함대에 합류하기 위해 항진했다. D-10일에서 D-5일 사이 청군 해병이 노르웨이에 도착했고, 유도탄 호위함FFG 10척이 동대서양EASTLANT 초계에 투입됐으며, 나소와 괌을 포함한 서대서양WESTLANT 상륙함들은 준비를 갖춰 영국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러한 행동들 덕분에 D-Day 시점에서 청군 해상전력은 전방의 SSN, 그린란드-아이슬란드-노르웨이GIN 남쪽에 3개 항모전단, 영국 외곽의 다른 항모전단 셋으로 훌륭하게 배치돼 있었다. 대양감시함T-AGOS의 지원을 받는 FFG들은 대잠전 위치를 맡았고 대서양의 양키급 잠수함 네 척은 추적당하고 있었으며 두 척의 전환된 SSBN은 CapTor 기뢰원 부설 위치에 자리잡았다. 청군 해안 외곽에는 보호기뢰원이 배치됐다. D-4일에는 노르웨이군 초계 잠수함SS이 노르카프 곶 바깥에 방어망을 쳤고 프랑스군 SSN/SSBN은 비스케이 만 안의 안전한 은신처에 있었다.

 

적대행위가 시작되자 전환된 SSBN들은 바렌츠해에 CapTor 96기로 기뢰원 하나를 부설했고 Mk.57 기뢰원 다수를 적군 SSN/SSBN 추정 통로에 부설했다. 셔틀랜드 제도와 페로 제도에도 수상, 수중, 공중 플랫폼을 활용해 기뢰가 부설됐다. 이 작전에서 290기의 기뢰 혹은 80%의 자산이 사용됐다. 대서양의 양키급들은 즉시 격침됐다. 두 척은 SSN의, 다른 두 척은 해상초계기MPA의 전과였다. 노르웨이해, 바렌츠해, 카라해에서 청군 SSN은 SSBN, SSN, 수상 대잠전 플랫폼 순의 우선순위에 따라 표적을 찾아 다녔다. 전쟁의 첫째 주 동안 청군은 7척의 적군 SSBN, SSN 24척, SS 2척과 유도탄원자력잠수함SSGN, 유일한 작전 가능 CV, 키예프급 한 척을 격침했고 다른 한 척의 키예프급은 대파시켜 작전불능으로 만들었다. 이 기간 청군은 SSN 10척을 상실했다. 워게임 전체에 걸쳐 청군 SSN들은 26척을 잃은 대가로 SSBN 19척, SSN 38척, SSGN 6척, SS 7척, 주요 수상함 23척을 격침시켰다.

 

D-Day에 청군 수상전력은 처음에는 적군 정보수집함을 격침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 다음에는 ASW 작전을 지원했다. GIN 간격 북쪽에서는 수상전력과 협조된, 강도 높은 항공작전이 실시됐다. CV 한 척은 필요시 노르웨이 지상전역을 지원하기 위해 노르웨이 남쪽으로 접근했다. 노르웨이의 음향감시체계SOSUS에 대한 적군 사보타주가 ASW 노력을 방해했지만 얇은 선배열 체계와 SQR-19의 능력이 상쇄할 수 있었다. 유틀란트 상륙작전의 지원작전과 물거품이 된 적군의 대SLOC 작전을 제외하면(두 작전은 별도로 논의될 것이다), 해전은 적군이 심각한 손실을 겪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D+48일 살아남은 적군 해군 부대는 안전한 항구로 처박혀 현존함대를 구성했고 오직 한 척의 오스카급 SSGN만이 바다에 남아있었다. 구체적인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D+3, 덴마크와 스웨덴이 발트해의 초크 포인트에 기뢰를 부설했다.
    D+7, 영국은 북해에서 적군 SS/SSN을 소탕했음을 최초로 보고했다.
    D+8, GIN 간격 남쪽의 CVBG 셋을 지원하던 SSN들이 기존 임무에서 해제, 상실한 SSN을 보충했다.
    D+10, 쿠바 인근의 CVBG 둘이 영국에 전개해 위스콘신 전투단BG만이 기존 위치에 남았다.
    D+23/25, 두 척의 SSN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재래탄두 지상공격미사일TLAM(C)이 올레네고르스크 유류POL 시설과 무르만스크를 타격했다.
    D+25, 청군 SSN 초계구역을 재평가했다. 부대를 카라해에서 빼내고 바렌츠해에서 작전하는 부대는 감축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    D+30, 청군 SSN들이 노르웨이 노르카프 곶 인근에서 적군 상륙부대를 공격해 시보튼 방어선을 측면에서 공격하려던 적군 수상부대의 대부분을 격침시켰다.
    D+35, 적군은 11척의 디젤 SS를 북해에서 작전중인 청군 CVBG를 향해 출격시켰다. 인빈시블과 허미즈의 공격은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디젤잠수함 위협이 청군에 심각한 경고를 야기했다.
    D+38, 유일하게 잔존한 오스카급 SSGN이 성공적인 단독 대함순항미사일ASCM 공격을 가했다. 인빈시블과 허미즈가 피해를 입었지만 작전불능에 빠지지는 않았다.

 

D+30일에 장기전의 가능성을 감지한 적군은 대SLOC 작전에 전역에 착수했다. 14척의 SSN/SSGN이 카라해, 북 스피츠베르겐, 덴마크 해협을 통해 출격다. 청군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임이 탄로났고 적군은 덴마크 해협을 빠져나갈 때까지 탐지되지 않았다. 14척의 잠수함은 D+40일까지 모두 침몰했다. 두 척은 덴마크 해협의 CapTor, 여덟 척은 청군 SSN, 네 척은 해상초계기MPA의 전과였다. 그러나 그들은 SL-7 한 척, 고속 Ro/Ro선 네 척, 그리고 저속 Ro/Ro 수송선을 격침했다.

 

D+22일, 청군은 NATO 회원국이 바르샤바 조약군에 완전히 점령당하는 걸 막기 위해 유틀란트 반도 서측방의 서독-덴마크 국경 인근에서 상륙을 실시했다. 다섯 척의 CV와 250척의 기타 함정이 1개 해병원정군MAF, MPS 장비, 1개 보병사단을 양륙하는 작전에 참가했다. 제82공수사단 또한 활용됐으며, 제101공수사단은 이후 투입됐다. 상륙함대와 지원함정들은 백파이어 5개 연대에 공격받았다. 공격은 초기에는 상륙함에 집중됐으며 가용한 지상전력 중 25%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상륙 이후 청군은 넓게는 NORTHAG에, 좁게는 유틀란트 교두보에 전술항공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상당수의 CV 자산을 북해에 유지했다. 이 집중은 적군의 이목을 끌어 상술된 SS/SSGN 공격을 유도했다. 청군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여전히 교두보에 못박혀 있는 동안 적군은 덴마크를 전쟁에서도 NATO 동맹에서도 이탈시키지 못했으며, NATO가 취약한 다른 곳에서 운용될 수 있었던 적군은 덴마크로 전용됐다.

 

게임 종료 시점에서 적군은 대서양과 인접 해역에서 밀려났고 SLOC는 사수됐다. 쿠바는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청군 해상 자산은 중부전선의 지상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지중해와 남서 전구TVD

 

D-Day 이전의 적군 행동은 스페츠나츠 작전과 비밀 기뢰부설을 포함했다. D-12일부터 적군은 우선순서대로 핵저장시설, 핵공격 가능 비행장, 지휘통제정보통신C3I 시설을 타격하기 위해 스페츠나츠 팀을 침투시켰다. 또한 적군은 D-Day 이전에 척당 기뢰 1,000발을 실은 Ro/Ro선 여덟 척을 출격시켰다. 한 척은 시칠리아 해협과 메디나에, 한 척은 수에즈 운하에, 다른 여섯 척은 에게해에 배정됐다. 수에즈 운하를 맡은 한 척은 D-2에 발각됐고 운하에서 침몰해 이를 폐쇄했다. 폭스트롯급 한 척이 소우다 만에 기뢰 12발을, 탱고급 한 척이 오거스타 만에 기뢰 12발을 더 부설했으며 두 척 모두 발각되지 않았다.

 

D-Day에 예상된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청군은 즉시 적군 정보수집함AGI과 다른 고자질쟁이tattletale들을 파괴했다. 소련 지중해전대SOVMEDRON 함정과 잠수함은 로도스 섬 근처에서 6함대의 2개 CVBG를 타격했다. 함정 세 척이 가라앉았지만 CV는 무사했다. 적군은 완전히 파괴되거나, 무력화되거나, 적군 위성국의 항구로 밀려들어갔다. 적군은 또한 흑해함대BLKSEAFLT의 백파이어 3개 연대와 블라인더 1개 연대로 SNA/LRA 공격을 발진시켰다. 적군은 터키 비행장 여섯 곳에 대한 SS-22 공격으로 정지작업을 했기 때문에 터키 상공에서 백파이어 네 기와 블라인더 여섯 기만이 격추됐다. 6함대에 대한 공격은 AS-4로 이루어졌으며, 항모는 손상을 입지 않았다. 적군은 백파이어 36기와 블라인더 9기를 잃었다. 블라인더는 소우다 만의 공군기지도 타격해 3일동안 활주로를 마비시켰다. 적군이 표적 정보 없이는 자산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공격은 6함대를 향한 마지막 항공공격이었다.

 

D+25일 NATO는 지중해에서 소해작전을 완료하고 적대행위가 시작됐을 때 구역 내에 있던 바르샤바 조약군 상선 250척 중 89척을 가라앉혔으며, 나머지는 리비아, 모로코, 시리아의 항구로 몰아넣었다. 이제 인디펜던스, 존 F. 케네디, 아이젠하워로 이뤄진 CVBG 셋이 불가리아의 적군 항공자산과 기타 표적에 대한 성공적인 항공전역에 참가했다. 다수의 토마호크 재래탄두 지상공격미사일 공격이 가해졌으며, 가장 유명한 것은 니콜라예프에서 의장공사 중이던 신형 CV와 슬라바에 대한 공격이었다. 이 공격은 무인기RPV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SSN 네 척을 흑해로 진입시키려는 시도도 이뤄졌지만 기뢰원에 한 척이 손상당하고 두 척이 침몰했다.

 

게임이 끝났을 때 NATO는 불가리아를 향한 연합군 지상공세를 지원하는 CVBG들과 함께 지중해를 통제하고 있었다.
 





    



  • |
  1. GWG84.png (File Size:224.8KB/Download:0)
facebook twitter google plus pinterest kakao story band

밀리돔 | milidom 의 저작물은 이용약관에 의거해 이용 가능합니다. 이 라이선스의 범위 이외의 이용허락은 별도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글/댓글 작성 전 이용약관을 숙지는 의무사항입니다. 규정 미준수에 의한 책임은 온전히 작성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2차 글로벌 워게임 시리즈 1984-1988 (3) file

August 14, 2016
2차 글로벌 워게임 시리즈 1984-1988 (3)

2차 글로벌 워게임 시리즈 1984-1988 (2)

August 13, 2016

2차 글로벌 워게임 시리즈 1984-1988 (1)

August 13, 2016

일본이 패배한 호주 잠수함 수주전의 내막

August 12,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