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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샤포시니코프, < 제5 기계화 군단의 1942년 12월 수로비키노 서쪽 전투 작전>

PKKA 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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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군사사 저널 1982년 10월호에 기고된 기사입니다. 저자인 퇴역 중장 샤포시니코프는 당시 제5 기계화 군단의 참모장이었습니다.

 

 

스타브카 예비대였던 제5 기계화 군단은 명령에 따라 1942년 12월 6일부로 바투틴 대장의 남서 전선군 전투 서열에 합류하여 페레랄좁스키 지역에 집결했다. 명령에 따르면, 군단은 프로코피 로그비노비치 로마넨코 중장의 제5 저나군 소속이 되어 공세 준비에 참여하게 되 있었다.1

 

명령을 받은 군단장 미하일 바실리예비치 볼코프 소장은 로마넨코 중장을 만나 군단의 행군 준비 상태를 보고하고 수행할 전투 작전 임무를 명확히 했다. 야전군 참모부에서 볼코프는 제48 기갑 군단을 비롯한 적 주력이 토르모신 지역에 집결했다는 정보를 받았다. 이 집단은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제6군과 제4 기갑군을 구출하기 위해 돈 집단군 제대들과 협력하여 카라치를 공격할 작정이었다.

 

토르모신에 집결한 적 병력은 적이 세크레테프, 치르 강 남안, 그리고 수로비키노에 걸쳐 설치한 보병 사단들의 방어선으로 엄호를 받고 있었다. 적은 발전된 공병 장애물로 방어를 견고히 했고 대규모 박격포와 야포가 방어를 지원하게 했다.

 

토르모신의 적을 무너트리는 임무는 제5 전차군이 받았다. 우리 군단은 전차군의 주요 작전 지역에서 활동했다.

 

공세는 12월 9일에 계속했다. 작전 계획은 전차군의 소총병 사단들이 작전 첫날 동안 치르 강을 도하할하고 교두보를 형성해 우리 군단이 전투에 돌입하는 걸 지원할 상황을 예상했다. 군단은 치르 강을 도하하는 임무와 소총병 사단들과 합세하여 추빌렙스키, 니지, 칼리놉카 선을 확보하는 임무를 받았다. 그 이후 공세를 노보데르벤놉스키와 베르흐네-아크센놉스키 축선으로 확대할 것이었다.

 

군단은 반 동안 70~75 Km를 행군하여 새로운 전투 지역으로 이동했다. 군단 참모들이 선두 부대를 일찍 보내 수색을 계속하고 전투 공병들을 그 선두에 세워 진격로를 개척하게 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리하여 군단 본대는 우군의 이동을 감독하고 안전하게 새 지역에 집결할 수 있었다.

 

12월 9일 아침, 이반 알렉세예비치 마카렌코 소장의 제321 소총병 사단과 이반 야코블레비치 쿨라긴 대령의 제119 소총병 사단이 공세를 시작했다. M. V. 슈토프 대령의 제45 기계화 여단과 S. P. 그레치킨 대령의 제49 기계화 여단은 군단의 제1 제파로서 도약점에서 치르 강을 도하하고 강 남안으로 침투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소총병 제대들은 우리 포병들이 적의 화점들을 무력화하는데 실패하는 바람에 진격이 정체되고 있었다. 특히 추빌렙스키 농장과 니지, 칼리노바에서 쏟아지는 적의 화력이 치명적이었다.

 

이런 교착 상태에서 로마넨코 중장은 12월 10일 아침에 공세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나 그때 우리 군단은 제1 제파를 적 방어 돌파에 투입시키던 중이었다.

 

공세의 시작에서 군단은 적의 3배가 넘는 보병과 동등한 수의 포병으로 적을 몰아붙였다. 적은 최전방 방어선에 배치한 전차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공세 시작에서 전차들을 대규모로 밀집시킬 수가 없었다. 치르 강에 얼은 얼음은 중장비를 이동시킬 수준까지 두껍지 않았으며 이를 대비한 공병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은 우리 부대들이 무기대여법으로 지원받은 영국제 마틸다 전차와 발렌타인 전차를 장비한 바람에 더 복잡해졌다. 이미 우리가 알듯이 영국제 전차들은 상대적으로 장갑이 약했고 속도도 느렸으며 험지 기동력도 엉망이었다. 특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 건 화력이 너무 빈약한 40 mm 주포였다.

 

우리 군단 사령부는 이런 장비들을 가지고도 현 상황에 맞춰 성공을 이끌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 군단은 이 과업을 수행했다.

 

12월 9일, 우리는 적이 치르 강 남안에서 추빌렙스키에서 니지까지 이르는 방어선에 2개의 주요 화점을 설치했다는 것을 알았다. 칼리놉카와 이 화점들만 점령하면 세크레테프, 수로비키노 지역의 방어를 무너트릴 수가 있었다. 상황을 평가해 보니 주간에 적 화점들을 대규모 전차 부대 공격으로 점령하는 것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때문에 군단사령부는 제45 기계화 여단과 제59 기계화 여단의 선두 차량화 소총병 대대들로 야간 기습 공격을 벌여 화점들을 점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2 여기서 군단 주력은 선두 대대들이 적 화점을 무너트린 후 새벽에 공세를 시작하기로 했다. 기습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포병은 선두 대대들이 도하할 때 까지 지원 포격을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포병들은 적이 우리의 진격을 눈치챌 때를 대비해 항상 포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야간 작전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대대들은 신중한 준비를 했다. 특히 화기와 장비에 윤활류를 바르는 걸 엄중히 감독했는데 영하 20도의 추위에서 화기가 오발을 해 소음을 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지휘관들과 정치 위원들은 병사들의 전투 의지를 상승시키는데도 신경을 썼고 특히 야간 전투에 처음 투입되는 병사들에 집중했다.

 

12월 9일 밤, 선두 대대들이 행군 종대로 공격 축선에서 이동을 시작했다. 군단과 여단 참모들은 각 축선을 감독했다. 대대장들은 상황에 따라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대대들이 도하를 시작한 이후 모든 장교들이 긴장 속에서 기다렸다. 나는 볼코프 소장이 이 상황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떠올렸다. 자정이 지나자 군단장은 내게 와 말했다.

 

"나는 지휘관이 개인적으로 상황 전개에 개입할 기회가 없고 순전히 병사들의 용기가 가져올 결과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고 고통스럽네."

 

먼동이 트기 60~90분 전, 제45 기계화 여단 참모들은 선두 대대의 대대장인 P. I. 트카첸코 소령이 치르 강에 다달았다고 보낸 무전을 받았다. 

 

이후 상황은 이러헤 전개되었다. 제45 기계화 여단의 선두 대대 소속 제1 차량화 소총병 중대가 강둑에 접근했을 때, 적의 조명탄 하나가 올라갔고 뒤이어 하나가 더 터졌다. 아군은 적 조명탄에 이동을 들켜 화력에 노출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대대장은 열성적으로 공격을 가해 적 화점이 발포할 기회를 주지 말라고 명령했다. 제1 차량화 소총병 중대에 후속한 전 대대 병력들이 명령에 따라 도하를 끝내기가 무섭게 추빌렙스키 농장으로 쇄도했다.

 

이 전투에서 많은 병사들이 용기와 기개와 진정한 군인의 과감함을 보여 주었다. 나는 만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제1 차량화 소총병 중대가 적이 장악한 강둑에 다달았을 때 적의 경계 초소는 강력한 화력을 퍼부어 중대를 강둑에 잡아 놓았다. 치명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때 기관단총수인 자데노프(다른 무명 용사들처럼 그의 이름과 부칭을 아직 알 수가 없다.)가 적 기관총을 침묵시키겠다 나섰고 동지들에게 자신을 엄호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기관총수들은 적 초소에 화력을 집중해 자데노프를 엄호했다. 그 순간 이 용감한 군인은 앞으로 달려들어 적 초소에 수류탄 2개를 까넣었다. 적 초소가 침묵하자 분대장인 굴라예프 하사가 일어나 달려들며 외쳤다. "나를 따르라! 앞으로! 조국을 위하여!" 병사들 중 누구도 진격하길 망설이지 않았으며 수류탄과 기관총과 기관단총을 쉴새없이 적에게 퍼부었다. 나는 이 야간 습격이 적에게 기습을 먹임으로서 성공했음을 지적하려 한다. 우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적군은 공황 상태에 빠져 농장에 사상자들과 장비들을 남겨 놓고 도망쳤다. 

 

제49 기계화 여단의 선두 대대의 임무는 니지 북서쪽의 다리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칼리놉카에 있는 적은 그 다리를 통해 지원 전차를 보낼 수 있었다. 여단 수색대는 선두 대대 앞에서 진격하다 그 다리를 몇 안되는 경비병이 지키고 있음을 발견했다. 경험 많은 수색 부대원들이 적 경계병들을 습격해 조용히 제거했다. 하지만 수색대는 다리 위에 적이 부비트랩을 설치한 걸 발견했다. 우리 전투 공병들이 부비트랩을 제거함으로서 다리는 완전히 우리 것이 되었다. 작업이 긑나갈 때 쯤 추빌렙스키 농장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고 그 결과 니지와 칼리놉카의 적이 경보를 받았다.

 

적 조명탄이 다리 위에서 터졌고 적은 기관총과 박격포를 다리에 퍼부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대대장은 전차 중대를 선두로 다리를 건너게 해 적을 중단 없이 공격하게 했다. 차량화 소총병 부대들이 전차 중대 뒤를 따랐다. 

 

전차들의 엔진 소리와 캐터필터 소리는 적을 혼란에 빠트렸다. 우리 소총수들과 기관단총수들이 전차들 뒤에서 나타나 수류탄을 던지며 사격을 해대자 적은 더 약해져서 공황 상태에 빠져 농장에서 사상자와 장비를 남기고 도망쳤다. 

 

12월 10일 아침, 군단 주력이 전투에 가세했다. 제45 기계화 여단의 차량화 소총병 부대들은 얼어붙은 치르 강을 건너 노보데르벤놉스키를 공격했다. 전과는 느리게 확대되었는데 여단의 전차 연대가 강을 다 건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제321 소총병 사단의 우익은 성공적이지 못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사단 좌익은 세크레테프의 적 교두보가 제거된 상황에서도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여단은 102.6 고지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고 12월 12일에는 공세를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제49 기계화 여단은 선두 대대가 니지와 칼리놉카의 적 방어를 무너트리자마자 공세에 참여했다. 공세 첫날에 여단은 적 화점을 장악했고 12월 12일 밤에는 102.7 고지와 96.1 고지를 장악했다. 

 

우리 차량화 소총병 사단들은 적 방어 깊숙히 진격했는데 그 때문에 수로비키노의 적 교두보는 군단 좌익과 후방에서 계속 위협 요소가 되고 있었다. 제119 소총병 사단 소속 부대들은 이 교두보를 아직도 제거하기 못하고 있었다. 12월 10일 밤에 교두보를 제거하기 위해서 군단장은 F. P. 포고렐로프 중위의 전차 중대에 기관단총수들을 배속시켜 교두보 제거를 지원할 것을 명령했다. 

 

중대는 임무를 받은지 30분 후에 수로비키노로 최고 속도로 달려가 수로비키노 역에서 보내는 아군 지휘관의 무전을 들었다. "우리는 공격 받고 있다. 우리는 역을 점령했고 적이 역을 재점령하려 한다." 우리는 제119 소총병 사단 참모들과 접촉해 우리 분견대가 그쪽으로 성공적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정보를 보냈다. 그러나 사단은 여러 가지 이유로 공격을 늦게 시작하고 있었다. 전차 중대는 이 사실을 무시하고 철도를 따라 유류 집적소로 계속 진격했다. 그러나 적이 대전차 화기와 중박격포의 지원을 받으며 반격을 시도하자 볼코프 소장은 중대를 원 위치로 후퇴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나치들이 수로비키노에서 도망치자 상황은 호전되었다. 포고렐로프 중위의 분견대는 마을에 진입했고 12월 12일에 117.4 고지를 공격해 장악한 제48 기계화 여단의 전차 중대와 합세했다. 곧이어 제119 소총병 사단이 공세를 개시했다. 적 주둔군은 조각나 포위되었고 황급히 수로비키노에서 철수했다. 

 

12월 12일 아침에 군단장은 제2 제파를 침투 공세를 위해 투입시켰다. I. N. 체플랴예프 중령의 제50 기계화 여단은 T. G. 카라스 중령의 제168 전차 연대와 합세해 제45 기계화 여단과 제49 기계화 여단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고 노보데르벤놉스키 축선으로 진격해 그날이 끝나갈 때 마을은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2월 12일에서 18일까지 벌어진 전투 작전에서 적은 제48 기갑 군단 소속의 1개 기갑 사단과 1개 보병 사단을 보내 작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우군의 진격 속도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군단 제대들은 손실에 고통받으며 방어로 전환했다.

 

12월 19일, 적은 공세를 개시해 제50 기계화 여단과 제168 전차 연대에 전력을 집중했다. 적 전차들과 보병들은 항공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전차들과 포병들과 차량화 소총병들은 강력히 저항하고 공세로 전환했다. 그날 우리 전차들은 40 mm 주포의 화력을 시험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영국제 주포들은 400~500 m 내에서 적 3호 전차들과 2호 전차들의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우리 전차들은 노보데르벤놉스키 일대에 생긴 포탄 구덩이들을 이용해 은엄폐를 하며 적의 접근을 허용하다가 근거리에서 사격했다. 

 

적은 이 전투에서 전차와 인력을 상실하여 공격을 멈추고 방어로 전환했다. 전선군은 수로비키노 남서쪽이 상황을 안정시켰다.

 

토르모신의 적 집단을 상대로 한 전투 작전에서 많은 우리 병사들이 용기와 기개를 보엿다.  스타로데르벤놉스키 농장에 접근하는 전투에서 기관총반 반장  니콜라이 가브를로비치 로바체프 중사는 뇌진탕으로 고통받아 잠깐 전장 후방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그날 늦은 밤에 로바체프는 나치들의 시체 몇 구를 발견했는데 시체들이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적들의 기관단총을 챙긴 로바체프는 총성이 크게 들리는 곳으로 강 둑을 따라갔다. 갑자기 그는 5~6명 쯤 되는 적 경기관총반이 아군 대대 후방에 경기관총을 설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바체프는 기관단총을 쏴서 그들을 전부 사살했다. 로바체프 중사는 이 공으로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다.

 

병사들의 높은 사기는 그들을 전투에서 모두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다 .토르모신 전투에서 195명이 당에 가입했고 93명이 콤소볼에 가입했다. 

 

이 전투에서 최초로 당원증을 받은 사람은 글로다 중사였다. 글로다 중사는 부상을 당해 붕대를 감은 채 추빌렙스키 농장에 설치된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이었는데 독일군 1개 소대가 우군 후방에 침투하는데 성공해 의무대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적들은 적십자를 봤을 것이 분명한데도 뻔뻔스럽게 꼳꼳히 서서 접근했다. 의무대에는 몇몇 의무병과 부상병들밖에 없어서 전부 사살 당할 위기에 처했다. 

 

글로다 중사는 망설이지 않았다. 중사는 부상이 심하지 않은 병사들을 모아 재빨리 건물을 방어 거점으로 만들고 명령했다. "내가 명령하기 전에는 사격하지 마라." 나치 도살자들이 건물에 몇 미터 이내로 접근하자 중사는 사격을 명령했다. 그리하여 적 소대 병력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글로다 중사는 이 공으로 당원증을 받았다.

 

12월 22일부터 제5 기계화 군단은 제321 소총병 사단의 방어 지역으로 이동해 26일부터 나치 침략자들로부터 로스토프를 해방시키는 작전에 참여했다.

 

제5 기계화 군단은 제5 전차군의 주요 공격 축선에서 적 제48 기갑 군단의 기본 전력을 패퇴시키고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된 적을 섬멸하는 걸 지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독일군의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12월 10일에 적의 대병력이 돈 강의 전선 서쪽을 치르 강 하류에서 건너 와 공격했다. 이 때문에 제48 기갑 군단이 이 지역에서 빠져나와 제57 기갑 군단과 합새헤 돈-치르 교두보에서 진격할 수 밖에 없었다."3

 

수로비키노 전투 작전은 우리 지휘관들과 참모들이 제한된 시간 하에서 중단 없는 공세를 조직하는데 여전히 미숙했다는 단점을 보여 주었다. 참모들은 전투 상황이 유동적일 때 아군의 소재를 항상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기동 제대가 적절한 공병과 공병 장비 지원을 받지 못했을 때 진격 속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기습 요소도 저하시킬 수 있다는 것도 강조해야 한다.

 

전투 경험은 야간 작전이 강력한 주도권을 잡을 수단이라는 것도 보여 주었다. 

 


  1. 이 기사 내용은 <제5 기계화 군단의 전투 작전에 대한 보고서>(TsAMO SSSR, folio 363, inv. 32059, file 1, sheets 1~30)에서 발췌한 것이다.
  2. 당시의 기계화 여단은 700명으로 구성된 3개 차량화 소총병 대대와 1개 전차 중대(전차 36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군단 직할 전차 연대(제168, 188은 각각 2개 전차 대대로 구성되어 있엇다. 군단의 총 전차 전력은 193대였다.
  3. Erich von Manstein, Uteryannyye Pobedy, Voenizdat, 1957, p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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