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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문제를 보고 떠오른 일화하나.

에이브 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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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폴라리스님께서 https://milidom.net/miliboard/726959 라는 글을 통해서 부사관 문제를 제기하셨는데, 글을 쭉 읽다보니 최근에 군동기들과 다시 만나면서 나온 이야기가 떠올라서 짧게 쓰려고 합니다.

 

 저는 자주포 포대에서 FDC병으로 2년간 근무 했었는데, 다른 부대도 마찬가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부사관과 병력이 늘 모자랐습니다. 당장 원래 정원에 못미치다보니 K77같은 경우 자주포 정비관 (나중엔 포반장 겸직)이 따로 겸임하느라 책임이 모호해지고 관리가 미흡해지는 일도 생겼습니다. 병력 차원에서도 매일 야간에 한번씩은 지휘벙커에서 근무해야하는 조건에서 통신반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당시 저희세대 동기들중 세명이 통신병이었는데, 한명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기갑갤러리에서 글보신 분이라면 알텐데 따로 말안하겠습니다.) 나머지 둘은 힘든 업무를 하는데도 곧잘 익숙해져서 전입하고 한 3-4개월만에 어지간한 작업은 혼자서 해내게 됬습니다. 그런 동기중 하나는 제법 군의 생활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말뚝을 박기로 결심했고, 뒤이어 들어온 후임 통신병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지니고 있었습니다.

 

 통신병의 업무는 상당히 빡빡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행정반의 망연결이나 컴퓨터 문제, 보안검열때 보조, 기초적인 막사 정비에서 전기나 하수시설 정비 (파이프같은 것들)를 매일 작업시간이나 주말에 불려나가야했고, 툭하면 방차통을 매고 RP에 유선 연결이나 매입 혹은 K-77에 무전망을 연결하고 체크하는등 굉장히 쉴틈이 없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손이 모자라고 업무로 가득차다보니 선후임간에 벽자체가 미군의 그것과 비슷하게 서로간 합의가 되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포반은 전역할때 까지 정말 한국군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전담간부로는 통신반장이 붙어있었는데, 사실상 모든 작업이 이쪽으로 쏟아지다보니 따로 뒤에서 놀고 싶어도 사실상 마킹되어 있어서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업무강도에도 제 동기와 후임들은 상병 중반까지 통신반장을 따라서 간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쯤 어느 순간부터 통신반장이 앞뒤를 안가리고 통신병들에게 험악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무슨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실상 부대에서 '가용가능'한 최고의 통신병에게 (사실상 병장이 되서도 일만하다 내보내는 처지) 쪼인트를 까대는게 일상이 됬다는건 확실해졌습니다. 밤마다 훌쩍이는 동기목소리를 듣는건 익숙한일이 되어갔지만, 서로 업무에 치이다보니 관심을 가지기 힘들었습니다. 머지않아서 상병 중반을 넘어서 통신병중 말뚝을 박겠다는 사람은 한명도 남지않았습니다.

 

 통신반장이란 사람 자체도 야간근무가 잡힌 행정병을 깨워서 본인 업무인 '일일 업무일지'를 작성케하고 근무를 때려보내는 등 (뭐 부대에 자기 여자친구를 대려온것도 있습니다만) 뭔가 안하던 짓을 하기도 했던것도 그 때 부터였던거 같습니다. (그 행정병은 나중에 맹장염에 걸려 실려갔고 늘 골골 앓는 신세가 됬습니다. 이런 생활을 매일같이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봅니다.) 

 

 구체적인 뒷이야기를 알게된건 전역후 동기들을 만난자리에서 였는데, 통신반장이 사실상 동기들을 휘어잡아 패대기 친건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때문이었습니다. '주식'이 잘 안풀리게 되자,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자기밑 병사에게 풀어대기 시작한 것이었고 이걸로 꽤나 깨졌다고 합니다. (물론 그 깨진만큼 통신병들이 깨지는건 마찬가지였지만)  1년 반 넘게 사실상 들어오는 신병 3중 하나가 짐덩어리만 되는 와중 멀쩡한 둘만 족치건 본인의 멍청한 경제감각으로 발생한 자해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잠재적인 간부로서 의지를 가진 병사를 잘라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병장때 가서는 사실상 조용해졌는데, 사실상 다른 간부들도 사정을 알고 통신반장 자체도 자기가 3-5개월간 한 짓거리가 뭘 사과해서 돌이킬수도 없으며 서로 피하는게 낫다는걸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도 흔하고 일반적이라서 사실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왜 사람들이 부사관 자원이 줄어드는지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봉급을 넘어서 염증이 되는 존재로 부사관을 인식하는 것이 '2년간 의무화된 사회'에서 정말 절박하거나 정말 곧은 입장이 아니라면 군은 같은 봉급문제를 떠나서 기피해야할 대상이 된겁니다. 한국에서 군이 존경받기 힘든 (그리고 스스로도 존경하지 않는) 집단이 된 것은 아마 공공연한 비밀같습니다. 먼저 첫째로 모두가 군인이었던 경험이 있고, 충분히 보상받지 않고 고착화 된 상태에서 군이란 별로 특별할게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둘째로 심지어 실제로 그들이 존중받아야할 때 조차 제대로 배상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인 유도도 사실상 효과가 제한적이란게 유럽에서 얻을수 있는 교훈이라면, 훨씬 더 제한된 한국에서 과연 다른 유도로 뭘 채운다는 정책이 효과를 볼지는 회의적입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한국에서 군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염증과 일상화가 징병제의 부채라면, 그 부채에 짓눌려 죽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징병제의 부채를 져야하는 것이 어쩔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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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동구함 2017.07.27. 16:49
소위 말하는 집지키는 개 라는 인식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면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고도
한,두 세대는 지나야 없어질것 같습니다
에이브 글쓴이 2017.07.28. 19:49
일산동구함

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 스스로도 모두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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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짐 2017.07.28. 14:05

비슷한 일이야 어디던지 많지만, 군대는 보상이 전혀 없다는 점, 권위적/폐쇄적/노골적인 조직문화, 강제성이 더해지니 더 적나라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에이브 글쓴이 2017.07.28. 19:54
김치찌짐

솔직히 저는 이런 문제는 해결될지 않을거 같다고 느낍니다. 약화는 되겠지만, 본질적으로 서로를 증오하게 만드는 구조를 없앨수는 없을 겁니다. 문제는 어떻게 신뢰와 존경을 만드냐인데, 모두가 군인이라는 상황에서, 그게 강제되는 상황에서 사실상 군역은 명예가 아니라 남성에게 붙는 세금이 된겁니다. 본질적으로 흔하디 흔하기 짝이 없고 몇개가 달아도 눈에 뛰지 않다는게 문제죠. 더 큰 문제는 이런 군인들이 실제로 희생을 당하고 나서 문제입니다. 천안함 생존자들은 해군 스스로에게서 '패잔병'이라는 취급을 받아왔고, 기금은 유용되었습니다. 지뢰도발이후 대처는 그렇게 논란이 됬어야 할까요? 결국 이런 구조는 기존에 명예롭다고 스스로도 느끼기 힘든구조에서 냉소와 혐오감을 가지게 했습니다. 

 

결국은 징병제라는 원점에도 돌아옵니다. 징병제의 부채를 징병제로 채우는 구조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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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덥밥 2017.07.28. 22:36

결국 질과 양이 공존해야하는 측면에서 부사관은 장기 부사관으로 징병제를 보다 복무기간이나 인원을 확대 해야하는게 필요할지모르겠습니다. 남여징병제라던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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