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주제로 글을 올리는 곳입니다. (단, 이용약관 필독)
기타

흔한 월남전 후기의 일선 미군 보병중대 모습

22nd 22nd 700

0

0

 

001.png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https://www.google.com/search?q=vietnam+helmet+peace&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j35POLxfjdAhVLPnAKHcGlBp4Q_AUIDigB&biw=1920&bih=945 )

 

=========================================================================================

 

사진은 본문에서 언급된 사진은 아닙니다.

 

앞서 올린 종군기자 어니 파일에 대한 글과 같이, 소설가 겸 번역가이신 안정효씨의 월남전 수필집 '지압 장군을 찾아서'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해당 서적에서는 안정효씨가 자신의 이름을 소설 '하얀 전쟁'의 주인공 한기주로 바꿔 적고 있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열다섯. 어리석은 용기와 비겁한 지혜

 

 

 

 

 죽음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조직된 군대 사회는 결코 평범한 집단이 아니다. 민간 사회하고는 가치관과 규범의 기준도 다르고, 통치방법도 다르다. 그래서 군인이 현대 국가를 통치하다 보면 전두환처럼 시대착오적인 독재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고, 비록 박정희의 독재가 능률적이어서 국력과 경제가 발전하기는 쉬웠을지 모르지만, 신속한 생산적 결과를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그런 사회에서는 다수의 인권이 짓밟히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한기주는 생각했다.

 

 역으로 군대는, 철학적인 지혜나 민주주의적인 정치 논리가 간섭하기 시작하면, 전쟁의 수행 능력이 위축되는 현상을 보인다.

 

 CBS-TV에서 월터 크론카이트(Walter Cronkite)에게 해설을 맞겨 1985년에 제작한 ‘베트남 전쟁(Vietnam War)’ 연속물 가운데 찰리 중대의 세상(The World of Charlie Company) 편이 이러한 두번째 현상을 극적으로 포착했다. 1965년부터 68년까지 베트남전을 종군했던 존 로렌스(John Lawrence) 특파원이, 본국에서 한참 반전운동이 확산되고 정계와 군대 내에서도 매파와 비둘기파가 대립을 벌이던 시기인 1970년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 제 1기병사단(the 1st Air Cavalry Division) 제 7기병연대 제 2대대 ‘찰리’(주 1) 중대를 집중적으로 1년 동안 취재해서 만든 이 기록물은 세계의 최강대국이 왜 베트남에서 필연적으로 패전의 수치를 겪어야 했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자료가 되었다.

 

*

 

 찰리 중대의 세상(주 2)에서 발생한 첫 위기는, 3월부터 6월에 걸쳐 캄보디아 국경지대에서 장기 수색정찰을 수행하는 사이에, 중대장이 교체될 무렵에 찾아왔다.

 

 도입부에서는 어느 여리고 섬약해 보이는 병사가, 울창한 밀림에서 벌목도로 나무를 쳐내며 진로를 뚫는 힘든 작업을 하다가, 지쳐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져 헬리콥터로 후송되는 장면이 나왔다. 한기주는 옛날 초등학교 시절, 아침 조회 시간에, 굶주리고 병약한 아이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찰리 중대의 세상에 등장한 미국 군인의 모습은 바로 이런 일사병 아이들을 한기주에게 연상시켰다. 찰리 중대는, 헐리우드 전쟁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용감무쌍한 역전의 용사들과는 달리, 그렇게 허약한 군대였다.

 

 허약한 병사를 후송시키는 장면에서 존 로렌스 특파원은 찰리 중대가 이렇게 헬리콥터를 불러들여 중대원을 후송시키는 경우가 여태까지 별로 없었다는 해설을 덧붙였다. 중대장 잭슨 대위(Capt. Robert Jackson, 29세)는, ‘불필요한 접전’을 피하고 유리한 전투만 벌여서, 사상자를 후송시켜야 하는 상황이 겨우 두 번 밖에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잭슨 대위는 6년 반 동안 공정대 소속으로 유격전을 많이 경험했던 장교였으며, 베트남전에서 두 번째 복무중이라고 했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전투를 회피했던 잭슨 대위를 부하들은 인간적이며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지휘관이라고 좋아했다.

 

 후방 근무로 빠져나간 잭슨의 후임으로 도착한 앨 라이스 대위(Capt. Al Rice, 25세)는, 적극적으로 전공(戰功)을 샇아 자신의 두각을 나타내기를 원하는 전형적인 군인으로서, 전임자를 ‘지나치게 조심스러운(too cautious)’ 지휘관이었다고 평가했다.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이렇게 상반되는 성격이었던 두 지휘관을 거치면서, 중대원들의 시각도 뚜렷하게 갈라졌다. 지휘부를 구성하는 직업군인(주 3)들 그리고 그들의 명령을 받아 움직여야 하는 투덜이 징집병(주 4)들은 내부에서의 필연적인 대립과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투덜이’들의 지상 과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1년의 베트남 복무 기간만 무사히 마치고, 목숨을 건져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서, 전쟁을 하기 싫은 그들에게는 누가 전쟁에 이기느냐 따위는 별로 관심이 없는 문제였다. 찰리 중대의 세상에서는 심지어 반전운동의 상징적인 기치(旗幟) 노릇을 하던 평화의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병사도 눈에 띄었다.

 

 어떤 병사는 존 로렌스 특파원에게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짓은 비논리적(Killing people for peace doesn’t make sense)” 이라고 말 하면서, 만일 실제로 적을 만나면 살인을 피하기 위해 하늘에다 총을 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귀국을 앞두고 죽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병사들은 그들의 두려움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것이 찰리 중대의 ‘세상’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찰리 중대에는 지휘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29살의 하사관도 여럿이었다. 따라서, 민간인 시절의 사회적 신분과 직업으로 따지자면, 병사들 자신보다 무엇 하나 잘났다고 여겨지지 않는 25살의 중대장 라이스가 내린 명령 하나 때문에, 목숨을 호락호락 내놀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

 

 먼 훗날, 하사관에 의한 ‘소대장 길들이기’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증명되었듯이, 계급이 아닌 나이와 경험 따위 다른 실질적인 가치관이 힘을 얻으면, 병사들은 군대 조직과 민간 조직을 혼동하기 시작한다. 그런 현상이 ‘계급장 떼고 얘기하자’는 지경에 이른 군대에서는 인위적인 계급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명령체계와 위계질서도 무너져 버린다.

 

 1970년 4월 6일, 라이스 대위가 지휘권을 인계받은 지 겨우 사흘 째 되던 날, 바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


 

 찰리 중대는 정글에서 수색정찰을 하던 중에 현장에서 철수하라는 갑작스러운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철수를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시간이 촉박하기 대문에, 밀림의 온갖 엄폐물의 도움을 받아가며 숲 속을 통과하여 평상시처럼 안전하게 이동하는 대신, 노폭(路幅)이 2미터쯤 되는 기존 소로(旣存 小路)를 따라 1, 2킬로미터를 내려가 신속하게 LZ(착륙장)까지 도착하여 헬리콥터를 타고 나오라는 지시였다.

 

 무전으로 연락을 받은 라이스 대위가 즉각 명령을 하달했지만, 부하들은 그의 지시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길로 나가면 적의 눈에 띄기가 쉬워서 그만큼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중대장이 앞장서서 길로 먼저 나섰어도, 부중대장을 포함한 대여섯 명만 따라갈 뿐, 나머지 병사들은 “잭슨 대위라면 그렇게 위험한 명령은 내리지 않았으리라” 고 따지며, 숲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민주적이고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착각했으나, 사실상 병사들은 잭슨 대위에게 길든 사고방식에 의해 신임 중대장에게 조직적인 명령 불복종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참 옥신각신하던 끝에 그들은 대대로부터 수정된 명령을 받아내어, 반대 방향으로 2백 미터 가량 떨어진 지점이어서 거리가 짧기는 했지만, 헬리콥터의 착륙이 훨씬 힘드는 다른 LZ를 향해서 출발했다. 하지만 마지 못해 길로 나선 병사들은 겁에 질려 여기저기 힐끔거리며 더디게 움직였고, 찰리 중대의 철수는 제시간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기밀유지와 작전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모든 세부적인 사항까지 사령부가 병사들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전쟁의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생리이고, 그래서 군인이란 내용을 모르면서도 무조건 복종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다분히 감상주의적인 시각에서 지적한 사실이지만, 그래서 말단부대의 전투병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별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전쟁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 찰리 중대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신속하게 긴급히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던 까닭을 부하들은 물론이요 중대장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런 지시가 떨어졌던 이유는 괌에서 이미 출격한 B-52 대형 폭격기들이 한 시간 후에 융단폭격을 행하려는 지역이 찰리 중대가 작전중인 위치와 위험할 정도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중대원들은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으며, 지휘관과 병사들이 시각 차이로 인해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에 결국 철수시간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군대라면 상상도 못할 한심한 일이었지만, B-52 폭격기들은 할 수 없이 폭격 임무를 포기하고 기수를 돌려 머나먼 괌의 기지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


 

 찰리 중대가 소속된 제1 기병사단은, 비록 훗날 이라크에도 다시 파병된 부대이기는 하지만, 한기주가 베트남에서 복무하던 무렵에는 수장(주 5) 때문에 "비겁한 부대"리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달고 다녔다. 방패 모양을 한 그들의 수장은 노랑 바탕에 검은 대각선을 긋고 한쪽에 말의 머리를 그려넣었는데, 미군 병사들은 이것을 놓고 "한 번도 들고 다닌 적이 없는 방패(the shoeld they never carried)"와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말(the horse they never rode)"과 "한 번도 넘지 못한 선(the line they never crossed)"과 "노랑은 그들 자신의 빛깔(yellow the color their own)" (주 6)이라고 비야냥 거리고는 했다.

 

 찰리 중대는, 그런 조롱을 받고도 남을 만큼, 분명히 비겁한 집단이었다.

 

 한기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전투지에서의 명령 불복종은 총살을 당할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였어도, 찰리 중대원들은 B-52 폭격기들을 기지로 귀환시키는 상황을 야기하고서도 군법회의에 걸리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명령 불복종은 거기에서 그치지를 않았고, 사이공 부근에서 사단사령부를 경비하는 ‘후방 근무(palace guard)’를 할 때도, 수색정찰을 나가서 라이스 대위가 소대 간격을 1킬로미터 정도 서로 떨어져서 매복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도, 그러면 위험하다면서 2개 소대가 인접한 지역에 주저앉아서는 중대장에게 거짓 좌표를 보고하고는 했다.

 

 중대장 앨 라이스 대위는 끝내 지휘관 보직을 그만두기 위해 헬리콥터 조종사가 되는 훈련 신청을 냈다.

 

(중략)

 

 1인의 지휘관에게 저항하던 찰리 중대 사람들의 집단 불복종은 현명한 분별력을 반영한 다수의 행동이었는지는 몰라도, 한기주의 판단으로는 분명히 비겁한 행위였다. 그것은 어리석은 용기와 비겁한 지혜의 경계에서 이기적인 신념에 따라 베트남의 전쟁을 포기하겠다고 민주적인 결정을 내린 미국을 상징하는 시늉이었다. 그것은 절대로 지압 장군의 전쟁 방식은 아니었다.



 

…… <후략>

 
 
 
 
 

<지압 장군을 찾아서> 中 (2005, 안정효)


 

 








 

----------------------------------------------------------------

 

주 1) ‘Charlie’는 무전병의 교신이나 다른 통신 체제에서, ‘C’를 뜻하는 단어이다. ‘Alpah’는 ‘A’, ‘Bravo’는 ‘B’, ‘Delta’는 ‘D’를 의미하고, 그래서 ‘찰리 중대’는 ‘C중대’, 즉 ‘제 3중대’를 뜻한다. ‘Vietcong’의 약자인 ‘VC’도 그런 식으로 ‘Victor Charlie’ 거 되며, 이것을 다시 줄여 미군들은 ‘콩’을 ‘Charlie’라고 불렀다.

 

주 2) 베트남전 당시 ‘세상(the World)’은 병사들 사이에서 ‘고향 미국’, 즉 전쟁터를 벗어난 민간 사회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주 3) 군대를 ‘평생 직업’으로 삼는다는 뜻에서 ‘Lifer’라고 지칭하던 장기 복무자.

 

주 4) 베트남에서는 ‘심통을 부리는 사람’이나 ‘투덜이’라는 뜻으로 ‘Grunts’ 라고 불렀다. 영화 플러툰 을 보면 주인공 크리스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단어의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주 5) 한국에서는 '사단 마크' 라고 통칭한다.

 

주 6) 영어로 '노랑(yellow)'은 겁쟁이를 뜻한다.

 

 

신고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취소 댓글 등록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삭제하시겠습니까?

목록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공지 2023년 하반기 개편 안내 (레벨 시스템 추가) 9 Mi_Dork 23.07.13.09:07 +1 4063
공지 밀리돔 후원 요청 (2023-06-23) 28 운영자 14.01.24.20:42 +13 38908
4363 기타
image
unmp07 19.07.06.14:47 +1 1444
4362 질문
image
지나가는행인 19.07.03.21:09 0 1037
4361 기타
normal
지나가는행인 19.06.29.20:14 0 404
4360 기타
normal
지나가는행인 19.06.29.08:58 +2 337
4359 질문
normal
만렙잉여 19.06.28.20:59 0 1269
4358 기타
image
폴라리스 19.06.28.10:43 0 624
4357 미디어
normal
MTP 19.06.26.23:33 0 791
4356
normal
뚝배기 19.06.24.22:58 0 1207
4355 뉴스
normal
지나가는행인 19.06.23.20:34 0 996
4354 질문
normal
뚝배기 19.06.21.19:56 0 1114
4353 질문
normal
만렙잉여 19.06.20.20:32 0 1961
4352 질문
normal
빅맨 19.06.19.10:13 0 1607
4351 질문
image
MTP 19.06.18.22:44 0 475
4350 질문
normal
Golbez744 19.06.18.16:30 0 1003
4349 질문
normal
니밋 19.06.16.19:41 0 1414
4348 기타
file
제너럴마스터 19.06.16.19:05 0 583
4347 질문
normal
만렙잉여 19.06.16.13:12 0 569
4346 질문
normal
만렙잉여 19.06.15.16:17 0 1175
4345 질문
normal
만렙잉여 19.06.15.12:36 0 445
4344 질문
image
시에라델타 19.06.14.23:05 0 451

밀리돔 | milidom 의 저작물은 다음의 사이트 이용 약관 에 의거해 이용 가능합니다.
이 라이선스의 범위 이외의 이용허락은 운영진에게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