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작전과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두드러진 유사성은, 작전이 작전수행국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 소련 극동지방과 이라크에서 수행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작전수행국의 최고사령부에서 작전을 지휘통제하기가 힘들었고, 그런 관계로 작전전구 전체의 아군을 모두 지휘통제하여 합동작전을 구사할 통합된 전구사령부의 구성이 필수적이었다.

 

 소련군 최고사령부는 만주의 관동군을 공격하기 위해 극동지방의 모든 소련 군사력을 통합 지휘할 전구사령부의 창설을 1944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1944년 여름에 소련군 총참모장인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Aleksandr Vasilevsky) 육군원수를 미래의 극동사령관으로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극동사령부는 소련 극동지방에 배치된 로디온 말리놉스키(Rodisn Malinovsky) 육군원수의 자바이칼 전선군, 키릴 메레츠코프(Kiril Meretskov) 육군원수의 제1 극동 전선군, 막심 푸르카예프(Maksim Purkayev) 상장의 제2 극동 전선군 및 이반 유마셰프(Ivan Iumashev) 해군대장의 소련 태평양함대와 아무르 분함대, 그리고 3개 항공군 및 기타 군사조직들을 통합해서 지휘하는 전구사령부로 조직되었다.  여기에 전구사령부와 각 군종간의 조율을 맡기 위해 해군총사령관인 니콜라이 쿠즈네초프(Nikolai Kuznetsov) 해군원수와 공군총사령관인 알렉산드르 노비코프(Aleksandr Novikov) 공군원수가 극동사령부에 배치되었다. 전구의 군수보급은 소련군의 군수보급을 관장하는 관청인 후방업무청의 대리로 파견된 비노그라도프(Vinogradov) 상장이 맡았다. 독소전쟁에서 소련군은 2개 이상의 전선군이 참여하는 전략작전의 경우 스탈린의 최고사령부의 지시를 수행하고 전선군 간의 조율을 감독하고 지휘하는 최고사령부 대리들을 내려 보내 전략작전의 지휘통제를 맡겼다. 최고사령부 대리들은 자체 참모진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들은 스탈린의 대리였고 자체적인 사령부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소련 극동군 사령부의 경우 전구사령부로서의 확고한 지휘체계를 갖추었다.

 

소련군이 각 군종이 통합된 지휘초직에 익숙했던 반면, 미군은 오랫동안 그러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각 군종의 역할과 권한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상, 한 군종의 지휘 하에 다른 군종이 명령을 받는 상황은 미군에서 매우 큰 반발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선에서, 태평양의 미 해군을 대표하는 체스터 니미츠(Chester Nimitz) 해군원수와 미 육군을 대표하는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육군원수는 태평양 전구를 통합해서 지휘할 전구사령부를 창설하지 않았으며, 전구에 경계선을 그어 놓고 각자의 관할구역에 간섭하지 않았고, 피치 못하게 관할구역이 겹치는 경우에는 백악관과 합동참모본부의 중재가 있어도 여러 차례 갈등이 일어났다. 여기에 니미츠와 맥아더는 한 해군장교가 니미츠에게 그의 집무실에 맥아더의 사진을 액자에 끼워 올려놓은 이유를 묻자, 니미츠가 “그것은 나에게 주피터(Jupiter) 신처럼 벼락까지 쳐가며 요란하게 떠드는 멍텅구리가 되지 말라는 점을 상기시켜주거든” 이라고 답해줄 정도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전구에 배치된 미 해군이 대규모 해군작전을 수행할 상황이 드물었던 유럽전구에서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육군원수의 연합군 최고사령부(SHEAF)가 단일한 전구사령부의 역할을 하며 지휘체계상에서 군종간 갈등이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당시의 미군의 항공세력이 독립된 공군(Air Force)이 아닌 육군에 소속된 육군항공대(Army Air Corps)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젠하워는 미군 중심으로 구성된 제12 집단군과 영연방군 중심으로 구성된 제21 집단군간의 갈등해결 및 조율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여 1944년 8월의 팔레즈(Faleise) 포위에 생긴 틈을 해결하는데 실패하였다. 그 결과로 포위당한 독일군의 반 이상이 탈출에 성공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공군이 독립된 군종이 되었을 때, 당시의 유일한 핵무기 투발 수단인 전략폭격기가 공군에만 있었던 관계로 공군은 육군과 해군의 예산을 감소시키고 그 예산을 공군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육군 및 해군과 큰 갈등을 일으켰다. 이러한 갈등관계는 한국전쟁에서도 반영되었다. 맥아더의 미 극동군 사령부는 해군항공대와 해병항공대를 비롯한 한반도 전구에 투입된 모든 항공세력을 극동공군의 통합된 지휘를 받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해군의 강력한 반발로 이뤄지지 못했고 해군항공대와 해병항공대는 공군과 별개의 지휘체계 아래서 작전을 수행했다. 이러한 갈등이 가장 극명하게 일어난 사건은 트루먼 행정부가 해군의 예산을 삭감하며 항공모함 유나이티드 스테이츠(USS Untied States)의 건조를 취소시키자 해군 제독들이 합법적인 집단항명으로 정부에 항의한 사태인 “제독들의 반란”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베트남 전쟁에서도 반복되었다. 베트남에서 공군과 해군항공대는 서로 관할구역을 정해놓고 관할구역 내에서만 작전을 수행하며 전구사령부의 통합된 지휘를 받지 않았다. 각 군종의 독자성을 존중한 결과 제병협동에 필요한 장비들조차도 각 군종이 각자 별개의 장비를 개발하고 도입하여 서로 호완이 되지 않는 상황도 발생했다. 1983년의 그레나다(Grenada) 침공에서 미 해군의 특수부대 네이비씰(Navy Seal)은 수중침투를 한 이후 공군과 교신하여 항공지원을 유도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네이비씰이 보유한 무전기가 공군의 무전기와 호완이 되지 않았다. 또한 육해군간의 조율 실패로 육군 헬리콥터가 해군 항공모함에 착륙하지 못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레나다 침공은 미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러한 사태는 미 의회의 질타를 받았다. 결국 군종 간의 독자성이라는 오랜 전통은 새롭게 대두된 합동성(Jointness)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주로 해군과 해군 출신 상하원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합동참모본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지상군의 전구사령부가 각 전구의 모든 육해공군 및 해병대 전력을 지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골드워터-니콜스 법(Goldwater-Nichols Act)이 1986년에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골드워터-니콜스 법에 따라 창설된 전구사령부 중 하나인 미 중부사령부는 이라크 전구의 사령부로서 전구 내 모든 미군에 대한 분명한 지휘권을 제공해 주는 명확하게 규정된 지휘체계를 따랐다. 노먼 슈워츠코프(Norman Schwarzkopf) 대장의 중부군사령부는 공군구성군, 육군구성군, 해군구성군, 해병대구성군, 특수작전사령부로 구성되어 전구 내의 모든 미군병력 및 다국적군 병력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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