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1991년의 걸프 전쟁이 종결되었을 때, 이 전쟁에서 미군이 거둔 승리요인을 미군의 정보화와 정밀유도무기를 비롯한 군사기술적 발전이 만든 우주항공전으로 보는 기술결정론적인 시선이 학술서적과 대중서적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고 현재고 그러한 시선이 남아 있다. 그러나 걸프전쟁의 승리요인을기술적 발전에서가 아닌 인적요소, 즉 미군 군사술의 발전으로 보는 시선도 강하다. 이들에 의하면 걸프전쟁의 승리는 미군의 군사술과 군사교육 및 지휘체계의 변화, 특히 작전술(Operational Art) 개념의 도입으로 인한 논리적 귀결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작전술 개념 도입 과정에서 소련군과 소련군의 군사술에 대한 연구가 영향을 강하게 끼쳤음을 다룬 연구는 드물다. 또한 걸프전쟁의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al Desert Storm)의 작전기획에 참여한 미 중부사령부의 참모장교단, 이른바 ”제다이 기사단“(Jedi Knights)이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의 상급군사연구과정(School of Advanced Militrary Studies, SAMS)을 이수할 때 강사인 제임스 슈나이더(James Schneider)를 통해 소련군의 군사이론으로 작전술을 공부했으며, 작전기획과정에서 슈나이더와, 소련군사연구소(Soviet Army Studies Office)의 연구원이자 SAMS의 강사였던 제이콥 킵(Jacob Kipp)에게 지속적으로 조언을 구했고, 여기에 소련군이 1945년에 수행한 만주 전략공세작전의 기획 및 수행과정을 상당히 참고했음을 알려주는 문건은 없다시피 하다. 서문에서 밝히자면, 제다이 기사단은 원래 “사막의 검”(Desert Sward)로 명명된 작전명을 작전이 소련군의 만주 작전을 참고했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작전명을 지휘참모대학의 강사였으며 소련군사연구소 소장으로 소련군의 작전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한 학자 데이비드 글랜츠(David M. Glantz)가 저술한 만주 작전을 다룬 연구저작인 『8월의 폭풍: 소련군의 만주전략공세』(August Storm: Soviet Strategic Offensive in Manchuria, 1945)에서 따왔다. 소련군 작전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여 미군의 작전술 개념 도입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글랜츠는 만주 작전과 사막의 폭풍 작전의 유사성을 이렇게 정리했다.

 

- 공세개시를 위한 병력의 급속한 구축;
- 공세를 수행하는 통합된 전구사령부(전구 내의 육해공군을 지휘할)의 창설.
- 적이 군사작전을 개시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방어가 약한 축선을 주공축선으로 선정하여 기습 달성(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은 310 km 정면의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공세를 개시했고 만주에서 소련군은 880 km 정면에서 몽골의 고비(Gobi)사막과 다싱안링(大興安嶺) 산맥을 통해 공세를 개시했다.)
- 적을 포위섬멸하기 위해여 선정된 축선을 통한 광대한 포위기동을 실시(걸프전쟁에서는 380 km를, 만주에서는 370-470 km를 진격했다);
- 적이 아군의 주공이 올 거라고 예상한 축선에서 조공을 개시해 적을 고착시키고 다른 축선으로 재배치될 능력을 제한시킴;
- 기갑부대 위주의 중형 제대가 선도하는 공격;
- 압도적인 화력 및 항공우세를 통한 공격지원;
- 적의 후방을 향해 급속한 전과확대를 종심 깊게 실시하여 적의 지휘통제를 무너트리고 적이 적절한 군수지원을 할 수 없게 차단(걸프전쟁에서는 2월 24-28일 동안 4일간 공세, 만주에서는 8월 9-16일 동안 6-7일간 공세);
- 적지 종심에서 적 예비대가 전장에 도착하기 전에 예비대를 차단하고 교전.

 

물론 글랜츠가 분석한 사항들 중 몇 개는 두 작전에서뿐만 아니라 기존의 미군이나 2차 세계대전기의 독일국방군이 수행한 작전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계적으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예컨대 “기갑부대 위주의 중형 제대가 선도하는 공격”은 독일의 프랑스 침공이나 소련 침공을 비롯한 독일군의 작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압도적인 화력 및 공중우세”는 미군의 과거 작전수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45년과 1991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적 간극과 그에 따른 기술격차, 그리고 두 작전의 수행주체가 소련군과 미군이라는, 전혀 다른 배경과 특성을 가진 군대라는 점에서, 그리고 작전기획과정에서 만주 작전만 참고로 삼지만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두 작전에 유사성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만주 작전에서 동원된 소련 태평양함대는 가장 배수량이 큰 군함도 경순양함 2척일 정도로 큰 전력이 아니었지만, 미군은 6개 항공모함 전투단을 비롯한 주력함들을 걸프 위기 때 페르시아만에 파견했고 적극적으로 해군력을 투사했다. 그리고 만주에서 소련군이 통제해야 할 동맹군은 몽골인민공화국의 군대밖에 없었지만, 미군 중심의 다국적군 사령부는 영국군, 프랑스군, 사우디아라비아군, 이집트군, 시리아군 등의 다양한 동맹국 군대들을 지휘통제해야했다.

 

그러나 명확하게 정의된 작전술 개념이 1986년 이전까지는 동구권에만 존재하는 개념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미군의 작전술 개념의 도입과정에서 글랜츠를 비롯하여 소련군의 작전술을 연구한 사람들이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걸프전과 소련의 군사행동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소련 군사사 연구의 거장 존 에릭슨(John Erickson)이 “스베친(Svechin) 소장, 이세르손(Georgii Isserson), 그리고 투하쳅스키(Mikhail Tukhachevskii) 육군원수는 (미군에게) 그들의 저작권을 침해당한 것을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 큰 찬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전반적으로 이 두 작전의 유사성을 논하고, 또 만주 작전에서 도출된 주요 요소가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고찰하는 것은 걸프전쟁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틀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국내에서 오랫동안 군사사적 통찰대상이라기 보다는 한반도의 분단과 북한 정권의 수립배경으로 다뤄졌으며 순수히 군사적으로는 생소한 작전이기도 한 만주작전(국내에 출간된 제2차 세계대전사 통사들은 만주작전에 분량을 최소한만 할애한다)을 사막의 폭풍 작전과 함께 작전준비과정의 전구사령부 구성과 병력배치, 기만의 수행, 그리고 작전술적 기계화전력을 통한 주공과 적의 고착을 적으로 한 조공을 통한 적의 포위를 중점으로 분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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