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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의 서베를린 - 챕터 2 : 서베를린은 왜인지 흐림 -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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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 1
1989년 5월 9일
* * *


  “앨런.”

  “왜.”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통 일까요.”

  “너 그 소리 벌써 네번째야. 사무실 사람들이 돌아오면 좀 확실해지겠지.”

  슬쩍 옆을 보니 코왈스키 중사는 읽던 소설책을 내려놓고 갑자기 소파에 앉은 자세에서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있던 MP5 기관단총을 들고 거실을 떠나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 팀장인 에드와 R팀의 팀장인 제이미, 그리고 정보분석관인 제인이 오피스에 불려간 지금 안가에 남은 인원들중 최선임자인 앨런이 어딜 가냐고 묻자, 이미 계단 위로 올라가있던 코왈스키는 아래쪽으로 몸통만 내밀고는,

  “개인화기 바꾸러 갑니다.”

  라더니만, 잠시 뒤 MP5는 건케이스에 담은 채로 어깨에 메고서, 양손에는 CAR-15을 파지한 채 성큼성큼 아래로 내려와 MP5와 방탄복 위에 차고 있던 탄입대같은 MP5와 연관된 장구류들을 해체하여 거실 소파 한구석에 몰아놓고 다시 윗층으로 올라갔다. 군장이라도 다시 챙기려나 싶었다.

  일단 비상이라길래 모두들 자고 있던 녀석들까지 깨워서 외출복차림에 방탄복과 장구류만 걸친 채 거실 앞에 모여들었지만, 그 뒤로는 평소 자주 그래왔던 것 처럼 지루한 대기의 반복이었다. 

  모두들 짝을 지어 돌아가면서 선잠을 즐긴다던가, 독서를 한다던가, 여러가지 자기만의 방법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TV에선 별로 재밌는건 나오지도 않고 있었지만, 성인방송이 나오기에 제인의 눈치를 볼것도 없이 누군가가 채널을 그쪽에 맞춰놓고 있었다. 

  TV에선 조금 나이들어 보이는 노련한 느낌의 여자가 작위적인 교성을 흘리면서 남자를 아래에 깔아뭉개고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흠, 가슴은 제인보다는 작아 보였다. 별로 재미도 없는 지라 그냥 영화 채널로 돌려놓고 보니 왠 2차 세계대전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U보트 함장을 연기하는 배우의 꾀죄죄한 몰골이 제법 군인처럼 보였다. 

  “넌 TV에서 까지 재미없는 군바리 얘기를 보고 싶냐. 차라리 아까 보던 게 낫겠다.”

  “우리네 이야기라면 안 보죠. 근데 쟤들은 망할 나치 새끼들 이잖아요. 그리고 아까 것 보단 나아 보이는데요. 솔직히 아까 걔는 너무 삭았어요. 매일 보고사는 제인이 훨씬 낫지. 가슴도 더 크네.” 

 
  제인이 낫다는데는 동의를 하는 것 같긴 해서 다행이다. 운동하는 제인을 보면 누구라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제일 전화기와 가까이 있던 R팀의 저격 담당인 로드 <스카이랩>(Lord <Skylab>) 상사(MSG)가 바로 수화기를 받아들었다. 무어라 이야기를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그가 모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때마침 2층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오고 있던 코왈스키는 그의 시야에 없었지만, 코왈스키도 그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별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제이미랑 에드랑 제인이 오고 있단다. 차고로 가 보자고.”

  CCTV를 보던 나는 승용차가 후진 주차로 들어올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차고 문을 열었다. 사실 내가 천천히 연 게 아니라 문이 천천히 열린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차 문이 쿵 하며 닫히고, 좀비처럼 세 사람이 흐느적 흐느적 기어나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자기네 방으로 돌려 보냈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뭐 새로 건진 이야기라도 있어요?”

  “없진 않지. SHAPE(Supreme Headquarters Allied Powers Europe;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에서 0310시를 기해서 독일에 주둔한 전 장병들에게 비상 경계령을 하달한다는구만. 우린 안 시켜도 잘 하고 있으니까 별 걱정 안 해도 돼.”

  나의 기다릴 줄 모르는 질문에 서베를린에 죽치고 있는 우리 델타들 중 가장 두뇌가 명석한 축에 속하는 제인이 대답해줬다. 

  “워치콘(WATCHCON)이나 데프콘(DEFCON)은요?

  “워치콘은 최고 등급이지만 데프콘은 아직 그대로야.”

  아직까진 필요 이상으로 긴장할 것은 없다는 이야기인가 싶다. 그쪽이 우리에게도 좋을 것 같고. 다만 오피스의 정보부서 녀석들은 한동안 좀 바쁠 것 같다.

  “그 외에 추가로 들어온 모스크바 소식은 없어?”

  다같이 거실로 들어오고 나서, 에드가 소파 위에 몸을 부릴 때 쯤 앨런이 말을 꺼냈다. 소파에 몸을 기대면서 멍하니 TV에 시선을 돌리던 에드가 말을 이었다.

  “테러 진압이니 이런것보단 쿠데타가 유력하고, 초기에 내부에서 사태 보고를 해왔던 휴민트들의 정보를 종합하면 쿠데타는 성공한 것 같다는 구만. 다만 쿠데타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아직 분석이 안 되고 있어. 아마 날이 몇 번 밝아져야 좀 쓸만한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아.”

  “고르비 그 친구는 괜찮대?”

  “생사불명.”

  “내가 아는 좋은 러스키들은 모두 죽은 러스키들이 되겠구만.”

  앨런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촛점없이 멍하니 TV 화면에 눈을 대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근데 TV 좀 다른거 보면 안되냐?”

  그리고 전능하신 팀장님 가라사대, “찬성.”

  믿었던 말동무마저, “저도 그렇슴다. 틀어 줄 거면 영어 더빙으로 나오던가.”

  아까 그 포르노 배우보다 확실히 나아보이는 제인은, “영화 채널 이거밖에 없냐?”

  믿었던 전우들의 배신이라니. 어우, 나중에 내가 직접 영화를 만들던가 해야지.
 
====================================================================================================
 
H팀 전우들의 가열찬 '특전 U보트'에 대한 혹평 덕에 저 세계에서의 블랙호크 다운은 한층 더 치밀한 변태같은 고증이 나올겁니다. 말레이시아군 장갑차들도 파키스탄으로 소속변경 당한 뒤 VAB가 대역으로 대신 출연하는 일 없이 제대로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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