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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키레예프, <비슬라-오데르 작전에서의 전차군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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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N. 키레예프가 비슬라-오데르 작전 특집호인 군사사 저널 1985년 1월호에 쓴 것입니다. 이전에 번역해 올린 키레예프의 기사처럼 분량도 짧고 각주도 없는 난감한 기사이지만 어쨌든 관련 자료로 인용되는 편이니 번역해 올립니다.

 

 

비슬라-오데르 작전에서 4개 전차군의 전력은 전차와 자주포 3,000대 이상이었다. 전차군의 운용은 스타브카의 명령과 적 방어 상태, 지형 상태에 영향을 받았다. 제1 벨로루시 전선군 사령부는 제2 근위 전차군과 제1 근위 전차군을 전선군의 주 돌파 지역인 제5 충격군과 제8 근위군의 제1 제대 소총병 사단들이 적의 전술적 방어를 돌파한 후 각각 교전 지역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전차군이 공세를 재빨리 확대하기 좋은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최초로 전차군이 받은 주 임무는 적 집단의 후방인 바르샤바로 진격해 바르샤바를 해방시키고 이 지역의 적 방어를 절단하고 무너트리는 것이었다. 전차군들은 작전 개시 5일 전에 공세선에 도착했다. 제2 근위 전차군이 세운 계획의 특징은 제5 충격군이 필차 강을 도하해 적의 제2 방어선을 점령한 후에 전투에 투입되는 것이었다.

 

제1 우크라이나 전선군 사령관과 참모들은 제3 근위 전차군과 제4 근위 전차군을 돌파 국면에서 돌파 지원에 투입시키기로 결정했다. 제1 제파 제병협동군들이 적의 방어를 빨리 돌파하면 전차군들이 돌파구로 들어가 적의 작전술적 종심으로 침투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소총병 제대들이 작전 첫날에 적의 전술적 방어 종심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전차군에서 1개 전차 군단을 보내 돌파구를 완성할 것이었다. 전차군 전력의 돌파 투입은 제1 우크라이나 전선군이 사용했다. 전차군의 이러한 운용은 적 방어선을 급격히 돌파할 때 적이 아군의 공세를 차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나치 독일의 전시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슐레지엔 공업 지대를 적이 쉽사리 내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차군 지원을 위한 포격은 전차 부대가 작전을 수행하는 모든 지역에서 일어났다. 전차군의 공세 시작 전에 지형상 적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하는 지점마다 화력이 집중되었다. 포격  지원이 끝난 후 포병 여단들은 돌파 포병 사단으로 합쳐져 전차군 소속이 되었다. 독립된 공군 제대들은 지속적인 항공 지원과 방공을 위해 전차군 사령부 지휘 하에 들어갔다.

 

전차군의 교전 성공과 후속 전투의 성공은 공병 지원에 크게 달려 있었다. 이런 목적을 위해 두 전선군은 공병 자원을 기동 집단에 대규모로 할당했다. 

 

전투를 위한 4달간의 준비 과정에서 전차군 군사 위원회, 모든 수준의 지휘관들과 참모들은 임박한 전투를 위해 인력, 무기, 장비에서 큰 준비를 했다. 각 제대들은 다양한 전술적 훈련을 수행했다. 훈련의 주 목표는 급격한 공세로 적 방어선을 돌파해 적 종심으로 치닫는 것이었다.

 

1월 12일, 제1 우크라이나 전선군의 전차군들은 산도미에시 교두보의 도약점으로 이동해 1400시에 박차고 나와 보병, 포병, 공군의 호위와 함께 적 주 방어선 돌파에 참여했다. 전차군들은 제병협동군과의 공조로 적의 작전술적 예비를 무너트리고 종심 깊이 밀어붙였다.

 

제1 벨로루시 전선군이 전차군들을 비슬라 강 동안에서 공세가 계속되던 1월 14일에 마그누셰프 교두보에서 도하를 시작해 돌파에 참여했다. 전차군들은 서쪽과 북서쪽으로 진격하며 독일 A 집단군의 주 병력을 바르샤바에서 절단하고 수로 장애물을 중단 없이 진격하며 정 종심 안의 방어선을 절단하고 급격히 전과를 확대했다. 1월 말에는 전차군 선견대가 오데르 강에 도착해 차량화 소총병들과 강을 도하해 교두보를 점령했다. 

 

전차군들은 적을 넓은 지역에서 깊은 종심으로 주야를 가리지 않으며 항공 지원 하에 급격한 속도로 진겨했다. 이 속도는 자주 적의 후퇴 속도를 넘어섰다. 그 결과 적 집단들은 산산조간났고 종심 내에 방어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우리는 공세 확대 과정에서의 조직과 수로 장애물 도하 전훈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각 전차군들은 400~700Km를 진격하면서 니다, 필리차, 브주라, 바르타, 프로스나 , 오데르 강 등 크고 작은 강 5~6개를 도하했다. 중요한 한 강 도하는 중단 없이 수행했다. 이런 도하는 선견대가 본대의 접근 전에 교두보를 점령하고 교두보에 인력과 장비가 건널 수 있는 준비를 해 놓고 넓은 전선에서 동시다잘적으로 수색을 행하며 도하 지점의 방공을 확실히 함으로서 보장했다. 같은 시기에 이런 식의 도하는 복잡하고 긴장된 상황에서 일어났다.

 

공세 확대 과정에서 전차군들은 인구 밀집 지역이나 저항 지역에서 교전에 투입되지 않고 우회해 계속 적지 종심으로 진격했다. 전차군의 급격한 진격선과 함께 공조하기 위해 소총병 군단의 선견대나, 가끔 제병협동군 선견대가 진격해 전차군과 제병협동군간의 틈을 메웠다. 작전에서 전선군이 두 전차군을 한 작전 지역에서 동시에 운용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여기서 전차군들은 기동의 효율을 새 구역에서도 계속 유지했다.

 

비슬라-오데르 작전의 전훈은 기본적으로 현대전 상황에서도 그 중요성이 잊혀지지 않는다. 작전의 원숙한 연구와 전훈의 운용은 작전술 이론의 현저한 발전에 공헌하고 병력과 참모들의 작전술적 훈련에서 가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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