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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의 서베를린 - 챕터 2 : 서베를린은 왜인지 흐림 - 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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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3인칭 시점으로 돌아와서, 5월 9일 0310시를 기해서 SHAPE에서 독일 주둔 전 연합군 장병들에게 비상경계령을 하달했다는 사실은 이미 앞에서 설명이 되어있을 것이다. 독일에 주둔한 각국의 1선급 전투부대들은 데프콘 3이라도 발령난마냥 준전시태세에 돌입했고, 영외거주자들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관사나 자가주택에 남겨두고 서둘러 부대에 복귀해야 했으며, 휴가, 외출, 외박을 나갔던 장병들 역시 속속 자신의 부대로 복귀하고 있었다.

 

  이 불쌍한 영혼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 - 야, 야, 진정하고 말 좀 똑바로 해 이 새끼야. 문장의 반이 F로 시작하니까 말귀를 알아 먹을 수가 없잖아. 그니까, 요점이 뭐야? 휴가 짤렸다고? ] 

 

  “그렇다니까, 시팔, 망할 빨갱이 개새끼들같으니라고.”

 

  꽤 긴 일정의 휴가가 순식간에 하루 짜리 외박이 되어버려 빡친 불행한 영혼, 레이븐 스콧 일병.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 어릴 적부터 벽에 스프레이 캔으로 영역 표시를 하며 한손에는 마리화나, 한손에는 총을 들고 뒷골목을 넘나들던 오랜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겠다는 계획은 이로서 완전히 물 건너가 버렸다.

 

  [ - 새끼, 그러게 군대는 왜 가가지고 그 지랄이냐. 진짜 남자라면 말이야, 우리 동네를 지키는게 맞는거라구. 시발 거기 빨갱이 새끼들은 우리가 먼저 총질 안하면 먼저 넘어오진 않을 거 아냐? 우리 동네를 봐, 친구. 여기는 진짜 전쟁터야. 군대를 안 가도 우리는 이미 마쵸 람보 뭐시기라고. ]

 

  ‘허 시발, 이새끼 보시게.’ 되도 않는 공수부대 자부심이 되살아난 꼬꼬마 까마귀 일병은 휴가를 짤려서 생긴 울분을 해소할 돌파구를 찾은 것 처럼 달려들었다.

 

  “니미럴 좆 까는 소리 말고 새꺄. 뒷골목 자경단질 나는 한 두번 했냐? 삼시 세끼 다 챙겨 먹고 약까지 챙겨 먹으면서 총질 하는게 무슨 놈의 전쟁이냐.”

 

  미 합중국 육군의 엘리트 경보병부대, 101 공중강습사단의 강습보병으로서의 부심이 섞인 비웃음이 공중전화의 전화선을 거치고 전화국과 해저 광케이블을 거쳐 미 동부 모처의 아파트 꼭대기까지 흘러갔다. 하지만 이 무식한 친구 역시 얼토당토 않는 군발이 디스를 쉽게 접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 - 개소리 하지 마. 우리 삼촌 얘기해 줬잖아. 베트남에서 눈 찢어진 빨갱이들 산탄총으로 쓸어버리고 온 우리 삼촌. 우리 삼촌도 베트남에서 삼시세끼에 후식 다 챙겨먹고 약도 공짜로 빨면서 전쟁했어. 우리가 다를게 뭔데? 똑같이 형제를 믿고, 약을 빨면서, 목숨을 걸고 총을 든거야 임마. ]

 

  “새끼 노래 배운다더니 말 한번 존나 시적이네. 그런 문학선생같은 감각으로 병신같은 궤변은 집어 쳐 새끼야. 당장 총쏘는 것만 해도뒷골목에서 배운 사격 군대에서 처음부터 다시 고치느라 개고생한거 말 안 해 줬냐? 내가 뒷골목에서 10년 총질할땐 제일 총 못쏘다가 첫휴가 나가서 니들 좆발라버린거 기억 안나?”

 

  [ - 얼씨구, 짭새 머피 납셨네. 우리 삼촌이 총은 조준하고 쏘는게 아니랬어. 눈에 들어오면 그냥 들이대고 땡기는거지. 우리도 똑같잖아. 너도 시발 군대 가기 전에 총질 좀 해 보긴 했지만, 그래도 니가 전쟁 경험 있냐? 베테랑의 조언이야, 짜식아. ]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시바 니네 삼촌은 땅개 PX종자 였으니까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총이 조준을 해야 맞지 그냥 들이대면 맞냐, 새끼들아. 그래서 니들이 안 되는거야.”

 

  [ - 새끼 봐라,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냐? 세상 어느 PX에서 국 새끼들 귀를 열개씩 짤라서 오는데? ]

 

  “시바 군바리가 편의점 계산대도 아니고 무슨놈의 산탄총이냐. 산탄총 썼다는데서 견적 나오지 새꺄. 군대에 편의점같은게 PX 말고 뭐가 있냐. 귀는 뒷골목에서 웃돈주고 샀겠지.”

 

  만만찮게 무식한 스콧 일병의 속 편한 추측이었지만,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엉망진창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뒷골목 영어 듣기 평가 시간은 이 주제를 두고 족히 10분은 계속되었다. 다른 고향 친구들이 보면 기집애들처럼 전화 질질 끈다고 뒷통수를 툭 치고 갈 그런 느낌이었다. 열정적인 소피스트들의 궤변배틀이 끝나자, 대화 주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 -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친구. 시발 빨갱이들이 뭔 지랄을 터서 휴가 짤린건데? ]

 

  “뭐라고 말은 해 주는데 망할놈의 군사 기밀이라고 닥치고 있으란다. 그냥 나처럼 휴가 날아간 군바리들이 나 말고도 세계 15개국에 쫙 깔렸다고 알아 둬. 몇 시간 있으면 빨갱이들이 장벽 밀고 넘어온다고 뉴스 뜰지도 몰라, 새끼야.”

 

  [ - 어휴 시발, 전쟁나겠네! 축하한다, 군발아. 뒷골목의 평화는 우리가 지킬테니 안심하거라. 니 람보총으로 빨갱이 새끼들 쓸어버리는거야. 귀도 한 열개 짤라 오고. ]

 

  언젠가 부에서 찍어 보낸 사진에서 그가 자랑스럽게 들고 있던 249를 생각하고 말한게 틀림 없을 고향 친구녀석의 말에 스콧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시바 몰라. 빨갱이 새끼들 전쟁나면 다 뒤졌어. 짤라먹을 휴가가 없어서 내 휴가를 짤라? 훈장 무더기로 타올테니까 기대해라. 연금도 좀 나눠줄께.”

 

  [ - 새끼, 몸 조심해 임마. 그리고… 아 미안, 지금 CJ 왔다. 이제 곧 쳐들어가야되니까 끊어. 우린 진짜 전쟁하러 간다. 우리 얘기도 뉴스 나올지 몰라! 기대해! ]

 

  “몸 조심해라 짜식들아. 딴 애들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수화기가 내려가면서 뉴욕 모처 아파트 꼭대기와의 최소한의 연결점마저 완전히 끊어지고, 다시 홀로 남은 스콧 일병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머리를 싸쥐고 고개를 숙이며 신세 한탄을 했다. 망할 빨갱이 새끼들. 아침에 데클란이랑 슈미트 그놈들이 쌍으로 지랄 틀 때부터 알아 봤어 등등등. 비행기가 9일자 뿐이었다는 점도 필시 오늘 일이 꼬일것이란 예고였던 것 처럼 느껴졌다.

 

  클럽에서 비틀비틀 기어 나와서 템펠호프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변을 서성일 때, 망할 헌병새끼들을 만나서 일이 이렇게 되었다. 그는 숙소도 안 잡고 놀다 본국으로 뜰 예정이었기에, 부대에서 그에게 연락을 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헌병들과 마주치지 않았다면 출타자 복귀 명령 자체를 듣지 못했을 거란 의미였다.

 

  “휴가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휴가증 제시.”

 

  척 보기에도 굉장히 오만하고 재수없게 생긴 헌병 쏘가리 녀석이 험비 조수석에서 그를 쳐다보면서 그렇게 쏘아붙이자, 그는 속으로 툴툴대면서도 익숙하게 수첩을 건빵주머니에서 꺼내 안에 끼워둔 휴가증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소위 나부랭이는 휴가증을 대충 훓어보고는,

 

  “탈영병은 아니구만. 근데 휴가 끝났어. 당장 부대복귀 하도록. 타고 갈래?”

 

  “잘 못들었습니다?”

 

  그리고서 헌병 소위놈이 말해준 이야기가 바로 그 ‘군사 기밀’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빨갱이들이 지들끼리 쑈하는 바람에 윗대가리들이 세계 15개국의 출타장병들을 전부 원대복귀시켰다는 끔찍하도록 잔인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탈거야, 말거야?”

 

  “어… 음… 부대에 전화 한번 하고 가겠습니다. 집에 전화도 해 봐야하구요.”

 

  “하긴, 돌아가면 집에 전화 할 시간도 없겠지. 그럼 알아서 가 봐, 일병. 콜택시 번호는 알지?”

 

  그러고서 부대에 전화할땐 용건만 간단히 2분만에 통화를 마무리하고 장장 44분간 부모님과 친구들과 전화를 했던 것이다. 

 

  콜택시를 부르기 위해 다시 수화기를 들은 그는 다시 용건만 간단히 통화를 마치고, 십여분 후 도착한 택시에 힘없이 몸을 실었다. 뒷좌석 창가에 멍하니 고개를 쳐박고 창 밖을 내다보는 그의 귓가에선 아까 부대에 전화를 걸었을때 전화를 받았던 당직병인 패트릭 그자식의 반응이 환청처럼 아른거렸다. 1분만에 끝날 통화를 두배로 늘린것도 이 자식의 리액션 때문이었지. 

 

  “일병 나부랭이 주제에 행사 제끼고 휴가 나갈려던 업보야, 새끼야!”

 

  라면서 실실실 쪼개던 그자식의 얄미운 목소리. 어휴. 돌아가기만 해봐라. 249로 대가리를 찍어버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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