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력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오해(?)

의외로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군사관련 관심 있는 분들도 전쟁나면 전기 다 끊긴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가끔 있어서 몇 글자 남깁니다.

보통 아파트의 배전반은 지하 통제구역에 있습니다. 사실상 전봇대에 매달린 채 노출된 주상변압기가 배전반 역할을 하는 단독주택 및 소규모 빌라와는 시스템이 다르죠. 그 때문에, 어떤 구역에 무작위로 포탄/소이탄/장사정포 같은 것이 날아들어서 군데군데 불이 나고 부서지고 하는 경우 단독주택이나 빌라가 아파트보다 전기가 더 끊기기 쉽습니다. 일부러 아파트의 지하 배전반 위치를 정확히 노리고  지하관통탄을 사격하지 않는 이상은 배전반을 깨긴 어렵습니다. 

또한 배전반은 각 수용가(세대)에 들어가는 전기를 개별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전력선 다발이 지나가는 곳이 하필 포탄맞아서 부서지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 경우라 할지라도 부서진 층보다 아래 쪽의 경우 선 자체가 끊어진 게 아니므로 전력공급 자체는 가능합니다. 평시라면 당연히 전체적으로 안전점검 완료될 때까지 해당 동의 전기 전체를 차단해야겠지만 전시라면 그런 거는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을 까 합니다.

그리고 "합선" 은 사실 대부분의 전기 관련 화재 원인이 아닙니다. 글자 그대로 합선이 되면 차단기가 내려가죠...;;; 물론 아주 옛날 주택들 중에는 두꺼비집을 걍 전깃줄로 직결시켜놓는 막장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통상적인 아파트는 그런 곳이 없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전기화재는 합선이 아니라 "누전" 에 의한 거고 포탄 맞았다고 곧바로 누전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일부 재수없는 집에서 화재가 발생할 수야 있죠. 포격으로 누전이 일어나는데 하필 근처에 인화물질이 있다든가 하는 상황)

아파트 쪽의 전기시스템을 통짜로 마비시키려면 해당 지역에 주 전원을 공급하는 변전소를 날려야 하는데 전시에 경비가 상당히 쎄지는 곳입니다. 더군다나 전기는 수도나 가스 같은 것과 달리 우회망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우회통로가 살아 있으면 여전히 전기공급이 가능할 수도 있고요.

대략적으로 봤을 때, 전시에 차단되는 순서는 가스가 가장 먼저, 그 다음이 수도이고 전기는 가장 늦게 차단될 확률이 큽니다.

(가스는 대부분의 아파트들이 외부로 배관을 노출하고 이건 훨씬 포격 등에 취약하죠. 가스배관을 아파트 벽으로 매립할 수 없는 이유는 새어나올 때 끔찍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지만서도... 또한 전기는 사실 전시에 매우 위급한 경우 약간 누전이 되더라도 일단 쓰고 볼 수 있지만 가스는 그런 식으로 쓰기 어렵습니다)

p.s. 아파트를 진지나 감제고지 용도로 활용한다고 할 때, 왜 옥상에서 관측 또는 사격을 시도하다가 포탄맞고 몰살당하는 장면을 염두에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저격수든 대전차 사수건, 가장 우선시되는 위치는 옥상이 아니라 적의 주 접근경로로 창문이 나 있는 옥상 바로아래층 또는 2층 아래 정도 위치가 아니었던지요? 비상시에 헬기 같은걸로 탈출하는데야 옥상이 유리하지만 뭐하러 아파트 바닥/천장 이라는 "벙커노릇 할 수 잇는 지붕" 을 낭비하겠습니까? 고지전 할 때도 고지 꼭대기에서 노출되어 관측하진 않죠. 거기 설치된 엄폐호나 벙커에 숨어서 관찰하는게 우선이고, 도저히 관측이나 사격 각이 안 나올 때나 위험을 무릅쓰고 외부로 나가는건데...