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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의 서베를린 - 챕터 3 : 베를린은 언제나 흐림 (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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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Sunny Day : West Berlin

 

Chapter 003 : 베를린은 언제나 흐림.

 

 

 

* * *

 

(EST; 동부 표준시)

 

1989년 5월 10일 10:11 AM

 

워싱턴 D.C. 펜타곤 지하 상황실

 

* * *

 

   “극동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말에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음을 느낀 합참의장은 말문을 열었다. 동북아의 방위태세의 핵심은 역시 요코스카에 전개된 제 7함대와,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그리고 괌에 전개된 기타 공군 및 해병대 전력들이 핵심이니 해군 제독이기도 한 그가 말하는 것이 역시 자연스러웠다.

 

  “각하께서는 당분간 유럽에만 집중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래도 다들 백악관 내부 회의실보다는 덜 익숙한 편인 펜타곤 지하 상황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서 나온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원탁은 똑같아서 이질감을 한 층 더해주고 있긴 했지만, 이 광경을 보게 된다면 흥미로워 할 터인 민간인들이 보기엔 되려 익숙할 것 같았다.

 

  이 와중에 합참의장은 속으로, ‘동북아시아’(Northeast Asia)라는 단어를 사용할지, 아니면 방금 대통령이 사용한 19세기 영국인들 스타일의 ‘극동’(Far East)이란 단어를 사용해야 할지 살짝 고민하다가, 보다 현대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영국인들은 그들이 주도하는 대전략의 부품에 불과했다.

 

  “현재 동북아의 소련의 군사적 움직임은 딱 전시 상황의 경계 태세 수준입니다. 러시아인들 뿐만이 아니라, 북한 역시 조용합니다.”

 

  중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굳이 말 해줄 필요도 없을 터였다. 이번 전쟁과 자신들은 전혀 상관이 없으며, 중국은 중립을 선언한다는 공식 발표는 몇 시간 전에 모두가 접한 소식이었으니까.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추후 소련이 극동에서 군사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지는 않을까요? 직접은 아니더라도, 김일성을 꼬셔서 북한 위주의 군사 도발을 감행 한다면 러시아인들의 군사적 부담도 적을 텐데.”

 

  백악관 비서실장의 물음은 군사적인 식견이 없는 자들로서는 충분히 생각해 볼 리스크였다. 만약 유럽에서의 3차 세계 대전(회의 참석자들 모두 이제는 이 전쟁을 자연스레 3차 세계 대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는 이 때에 동북아에서 군사적인 충돌이 벌어진다면 전력의 분산이 일어날 것은 뻔 할 테니까. 합참의장은 군사 경력자들을 대표해서, 이들을 계몽해 줄 필요성을 느꼈다.

 

  “큰 문제는 없습니다. 중국의 지원이 배제된 북한 주도의 군사 도발이라면, 우리는 예전부터 유럽과 한국에서의 양면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으니까 기존 계획대로 육군의 7사단, 9사단, 25사단과 18공수군단을 한국에 전개 시키면 됩니다. 저희가 이전부터 계산해 두고 있던, 허용 범위 안쪽인 셈이죠. 항모 몇 개가 덜 배치되긴 하겠지만, 그거야 주일 미 공군과 7함대가 조금 더 분발해 주면 될 일입니다.”

 

  “해당 병력들이 유럽에서 더 필요한 상황이 오게 된다면?”

 

  “빼도 큰 문제는 없을겁니다. 한국군은 비록 현대화되지는 않았지만, 북한과의 전면전을 40여년 간 준비해 온 대규모 지상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설령 소련군이 같이 내려온다면 한국인들에겐 재앙이겠지만… 전략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죠. 설령 한국이 점령 되더라도 일본을 잃지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는 데다가, 녀석들이 동북아에 돌린 전력 공백만큼 우리는 유럽에서 숨통이 트이게 되니까요. 차라리…”

 

  “다른 위협이라도?”

 

  어느새 끼어든 국무부 장관 베이커(James Baker)가 물어보았다. 

 

  “동북아 문제라면 한국보다는 일본을 걱정하는 편이 좋을겁니다. 러시아인들 역시 바보가 아닌 이상, 별로 충실하지도 않은 동맹국의 소원 성취보다는 ‘불침 항모’의 미 공군 함재기들이 훨씬 눈엣가시로 보일겁니다.”

 

  “일본이 침공 당할 경우 방위에는 문제가 없겠습니까?”

 

  “일본의 해공군 전력은 그에 대비해 육성되었고, 그럭저럭 믿을 만한 수준이지만, 지상 전력이 형편 없는 게 문제입니다. 거기다 일본 본토의 북부 지방은 소련과 굉장히 근접해 있어서, 항공 지원을 받으며 북부 지역에 상륙한다면 대책이 없습니다.”

 

  “일본과 소련의 경계가… 홋카이도라고 했나?”

 

  “맞습니다.”

 

  대통령의 물음에 합참의장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딕, 오키나와의 해병 일부를 홋카이도로 재배치 하는 건 어떨까? 자위대만으로는 영 못 미더운데.”

 

  “그렇지 않아도 보고 드릴 참입니다. 방금 1진이 항공기로 출발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건의 드릴 것이 하나 있는데… 18공수군단이나 7사단과 9사단, 그리고 25사단 넷 중 하나를 일본 본토, 가능하면 홋카이도에 배치하는 쪽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육군이나 합참, 태평양사령부(United States Pacific Command; USPACOM)과는 합의가 된 사항입니다. 추이를 지켜 보다가, 일본이나 한국에서의 군사 도발에 능동적으로 대처가 가능하도록 말입니다.”

 

  “그 문제는 일본이나 한국 정치인들과도 이야기를 해 봐야 할 사안 같으니 당장은 뭐라 말하기 힘들겠군, 다만 빠른 시일 안에 알아 보도록 하지.”

 

  그 뒤에는 말이 나온 김에,차라리 한국에서 이쪽이 먼저 소련에 대한 군사 도발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겠지만, 굳이 남한의 상실 같은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급한 상황은 아니기에 금방 기각되었다.  그리고, 대화의 포커스는 다시 유럽과 러시아에 집중되었다.

 

  “아군은 이제 막 초기의 혼란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아직 판의 주도권은 러시아인들에게 있습니다. NGP(North German Plain, 북독일평원)의 영국군과 독일군은 이제 간신히 한 숨 돌린 수준이고, 풀다 갭은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체니(Richard B. Cheney) 국방장관의 표정은 아까 동북아 이야기를 할 때와는 다른 우거지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수해야 해. 풀다 갭의 상실은 프랑크푸르트의 상실을 의미하고, 예비대가 없는 현 상황에서 프랑크푸르트의 상실은 최악의 경우엔 북부 전선과 남부 전선의 분리로 이어질수도 있소.”

 

  “문제는 병력 부족입니다.”

 

  전직 CIA 국장답게 전략적인 관점에서의 식견은 상당한 편인 대통령의 날카로운 지적에,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지이기도 한 국방장관의 표정이 한층 더 우울해지며 심각한 문제를 입에 올렸다.

 

  “리포저 병력 동원이 제대로 이뤄지기 전에 한 방 먹는 바람에, 예비 병력이 지독하게 부족합니다. 말씀하신 풀다 갭의 방위를 위해 지금 5군단이 다소 여유로운 7군단에게서 병력 지원을 받아가며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금 동원 병력 전개는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있지?”

 

  “걸음마 단계입니다. 정규군 병력의 경우는 1진이 대서양 상공에서 유럽으로 향하고 있지만, 예비역 소집이 문제입니다. 차라리 1914년식 동원 계획이 그리울 지경입니다.”

 

  “전시 동원 계획이 그 모양이었으면 아마 62년에 이미 한바탕 붙었겠지.”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27년 전의 해프닝은 결국 임시 땜질에 불과했었나. 미국과 소련의 정치적 외교적 대립이 계속되는 한 결국 피할 수 없는 문제였었나 하는 생각이 속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몇 시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사소한 문제가 되어버린 한 도시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베를린은 지금 어떻게 됐지?”

 

  “심각합니다, 각하. 빨갱이들의 통신 차단의 여파로 자세한 사항은 확인이 힘들지만, CIA의 보고에 의하면 남부의 우리 베를린 여단은 완전 붕괴 상태입니다. 영국군과 프랑스군 역시 지금까지 버틴 것이 기적입니다.”

 

  “예상 밖이군. 그래도 24시간 이상은 버텨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치밀한 계획이라는 증거겠지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이제 소련이 어떻게 쥐도 새도 모르게 동원을 마치고 선공을 가했는지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이런 대대적인 침공 작전은 절대 적절한 시기에 떨어진 병력동원 없이는 불가능할 일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니 뭐니 해 봐야 결국 통제 국가는 통제 국가구나, 하는 생각을 머리 속으로 되뇌이면서, 역시 소련이라는 나라는 만만하게 봐선 안될 호적수라는 점을, 상기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합참의장 크로우(William J. Crowe) 제독의 자리로 새파랗게 젊은 부관이 조용한 걸음으로 다가와 조용하게 속삭였다. 합참의장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테이블의 다른 자리들을 둘러보니, 국방장관이나 CIA 국장 같은 다른 몇 명 역시 그들의 측근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거나, 전해 듣는 중 인 듯 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추스른 합참의장이 대통령에게 침착하게 보고를 올렸다.

 

  “대통령 각하, 큰일입니다.”

 

  “이번엔 무슨 일이 벌어졌지?”

 

  “소련 영해에 인접한 북극해에서 전략 핵 순찰을 돌고 있던 아측의 SSBN 한척과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격침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직 상황을 전파받지 못한 상황실의 NSC 멤버들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올 것이 너무 빨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참의장의 주먹 쥔 오른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체니가 그의 측근을 시켜 전략공군 사령관을 회의실 앞 대기실로 부르는 동안, 크로우 제독은 굳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볼 것도 없습니다. 핵전쟁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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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글쓴이 2018.06.02. 17:11
점심은평양저녁은신의주

본편 2부 마지막 시점에서 20시간 후의 상황입니다. 다음엔 다시 20시간 전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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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 2018.06.02. 18:42

기대되는 소설이네요, M-1A1 Abrams가 등장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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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글쓴이 2018.06.02. 18:45
흑표

아뇨. 89년 5월 초에는 베를린여단에 아슬아슬하게 미편제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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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 2018.06.02. 18:48
22nd

그러면 걸프전에서 활약한 M-270 MLRS도 들어오지 않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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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글쓴이 2018.06.02. 19:49
흑표

94 야전포병대대 예하 찰리포대의 M109 자주포 몇 문이 있었습니다. MLRS가 실전배치된 시기이긴 했지면, 역시 베를린여단에는 없었습니다.

 

애시당초 동독 영내 한복판의, 전쟁이 벌어지면 백퍼센트 전멸 예정인 부대에 자주포라도 배치해둔게 신기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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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 2018.06.02. 20:05
22nd

베를린여단장의 계급은 당연히 대령이겠죠? 미군의 여단장은 대령 계급이 맡는 걸로 압니다. 우리나라 독립여단(군단포병, 독립기갑여단, 공병여단)의 장은 준장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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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글쓴이 2018.06.02. 20:07
흑표

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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