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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조와 어니 파일',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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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씨의 월남전 수필집(수기?) <지압 장군을 찾아서>중 일부입니다.
 
  일부러 본인의 이름을 <하얀전쟁>의 주인공인 한기주로 바꿔 적으신 부분을 참고하시면 오해의 소지가 없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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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여섯. G.I. 조와 어니 파일

 

  한기주의 나이가 아주 어렸던 ‘헐리우드 키드’의 시절, 전쟁통에 피난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마포의 공덕동 전찻길에는 「G.I. 조」(주1)라는 영화의 광고물이 나붙었다. 영어 줄임말인 ‘GI’라면 ‘미군’이라는 뜻임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잘 알려진 전시의 상식이었으므로, 초등학교 학생인 한기주는 M-1 소총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오는 로버트 밋첨의 용감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포스터만 보고서는, 당연히 한국전쟁에 관한 활극영화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극장에 가서 보니, 시간적인 배경은 한국전쟁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었으며, 로버트 밋첨이 비록 이 영화에서 이탈리아로 상륙하는 부대를 지휘하는 빌 워커(Bill Walker) 중위 역을 맡아 평생 단 한 번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기는 했지만,  「G.I. 조」의 진짜 주인공은 북 아프리카에서부터 밋첨의 부대와 행동을 같이 했던 종군기자 어니 파일이었다.

 

  물론 영화를 보던 당시에 한기주는 어니 파일이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톰 티디가 어니 파일 기념상을 받고 나서 한기주가 베트남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파일의 이름은 여기저기에서 유령처럼 끊임없이 출몰했다. 존 스타인벡도 같은 시기에 활동하면서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그 종군기자에 대해서, 그리고 ‘전쟁 전문가’들에 대해서 이런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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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지휘관들은 기자들을 조금쯤은 거북해한다고 알려졌다. 그들은 꼬치고치 파고드는 기자들, 특히 전문가들을 꺼린다. 많은 전문적인 종군기자들은 육군이나 해군의 어느 누구보다도 사실상 더 많은 횟수의 전쟁을, 그리고 더 많은 종류의 전쟁을 실제로 체험했다. 예를 들면 카파(주2)는 에스파냐 전쟁, 에티오피아 전쟁, 태평양 전쟁을 모두 취재했다. 클라크 리(Clark Lee)는 코레기도(Corregidor) 해전도 취재했고, 그 전에는 일본에서 활동했다. 육군과 해군이 종군기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는 노릇이, 이 사람들은 세상과 군(軍)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독자를 확보하여 아주 잘 알려진 인물도 많다. 그들의 글은 전국적으로 동시게재(syndicate)된다. 그들 가운데 여럿은 나름대로의 글쓰기 방식과 문체를 개발했다. 많지는 않지만 몇몇은 인기의 절정을 누린다. 어니 파일은 본국 독자들에게서 어찌나 인기와 의존도가 높은지, 대부분의 장군들보다 훨씬 계급이 상관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노련한 전문가들의 세계를 나는 일종의 관광객이나 마찬가지로, 겁을 잔뜩 집어먹은 뭇내기로서 찾아갔다. 그들은 공을 들여 확보한 그들의 영토에 내가 침범한다는 기분을 느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글을 흉내내지 않고, 일반 보도(straight news)를 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들은 나에게 아주 친절해져서, 일부러 틈을 내어 도와주기도 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카파는 내가 들어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전투지에서의 요령을 알려주었다. “몸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지 말아요. 아직 총에 맞지 않았으면, 적이 나를 못 봤다는 의미니까요.” 그러면서도 카파는, 끔찍하고도 허망한 이런 모든 일로부터 은퇴하려고 마음먹었을 무렵에,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았다. 그리고 어니 파일은 그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취재 여행에서 저격병의 총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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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까지만 해도 어니 파일(Ernest Taylor Pyle, 1900 ~ 45)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유랑 기자(roving reporter)’였으며, 그가 쓴 여행기는 미국 언론계의 기준으로는 하찮게 여겨지는 40개 정도의 신문에만 동시 개제되었다. 나이 40에 키도 크지 않고 몸집이 야윈 그는, 항상 병이 날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았고, 소심하기 짝이 없어서, 여섯 개의 전쟁에 종군하고 많은 소설과 희곡작품을 남긴 작가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Richard Harding Davis, 1864 ~ 1916) 계열의 종군기자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고 1944년 7월 17일자 <타임>은 그를 표지 인물로 선정한 특집기사에서 밝혔다.

 

  어니 파일은 사람사귀기를 좋아하면서도 낯선 사람을 만나면 항상 힘들어했으며, 떠들썩한 자리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말끔한 성격이었던 그는 더러움이나 불편함, 그리고 무질서를 싫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몇 달간 해군 ROTC에서의 경험 말고는, 전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그가 전설적인 종군기자가 되리라고는 파일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4년 후, 그의 글은 한 주일에 엿새씩 310개의 신문에 게재되어, 1천 2백만이 넘는 고정독자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수백만의 열렬한 독자들이 그에게 편지를 쓰고, 그를 위해 기도했으며, 그의 고정란이 실린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파일의 건강과 안전을 걱정해 주었다. 해외에서는 그가 어느 전선으로 가더라도 GI들과 장군들이 그를 알아보고, 일부러 찾아가고,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고는 했다. 전쟁성(戰爭省, the War Department)과 고위 야전사령부에서는 그를 장병들의 사기를 드높이는 최고의 인물로 간주했으며,. 참고할 사항이 없을까 해서 그의 글을 분석하고는 했다. 국민과 언론계에서는 다같이 그에게 한없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니 파일이 하찮은 사람들과 사소한 사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의 글에서 열심히 다루었던 까닭에, 여태까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인간’들이 갑자기 따뜻한 조명을 받았고, 그러한 파일의 시각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그로 인해서 전쟁에서는 ‘쫄병’들이 갑자기 엄청난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

 

 

  어니 파일 이전에도 전쟁의 인간적인 면을 다루었던 종군기자들은 많았지만, 그들의 글은 대부분 전쟁의 한없는 권태감을 환기시켜 주는 희귀하고도 극적인 사건이나 영웅들을 다루기가 보통이었다.

 

  어니 파일은 달랐다.

 

  존 스타인벡이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그는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도 기계화한 전쟁을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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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관계가 별로 없는 두 가지 전쟁이 동시에 벌어진다. 지도(地圖)와 군수물자, 전략, 탄도학(ballistics), 군대, 사단과 연대로 이루어진 전쟁 - 그것은 마샬 장군의 전쟁이다. 그런가 하면 고향을 그리워하고, 지치고, 난폭하고, 우습고, 평범한 병사들, 철모에다 양물을 빨고, 음식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고, 아랍 아가씨들에게 그리고 눈에 띄는 아무 아가씨에게나 휘파람을 불어대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하면서도 웃음과 존엄성과 용기를 잃지 않는 병사들의 전쟁 - 그것은 어니 파일의 전쟁이다. 그는 그런 전쟁에 대해서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그에 대한 글을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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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너무 체격이 작고 성격도 소심해서 다른 아이들과 별로 놀지를 않았던 어니 파일은 어른들의 얘기를 열심히 들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인디아나 대학교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다음 지방 신문에서 4개월 가량 일하다가 워싱턴으로 진출한 그는 “착하기는 해도 행동적이지 못한 남자”라는 평을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들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늘 갈망하던 그는 1935년 ‘유랑 기자’가 되기를 자청하여, 5년 동안 서반구(西半球)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며 방랑길에서 접한 갖가지 경험을 글로 썼는데, 다룬 내용을 보면 세숫비누, 개, 의사, 담배 마는 방법, 호텔방, 울타리 세우기, 고장난 바지 지퍼, 몰로카이의 나환자, 북극지방의 여이발사 등 주제가 다양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늘 건강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인터뷰를 위해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마음이 불안해져서 그는 신경성 소화불량에 자주 시달렸으며,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자신이 없어지면 차라리 고향에서 농사나 지었어야 한다고 자주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약점을 재미있는 소재로 엮어 글로 써서 수 많은 사람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종군기자로 파견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일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남들처럼 상황 보도를 하며 지내다가,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다흘랑(Jean Louis Xavier François Darlan) 제독의 기자회견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그의 인생행로를 뒤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회견장을 향해 비행장을 서둘러 건너가고 있을 때 독일 스투카(stuka) 폭격기들이 급강하해서 기총소사를 개시했다. 그는 어느 GI의 뒤를 따라 수로로 뛰어들었고, 기총소사가 끝난 다음 그는 병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죠?”

 

  대답이 없었다.

 

  병사가 죽었던 것이다.

 

  파일은 회견 내내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그의 천막으로 돌아가 몇 시간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그는 뉴욕 사무실로 전보를 쳐서, 다흘랑 제독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않겠다고 알렸다. 대신에 그는 그와 함께 몸을 피했다가 배수로에서 죽은 낯선 병사에 대한 글을 썼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그는 사람들에게 종군을 그만두고 귀국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충격이 가라앉은 다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장군들이나 그들의 전략이 아니라, 한때 동네 건달이었거나 사무원이나 자동차 정비공이었으며 그들의 얘기를 아무도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 하찮은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전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GI들은 그들을 위한 어니 파일의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서 반응이 더디었다. 야전에 나가면, 추위에 지나치게 민감했던 그는 옷을 닥치는 대로 껴입어서 늘 병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키도 작고 이상해 보이던 그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병사들은 담요나 물을 전투병들이 훔쳐가거나 감추기도 했다. 깔끔하기 짝이 없던 그가 항상 그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화장지를 구경하려고 어떤 병사는 그의 철모를 일부러 쳐서 떨어뜨리기도 했고, 숲에 몰래 숨어서 용변을 보는 그에게로 떼를 지어 몰려가 소리를 질러대기도 했다.

 

  말하자면 어니 파일은 오랫동안 전투병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셈이었다.

 

  그러다가 파일의 고정한을 언급하거나 아예 신문을 오려 동봉한 편지들이 전선의 병사들에게 고향에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병사들은 그들의 대변자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그들을 단순히 집단으로 편성된 군인이 아니라, 저마다 개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진심으로 아끼며,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생각하는 인물로서 파일을 파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원한다면 언제라도 귀국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잠을 자다가 비명을 지르는 경우가 자꾸 빈번해지면서도, 그들과 함께 위험을 치르며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어니 파일에게 어느덧 병사들은 그들의 마지막 담배와 담요를 서슴지 않고 내주게 되었다.

 

  하지만 새로 얻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파일은 교만해지지도 않았고, 그래서 영화  「G.I. 조」가 제작될 때는 연필과 메모지를 들고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취재 활동을 벌이는 민완한 기자로 자신의 모습이 엉뚱하게 그려질까봐 걱정까지 했으며, 남성적인 매력이나 영웅적인 면모가 용모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 버지스 메레디트에게 자신의 역을 맡게 해 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실제로 그는 취재를 할 때 만난 변사들의 이름과 주소 정도만 적어두었고, 며칠 동안 소규모 부대와 행동을 같이 하며 글이라고는 전혀 쓰지 않기가 보통이었다. 그러다가 충분히 취재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후방으로 빠져서, 여러개의 기사를 한꺼번에 썼고, 때로는 3주일치의 글을 미리 써놓기도 했다.

 

  글을 쓸 때면 그는 혼자 일하고 싶어했으며, 같은 천막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지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편안하고 부담이 없으면서도 때로는 웅변적인 그의 문체는 타고난 것이었지만, 그는 절대로 글을 빨리 쓰지 않았으며, 기사 라나를 보통 서너 번씩 고쳐 썼다고 한다.

 

 

*

 

 

  전쟁에 대한 두려움 역시 어니 파일에게서 사라지지를 않았다.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전선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어느 동료 종군기자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전투지로 나갈 생각을 하면 자꾸 겁이 나. 여러 해가 지나다보면 익숙해 질 만도 한데, 난 두려움이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해. 마치 무슨 누적된 효과가 나타나듯이 말야. 런던 대공습 동안이나, 아프리카에서 급강하 폭격기에 당하던 초기에보다, 요즈음 와서 난 비행기가 훨씬 더 무서워졌어. 1년 반 동안 드문드문 위기를 한 번씩 넘기다가, 안지오(주3)에서 네 차례나 아슬아슬한 위기를 한꺼번에 겪고 나서는, 이제 운이 다한 모양이라는 기분이 자꾸 들기 시작했어.”

 

  그리고 고향에서 기다리는 아내에게는 이런 편지도 썼다.

 

  “물론 전쟁이라면 진저리가 나서 이 곳을 어서 떠나고 싶기는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어. 나는 전쟁의 참혹한 비극의 한가운데서 너무나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까, 그것에 대한 어떤 책임감 비슷한 무엇을 느끼게 되었어.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전쟁터를 떠난다면, 군인이 탈영을 하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아.”

 

  이렇듯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어니 파일은 끝내 전쟁터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활동무대를 옮겼으며, 1945년 4월 16일, 오키나와 부근의 작은 섬 이에도(伊江島) 상륙작전에 종군했다가, 일본군의 기관총 사격을 받아 지프에서 뛰어내려 배수로까지 도망쳤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자리에는 널빤지로 급조한 안내판을 군인들이 비석처럼 세워놓았다.

 

01.jpg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https://www.google.com/search?biw=1920&bih=945&tbm=isch&sa=1&ei=7jC8W8ebH8WBoASBp63IAQ&q=ernie+pyle+77th+division&oq=ernie+pyle+77th+division&gs_l=img.3...66132.76893.0.77159.24.22.0.2.2.0.116.1963.7j12.19.0....0...1c.1.64.img..3.10.793...0j0i30k1j0i19k1.0.aPvA7CgA_48 )

 

 

 

바로 이 자리에서

 

미 육군 제 77사단은

 

1945년 4월 18일

 

그들의 전우

 

어니 파일을 잃었다.

 

 

 

 

일곱.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저격병의 총탄에 희생되어 생을 마감했다는 존 스타인벡의 설명(주4)과는 달리, 어니 파일은 독일군이 항복하여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기 20일 전, 일본의 어느 작은 섬에서 기관총에 희생(주5)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시체에서는 유럽 전쟁에 끝나는 날 개제하기 위해서 미리 써놓은 글의 초고가 발견되었다.

 

  그 원고(주6)는 이런 예언적인 내용으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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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라, 그리고 저 나라에서, 여러 달이 지나고, 여러 해가 지나는 사이에, 대량으로 생산된 전사자들. 겨울에 죽은 사람들, 여름에 죽은 사람들.

 

  아무렇게나 죽은 모습이 워낙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보이기까지 하는 죽은 사람들.

 

  어찌나 엄청난게 많은지 때로는 지겨워지기까지 하던 죽은 사람들.

 

  이들의 죽음은 고향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조차 없는 현상이다. 고향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씩씩하게 행군하는 집단으로만 여겨지거나, 멀리 떠나가서 그냥 돌아오지 않은 가까운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분은 그가 프랑스의 자갈길 옆에 그토록 괴이한 고깃덩이가 되어 쓰러진 모습은 보지 못했다.

 

  우리들은 보았다.

 

  수천번이나 보았다.

 

  그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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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jpg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https://www.google.com/search?biw=1920&bih=945&tbm=isch&sa=1&ei=PTG8W8HrDNOpoAT2rIuYCw&q=ernie+pyle+here+is+your+war&oq=ernie+pyle+here+is+your+war&gs_l=img.3...25112.28357.0.28422.16.16.0.0.0.0.209.1634.2j11j1.14.0....0...1c.1.64.img..2.1.122...0i19k1.0.g7NIXml3Jfo#imgrc=_&spf=1539060056904 )

 

 

 

*

 

 

  북 아프리카 종군기를 담은 『이것이 우리의 전쟁이다 (Here Is Your War, Ernie Pyle, Lancer Books) 』를 보면,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야간에 행군하는 병사들이 유령처럼 보였다. 수백 필의 말이 대포와 탄약과 보급물자를 운반했다. 나는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에서 따듯한 침대에 들어가 잠들었어야 하는 남자들로 하여금, 며칠씩이나 기나긴 밤을 새면서 기계처럼 정밀하게 이동하도록 만들어 놓은 어떤 재앙의 엄청난 힘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평범하고 하찮은 사람들을 전쟁은 이상하고도 거대한 괴물로 만들어 놓는다.” (p. 132)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물론 선택하는 자가 항상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갖지는 못한다. 세상의 수많은 전투지는 차라리 영웅이 되지 않았더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웅들로 넘쳐난다.” (p. 37)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우리들이 어디로 가는지 종군기자들은 목적지를 얼았다. 장교들도 몇몇은 알았고, 나머지 장교들은 그냥 짐작 정도만 했다. 그리고 놀랄 만큼 많은 숫자의 병사들은 그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p. 8)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 “나는 병사들이 두려움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어느 장교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말했다 - 비참한 상황 속에서 누군가 같이 존재한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대부분 그냥 처량하게 서로 쳐다보면서, 조금씩 서로 가까이 다가간다고.” (p. 23)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 “우리들 몇몇은 런던의 BBC 방송이 보내는 밤 9시 뉴스를 들었고, 어떤 부대에서는 단파 라디오로 미국에서 전하는 뉴스를 매시간 들었다. 2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미국까지 타전된 다음에 다시 돌아온 뒤에야 우리들이 알게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미친 세상에서는 만사가 그런 식이다.” (p. 32)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수천 명의 병사들이 언젠가 평화가 찾아오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튀니지로 돌아와서, 그토록 익숙해진 전투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 존재했던 광포한 만행을 상기시킬만한 흔적은 별로 없이, 도시들만 남아서 기다리리라.” (p. 205)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엄청난 죽음과 처참한 파괴의 겨울을 견디어낸 다음이었어도,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얼마나 핍진한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발작적인 몇몇 순간뿐이었다. 전쟁의 구체적인 현상들을 접할 때면 나는 감정은 죽어버리고 딱지만 남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줄지어 새로 파놓은 무덤들을 보면서도 목이 메이지를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팔다리가 잘려나간 시체들을 보고도 움찔하거나 깊은 감정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런 모든 새로운 죽음의 엄청난 의미가 생생한 악몽으로 나를 다시 덮치는 순간이 언제인가 하면, 그것은 그런 모든 상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혼자 앉았거나 밤늦게 침낭 속에 들어가서 내가 보았던 장면들을 되새기면서, 생각에 잠기고 잠기고 또 잠길 때였다. 그러면 가끔 나는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 그곳을 떠나야 되겠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은 전쟁의 그런 단계를 극복한다. 첫 전투를 치르고 나면 그런 악몽의 단계를 벗어난다. 그들의 몸에서는 피가 끓어오른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고, 그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나의 글쓰기처럼 하나의 직업이 된다.” (p. 217)

 

……

 

  어니 파일의 전쟁에서는 “시사잡지를 보면 전쟁이 활력과 영웅적인 행위로 가득하며, 사람을 흥분시키는 낭만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전쟁이 정말로 그렇다는 사실을 나도 알기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실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보내온 잡지를 봐야만 나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된 분위기를 깨닫게 된다.

 

  내가 본 어떤 사진 한 장은 우리들이 아프리카에 상륙했던 기다란 콘크리트 방파제를 보여주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사진이었다. 무슨 고약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첫날 방파제를 따라 행군했을 때보다는 사진을 보면서 나는 훨씬 더 많은 흥분감을 맛보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우린 이곳 최전선에 와 있지만, 나에게는 전쟁이 전혀 극적이라고 느껴지지를 않아요.’

 

  내가 하는 얘기를 듣고 워싱턴 주 벨링햄에서 온 퀸트 퀵 소령은 그의 침대에서 팔꿈치를 괴고 엎드렸다. 퀵은 비행대대장이어서 어떤 폭격기 조종사 못지않게 실전 경험이 많았다. 그의 전적(戰績)에 대해서는 모두들 감탄하고 존경심을 보였다. 그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에요. 극적이어야 한다고 믿기는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지를 않아요. 그냥 고생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만 들어서, 복무를 끝내고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기만 해요.’

 

  그래서 나는 알지 못한다. 전쟁은 극적인가, 아닌가? 분명히 크나큰 갖가지 비극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영웅적인 행동과, 심지어는 희극적인 잠재성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모습이라고는, 전선에서 고통을 받으며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병사들, 후방에서 따분한 일을 하면서 전방으로 나가지 못해 안달하는 병사들, 앞에 앉혀놓고 영웅 노릇을 할 여자들이 없어서, 그들 자신말고는 얘기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어서 절망적으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병사들, 마실 술도 별로 없고, 노래도 듣기 힘들고, 무척 춥고 더러운 몸으로, 불안감과 불편함과 고향 생각과 위험에 대한 무딘 감각 속에서 무턱대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병사들 뿐이다.

 

  낭만과 극적인 요소는 물론 이곳에 존재하지만, 숲 속의 유명한 나무(주7)나 마찬가지여서 - 누가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얘기이다. 내가 알기로는 병사들에게 전쟁이 낭만적인 순간은 두 번 뿐이어서, 한 번은 자유의 여신상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고, 다른 한순간은 고향으로 돌아간 첫날 가족을 만날 때이다.” (p. 95)

 

……

 

  그리고 어니 파일에게는 “전쟁이 대단한 활력을 분출하는 현상임을 부인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삶의 모든 맥동이 고국과 전선에서 다같이 빨라진다. 전투지에서는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어떤 기운이 작용하여, 평범한 남자들이 때로는 위험의 감각이라는 술을 마시고 자신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된 착각이다. 이곳을 떠나 다음 전투지로 이동할 때면, 적어도 나 만큼은 지극히 마음이 내키지 않기가 보통이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오는 날, 이른바 ‘전체적인 양상’이 드러나리라. 나는 ‘전체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나는 바라고 하면, 굼벵이처럼 땅바닥을 기어다니며 보았던 양상들 뿐이고, 우리들이 이해하는 부분의 양상이라고 하면, 아직 살았으며 죽기를 바라지 않는 지치고 더러운 병사들과, 한밤중에 소등을 하고 길게 줄지어 나아가는 차량 행렬과, 한 차례 전투를 끝내고 언덕을 힘없이 그리고 말없이 내려오는 병사들의 얼굴에 나타난 충격과, 식사를 하려고 줄지어 늘어선 장병들과 말라리아 예방약과 개인호와 불타는 전차와 아랍인들이 불쑥 치켜든 달걀과 높이 날아가는 포탄의 쇳소리, 지프와 연료 하치장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침낭과 C-레이션과 선인장발과 몇 달 동안 입고 다녀서 목덜미가 새까맣게 때에 찌든 속옷, 그리고 또한 웃음과 분노와 술과 사랑스러운 꽃과끊임없는 욕설로만 구성되었을 따름이다. 전쟁은 이런 모든 것, 그리고 무덤과 무덤과 무덤들로 구성되었다.

 

  이것이 우리들의 전쟁이고, 우리들은 한 전투지에서 다른 전투지로 이동하며 모든 상황이 다 끝날 때까지 전쟁을 수행하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들의 일부는 모든 해안선에서, 모든 야전에서 뒤에 남는다. 이곳 튀니지에서 뒤에 남는 병사들은 시작일 따름이다. 이렇게 빨리 전쟁에서 그들이 벗어났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잘된 일인지 아닌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일단 죽고 나면 그런 문제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지도 모르겠다. 훈장과 연설과 승리는 더이상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들은 죽었고 다른 사람들은 살았으며, 왜 그런 결과가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은 죽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계속하고 또 계속한다. 다음 해안선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 나무 십자가 밑에 묻힌 병사들에게 우리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뿐이리라. ‘고맙다, 전우여.’” (p. 272)

 

…… <후략>

 

 

<지압 장군을 찾아서> 中 (2005, 안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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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1) The Story of G.I. Joe, 미국, 1945, 감독/William A. Wellman, 출연/Burgess Meredith, Robert Mitchum, Freddie Steele

 

  주2)  Robert Capa. 1913년 헝가리 태생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진기자로 꼽히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집은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에스파냐 내전때 종군기자로 활약하던 기간에는 참호에서 뛰쳐나오던 병사가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촬영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아프리카, 시칠리아, 이탈리아 격전지에서 취재한 사진을 <라이프(Life)> 에 기고했으며, 중일전쟁도 종군했고, 1954년 베트남전 취재 중에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

 

  주3) Anzio, 이곳에서는 그가 잠을 자던 방이 폭격을 맞아 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주4) p. x, Once There Was a War

 

  주5) p. 438, This Was Your War, ed. Frank Brookhouser

 

  주6) p.419, Ernie’s War, The Best of Ernie Pyle’s World War Ⅱ Dispatches, ed. David Nichols

 

  주7) 아무도 없는 숲에서 혼자 쓰러지는 나무의 존재성에 대한 철학 명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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