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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의 서베를린 - 챕터 3 : 베를린은 언제나 흐림 -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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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놈들이 10분 간격으로 무전기를 붙잡고 상황을 보고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직후, 한 번 더 그 차례가 돌아왔다. 놈들이 무전기를 붙잡고 독일어나 러시아어로 상황을 보고한것을 확인 하자 마자, 9밀리나 .45구경 권총탄이 그 놈들의 머리통에 날아들었다. CAR15을 냅다 갈기기엔 소총용 소음기는 소음 감소효과가 MP5나 1911의 그것만큼 좋진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경계인원들을 정리하고 나자 우리는 다시 물 흐르듯 신속하고 매끄럽게, 미리 봐 두었던 두 진입지점으로 나뉘어 자리를 잡았다. 베를린 HRT의 H팀 총 인원이 네 명, R팀이 생존자 두 명, 거기에 현장요원같은 정보 분석관인 나,  CW2 제인 하코트 까지 합해서 총 일곱 명. 우리는 다시 세 명 네 명으로 나뉘었다. 가능하면 앨런은 조수 하나 선정해서 저격지원으로 빠지는 편이 좋았겠지만, 블록 안쪽에 자리한 건물이라 영 자리잡기가 애매했다. 창문마다 커튼이며 꽁꽁 싸매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기도 했지만.

 

  굳게 닫힌 문 앞에 진입대형을 갖춘 직후, 팔뚝에 옮겨 붙인 주머니에서 항상 몇 발정도 넣고 다니던 .45구경 실탄 두 발을 꺼내 방금 보초를 사살할때 사용한 소모량을 다시 탄창에 구겨넣었다. 이제 약실에 한 발, 탄창에 일곱 발. 완벽하군. 소음기를 분리한 뒤 권총을 다시 홀스터에 꽂고, CAR15을 손에 쥐었다. 이젠 은밀성이 아니라 화력이 중요하다. 

 

  건강검진때  사람 헛구역질 나오게 만드는 내시경을 연상케 생겨먹은 소형 카메라를 쑤셔넣어 내부 사정을 살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물건을 티나지 않게 쑤셔 넣을 만한 틈은 없어 보였다. 평소처럼 몇 일이나 몇 주 정도 여유를 두고 작전을 짤 수 있었다면 ‘내시경’은 물론이고, 건물 내부 청사진도 구해서 세세한 진입동선까지 다 짜 놓았겠지만,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였다. 문을 따기 전 까지는, 안이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완벽하게 맞는 비유가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왠지 ‘슈뢰딩거의 고양이’같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금 내겐 등짝밖에 안 보이는, R팀의 포인트맨을 담당하는 <노크> 페더슨 중사가 내 코 앞에서 목석처럼 굳어있었다. 코왈스키 중사가 브리칭 폭약을 문짝에 바르고 살짝 옆으로 빠졌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등 뒤에서, 에드 상사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전기 헤드셋으로도 들린다.

 

  “여기는 <이블>, 진입준비 완료. <램>, 상황 보고.”

 

  [ - <램> 입니다. 진입준비 완료. ]

 

  등 뒤에서, 에드 상사의 심호흡이 들렸다. 아무리 반복해도 절대 편해 질 수 없는 상황이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모두들 그럴 것이다. 훈련이든 실전이든 많이 해 본 짓이지만, 익숙하다고 긴장이 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갑자기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골목 어딘가에서 들렸다. 모두가 긴장하는 것이 공기로 느껴졌다. 나도 총을 시야와 같이 일치시킨 상태에서, 소리가 난 그 곳을 주시했다. 그 다음은, 음, 헛웃음이 나왔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심드렁하게 ‘Meow - ‘하고 이쪽을 눈을 껌뻑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고양이 생각하니까 진짜 고양이가 나왔네? 헛웃음이 안 나올수가 없었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다시 마음 속에 찾아왔고, 쿵쾅대는 심박도 조금 진정되었다. 물론 잠시 후에 문짝에 붙인 플라스틱 폭약이 터지고, 그 화약냄새가 콧구멍으로 스며들면 다시 원상복구 되겠지만 그래도, 아, 훨씬 낫네. 

 

  등 뒤의 ‘치프’, <이블> 에드 상사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육성과 무전기 헤드셋의 약간 잡음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집중하자. 일이다, 일.

 

  “셋에 간다. 셋, 둘, 하나, 브리칭, 브리칭, 브리칭.”

 

  익숙하지만 긴장되는 그 순간이 다시 찾아왔다. 전장의 안개가 누적된 듯 한 그 적막이 코 앞에서의 폭발과 함께 순식간에 걷혔다. 삶과 죽음이 0.1초의 판단력에 갈리는 심장이 쫄깃쫄깃한 그 순간이 다시 찾아왔다. 폭발이 걷힌 바로 그 짧은 순간, <노크>가 섬광탄을 한 발 더 까 넣고, 안에서 폭발음이 한 번 더 울렸다. 다음은 우리 차례. 로우 레디 자세로 슬쩍 늘어트려두고 있던 소총이 정위치로 올라갔다. 발걸음을 성큼성큼, 달리듯 속보로 치고 들어간다. 1초라도 늦을 수록 불리한 것은 우리들이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적은 서너명이었는데, 한 명은 벌써 내 앞에서 치고 들어가던 <노크>가 처리했다. 우물쭈물한 자세로 서 있던 건장한 체구의 시신이 풀썩 원래 앉아있었을 소파로 내려앉는것이 언뜻 보였다. 소음기탓에 한층 더 매캐해진 화약냄새가 연이은 폭발이 진동한 와중에도 새삼 내 후각을 자극했다. 아마 방풍고글이 없었으면 눈이 좀 매웠을거다.

 

  내 소총에 달린, 스웨덴제 도트 사이트의 붉은 광점이 KGB 국경수비대 전투복 차림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선 사내의 머리통 위에 올라갔다. 찰나의 순간, 숨이 조건반사적으로 멈췄다. 오른손 검지손가락에 약간의 힘이 들어갔다. 붉은 피보라가 순간적으로 꽃망울처럼 피어오르다 사그라들었다. 무언가가 자세를 낮추며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언뜻 보인것도 그 때쯤, 진입하자마자 재빠르게 안을 훓어 볼 때 확인 했던, 2층 계단 올라가는 길로 향하고 있었다.

 

  최선두에 있던 포인트맨, <노크> 페더슨 중사 역시 그것을 추격할 생각이었나보다. 후속 진입한 <이블>과 <스탈린> 둘이 1층에서 자리를 잡고 잔당 소탕에 주력할 동안, 우리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추격이래봤자 몇 발짝 떼지도 않은 상태였다. 섬광탄 터지고서 지금까지, 시간이 대략 5초에서 6초쯤 지났다.  

 

   그 상황에서 한 발짝 더 내딛어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려는 순간, 내 앞에 있던 <노크>의 손에 들린 MP5SD가 몇 번 더 낮은 발사음을 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셋중 최후미의 녀석 등짝에 구멍이 세 개, 탄착군이 죽여줬다는 것은 나중에 상황이 정리된 후에나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지금부터 수십 초 간은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심장이 쫄깃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찰나의 순간, 최선두의 체구가 작은 녀석이 뒤돌아섰다. 성인 남성 체구는 아니라 우리가 찾던 NSA의 샌님이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다. <노크>의 신체에 가린데다가 갑자기 그가 주춤하는 바람에 상대방을 제대로 조준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직후 이질적인 소음총의 연발사격음이 그 녀석 방향에서 들렸다. 

 

  난 그 직후에야 <노크>가 왜 주춤할 수 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좁은 계단이 아수라장이었다. <노크가> 사살한 빨갱이의 주검과, 앞서가고 뒷서거니 하며 가던 그 두 빨갱이 사이에 있던 남자 하나도 계단에서 굴러서 길을 막고 있었고, 그 위로 <노크>가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다. 졸지에 세 사람이 내 앞을 가로막아선 꼴이 되어버렸다.

 

  여차저차 헤쳐나가려고 허우적대던 불과 2초 3초 남짓한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노크>가 총에 맞았음을 깨달았다. 분명 빨갱이들의 소총탄도 막아줄 더럽게 무거운 방탄철판을 방탄복에 끼워놓았건만 아무런 보람도 없었다. 부릅뜬 눈이 찰나의 순간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진심으로 걱정되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다 내팽개치고 방탄복을 벗겨서 상처부위를 찾아 적절한 응급처치를 할 상황도 아니었다. 본인도 잘 알고 있을테니 원망은 안 하겠지. 끝날 때 까지 죽지만은 않았으면…….

 

  여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있던 이유는, <노크>를 쓰러트린 그 녀석은 단순히 아래의 발을 묶는데만 만족하고 2층으로 몸을 옮겼기 때문이었다. 동맥경화가 온 혈관처럼 막힌 계단에서 허우적 댄 것 치고는 비교적 빠르게 그 난장판을 헤치고 올라왔지만, 아마 그 녀석이 작정하고 조금만, 그러니까 한 3초만 더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 나도 페더슨같은 꼴이 났겠지. 하지만 녀석은 너무 조급했다.

 

  계단을 막 다 올라서서 2층에 다다르자, 우왕좌왕하는 몇놈이 우르르 내려오려다 나랑 2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마주쳤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방아쇠만 당기면 되지만 녀석들은 총을 그냥 개머리판의 가느다란 쪽이나 총열덮개 부분을 잡고 들고만 있었다. 앞서도 말했듯, 지금같은 근접전 상황에선 0.1초의 차이로 목숨이 오락가락한다. 지금도 그 사소한 차이가 생사를 갈랐다. 방아쇠를 당기는 검지손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복도가 대충 정리된 후 의식적으로 주변 시야 확인 중, 어느 방 문가로 도망치는 녀석의 등짝이 눈에 들어왔다. 격발 두 번, 탄착군은 심장 주위에서 깔끔하게. 그 직후, 오한이 돋았다. 방금 전의  그 문가에서 총과 머리만 빼꼼 내민 무언가가 보였다. 군인답잖은 긴 머리. 아까 계단 올라갈 때 그 녀석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무릎 쏴 자세로 전환시켰다.

 

  아까의 그 소음총 연발사격음과 동시에 뭔가 씽 지나가는 느낌이 전해졌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다시는 겪기 싫은 그런 경험이었다. 방금 총알이 내 머리 위로 휙휙 지나간것이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도록, 밥만 먹고 총만 쏘며 몸에 새긴 습관이 다시 한 번 내 목숨을 살려줬다. 

 

  다음은 내 차례다 이 개새끼야. CAR15의 캐링핸들 위에 올라간 조준경의 경통 안에 있는 붉은 광점이 녀석의 머리통 위에 찍혔다. 검지손가락에 다시 힘이 들어갔는데, 반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찰나에 두 번은 깔짝거렸는데. 어 씨발, 내 차례인 줄 알았는데. 벌써 탄창 안의 스물 여덟발이 다 떨어졌구나. 식은땀이 목덜미에서 등허리를 타고 쭉 흘러 팬티까지 적시는게 새삼 느껴졌다.

 

  그 짧은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도 몸은 반사적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레 움직였다. 소총에서 두 손을  떼고, 아까 전처럼, 반사적으로 오른손이 허벅지의 홀스터를 향해 움직였다. .45구경 자동권총의 나무 그립의 질감과, 쇠의 차가운 느낌이 손바닥에 짜릿하게 퍼졌다. 본능이 이성에게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사인을 주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기적처럼 사격이 멈췄다. 찰나의 순간, 날 잡아 죽이려던 저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일이 자기 뜻 대로 안 돼서 당황한 사람의 눈치가 역력했다. 아, 저놈도 총알이 떨어졌구나. 녀석은 들고 있던 총을 집어 던졌지만, 동작에 군더더기가 많은 것이 그 찰나의 순간에도 눈에 들어왔다. 

 

  녀석이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어느새 손에는 총 대신 단검이 하나 들려있었다. 아마 녀석이 달려드는걸 보고 총을 뽑으려고 했으면 내가 총을 겨누기도 전에 녀석의 칼이 내 몸 어딘가에 박혔겠지만, 먼저 소총의 탄약이 떨어졌던게 전화위복이 될 줄이야. 잡아뽑은 권총을 그대로 양손에 움켜쥐고 두 팔을 뻗었다. 정조준을 하진 않았지만 급작사격 한 두번 해본게 아니다. 맞출 수 있다. 검지손가락에 힘이 두 번, 익숙한 .45구경의 반동의 감각이 손에서 팔로, 어깨로, 점차 퍼져나가며 전신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찰나의 순간, 불과 몇 초의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이 나와 저 녀석 둘 사이에 여러번 오락가락했다. 요기 베라가 말했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나는 살아 있다, 이 니기미 씨부랄것아. 더블탭이 상반신에 제대로 들어가고, 작은 체구의 빨갱이녀석은 그대로 대자로 뻗어버렸다. 나는 정조준으로 전환하며, 표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조금 전에, 내 뒤에서 아군 둘이 쏜살같이 나타나 앞질러갔으니 당장 주위를 확인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Соня!”

 

  발걸음을 내딛는 와중에 언뜻 저 끝에서 들리는 안타까운 어조의 외침. 내가 총구를 돌리기도 전에 날 앞서가던 둘이 그쪽에다 대고 방아쇠를 연거푸 당겼다. 나는 아직도 꿈틀대는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갔는데, 신음을 흘리던 녀석이 꼼지락대던 손에 수류탄이 들려있음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머리통에 총알 한 발을 더 박아버렸다. 그 직후에야 알아차렸다.

 

  “씨발, 여자잖아?!”

 

  그것도 그냥 여자가 아니었다. 오른쪽 눈가  바로 아래에 생긴 0.45인치 지름의 사입구 탓에 기묘한 모양새가 됐지만, 제법 귀엽게 생긴, 꽤 남자들한테 인기있게 생긴 그런 예쁜 여자애였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쪽팔림이었다. 남자들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평소 성격보다도 더 거칠고 드세게 살아왔건만, 남자들 잡아먹으며 올라온 자신의 명줄을 끝낼 뻔 한게 여자라는 생각에 새삼 기분이 더럽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쪽팔리게시리…….

 

  “에이, 씨발, 쪽팔리게시리…….” 라고 입으로 툴툴대면서, 나는 멜빵으로 내 몸에 매달린 소총을 다시 고쳐잡았다. 빈 탄창을 제거하고, 바로 옆에 테이프로 붙어있던 새 탄창을 쑤셔넣으면서  반사적으로 ‘재장전!’을 외쳤다. 권총 탄창까지 새 것으로 교환한 직후, 나는 일을 마저 마무리지으려는데, 아래 층에서  “1층 클리어! 인질 확보!”라는, 건방진 맷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2층은 얼떨결에 내가 대부분을 정리한 모양새였다. 2층으로 올라와 방금 나를 지나쳐갔던 2인조인, <이블> 에드 상사와 <스탈린> 코왈스키 중사가 2층에서 잡은 녀석들은 두엇에 불과했다. 머지않아서, 우리는 다락방의 입구를 발견했다. 천장의 출입구 너머로 칼라시니코프만 아래 쪽으로 내밀고 대충 긁어대고 있었지만, 조준사격이 아닌 총알은 별로 무섭지 않았다. 

 

  코왈스키가 침착하게, 다락방의 입구를 향해 자동사격으로 탄창을 하나씩 자동으로 비웠다.  팔에 총을 맞은걸까? 잠깐 멈칫한 그 순간, 나는 다락방의 입구로 이미 안전핀을 뽑고 있던 세열수류탄을 한 발 까 넣었다. 안이 금방 조용해지고, 녀석들이 올라오며 걷어찬듯한 사다리를 다시 걸고 올라간 우리는 침침한 다락방 안을 CAR15의 총열덮개 아래에 달린 유탄발사기만한 전술조명으로 빠르게 구석구석 훓어보았다. 시신 세 구 외엔 특이사항은 없었다. 2층과 다락을 정리했노라고 에드가 무전기에 대고 상황을 전파한 직후, 지하 1층도 깔끔하다는 부팀장 <레이저> 앨런 상사의 목소리가 모토롤라제 휴대용 무전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생사가 찰나에 오가는, 익숙해지기 싫은 긴장되는 그 순간이 지나고, 다시 잡무의 순서가 다가왔다. 페더슨 중사의 사망 소식이 다른 쪽에서 진입했던 H팀의 포인트맨, 쿠퍼 중사에게 무전으로 전해진 게 그때였다. 낙심했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낼 여유도 없었다. 사방에 흩어진 전사한 적의 시체를 긁어모으고, 특이사항이 있는지 눈여겨 보아뒀던 것들도 찾으러 가며 다시한번 매의 눈으로 모든 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1층으로 모두가 모였다.

 

  <노크>의 영현 앞에서, 졸지에 모든 팀원을 잃어버린 라모스 하사가 이마를 왼손으로 짚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멍 한 표정을 띤 채,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자세로 서 있던 NSA의 화이트라는 녀석은 자신을 구하러 왔다 스틱스 강을 건너간 누군가의 주검에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쓸데없이 미안하다는둥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는 눈치없는 놈은 아닌게 맘에 들었다.

 

  “불쌍한 녀석. 방탄판이 아무 쓸모가 없었어…….” 앨런 상사가 허탈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중화기는 없어 보였는데, 뭐로 545도 막아주는 우리 방탄복을 뚫었을까? 짐작 가는거 있어?”

 

  그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인 내가 해답에 제일 가까웠다. 나는 방금 집 구석구석을 수색하며 수거해온, 아까 그 빨갱이 계집이 갖고 있던 처음 보는 총을  총을 모아놓은 데서 찾아 보여주며 말했다.

 

  “페더슨을 죽인 녀석이 들고 있던 총이야. 아까 버스 운전병 총상 기억 나? 방탄모 양쪽을 깔끔하게 관통시킨 물건이 이거 같은데.”

 

  “무성병기구만. 소음기는 탈착식이 아니라 일체형이고, 조작법은 전체적으로 AK랑 비슷해보이는데. 소총 측면에 어뎁터가 붙어있어. 조준경을 장착할수도 있겠는데, 빨갱이들이 도트사이트나 싱글포인트 사이트같은걸 쓴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고. 스코프를 사용할만한 사거리는 나온다는건가?”

 

  “그런 거 같습니다. 보십쇼. 탄약이 좀 독특하게 생겼습니다. 전체적인 형상은 소총탄에 가깝고, 탄피에 비해 탄자가 많이 굵어보이는데… 사거리도 이놈보단 많이 나오겠는데요.”

 

  빨갱이년이 차고 있던 체스트릭에서 이 총의 탄창을 뺴서 실탄을 살펴보던 쿠퍼 중사가 중얼거렸다. 본인이 들고 있던 무성병기인 MP5SD와 비교되는 모양이었다. 개인적인 호기심도 큰 듯 보였다. 저 녀석은 예전부터 저런데 남들보다 관심이 많던 녀석이니까.

 

  쿠퍼 중사가 이 총과 관련된 것들을 모아놓은 주요물품들 사이에서 찾아보는동안, 앨런 상사는 라모스를 데리고 가끔 눈에 띄는 슈타지의 문건들을 적당히 분류해서 닥치는대로 쓸어담는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 팀에서 가장 러시아어가 능통한 코왈스키 중사는 적들의 주파수가 세팅된 놈들의 무전기들을 여럿 모아놓고 귀를 기울이며 무언가를 수첩에 옮겨적고 있었다. 나와, 팀장 에드 상사는 NSA의 화이트에게 제일 궁금한걸 물어봤다.

 

  “비화기 코드, 언제까지 유효합니까?” 의례적인 인사와 자기소개를 마치자 마자 제일 먼저 위성통신 비화장비의 코드부터 물어봤다. 생각도 못한 부분의 질문에 자신을 ‘길버트’라고 소개한 NSA의 얼빵한 화이트는 조금 당황한 듯 싶었다. 이럴 때는,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해주면 어떤식으로든 대답이 나온다. 조금 더 정확한 부연설명이 들거어면 금상첨화고.

 

  “잘 들어요, 길. 우리 팀은 당신이 습격당한 현장을 수색하면서 길버트씨가 두고 갔던 비화장비 가방을 회수했어요. 러스키들이 주워갔더래도 여기 어딘가에서 다시 찾을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우린 지금 그 비화장비를 작동시킬 비화 코드가 꼭 필요합니다. CIA에서 조금 전에 찾아냈던 KGB의 현장요원을 심문해서 알아낸 알아낸 중요 정보를 본국에 보고해야 하는데, 여기서 시외로는 통신 두절 상태인거 알죠? 유일한 방법은 비화장비를 가지고 전파방해 범위를 벗어나서 교신하는 것 뿐이에요. 비화기 코드는 언제까지 유효한거죠?”

 

  “그거… 내일 여섯시까지 쓸 수 있어요.” 

 

  “오전? 오후?” 

 

  “18시요.”

 

  됐다. 페더슨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빠듯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교신을 시도할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놓였다.  “에드, 해 볼 만 하지?” 내가 그렇게 물어보긴 했지만, 나는 이미 확신에 차 있었다. 에드 역시 싱긋 웃으면서, 일이 이제서야 좀 제대로 풀려간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때였다.

 

  “에드! 제인! 빨갱이 무전망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곧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답신 달라고 하는데요?”

 

  “뭐? 뭐가 도착한다는거야?” 코왈스키의 감청중 특이사항 보고에 당황한 에드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부연설명은 의외의 인물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아, 맞아. 저기요, 대장님? 정신이 없어서 깜빡 했어요. 죄송합니다. 근데 지금 큰일 났어요. 당장, 당장 도망쳐야합니다.”

 

  갑자기 무언가 중요한게 생각났다는 듯 당황스러워하는 NSA의 얼빠진 화이트가, 뭔가 중요한걸 알면서 우리한테 말해주는걸 깜빡 한 모양이었다. 아주 불길한 소식이라는 분위기를 팍팍 드러내고 있는것이 더욱 사람 속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알고 있는거 전부 다 말해요. 당장.” 나보다 에드가 먼저 캐 물었다. NSA 기관원이 말해주는 이야기도 가관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골 때리는 소식이 너무 많았다.

 

  “GRU의 특공대가 UAZ에 분승해서 이리로 올거에요! 놈들이 먼저 온 공항이 어느 공항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공항은 조공이에요. 슈타지 녀석들이 그… 블리처 공원에 새 LZ를 확보했대요. 힙(Hip)으로 차량 수송을 해 온 거 같아요. GRU 놈들이 여기 있던 애들한테 조금만 기다리랬어요. 곧 도착한댔어요!”

 

  짧은 순간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차량으로 기동하는 적 특작부대 접근 임박? 공항은 조공에 불과하고 주공은 다른 LZ? 블리처 공원에? 지금 마지막 예비대까지 탈탈 털어서 템펠호프로 꼴아박았는데. 그보다 차타고 여기까지 오는거면 얼마 안 걸릴텐데?

 

  나처럼 경악했겠지만, 머리 속에서 빨리 새 정보에 관한 정리를 마친 에드가 바로 무전기를 붙잡았다. “CQ, CQ, 여기는 호텔. 적 특수전부대 접근 임박! 사격조 전투 준비!” 건너편 방에서 슈타지의 문건들을 정리하고있던 앨런이 무전을 듣고선 당황스런 안색으로 라모스를 데리고 에드쪽으로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앨런이 모두에게 새 명령을 하달했다.

 

  “앨런, GRU놈들이 차량기동으로 여기로 오고있어. 전원 주목! 하던 일 모두 멈추고 지금 당장 퇴출 시작한다!”

 

  바로 그 때, 지근거리에서 아군의 SAW와 M16 총성이 요란벅쩍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큼직한 폭발음이 연달아 몇 번 씩 울리는 와중에도 총성은 그칠 줄 몰랐다, AK 소총의 격발음까지 들려오기 시작하는 와중에, 무전망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 - 호텔, 여기는 초크 1! 적 차량대열과 접촉, 현재 교전 중! 적은 1개 중대규모로 예상됨. 지시바람, 이상! ]

 

  “빌어먹을,” 곧이라곤 들었지만 너무 빨랐다. 에드가 곧바로 추가 지시에 들어갔다. 먼저 무전기를 잡고 경계조에 추가 명령이 하달됐다.  “CQ, 여기는 호텔, 당장 차량에 시동걸고 목표 지점 앞으로 집결, 주둔지로 퇴출할 준비한다. 초크 1은 조금만 기다려라, 우리가 가겠다.” 그 다음은 우리 차례였다. “앨런! 조셉! 제인! 초크 1쪽으로 이동해서 퇴출 엄호!”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닌데, 그래도 겁나게 쫄리는구만. 우리는 초크 1, 그러니까. 보병 최선임인 상병이 통제하는 사격조가 조금만 더 발목을 잡아주길 바라면서, 일단 벤츠의 트렁크를 열었다. 그 안에 들어있을, LAW 몇 발과,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M79를 꺼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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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냉전 당시 소련군이나 동독군은 서베를린 내로 상당한 수의 전력이 들어오는것에 대해 별다른 반발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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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글쓴이 2018.10.15. 19:02
점심은평양저녁은신의주

그게 싫으면 2차대전 전후처리할때 한마디 했어야했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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