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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스콧!  해리스! 근무 시간이다. 작업 멈추고 경계 들어갈 준비해라.”

 

  “예, 상병님.”

 

  2인 1조로 경계 근무를 순번을 짜서 돌아가면서 서고 있었다. 분대장 대리인 포스터 상병의 지시에, 조막만한 야전삽으로 무식하게 개인호를 파고 있던 스콧과 다른 소총수하나는 단독군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서, 앞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다른 2인조와 교대를 하러 가고 있었다.

 

  제법 본대와도 거리가 떨어져 있을 즈음, 스콧 일병은 야간투시경의 불완전하고 좁은 시야에 의존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보름달은 아니어도 달빛 별빛은 그럭저럭 있어서 야투경의 성능이 적당히 발휘되는 그런 밤이었지만, 야투경 특유의 좁은 시야는 언제나 문제였다.

 

  “조심해, 병신아. 또 자빠질뻔 하냐.” 좁은 시야탓인지 잠깐 휘청대는 뒤의 해리스의 기척을 느끼고, 스콧은 뒤도 안 돌아보고 작지만 잘 들리게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직후 스콧 일병은 아예 엎어져버렸다. 발치의 나무 뿌리를 못 본 것이었다. 방금 균형을 잡은 소총수 해리스 이병 역시 앞사람이 갑자기 앞으로 엎어지자 덩달아 엎어져버렸다. 긴장을 풀자 마자 본인이 엎어지는 꼴이라니. 스콧 일병 입장에선 꽤나 망신살 뻗치는 불행이었다. 그런데 이 불행이 역설적으로 스콧 일병의 더욱 큰 행운이고 다른 러시아인들에겐 불행의 시작이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교대하러 올 스콧 일행을 기다리며 제 위치에서 경계를 서고 있어야 할 다른 두 명은 조금 전에 요단강 건너 주님을 만나러 간 상태였다. 괜찮은 관측 위치를 확보한 스페츠나즈 정찰팀의 팀장은 지도를 꺼내고, 옆에는 무전병을 불러 좌표를 부르던 중, 총성이 울렸다. 

 

  ‘보리스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조금 전으로, 그러니까 스콧 일병 일행이 자빠지기 조금 전으로 돌아가 보자. 두 미군의 이동을 훔쳐보고 있던 소련군 정찰대원이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도구 탓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허리춤을 더듬었다.

 

  팀 내에 소음총기는 정찰팀장과 최고참 부사관이 가지고 있는 마카로프 소음권총 2정이 전부라는게 문제의 근원이었다. 이 소음총들을 휴대하고 있던 본대는 스콧이 근무를 서러 이동하던 경계진지를 제압하는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각 스콧 일행을 기습하려던 다른 두 명에게 무성병기는 AK74 자동소총용 대검이 전부였다.

 

  물론 이들은 이와같은 단검을 이용한 살상기술도 많이 훈련받은 정예 요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미 몇 사람을 성공적으로 담금질 해 본 바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앞장서 걷던 스콧 일병이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멍청한 모습으로 자빠지고,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녀석 역시 스콧에게 부딫혀 몸의 자세가 엉거주춤하게 틀어졌다.

 

  두 미군들이 정상적으로 걷고 있다고 가정하며 찔러들어온 칼날이 애매하게 공기를 갈랐다. 숨소리 외에는 들리는 소리가 없던 자리에 순식간에 네 사람이 엉망으로 꼬여서 뒹굴고 있었다. 그 네 사람은 역시 거의 동시에 정신을 차렸다.

 

  두 소련군 특수부대원들은 소총을 등 뒤로 돌려메고 있었다. 스콧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져 엎어진 미군측의 소총수는 우측 어깨에 총을 걸고 멜빵을 잡고 있었기에 당장 소총의 권총손잡이에 손이 가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SAW 사수였던 스콧 일병은 M249 경기관총을 일반 소총처럼 둘러멜 수 없었다. 방아쇠울에서 손가락을 떼고 있을지언정, 두 손으로 기관총을 잡고 있던 그는 자빠질때도 목에 걸어놓은 기관총의 멜빵덕에 총을 손에서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용케도 안 떨어지고 두부에 붙어있는 야간투시경의 좁은 시야로 소련군 위장복을 입은 사내가 그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인것도 그 직후였다.

 

  “Блин!”

 

  “Holy Fuck!”

 

  경기관총이 소총처럼 보이는 거구에 근육질을 자랑하던 스콧 일병은 압도적인 체구와 무거운 경기관총의 무게를 살려 그를 저지했다. 안면에 닿는 소총 세 자루 무게에 맞먹는, 실탄 200발 탄통이 결합된 기관총의 충격에 스콧에게 달려들었던 녀석이 손에 쥐고 있던 총검을 떨어트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굴에 한번 더 기관총의 개머리판을 무게를 실어서 찍으려는 순간, 스콧의 녹색 시야에 다른 녀석이 잠깐 고개를 돌린 틈에 다른 녀석들이 서로 뒤엉켜서 격투를 벌이는게 보였다.

 

  미군 병사를 깔아뭉개고, 승기를 잡아서 칼을 높이 치켜들려고 하는 녀석에게 키가 거의 2미터에 육박하는 거구의 흑인 병사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기관총의 장전손잡이를 잡아당기고 지향사격 자세를 취했다간 깔려있던 미군 병사의 가슴에 칼날이 박혔을것이다.

 

  스콧의 난입으로 간신히 몸싸움에서 벗어난 그가 몸을 일으키고 장전손잡이를 당긴 M16소총의 조정간을 반자동으로 돌리며 몸을 일으킨 순간, 아까 스콧에게 기관총으로 얻어맞고 자빠져있던 녀석이 AK소총을 고쳐잡는게 보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M16 소총의 단발 총성 몇 번. 소련군 정찰팀장이 들은 총 소리가 이것이었다.

 

  소총의 총성에 일이 꼬였음을 직감한 정찰팀 팀장은 공군에게 좌표를 보내주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총성이 들린 위치로 팀을 인솔했다. 집속탄을 한꾸러미 싣고 날아올 Su25 공격기가 자신들의 머리 위에도 수류탄만한 크기의 자탄을 뿌리기 전에 어서 현장을 이탈해야 했지만, 아군을 두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쏘지 마! 아군이다!”

 

  포스터 상병이 인솔해온 나머지 분대원들이 소총를 지향사격 자세로 하며 이쪽으로 달려오는걸 본 소총수가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포스터 상병이 그에게 빠르게 달라붙으며 나지막하지만 강한 어조로 몰아붙였다.  

 

  “조용히 해, 멍청아. 알고 있으니까. 몸은 괜찮아?”

 

  대답 대신 고개를 두번 끄덕. 포스터 상병이 고개를 돌려 스콧 일병을 보자 스콧 일병이 자신의 몸 아래에 깔려 버둥거리는 소련군 포로를 보여줬다.

 

  “스페츠나즈 코만도 같습니다. 입고 있는 옷 좀 보세요.”

 

  “옷 이전에 여기서 기웃대는거 자체가 문제지. 맥클러스키, 테일러, 애들 제대로 은엄폐시켜. 대런, 무전기좀.”

 

  큼지막한 뿔테안경을 쓰고 있는 무전병 대런 상병 (SPC)이 포스터의 옆으로 빠르게 다가와 PRC-77의 송수화기를 건네줬다.

 

  “알파 6, 여기는 알파 1-1. 아군 경계인원들이 적 특작부대와 접촉. 한 명 사살, 한 명 생포. 아군은 아직 인명피해가 없다.”

 

  라고 말하는 순간 미군측의 인명피해가 생겼다. 크고 길쭉한 소련제 야간조준경을 장착한 AK소총이 무전병과 포스터 상병을 노리고 총알을 몇 발 뱉어냈다. 포스터 상병은 약간의 행운을 놓치지 않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수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무전병은 그럴 틈도 잡지 못했다. 불쌍한 대런.

 

  단독군장 차림이던 포스터 상병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용케 멀쩡한 무전기 지게를 들쳐 메는 동안, 못해도 RPK급은 될 자동화기의 속사음과 함께 소련제 40밀리 유탄 몇 발이 날아들었다. 폭발과 함께 미군 몇 명이 쓰러지고, 방금 스콧이 잡은 포로 역시 잠시 몸을 일으켰다가 같은 편의 총격에 머리통이 반쪽이 났다. 하지만 미군 병사들 대부분은 아까 전에 포스터 상병의 명령을 듣고 제대로 위치를 잡고 있었다. 맥클러스키와 테일러의 사격팀이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사격이 온 방향을 향해 화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선공을 허용하긴 했지만, 스콧의 것을 포함한 기관총 2정이 동시에 200발들이 탄통 하나를 부으며 빨갱이 코만도에 대한 기선제압에 성공한 사이, 바지 사타구니께가 축축하게 젖긴 했어도 침착하게 무전기를 대신 챙긴 포스터 상병이 실력 발휘를 시작했다.

 

  진짜 분대장이 휴가로 공석이라 임시로 분대장직을 맡은 형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군생활을 3년 넘게 한 짬이 있어서인지, 중대 박격포반의 화력지원을 정확하게 유도하자 저쪽의 화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포스터 상병은 화력지원을 잠시 중지시킨 뒤, 유탄 두 발씩을 먹이고 휘하의 경기관총 두 정으로 돌아가며 탄막을 쳐서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사이 나머지 소총수들을 전진시켜 그들의 발을 묶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들었다. ‘그래. 나 이정도면 쓸 만 하지 않아?’ 

 

  혼자 싱긋 미소를 지으며, 방금 전에 오줌을 지렸었다는 사실도 잠시 잊고,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점 대신 성취감을 느끼며 뿌듯해 할 무렵, 하늘에서 항공기의 제트엔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스콧 일병은 비행기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당장 그가 들고 있던 기관총에서 나는 총성이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이 교전이 끝나면 휴지로라도 귀를 틀어 막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그라도 등 뒤에서 울리는 폭발음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깜짝 놀라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놓고 뒤를 돌아봤다. 이미 타이밍이 늦은듯, 폭발은 끝났고, 일렁거리는 불꽃 사이로 검은 연기만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참 넓게, 참 많이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포대 주둔지와 중대 주둔지 전체가 그렇게 쑥대밭이 되었다. 밤이라 어두운 탓에 그 망할놈의 빨갱이 비행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보이자 않았다. 비행기 소리가 멀어지고, 더이상 폭발이나 기총소사가 없는걸 보아 이제 갔음을 짐작할 따름이었다.

 

  그 대폭발에 미군들이 충격을 받은 틈을 타 소련군 정찰팀은 인원의 3분의 2가 고깃조각이 되었을지언정 산 사람이라도 무사히 현장에서 퇴각할 수 았던 점은 덤이었다. 뒤늦게 다시 교전 상황을 통제한 포스터 상병이 추격에 나섰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뼈도 못 추리게 박살난 시신 몇 구와 무수히 많은 탄피들, 탄흔들, 엉망이 된 총기류. 산 사람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교전 종료를 중대장에게 보고했지만 중대장은 역시 대답이 없었다. 포대 위치로 복귀하니 멀쩡한 녀석들이 거의 없었다. 장갑차량의 상부장갑판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집속탄 자탄들의 위력 앞에 지붕도 없는 교통호 따위에 급한 대로 고개를 쳐박은 녀석들이 멀쩡할리가 없었다. 엄폐호 지붕 아래로 대피한 몇 놈들만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야, 괜찮아? 다친데 없어?” 그 와중에 개인호에서 비틀대며 기어나와 개인호 지붕 위에 털썩 주저앉은 패트릭을 본 스콧이 만사 제치고 그의 옆에 주저앉아 어깨에 손을 올렸다. 패트릭은 쓰고 있던 케블러 방탄모를 벗고, 고개를 숙인 채로 좌우로 휘저었다. 패트릭과 같은 호에서 기어나온 녀석이 주위를 돌아보다가 한바탕 구토를 쏟아내는 소리가 언뜻 들렸다.

 

  “슈미트 상사가 죽었어.” 2소대의 몇 안되는 행운아중 하나인 패트릭이, 자기 옆의 스콧과 눈도 마주치지 앟고, 멍한 시선을 전방에 고정한 채로 그렇게 말했다.. “월남에서도 2년을 보내고 살아온 양반이, 이번엔 전쟁 터지고 반나절도 안돼서 죽었어.”

 

  “씨발, 국 새끼들은 공군이 없었잖아. 쟤들은 빨갱이들이고 여긴 빨갱이 소굴 한복판이니까.” 잠깐 사이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 그 변화가 아직도 실감이 안되는 스콧이 대충 대답했지만, 패트릭이 듣고 싶은 것은 그런게 아니었다. 사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씨발, 그딴게 중요하냐.” 패트릭은 믿기지 않는듯, 그렇게 크지는 않은 폭발 흔적들이 사방에 널린 주둔지를 다시한번 돌아보며 말했다. “니가 말한 대로, 우린 빨갱이 소굴에 고립된거잖아. 다 죽는거 아냐?”

 

  스콧은 애써 냉정한 척, ‘여기 올때부터 그정도는 짐작 했어야지 않냐’고 말했다. 그 직후 휴가 생각이 났다. 씨발, 여기서 죽을 필요는 없었는데. 자빠지고, 갑자기 몸싸움, 총알이 날아다니고, 폭발이 몇번, 더 큰 폭발이 등 뒤에서, 떼죽음 당한 알던 사람들. 아드레날린이 펌핑돼서 팽팽해져 있던 긴장이 탁 풀리고, 다리에 힘이 확 풀린다. 앉아있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주저 앉았을 것이다. 오줌을 지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총질이야 뒷골목에서도 여러번 해 봤으니까. 근데 전쟁은 처음이었다. 뒷골목 총질이랑은 비교가 안 된다. 

 

  내가 미쳤다고 돈벌자고 군대에 오다니. 그냥 돈 아낄 생각 말고 민간 비행기로 여길 나갔어야 했어. 아까 포스터의 질책 이후 묻어두고 있던 휴가에 대한 미련이 다시 생겼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꼬인 자신의 더러운 운명에 신세 한탄을 했다. 방금 전의 쿨한척과는 180도 다른 태도라, 오히려 패트릭이 스콧에게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씨발 내 휴가! 이 빨갱이 개새끼들아!”

 

  불발됐던 자탄이 뒤늦게 터져서 포병 한 명이 더 죽은것도 그 때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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