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에 대한 편견과 그 극복-1

PKKA | 전쟁사 | 조회 수 127 | 2020.04.23. 10:09
서문
 
* 이것은 지난 2016년 역사밸리 발표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추레한 복장의 병사들이 기차를 타고 강 근처의 역에 도착한다. 흡사 가축이라도 수송하는 것처럼 짚이 깔린 화물수송칸에 빽빽히 들어차서. 병사들이 도착한 곳은 전장이고 이들은 곧장 전장에 투입된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총은 얼마 주어지지 않는다. 돌아오는 말은 총이 없는 병사는 쓰러진 전우의 총을 잡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병사들은 수송선에 우겨 넣어져서 강을 건너 전장인 도시로 향한다. 적의 급강하 폭격기가 급강하하면서 기관포와 폭탄을 퍼붓자 겁에 질린 병사 몇이 배에서 뛰어내린다. 그러자 장교들이 그들을 사살한다. 그렇게 강둑에 도착한 병사들은 곧장 적진으로 돌격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명령을 따른 병사들은 적의 화력에 순식간에 사살당하고 상황을 버티지 못하는 병사들은 후퇴하려 한다. 그러나 그 뒤에도 갈 길은 없다. 아군의 총이 후퇴하는 자신들을 사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병사들은 돌격만 하다 허무하고 비참하게 죽어간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그렇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에너미 엣 더 게이트>(2001)의 도입 장면이고 또한 영화의 장면을 거의 그대로 옮겨온 FPS 게임 <콜 오브 듀티 1>(2003)의 소련군 미션 도입부의 연출이다. 영화와 게임의 두 장면에서 상술한 장면은 영화와 게임의 전체 시간으로 볼 때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두 작품은 관객과 게이머에게 소련군에 대해 확실한 인상을 심어 준다. 전략과 전술이 없다시피 하여 무조건 병사들을 돌격시키는 무지함과 비효율성, 명령을 있는 그대로 수행하고 유연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는 경직성, 빈약한 무장의 병사들이라도 전장에 투입시키는 비정함과 냉혹함, 그리고 후퇴하는 아군을 돌려세우기 위해 아군을 사살하는 잔인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군대라는 인식을 말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에게 한번 물어 보겠다. 
 
위의 영화와 게임에 나온 장면은 정말로 진실인가?
 
답은 일단은 '그렇다' 이다. 영화 속의 장면 자체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소련군의 저격수 바실리 자이체프는 제284 소총병 사단 소속이었는데 실제 그 사단의 3개 소총병 연대 중 1개 연대만이 소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군의 소총병 연대의 단대호는 네 자리 수가 넘어간다는 점에서 소련군의 모든 소총병 연대들이 1942년 말에 그런 상황이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감독과 각본가에게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 속 장면은 실제 소련군 전체에서 지엽적인 상황이었음에도 관객들에게 그 상황이 전체 소련군의 상황이었던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 연출로 관객들은 소련군에 대해 상술한 시각적인 인상을 받게 되었고 그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소련군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단지 21세기 초의 영화와 게임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18년부터 1991년까지 존재했고 그 후신이 있는 소비에트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근원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직후부터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뿌리가 깊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현대 제2차 세계 대전사를 다루는 상당한 양의 역사서들과 매체들로부터 확대되고 재생산되어 흡사 그게 소련군의 실상이자 진실로 기정사실화 되었다. 서구 대중이 그런 인식을 진실로 알게 됨에 따라 소련군은 완벽히 부정적 존재로만 남게 되었다. 상상력 없이 단순한 정면공격밖에 모르는 군사술(=용병술), 독일군의 총과 독전대의 총 사이에 껴서 벌벌 떠는 병사들, 무능하고 경직된 지휘만 하는 지휘관, 안전한 곳에서 잔소리만 하는 정치위원, 시체의 산을 이루면서도 계속 진격하는 부대들, 그리고 압도적으로 밀려오는 소련군을 상대로 효율적이고 멋지게 싸우는 독일 국방군, 이게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 전선, 소련과 현대 러시아 및 러시아 외의 구 소련 구성국들이 '대조국 전쟁'이라 부르는 전쟁과 소련군의 군사술에 대한 서구 사람들의 대체적인 인식이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소련군 전체와 소련군의 군사술에 대판 고정관념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역사 서술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시청각 매체에서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인식의 근원이 무엇이고, 또 어떻게 공고화되고 대중화되었으며, 또 학술적 수준에서 어떻게 극복되었는지 여기서 논하려 한다. 
 
 
편견은 무엇인가
 
역사적 현실을 보는 관점에는 필연적으로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틀을 만들거나 유지하려 하지만 다양한 요소들이 사실을 왜곡시키고 역사를 보는 부수적인 관점을 만든다. 이 과정은 필수불가결적이고 역사학자들의 전문성과 원칙에 도전하고 있다. 가끔 이 도전은 총체적으로 극복되기도 한다.
 
역사적 객관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잠재적인 요소는 편협함이다. 편협함은 사람이 역사를 고려하고 보는 시야를 좁게 만들고 역사를 보는 사람과 관계없는 나라나 지역의 역사를 왜곡되게 보이게 한다. 편협함은 역사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반응하기도 하는 것이다. 문화적, 이념적 차이는 이 경향을 서로 극단에 서 있는 국민들의 관점 차이를 악화시킨다.
 
역사적인 계산이 깔린 사료들의 문제는 편협한 관점이 등장하는 데 공헌했다. 역사학자들은 가지고 있는 사료를 사용했고 그 사료가 제한되고 그들의 관점을 좁히는 것이라도 사용했다. 뛰어난 학자들은 이 한계를 알아챔으로서 과거를 재구성한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편협함이나 좁은 시야는 편견으로 계획적이거나 계획적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계획적이지 않은 편견은 편협한 관점과 똑같은 압력을 낳는다. 
 
의도적인 편견은 정계, 종교계, 재계와 같은 외부 기관의 영향의 산물이거나 역사학자들 스스로의 이념적, 정치적 믿음으로 만들어진다. 편견, 특히 계획적인 형태의 편견은 더 복잡하고 더 치명적이기까지 한 편견은 단순한 편협함의 관점보다 더 위험하다. 편협함은 학자들이 더 폭넓은 사료를 접할 수 있음에서 극복할 수 있지만 편견은 학자들이 사료를 취사선택하고 자신들이 미리 받아들인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료를 배재함으로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소수의 20세기 사건들만이 편협함과 편견에서 벗어났다. 금세기에 가장 중요한 기간에 심대한 편견이 나타난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동부 전선, 독소 전쟁이고 편견이 나타난 조직은 노동자-농민의 붉은 군대, 곧 소련군이었다. 엇갈리는 관점, 편협함, 그리고 철저한 편견은 모든 부분에서 군사사를 흩트려놨고 몰이해와 적개심을 오랫동안 지속되게 했다. 미국의 학자이자 평생 이 분야를 다뤄 온 데이비드 M. 글랜츠는 자신의 연구에서 그러한 편견들이 무엇인지 이렇게 정리했다.
 
- 기상 상황이 계속해서 독일의 작전술적 목표 달성을 막았다.
- 소련군은 전쟁 내내 작전 수행 시 독일군에 대한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가졌다.
- 소련군의 인력은 계속된 손실을 무시하고도 끊이지 않았다.
- 소련군의 전략과 대규모 작전 지도력은 뛰어나지만 낮은 수준의 지도력은 떨어진다.
- 소련군의 작전 계획은 경직된 것이었고 모든 수준의 작전 수행은 상상력이 없었다.
- 소련군은 가능하면 기동보다 물량으로 성공을 꾀했다. 소련군은 포위 작전은 될 수 있으면 피했다.
- 소련군은 2개 제파로 작전을 하며 제파 사이를 연결해 주는 병력은 없고 직선 축선으로만 공세를 한다.
- 무기대여법은 소련의 승리에 결정적이었다. 무기대여법이 없었다면 소련은 붕괴되었다.
- 히틀러는 패배의 전적인 원인이다. 히틀러가 아닌 군사전문가들이 독일의 초기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생긴 '등뒤의 칼' 전설의 또 다른 형태다.)
 
이걸 본 독자들 중에는 글랜츠가 명시한 편견들 중 편견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특히 무기대여법) 하지만 여기에서는 국내에서도 소수만 제대로 아는 사안이 아닌, 최소 1990년대까지 이미지로서 만들어진, 더 대중적인 편견을 다루고 있으며 그 이후의 학술적 연구를 통한 사항은 반영하지 못했음을 먼저 알려드린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후의 연구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직 인식이 1990년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그래서 비판의 대상을 그 이전 시기의 이미지로 잡아야 했다.
 
이러한 편견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보려면, 최소 18세기 서유럽 세계가 러시아를 어떻게 보고 받아들였는지 부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러시아공포증의 발흥
 
러시아의 이반 4세(일명 이반 뇌제)가 영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무역을 시작하면서 서유럽 국가와 러시아간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영국 상인들은 모스크바에 무역회사 “모스크바 상사”를 설립하고 러시아와의 무역에서 자국산 직물과 수공업 제품을 판매하고 러시아산 농산물을 사들였다. 러시아의 동란 시대에 잠깐 멈췄던 양국 간의 무역은 러시아가 안정을 찾은 후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두 나라 다 이 무역으로 공동의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18세기 중반부터 영국 대중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러시아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대북방전쟁에서 스웨덴을 패퇴시켜 북유럽의 패자로 등극한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가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었다. 그 유언에 따르면 표트르 1세는 러시아의 국가전략은 힘의 추구고, 그 힘은 군사력으로 달성할 수 있으며, 군사력을 통한 정복과 공격적인 영토 확장이 러시아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후손들에게 가르쳤다. 영국 왕실이나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문서의 유행은 러시아 국가와 러시아인들이 기본적으로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며, 군사적 충돌도 서슴지 않는다는 위험한 사람들이란 인식을 영국인들 사이에 퍼트렸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에 따라 러시아와 영국이 언젠가 충돌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공포증(Russophobia)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일명 “표트르 대제의 유언”은 프랑스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인들 또한 러시아를 그렇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의 프랑스 왕실은 러시아가 7년 전쟁에서 보여준 일방적인 동맹 이탈과 프로이센과의 단독강화 때문에 적대감정이 강한 상태였다. 
 
그리고 일명 “예카테리나 2세의 발칸 프로젝트”라는 문서가 나돌기 시작했다. 예카테리나 2세가 발칸 반도를 러시아의 핵심이익이 달린 곳으로 판단하고, 발칸 반도를 투르크나 오스트리아로부터 빼앗고 그곳을 러시아가 차지해야 한다는 인식을 국가시책으로 삼았다는 것이었다. 이는 “표트르 대제의 유언”으로 형성된 러시아인이 호전적이고 침략을 추구한다는 인식을 더 강화시켰다. 
 
그러나 현대의 서지학적 고찰을 봤을 때, 두 문서 다 조작된 위서였다. 표트르 대제는 그런 유언을 남긴 적도 없고 예카테리나 2세는 그런 계획을 세운 적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문건은 신빙성 있는 자료이자 러시아를 이해하는 틀로 유행했다. 정작 당시 러시아의 지도층은 영국을 주요 무역 파트너로 보았고, 프랑스는 문화적 동경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러시아 귀족들은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을 교양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열린 빈 회의에서야 이 괴문서들의 존재를 알고 아연실색했다. 알렉산드르 1세는 빈 회의에서 그런 문건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러시아는 절대 이 문건들에 실려 있는 데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납득시키려 애를 썼지만, 이미 형성된 인식을 쉽게 무너트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1860년대에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의 칸국들을 무너트리고 중앙아시아를 정복하면서 영국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의심을 부추겼다. 영국은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침공이 영국령 인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았고, 이는 러시아와 영국 간의 외교적 갈등, 일명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되게 하였다. 그러나 사실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은 인도를 위협할 의도도 아니었고, 당시 인도 총독부와 주둔군 장교들이 위협을 과장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호전적이고, 심지어 “몽골 핏줄이 섞인” 야만적이라는 인식은 이 외교적 갈등들을 계기로 더욱 서구 대중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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